인사미술공간

막후극_Afterpiece

막후극_Afterpiece
  • 전시일시 2015.03.27~2015.05.01
  • 오프닝
  • 장소
  • 작가 김민애, 김진주, 이수성, 이정자, 파트타임스위트
  • 관람료
  • 부대행사
  • 주관
  • 주최
  • 문의






 전시는 작가, 큐레이터, 작업, 공간, 관객의 현전을 담보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현장의 예술’이다. 정해진 공간에서 잠시 열리고는 곧 사라지는 특성 때문에, 전시는 누군가의 기억이나 기록에 의지하여 존재할 수밖에 없다. 제아무리 미술의 충실한 순례자라고 해도 모든 전시의 현장에 있을 수는 없기에, 미술의 이야기는 기억과 기록을 참조한 담론에 의해 사후적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이 기록과 기억이라는 것은 참으로 불완전하고 하찮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주관적으로 바뀌고, 기록은 현장에 있었던 모든 감각을 몇 가지 방법으로 치환하여 불완전하게 남을 수밖에 없으며, 기억에 기대어 끝없이 재해석된다. 전시가 끝난 후의 작업들은 또 어떤가. 전시가 열렸던 장소와 시공간적 관계를 주고받으며 의미를 발하던 작업이 그 장소에서 벗어나게 되면 산에서 주워온 기이한 돌멩이처럼, 여행 가방에 구겨 넣어 온 기념물처럼 영 그때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Afterpiece 막후극은 이 일회적 행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려는 행위가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불완전함에 주목한다. 완성된 상태로 보여지는 전시에서는 드러낼 수 없었던 이야기를 풀어내며, 특히 이벤트가 끝난 후에 남은 작품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밝혀지지 않은 이면을 드러냄으로써 그 모든 것이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회의하려는 것은 아니다. 미비하고 빈약할 수밖에 없음에도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의지와 함께, 서로를 끊임없이 참조하려는 둘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모든 기억과 기록은 선택적이고 불투명한 것임을 다시금 인식하고, 이 어긋남에서 발생하는 상상과 해석의 여지에 전시를 구성하는 각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려 한다.





▲파트타임스위트_한 개 열린 구멍_HD 비디오, 사운드_30분_2015 



 이정자는 물리적 장소에 덮이고 또 덮여버린 미술 활동의 흔적을 발굴하여 제시한다. 보통 전시를 위해 제작되는 가벽이나 임시 장치물은 최대한 그것이 ‘가설’ 된 것임을 숨기고 원래 그랬다는 듯이 공간을 분할하고 구획한다. 작가는 알고보니 가짜였던 벽의 일부를 예리하게 자르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임의로 재배치한다. 몇 가지 실제적 요소가 뒤틀린 장소는 그 동안 전시장의 역할을 위해 숨겨져 왔던 ‘뒤’의 구조를 내보인다. 낯선 현재가 익숙해질 즈음, 작가는 예고 없이 전시장을 ‘원래의 가설된’ 상태로 돌려놓음으로써 그 일시성을 은유한다. 또한 벽에 겹겹이 발린 페인트를 벗기고 긁어내며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칠과 못의 자국을 작업의 요소로써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이정자_None-passbox_스퀘어 컷 드로잉_종이위에 먹지, 연필_34.5cm x 23.6cm_2015

 김진주는 전시를 기록하고 기억한 그 다음을 상상한다. 두 행위를 통해 과거의 전시를 되새긴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번 작업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질문은 역사교훈적인 차원의 ‘계승’ 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한 개인이 기록과 기억을 곱씹으며 획득한 영감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창작의 ‘가능성’에 가깝다. 작가는 이러한 의지를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혹은 누군가를 독려하듯 ‘기억하기의 권리’ 로 표현하며, 인사미술공간에서 있었던 전시들이 무언가를 만들어 남겼다고 가정한다. 기관의 옥상에 설치한 조각 작품은 이 ‘유산’ 을 엮어내는 상징물이자 매개물이다. 작가가 우연히 찾아낸, 왜 미술관에 있었는지 모를 의아한 사물들은 탁본되어 ‘유산화’ 된다. 이것들은 기관의 ‘유산’ 을 양도할/받을 수 있는 일종의 임대차계약서로 연결된다.







▲김진주_바람은 기억하고 잊는다(부분)_알루미늄 파이프, 화구 나이프, 기타줄, 철사, pvc_가변 크기_2015




 사라져 버리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 혹은 의미의 사후적 재구성을 위해서, 전시는 사진, 영상, 텍스트 등으로 꼼꼼히 기록된다. 그리고 독자로서의 이후 세대는 과거의 전시를 텍스트와 사진이라는 기록으로 접하며 그 기록 안에서 담론을 생산한다. 그런데 기록으로, 또는 기억으로 지나간 일을 오롯이 불러내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리오타르는 근대 이후 재현이 불가능한 상태를 일컬어 ‘분쟁과 틀림의 상태’라고 한다. 모든 현전을 담을 수 없는 기록과 불완전한 기억으로 이루어지는 증언, 이 둘을 바탕으로 출발하는 비평과 담론은 또 얼마만큼의 분쟁과 틀림을 가지고 있을까.  

 

파트타임스위트는 이 기록의 불완전함과 틀림의 상태를 전면에 내세운다. 작가들은 인사미술공간의 2000년에서 2008년까지 아카이브를 꼼꼼히 살피고, 도록, 자료집, 각종 행정 자료에 담긴 말과 이미지를 파편적으로 수집한다. 부단했던 과거의 흔적들은 원본이 무엇인지 알아채기 어려울 만큼 선택적으로 확대되고, 여기에 Afterpiece 막후극의 구성원들이 전시 장소에서 행한 미공개 퍼포먼스 영상이 불규칙적으로 삽입된다. 재조합된 영상은 원본과 이를 둘러싼 상황을 넌지시 제시하다가도 그 토대를 해체시킨다. 예민하게 편집된 영상은 오리지널을 추적하려는 시도를 무색하게 만들면서 미술 실천의 현재적 위치와 역할을 반문한다. <한 개 열린 구멍>은 2002년에 열렸던 한 심포지엄 발제자의 글을 ‘잘못’ 번역한 기록에서 가져온 제목이다.





▲파트타임스위트_한 개 열린 구멍_HD 비디오, 사운드_32분_2015 



한편, 일회적인 전시 안에 자리했던 작업은 전시가 끝나고 나면 필연적으로 다른 형태의 삶을 맞이한다. 특히 조각이나 오브제는 그것이 머무르는 물리적 공간과 크게 공명하기 때문에 사건이끝난 뒤의 운명이 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만약 다른 전시에 재배치 된다면 새로운 시간과 공간, 정치적 상황과의 관계 속에서 다른 의미를 갖겠지만, 마땅한 보관 장소를 찾지 못한다면 그냥 사라질 수도 있다. 약간의 사진과 글로만 남겨진 작업은 기록(record) 된 과거와 이를 바라보는 현재 사이의 어떤 ‘결여’ 때문에 처음과는 다른 맥락으로 구성되는(recode) 일도 생긴다.



작업은 그대로지만, 작업이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이수성의 오브제는 대부분 기념비처럼 부피가 크기 때문에 전시가 끝난 후에 보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작가는 이런 작업을 해체하면서 작업의 기단이나 귀퉁이 등을 떼어 보관해왔고, 여러 전시에 흩어져서 선보였던 작업의 재료를 조건으로 새로운 전시를 구성했던 적도 있다(≪Bachelor’s Party≫, 2014, 시청각). 이번 전시에서는 기념비성이 제거되면서 스스로 그 기념비의 기념물이 된, 조각(彫刻) 의 조각들을 전시장 곳곳에서 새롭게 코딩하여 안착시킨다.





▲이수성_모노리스 Mark II_시멘트, 목재, 수성 페인트_104.8x29x46.8 cm_2015




김민애는 그간 전시가 열리는 공간과 적극적으로 관계하는 설치 작업들을 해 왔다. 작업이 공간의 건축적 특성과 서로 관여하는정도가 크면 클수록, 전시장에서의 작업과 전시가 끝나고 난 후의 작업 사이의 괴리는 커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사후의 작업들은 작가의 표현처럼 ‘바보가 되어버린’ 상태로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첫 개인전 ≪익명풍경≫(2008) 의 풍경과 작업들이 가졌던 당시의 의미를 본인의 기록과 기억에 의지해 돌이킨다. 그것들의 현재 상태에 대한 상념은 텍스트로서 불완전한 기억의 장막에 펼쳐진다. 작업의 레퍼런스들을 충실히 되새기는 태도로 시작된 <원고지 드로잉 a, c> 의 텍스트들은 지워지거나 오려지는 등, 일시적으로 존재하다가 휘발되고 마는 기억의 속성을 가시화 시킨다.





▲김민애_원고지드로잉 a Manuscript-paper Drawing a_텍스트, 원고지, 연필_275 x 32 cm_2008



 ‘막후극’이라고 번역되는 ‘Afterpiece’는 18~19세기 연극에서 본 극이 끝난 후에 상영되었던 여흥의 공연을 말한다. 이 영문 단어는 비슷한 언어 구조 때문인지 ‘Masterpiece’ 를 떠올리게 하고 마치 전시 이전과 이후에 존재 맥락이 달라진 작업(Piece) 을 지시하는 고유명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타이틀 아래 작가들은 전시를 둘러싼 담론에 가려져 있던 작품의 개인적인 서사를 드러내기도 하고 과거의 기록물을 끄집어내어 현시점에서도 유의미한 문제의식을 이끌어낸다. 이 모든 미술 행위들이 일어나는 공간에서 고고학자처럼 과거의 흔적을 발굴하기도 하며, 수 없이 덧붙는 기록과 이를 둘러싼 기억이 혼재됨에 따라 결국에는 원전이 사라지는 덧없음을 알면서도 이를 찾으려 하는 몽상가적인 열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정한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전시의 일회적 속성 너머에서, 임의적 선택과 자의적 기억을 통해 호출된 작업들은 어떤 현장성을 지닐 수 있을까? 전시가 막을 내린 후 이루어지는 모든 이야기의 형태는 주관적인 서사의 각주가 늘어남에 따라 점차 온전함에서 멀어지고, 때로는 전시라는 틀에 속박되어 거처를 찾지 못한 채 이동한다. 미래인의 시점에서 후일담을 상상한 이후에 그 무엇이 남을지는 각자의 상황과 정치성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결국 이번 기획은 과거로부터 무언가 중요한 것이 누락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끝끝내 알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시점의 과거들을 참조 지점으로 설정한 Afterpiece 막후극 또한 막후에는 어떤 잠재적 과거로 기록 -기억 될 것인가.
담당자명 :
차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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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미술관 전시기획 및 운영 총괄 인사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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