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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 앓게 된 시간들

글 : 이이체(시인, 2008년 『현대시』로 등단)

 


‘그곳’에 처음 갔을 때에는 열아홉 살이었다. 문학이 없던 시절이었다. 어려서 내겐 문학보다 인문학이 있었고, 내가 읽은 시집이라곤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이 전부였다. 많은 습작생들이 있었고, 나처럼 그저 인문학에 관심이 있어 오게 된 청소년들도 제법 많아 보였다. 여기저기 비평적인 꼬투리를 잡고 싶어 하는 철없던 그 시절의 나는, 그곳에 몇 번 글을 썼다. 때로 내 글에 작은 상이 주어지면서 나는 막연하게 내 재능을 과신했다. 글이 무엇인지 문학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는 그곳에 그렇게 발을 들였다.
재미있었던 기억들과 많은 사람들이 남았다. 나와 다른 성분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나는 거기서 다시 ‘글’을 보았다. 돌이켜 보면 그들의 글이 그들의 피부처럼 와 닿았던 것 같다. 내가 공부하려던 사회적인 비평들과 다른, 시와 소설들을 보면서 나는 ‘나와 닮은 이물감(異物感)’을 느꼈다. 그것은 분명 나와 닮아 있는 전혀 낯선 타자와 조우하는 기분으로, 마치 ‘도플갱어’라는 해묵은 현상의 하나인 것만 같았다. 그 기묘한 느낌은, 작가들을 만나면서 더욱 더 강해졌다. 그곳에서는 글을 쓰는 학생들을 위한 최선의 배려로, 작가들의 강의와 만남을 주선해주었는데, 작가들은 철없던 내가 상상하던 편견과 달리 이질적이면서 개방적이었다. ‘그곳’에서의 혼란은 그토록 매혹적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부터, 나는 까닭 모를 이 기시감(旣視感)을 감당하지 못하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시들은 시라기보다 시가 되려고 발버둥치는 말들의 서성거림이었는데, 그것은 ‘그곳’에서 깨닫게 된 이물감으로 인한 제자리걸음이었다. 고마운 것은, 그곳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의 이런 난삽한 발자국들을 이해해주었다는 사실이다.

싫은 일들도 있었다. ‘싫다’는 것이 생겨나는 일 자체가 싫었다. 그러나 ‘싫음’이 생겨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좋음’들을 지나쳐야 했겠는가. 내가 던진 증오들과 내게 던져진 증오들을, 새삼 이 자리에 와서 마음을 숙여 감사하다. 지금, 그곳을 내가 지나갔음에 깊이 미소 짓는 시간이다.

뒤늦게 시작한 시작(詩作)에 갖게 된 열패감도 있었다. 먼저 시작한 그곳의 친구들을 보며 나는 질시와 부끄러움을 한 몸으로 겪어야 했다. 그 마음 때문에 나는 천 권의 시집들을 몰아 읽고 하루에 세 편의 습작을 몰아 쓰며, 내 안의 세계에 몰입하며 지냈다. 어리석고 어린 마음에서 비롯된 이 공부는, 내가 그저 읽기만 해선 안 된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그 깨달음이 싫어서 어떤 날에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마음을 지우려고도 했고, 어떤 날에는 함께 찍었던 견습 영화 테이프들을 하나하나 불살라 버리기도 했다. 시를 쓰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갈기갈기 찢어 물에 버리기도 했습니다. 시급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굶기도 했고, 매 끼니를 라면으로 때워서 라면만 먹으면 두드러기가 나는 시절도 있었다. 정처 없이 무작정 걷기도 하고, 강의를 피하고, 친구들에게서 도망치기도 했다. 버리는 법과 버림받는 법을 터득했다. 무엇보다도, 사랑을 앓았다. 그렇게 열여덟 달의 혼돈이 나를 등단하게 했다. 2008년 10월, 시를 쓰기 시작한지 1년 6개월 만이었다.

생애 첫 응모에 등단하게 된 나는 당황해서 종종 발을 헛디뎠다. 그러나 나는 그 엉킨 스텝을 시험 삼아 외려 더 잘 걷는 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내 보폭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도 못했고, 내 발자국과 남의 발자국을 분별하지도 못했으며, ‘말’을 잘 몰지 못해서 더듬기 일쑤였으니까 말이다. 나는 나를 알기 위해서 나를 앓았다. 돌아보건대, 등단이란 그 선언보다도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여전히 나를 앓는 중이지만, 조금은 바르게 말할 수 있게 된 지금, 한 권의 시집을 준비하고 있다. 이 ‘첫’ 단추를 잘 꿰려고 시편들을 정리해보니, 건방진 표현을 빌자면 짧은 시간이 무궁하게 느껴진다. 뚜렷하지는 않지만, 사려 깊은 도움들로 올해 가을 무렵이면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준비 중인지라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다음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저 지금을 살고 있다면 그 다음도 오리라는 막연한, 근거 없는 자신감만 누리고 있다. 이게 청춘이라고 짐짓 큰소리도 쳐 가면서 말이다. 포부라든가 계획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내게 낯선 말이다. 단지 약속할 수 있는 거라면, 더 많이 은폐되고 더욱 미완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 불완전한 모순 속에서 방황하며 내내 뒤돌아보겠다.

언젠가도 나와 닮은 꿈을 꾸는 청소년들에게 당부의 말을 부탁받은 적이 있다. 그 때 했던 말을 반복하자니 새삼 내 마음이 다르고 그 자리가 다른 듯싶다. 그럼에도,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내부의 속삭임은 다르지 않다고 본다.

당신은 당신이 모르는 말들로, 당신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황홀경을 안겨줄 것이다. 그 지고한 이심전심이 당신과 사람들을 ‘문학’이라고 형언되는 어떤 미묘한 분위기로 감염시킬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에게 문학이 무엇이라고 선언해줄 수 없다. 나는 당신에게 길을 알려줄 수도 당신의 말을 대신해 줄 수도 없다. 굳이 알려주자면, 문학, 그녀는 베일에 싸인 여자다. 그뿐이다. 때문에 당신은 그녀를 잘 알 수 없다. 얼마나 예쁜지 정확하게 어떤 살결을 가졌는지, 당신은 모른다. 지금까지 몰랐고 앞으로도 알게 될 기회가 있더라도 쭉 모를 것이다. 당신은 이 모르는 여자의 어슴푸레한 얼굴 앞에서 맴돌 것이다. 그러나 베일 쓴 여자의 입술에 키스하는 행위란 얼마나 부정확하고 신비로운가. 가늠할 수 없는 육체의 윤곽을 더듬는 그 몸짓이야말로 아름답고 기이하다. 우리는 벙어리와 장님이다. 이 사랑은 당신이 그녀를 흉내 내느라 당신을 망각하는 징후다. 이제부터 눈을 감고 합창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윤회로부터, 부디 당신도 살아 있기를.


[기사입력 : 2011.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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