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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 피가로』의 클래식 음악 담당 기자 크리스티앙 메를랭과의 만남
Rencontre avec Christian Merlin  

글 : 김동준(재불음악평론가)

 


그 어떤 음악보다도,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클래식 이외의 다른 음악을 듣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많은 시간을 클래식 음악을 듣는 데에 할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클래식 음악을 연주회장에서 듣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직업이 무엇이든지 간에. 현 『르 피가로』(Le Figaro) 지의 클래식 음악 담당 전문 기자인 크리스티안 메를랭(Christian Merlin, 1964- )도 연주회장에서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파리에 거주하는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연주회장에서 마주치지 않는 법이란 거의 없었다. 현재 릴 대학에서 독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면서, ‘라방 쎈 오페라(L’Avant-Scène Opéra)’라는 오페라에 관해서는 독보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저작물의 저자이기도 한 메를랭을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릴 대학에서 강의를 마치고, 살 플레이엘에서 열리는 파리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를 가는 사이에, 파리 북역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에게서는 거드름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밝은 웃음이 소탈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최근 파리 음악계의 동향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곧 크리스티앙 메를랭이 『르 피가로』라는 르 몽드와 더불의 프랑스의 주요 일간지의 기자라는 자부심보다는 음악평론가로서의 자부심이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론은 어쩔 수 없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주관을 소신과 믿음을 갖고 펼쳐야 한다. 연주나 오페라의 무대연출 등은 모두 그 준비과정과 그 뒤의 의도와 생각들이 있다. 평론가라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설득력을 갖지 못했을 때에, 이러이러한 이유로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마치 심판하듯이 하는 평론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것은 평론의 본래의 기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음악평론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 클래식 음악이 다른 상품들처럼 점점 더 상품화되어가고 있고, 좋은 취향을 지니고 있는 애호가들이 적은 상황에서 평론의 역할은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메를랭은 흔히 수많은 음악평론가들의 경우처럼 평론가가 될 생각이 없었던, 그러나 음악을 무척이나 사랑해서, 어린 시절부터 음악회를 가고, 오페라를 듣고, 수없이 음반을 사서 들으면서, 수첩에 음악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적으면서 성장한, 음악애호가였다. 대학에서 그의 전공은 독문학이었다. 글을 쓰는 일을 좋아했지만, 여전히 음악평론을 할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고. 우연한 기회에 그가 기고했던 글들이 자크 두슬랭(Jacques Doucelin, 크리스티앙 메를랭 이전에 『르 피가로』의 클래식 음악평론 부문을 맡았던 음악평론가 겸 기자)의 눈에 띄어서 음악평론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크리스티앙 메를랭이 쌓은 음악에 대한 열정과 지식은 충분히 차고 넘치는 수준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거의 매일 저녁에 연주회장을 가는 애호가였다. 그가 들려주는 프랑스 음악가들과 오케스트라에 얽힌 이야기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을 졸업한 뒤에 파리 오케스트라에 들어갔다고 하면, 축하하기 보다는 누구나 동정의 말과 눈빛을 보낸다. 그러나 독일의 음악가들은 꼭 베를린 필하모닉이 아니더라도,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한 경력을 자랑스럽게 내세운다. 프랑스에서는 독주자가 되는  것을 음악가로서의 성공으로 보지만, 독일음악 교육에서 좋은 음악가란 함께 연주할 수 있는 음악가로서 성장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오케스트라들의 단원들의 개개인의 기량은 뛰어나지만, 개인주의적인 성향으로 인해서 오케스트라의 전체적인 수준은 결코 세계최고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구체적인 예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단원들 개개인의 수준은 파리 오케스트라보다 낫지만, 이들의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파리 오케스트라를 능가한다. 너무나 간단한 설명이지만, 그들은 함께 연주할 줄 알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오케스트라들의 취약점은 지휘자의 선호에 따라 연주수준의 격차가 너무나 크다는 것이다. 단원들이 지휘자를 좋아하면, 환상적인 연주를 할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평범한 수준 이하의 연주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독일 오케스트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아무리 지휘자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단원들이 모두가 오케스트라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수준의 연주를 한다. 물론 그 다음에 그 지휘자를 다시 초대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웃음)"

오늘날 클래식 음악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이들이 많다. 과거보다 치열한 경쟁이 지친 연주자들이든, 연주회를 기획하는 입장의 사람들이든.
"한 예로 60년대에는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하더라도 소수의 청중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오늘날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매번 연주회에 연주회장은 거의 만원이다. 과거가 무조건 좋았다는 식의 회상은 때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당시에는 클래식 연주회를 경제적 관점에서보다는 대중을 위한 서비스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과거와 오늘날의 근본적인 차이라고 생각한다. 프로페셔널 오케스트라를 유지하는 것과 높은 수준의 오페라 공연을 올리는 것은 모두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지만, 다른 분야의 음악공연의 수익성을 클래식 음악과 비교하는 일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고 어리석은 일이다. 클래식은 결코 그런 수익성을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예로서 커다란 음반사들이 이러한 마케팅 전략으로 클래식 음반산업에 임했다가 커다란 낭패를 보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더 걱정스러운 것은 문화를 결정짓는 정치인들의 문화와 클래식 음악에 대한 무지로 인해, 현재 월급제로 운영되는 오케스트라를 임시직으로 변환하려고 한다든가, 지역의 오페라 극장에 대한 지원을 완전히 끊는 일 등이다. 이렇게 될 경우에 우리는 비슷비슷한 공연들만을 보게 될 것이며, 그럴 경우 문화는 축소되고 왜소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에서 매일 저녁 열리는 공연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으며, 무척이나 다양하다. 그리고 공연의 수준도 매우 높아졌다. 이런 점에서는 낙관적인 생각도 든다."

거의 두 시간에 가까운 대화 뒤에 크리스티앙 메를랭은 환한 웃음으로 자신이 매우 인상 깊게 들었던 최근 연주회와 공연들을 하나씩 꼽기 시작한다.
올리비에 피가 무대 연출을 한 제네바 오페라 극장에서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비엔나와
액-상-프로방스에 올려졌던 쉐로가 무대연출을 맡고 불레즈가 지휘한 야나첵의 ‘죽은 이들의 집’, 알반 베르크 사중주단의 고별공연, 르네 플레밍이 노래하고, 세이지 오자와가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앙리 뒤티유의 ‘시간, 시계’ 초연공연, 피아니스트 로제 뮈라로가 연주한 메시앙의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 연주회, 파리 팔레 가르니에 오페라 극장에서 하네케의 무대연출로 올려진 ‘돈 죠바니’, 미셀 플라송 지휘로 파리 오페라 바스티유에 올려진 ‘베르테르’ 공연,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해서 살 플레이엘에서 연주한 말러 교향곡9번 연주회, 크쥐스토프 바를리코프스키의 무대연출로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에 올려진 ‘파르지팔’, 체르니아코프의 무대연출로 파리 팔레 가르니에 오페라에 올려진 ‘에프게니 오네긴’, 그리고리 소콜로프가 연주한 쇼팽의 24개의 전주곡, 클리스토프 에센바흐와 마티아스 괴르네가 들려준 ‘겨울나그네’ 공연, 크리스티안 틸만이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들려준 브루크너 교향곡 8번, 귀스타보 뒤다멜이 시몬 볼리바 오케스트라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합류하여 연주한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연주회, 피아니스트 알도 치콜리니의 모든 연주회, 마리스 얀손스가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든 공연, 지휘자 제레미 로레르와 안드리스 넬슨의 발견……

『르 피가로』의 클래식 음악 담당 기자이기보다는 ‘음악평론가’로 불리기를 더 희망하는 크리스티앙 메를랭는 매일 저녁, 파리의 살 플레이엘, 샹젤리제 극장, 파리 팔레 가르니에 오페라 혹은 바스티유 오페라 어딘가에서 기대에 가득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그러나 클래식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보수 우파 신문인 『르 피가로』의 독자층을 생각하면 쓸 수 없는 평론도 거침없이 쓰는, 자유롭고 행복한 음악평론가이다.

크리스티앙 메를랭과의 이 만남은 2010년 11월 10일 파리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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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1.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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