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아르코로고

  209호 ISPA 서울총회 - ‘Cultural Shifts:
문.화.변.동.’

검색

 

웹진추천지난호보기아르코간행물문화예술온라인소식지인쇄하기

Focus

ARKO Artist
ARKO In & Out
ARKO News
Issue & Review
지역 통신

해외 통신

   _ [미국] 관객에게 다가가...
   _ [독일] 초여름에는 독일...

해외통신

 

미국 국기 관객에게 다가가는 체호프: 레프 도진과 말리극장의 <세 자매>

글 : 남기윤(예일대 연극대학원)


레프 도진과 말리극장이 안톤 체호프의 <세 자매>를 들고 브루클린아카데미오브뮤직(BAM)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도 공연된 <바냐 아저씨> 이후 2년 만에 뉴욕으로 돌아온 것이다. 작품이 시작하면 BAM의 하비극장 무대에는 2층 높이의 저택 앞면이 우뚝 서 있고, 유리가 없는 창틀 너머로 프로초로프 가문의 식구와 손님들이 집안을 배회하고 있다. 곧 세 여자가 앞으로 나와 무대와 객석 사이를 연결하는 작은 계단 앞에 모인다. 세 자매 중 첫째인 올가의 첫 대사,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딱 1년이야.”에서부터 이미 억눌린 슬픔과 고통이 진동하는 작품의 어두운 분위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도진은 자칫 너무 무거울 수 있는 체호프의 희곡에서 웃음과 따뜻함을 발견한다. 마을에 주둔한 군인들은 평화롭다 못해 따분한 근무지를 버리고 세 자매를 매일 찾아간다. 광활한 무대를 놔두고 어린 소녀부터 나이 지긋한 군의관까지 비좁은 계단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에 관객은 종종 웃음을 터뜨렸다. 늘 공허하고 적적한 체호프의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이렇게 피부를 맞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낯설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세 자매> 공연 장면

체호프는 아마도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극작가일 것이다. 체호프과 짝을 이루었던 연출가 콘스탄틴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사실주의적 연기 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미국 연극계에서 체호프는 시대적, 문화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국민 극작가'나 다름없다. 특히 체호프의 인물들을 연기할 때에는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모습에서 깊은 심리가 은근히 드러나야 한다는 전통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 그러나 도진은 이러한 상식을 깬다. 뉴욕타임즈에서 공연을 리뷰한 찰스 이셔우드는 “섬세함과 강렬함이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섞인, 거의 양식화된 표현주의 연기를 러시아 배우들이 성공적으로 선보인다”고 평가한다.
특히 배우들이 무대의 끄트머리에 모여 앉아서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을 할 때 여느 체호프 공연과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스타니슬라프스키가 연마한 사실주의적 연기보다는 오히려 관객의 호응을 의식했던 19세기 멜로드라마에 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대와 객석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이 견고해야만 작품 속 세계가 실감날 수 있다면, 도진의 <세 자매>는 기꺼이 환상을 깨고 배우와 관객을 같은 공간에 있게 하려 한다.
도진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연출 기법을 통해 관객과의 거리를 좁힌다. 프로초로프 저택을 찾는 손님들은 모두 요란을 피우며 객석 사이의 통로를 통해 등·퇴장한다. 비록 희곡의 배경에 맞추어 19세기 말 러시아의 의상을 입고 있기는 하지만 관객 사이를 오가면 오갈수록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동시대인들의 이야기가 된다. 무대에 세워진 높은 벽은 한 막이 끝날 때마다 조금씩 앞으로 당겨져 작품이 끝날 때에는 계단 코앞까지 다가와 있다. 만약 배우들이 무대를 주로 사용했더라면 답답한 생활이 끝없이 반복되는 시간의 압박을 아주 효과적으로 표현한 상징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배우들이 계단이나 객석 사이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기 때문에 작품 내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지 않았다. 오히려 그 벽은 세 자매가 아니라 관객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다. 그 어떤 <세 자매>보다 인물들을 가까이서 생생히 지켜보고, 미묘한 표정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었던 도진의 연출은 체호프의 작품세계보다 관객에게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즉 객석에 모여앉아 인물들의 삶이 쓸쓸히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숨죽이고 지켜보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게 된다. 좁은 계단에 모여 앉은 인물들은 객석에 모여 앉은 우리를 투영한 거울상이다.
도진은 프로그램에 실린 연출가의 글에 체호프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내가 보기에 <바냐 아저씨>가 가장 훌륭한, 가장 조화로운 작품이라면, <세 자매>의 이야기는 가장 복잡하고 어쩌면 가장 부조화를 이루는 이야기일 것이다.” <세 자매>는 쉬운 작품이 결코 아니다. 물론 체호프의 희곡들은 모두 겉으로 보기에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 미세한 심리묘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일상의 표면 너머에 도사리는 절실한 감정들을 놓치고 만다. 하지만 체호프의 그 어떤 작품보다 구조가 느슨하기 때문에 어찌됐든 큰 사건이 결론 나는 <갈매기>나 <벚꽃동산>과 비교했을 때 <세 자매>는 연극 공연으로서 어딘가 만족스럽지 못한 구석이 있다. 해결책이나 결론은 고사하고 체호프는 앞으로 이 인물들이 가야 할 방향을 암시하는 것조차 철저하게 부정한다.
1막에 꽃핀 사랑은 비극적으로 끝나거나, 그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감옥 같은 결혼생활로 이어진다. 허송세월하는 것을 이제 그만두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찾겠다는 포부는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공허한 계획으로만 끝난다. 막내 이리나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모스코바!”를 연달아 외치는 2막의 끝은 <세 자매>의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다. 비록 등장인물 중에는 가장 어리지만, 이 공연에서 이리나는 이미 세상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배우 에카테리나 사라소바는 이 장면에서 무대 바닥에 누워 신음하듯이 “모스코바!”를 중저음으로 길게 늘어뜨렸다. 마치 모스코바에 결코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한 듯한 절망감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에서 들끓는 답답함에 그만 몸이 마비돼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인상 깊은 순간이었다.
▲ <세 자매> 공연 장면<세 자매>는 연극 한 편에 담기 힘든 긴 세월의 흐름을 정확하게 표현한다고 비평가들은 칭송한다. 작품의 시작과 끝 사이에 어느덧 4년이나 지나고,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듯하면서도 세 자매의 우울한 생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2막과 3막 사이에 1년이 흐르지만 이리나는 시골 저택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3막이 끝날 때 또 모스코바를 외쳐야만 한다. 이토록 방대한 삶들이 한 작품에 모두 녹아들 수 있는 이유는 체호프가 여백을 능숙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잠깐의 침묵 사이에는 전해지지 않은 수많은 말들이 함축돼 있다.
하지만 도진의 연출은 이 상식마저 뒤엎는다. 배우들이 좁은 계단에 모여 앉아 서로 어깨에 기대고 손을 움켜잡을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고 원작의 여백이 압축된다. 그에 따라 이따금씩 감정이 폭발한다. 이리나가 토해내듯 내뱉는 “모스코바!”도 그렇고, 대령과의 불륜을 불행한 결혼 생활의 유일한 안식처로 삼았던 마샤는 대령이 타지로 발령받아 이별해야 할 때 슬픔을 삭히기보다 남편이 빤히 보는 앞에서 절규한다. 누구에게나 있는 슬픔과 한인데 왜 감정을 억누르고 서로에게서 숨겨야만 하는지 도진은 묻고 있다.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불행하게도 우리는 모두 상실의 공통 언어를 이해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체호프가 그린 절망스러운 풍경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를 보듬어주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서로에게 다가가야 한다. 도진의 연출은 공간의 배치와 관객을 향해 열려 있는 계단을 통해 위안과 공감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다. 비록 우리에게 익숙한 체호프보다는 사실주의와 동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end

※ 사진 : Pavel Antonov, 출처 : Brooklyn Academy of Music

[기사입력 : 2012.05.21]


 

본 메일주소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해 수집되었으며, 상업적 용도로 사용하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