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

후기 산업사회에서의 비디오-댄스




김현옥 / 재미무용가

<무용은 삼차원이고 비디오는 이차원이다. 그리고 더 이상 논란할 필요가 없다.> 무용비평가 글로디아로지는 1991년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된 「댄스 스크린 페스티벌」 카탈로그 서두에서 무용과 비디오의 매체의 이질성을 이렇게 함축하여 말하고 있다. 이 다른 두 매체가 접목하여 하나의 예술 형식인 비디오-댄스를 형성하는데는 두 예술이 서로를 수용할 수 있는 공통점, 새로운 표현의 욕구, 문화사적 이유 등 제반의 내면적, 외면적 필연성을 갖고 있다.

무용과 비디오의 공통점은 시간예술이 라는 점이다. "예술감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랜덤(Random) 악세스와 시퀀셜 악세스(Sequential Access)이다. 전자는 책이나 그림 조각처럼 보다가 접어 두었다가 또는 쉬었다가 볼 수 있는 것이고 후자는 영화나 비디오, 공연처럼 시작부터 끝까지 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형예술도 비디오의 소재가 어려우나 시간예술인 무용은 비디오의 소재가 될 수 있다."(백남준, 인터뷰,「춤」지 1985년 5호)

문화사적 비디오-댄스의 필요성은 3가지로 요약될 수 있는데 첫째 기록함으로써 시간을 극복한다는 것이다. 무용은 가장 인간적인 예술이지만, 막이 내리는 순간 구름처럼 사라져버리는 일회성의 허무감은 무용뿐만 아니라 공연예술가는 모두 절감할 것이다. 더욱이 무용가가 무대에서 춤을 출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솔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마리 위그만은 육순이 가까워 무대에서 은퇴해야 할 때가 왔을 때 떠나야 하는 고통을 고백하고 있으며 마사 그라함도 무대에서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을 때, 자신의 솔로의 비중을 다른 무용수들에게 크게 할애하지 않고, 극히 한정된 예술적 인간적 유대가 강한 무용수에게만 출 수 있게 하는가 하면, 솔로가 두드러지지 않고 그룹에 에너지를 분파함으로써 자신의 춤 에너지를 다른 어떤 누구도 같이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말하고 있다.

마리 위그만의 마지막 후예이며 최근에 솔로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수잔 링케는 더 이상 걸작의 솔로 작품들로 무대공연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그녀는 47살이었다. 그 이유인즉 그레타 가르보가 절정기에 은막에서 사라짐으로써 전설을 창조했듯이 수잔 링케도 "자신의 춤이 회상의 상태에서 기억되어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레타 가르보의 영화는 영원히 볼 수 있으나 수잔 링케의 춤은 그가 무대를 떠나는 날부터 볼 수 없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극복하고 싶은 것이 시간인데, 무용가의 경우 그것은 더 절실하다. 비디오의 창시자 백남준씨는 "무용가가 자신을 오래 남기려면 기록을 해놓아야 한다고 하는데 시가 원래는 음유시인에 의해 낭송되는 것이었다가 인쇄술이 발달한 뒤 대량 배포되었듯이 비디오나 영화매체가 무용가에게 있어서 인쇄 역할을 담당할 시대가 곧 올 것이다. 20년 후에는 비디오-댄스가 주류가 되고 무용공연이 부류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고 있다.

둘째, 모든 예술 장르는 문명의 발달에 영향을 받는다. 20세기 영화의 출현은 모든 예술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급속도로 변화하는 현대 문명의 테크놀로지를 무용은 수용할 수가 없다. 그러나 비디오-댄스는 현대의 메커니즘을 활용함으로써 현대문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비디오는 무중력의 예술이므로 세계 어느 곳에서나 언제든 상영이 가능하므로 공간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차원이 다른 3차원인 무용이 2차원의 비디오라는 표현매체를 통해 표현되는 것은, 물과 얼음이 같은 물질이나 서로 다르듯, 비디오-댄스로서 생명력을 가지려면 새로운 언어를 창출해야 한다.

「댄스 스크린」 주최의 91년도 공개토론 결론이 위와 같은 내용으로 집약되기까지 많은 무용가-비디오 아티스트들은 많은 시간과 경험과 실험을 겪어야만 했다. 선구자들의 작업은 영감을 제시해 줬다. 종합 예술을 꿈꾸어온 로이 퓰러(Loie Fuller)는 안무가로서 최초의 무용영화 작업을 하였고 마야 데른(Maya Derne)은 영화에 더 깊이 관여했으나 무용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많은 무용영화를 남겼다. 그중 「시간의 극복(Transfiguration of Time)」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깊이 의식한 작업들이 행하여졌다.

비디오로 감상할 수 있는 무용 작업들이 머스 커닝햄과 챨스 아틀라스에 의해 행해졌는데 이는 비디오-댄스의 선구작업이었고 이로 인해 어느 비평가는 비디오-댄스는 미국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라났다고 하기도 한다. 비디오-댄스가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성화된 것은 우연이 아닌 문화저변의 기조와 감성 그리고 인간의 문제를 무용공연에서 표현되기 어려운 다른 영역에 접근하는 표현욕구에 원인이 있다고 보아진다. 최근 들어 무용의 메카라고 불리어지던 뉴욕이, 독일 표현주의 무용을 비롯하여 다른 유럽 무용에 위용을 잃어가고 있는데 미국 무용과 유럽 무용의 현저한 차이점은 시각성에 있다. 유럽에서 세계적인 안무가로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피나 바우쉬가 성공한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그가 시각성을 수용한데 있다. 그녀에게 있어서 작업에 가장 중요한 사람은 무대장치가인데, 독일 안무가 수잔 링케도 욕조를 무대에 등장시킨다던지 강한 시각성을 창출하는 반면 미국 무용은 육체적 움직임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면 왜 시각성의 수용이 더 많은 관객에게 감흥을 줄 수 있는가 ? 시각은 인간의 감각 중 가장 큰 감지력을 갖고 있다.

움직임에 있어서 빠른 속도, 느린 속도, 그리고 정지 상태일 경우 인간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정지상태인 이미지, 곧 상(象)이다. <영원의 환상을 물질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곧 상(象)>(타르코프스키, 「시간의 조각」)이기 때문이다. "예술가여 깨어있으라, 당신은 영원의 인질이며 시간의 포로이다"라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말은 지나가는 그림자에 불과한 인생과 영원의 갈구를 뼈저리게 나타내고 있는데 비디오-댄스가 영원과 순간의 곡예를 다룰 수 있는 매체로 안무가, 영화감독, 비디오 작가, 시각예술가, 음악가들이 공동의 장을 마련한다.

비디오-댄스의 저변확대로 1985년 프랑스 퐁피두센터가 기획하여 최초로 공식적인 「비디오 -댄스」가 소개된 데 이어 비디오-댄스는 그랑프리 페스티벌로 발전되었고 1988년에 스위스의 IMZ(국제음악센터)와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트 오페라가 주관하여 「댄스-스트린 페스티벌」이 탄생하였으며, 뉴욕 현대 박물관 주관으로 「Dance On Camera」가 출범하였다. 가장 큰 규모가 「댄스-스크린」인데 이것은 주요 텔레비전 페스티벌이다. 1991년 「댄스-스크린」에는 구라파와 미국의 주요 텔레비전 기관이 참석하였는데 영국의 BBC, 프랑스의 LA SEPT, 벨기에의 BRT, 네델란드의 AVRO, 이탈리아의 RAISAT, 헝가리의 MTV, 스페인의 TVE, 미국의 PBS의 무용 프로그램 관계자들과 영화제작자, 비디오-댄스 배급기관, 안무가, 무용비평가들이 참여하였다. 서구라파의 주요 국가들은 정부적 차원에서 문화적, 교육적 측면에 많은 배려를 하여 무용 예술의 시각성 수용은 무용의 시각화 작업으로 이어졌다. 이제 각국 텔레비전에서는 비디오-댄스를 방영하고 거기에 걸맞은 막대한 제작 지원을 해주고 있다. 「댄스-스크린」같은 페스티벌은 비디오-댄스를 텔레비전에서 방영권 계약을 체결하는 마케트이며 서로의 아이디어를 교화하고 제작 계획을 세우는 장이며 또한 비디오-댄스의 미학적 발전과 새로운 언어 창출에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이다.

제작비 지원 규모를 보면 프랑스의 경우 LA SEPT 텔레비전, 퐁피두센터, 리우락 제작소 등과 지방자치 문화관 등에서 33편의 비디오-댄스의 제작을 지원하였다.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영국에서도 텔레비전과 우리나라의 문예진흥원에 해당하는 Art Council에서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으며, 미국은 KTVC와 Alive Form Off Center와 같은 큰 규모의 제작기관이 PBS 텔레비전과 협력하여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다. 서구라파와 미국의 문화정책에서 비디오-댄스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비디오-댄스의 텔레비전 방영 주목적은 많은 사람이 동시에, 그리고 무용 공연장이 없는 벽촌에서도 비디오-댄스를 통하여 무용을 감상할 수 있게 하자는 데 있다. 이것은 TV의 강한 영향력을 문화향상으로 이어보자는 관점에서 시도되는 것이다. 또한 유럽 공동체가 형성됨에 따라 각 나라의 비디오-댄스를 방영함으로써 문화교류가 보다 긴밀하게 된다. 유럽나라들 사이에 또는 미국과 유럽나라들간에 공동제작도 많이 이루어지고 잇는데 국경을 초월하여 예술적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스페인, 이탈리아와 동구라파의 여러 나라들은 막대한 제작비를 지원할 그리고 방영권을 계약할 재원이 부족한 관계로, 서구라파의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을 인공위성으로 중계하고 있다.

작품의 경향은, 각 나라의 문화적 여건, 국민적 감성, 환경 등에 따라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프랑스 작품들은 시각적으로 매우 예민하며, 영어 문화권에서는 언어를 춤에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춥고 밤이 긴 북구라파는 환경 탓인지 내면 세계와 인간과 자연의 결합이 많이 나타난다. 동양의 정서와 합일하는 부분을 많이 볼 수 있다. 반면 미국 작품들은, 기계적 문화의 반영으로 데카당스적 문명을 비판하는 작품과 몸 움직임이 많으며 정신적 상상력보다는 빠른 육체적 움직임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비디오-댄스는, 안무가의 의도를 영화감독이나 비디오 작가가 어떻게 영상화하는가가 문제인데 이를 위해 상호간의 공동작업이 이루어진다. 안무가가 직접 감독을 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상호협력의 관계로 작업이 이루어지는데 어느 선에서 양자의 상상력이 만나지느냐는 것은 윤리의 문제이다. 흔히 안무가는 움직임을 강조하기 쉬운데「댄스-스크린」에 출품된 작품 중 안무만 너무 중시한 작품은 비디오-댄스로서 매력을 상실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상언어로 표현할 때는 전혀 다른 상상력의 형상화가 필요하다. 무대 공연을 했던 작품을 비디오-댄스로 만들었을 경우 그것은 공연과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 카메라의 각도, 위치, 움직임 등이 안무가의 의도를 증폭, 상승하여야 비디오-댄스로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 1990년도 「댄스-스크린」 대상작품인 DV8 그룹의 작품은 로이드 뉴슨의 안무와 데이비드 힌튼의 연출로 이루어졌는데, 내용은 동성연애자를 다룬 것으로서 애정의 소유욕이 극한대로 표현돼 있다. 카메라는 이 공간 활용의 의도를 돋보이게 하여 위기감을 증폭해서 표현한다. 한 남자가 벽 위로 올라가 지상에 서있는 파트너를 뛰어내려 덮치면, 파트너는 넘어지고, 일어나면 더 높은 곳에 올라가 파트너를 겨냥해 뛰어내리는 것을 반복한다. 올라가는 높이는 점점 높아져 파트너를 덮치면 죽을 만큼 매우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뛰어내려 결국 파트너는 중력을 못이기고 쓰러져 죽고 만다. 카메라는 계속 지상에서의 높이와 지상에 서있는 파트너의 위기를 느린 움직임으로 위압감을 고조시키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눈으로 보면서 느끼는 위기상황을, 카메라가 관객의 목을 조이듯이 느껴진다. 안무와 감독이 연주자의 듀엣처럼 호흡을 같이하고 있다. 이 작품은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TV 방영의 저해요소가 되었으나 안무와 카메라 움직임이 매우 훌륭한 작품이었다. 1991년 「댄스 스킬」 대상을 받은 오바디에 부비에의 「신혼여행」은 DV8 그룹보다는 빠른 템포로 카메라가 무용의 움직임과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던지 불을 영상에 도입함으로서 남녀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프랑스의 비디오-댄스 페스티벌과 프랑크푸르트의 댄스-스크린에 출품된 작품은 크게 두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DV8나 오바디에 부비에의 경우처럼, 카메라가 안무와 긴밀한 상호관계를 유지하며, 움직임의 연속을 나타내 보임으로써 관객이 카메라의 움직임도 춤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유형은 콜라주 형식으로, 의식의 흐름이나 이미지를 병행해, 보다 더 깊이 있는 내면세계를 그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선택은 안무가의 감성과 철학에 의해진다고 생각된다. 첫째 유형을 움직이는 비디오-댄스라 한다면 둘째 유형은 관조하는 비디오-댄스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은 보다 많은 영상 언어를 통해 표현된다. 흑백과 칼라를 혼합함으로 해서 흑백은 우리의 기억이나 무의식의 세계를 환기시키고 칼라는 스튜디오 촬영으로 움직임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1989년 프랑스 비디오-댄스 페스티벌의 대상 수상작인 카린 사포르타의 「나무의 눈을 가진 약혼녀」나 프랑스의 안무가 쟝끌로드 갈로타와 그의 협력자 무리에라의 작품 등이 이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나무의 눈을 가진 약혼녀」는 사포르타가 자신의 러시아 출신 어머니께 바친 작품인데 스튜디오에서의 칼라 촬영과 기차길, 러시아의 시골풍경 등을 흑백영화로 촬영하였으며 집시 차림의 기수가 러시아말로 노래를 부르는 등 시청각을 동원해 표현하고 있다. 청각은 기악기를 통한 음악과 어느 나라 말과 노래로 불려질 때, 말을 할 때 각각 다르게 느껴지는데 쟝 끌로드 갈로타는 자신이 직접 감독한 작품 「레이 돔」에서 주인공을 외계에서 온 인물로 설정하고 상상의 언어를 만들어 내어, 자신이 지어낸 말을 함으로써 의미는 모르나 소리와 시각이 혼합되어 상상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쟝 끌로드 갈로파의 안무작품 「판도라」를 토대로 무리에라가 감독한 「판도라」를 토대로 무리에라가 감독한 「몽딸보와 아이」는 무용의 줄거리를 영상언어로 완전히 번역한 것으로써, 동적 움직임이 거의 없이 카메라 움직임을 무용으로 인식한 작품이다. 그냥 영화 한 편을 보는 듯 하였다.

화면의 구도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데 프랑스의 안무가 쟝 고뎅의 한 작품은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건축물 내부에서 촬영되었다. 무용수는 화면 구석에 몸의 한 부분만을 배치함으로써 연속되는 부분의 배치, 오른쪽 혹은 왼쪽 화면 위에서 무용수가 나타나는 등의 구도나 안무는 주인공이 양복을 입고 안경을 끼고 앉아서 계속 방 주위와 복도를 맴돌고 기독교의 성모가 얼굴을 매우 익살스럽게 찡그린 모습으로 나타난다든지 인간의 실존적인 것을 표현한 작품으로 구도의 배치가 안무의 의도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오바디에 부비에의 작품 「등(La Lampe)」은 7분의 짧은 작품이나 안무가가 직접 감독한 작품으로 심리적인 면을 특수한 촬영기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주인공이 구두 한 짝은 신고 한 짝은 벗겨진 채 얼굴을 뒤로 제치고 의자에 앉아있고, 강한 X선의 조명이 화면을 비치는 가운데, 서서히 일어나 다른 한 쪽 신발을 신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검은 천을 바람에 움직이게 하여 주인공을 클로즈업하고 검은 바람에 쫓기는 내면의 심리상태를 표현한다. 몸의 어느 부분을 빠른 동작으로 잡는 움직임과 연결되고 있는가 하면, 검은 방에 나체로 서있는 여인을, 수평으로 비치는 전등이 위에서 아래로 움직임으로써 불빛에 비치는 부분만 몸이 드러나 강한 수평의 빛의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므로 비행접시와 같은 효과를 내면서 무의식의 한 부분을 묘사하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의 여러 안무가 중 비디오-댄스 작업만을 하는 이가 극히 드문데 프랑스의 오바디에 부비에는 무대공연보다 더 비디오-댄스를 주류로 하고 있는 스웨덴의 쿨버그도 카레말를 위한 안무만을 고집하여 스웨덴에 비디오-댄스를 심는 선구자적 역할을 하고 있다. 쟝 글로드 갈로파는 자신의 스승은 머스 커닝햄이 아니고, 영화 감독 고다르와 타르코프스키라고 말하고 있다. 갈로파는 프랑스 문화성으로부터 가장 많은 지원금을 받는 대표적인 안무가인 데 점점 비디오-댄스 작업을 많이 하고 있으며 그의 협력자인 무리에라로부터 촬영 기법을 배움으로써 앞으로 자신의 작품을 직접 감독할 야심을 갖고 있다. 그의 작품「마망」은 영화감독 라울 류이츠에 의해 감독되어 유럽뿐 아니라 미국의 일반 영화극장에서 상여되기에 이르렀다. 비디오-댄스가 주로 단편작품 10분에 30분 사이가 가장 많고 60분을 넘어가는 작품들이 드문 이유는 엄청난 제작비에도 원인이 있으나 장편으로 끌고 갈 때 편집에 소모되는 시간과 배려가 엄청나게 큰 것과 장편을 떠받칠 사상의 부재, 그리고 텔레비전 방영에 장편보다는 단편이 더 용이한데 그 원인이 있다. 장편 중 비디오-댄스보다 무용 영화라고 불릴 만한 피나 바우쉬의 작품 「황녀의 통곡」은 프랑스의 LA SEPT와 독일의ZDF에 의해 공동 제작되었는데 작품 길이가 120분이었다. 뚜렷한 사상이 뒷받침된 영상을 통한 그녀의 작품은 무대공연 보다 한층 충격이 강하였고 더 많은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비디오-댄스가 대중매체인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는 데는 여러 가지 신중한 고려를 할 필요성이 있다. 많은 제작비 지원을 정부나 TV 기관에서 받음으로써 상업주의로 타락하지 않고 예술적 자유를 누릴 수 있으나 서커스가 될 위험을 안고 있다는 BBC TV의 밥 록키어의 지적이 있었다. 작품의 등대지기 같은 역할을 찾기 위해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마련해 놓고 있고 여러 나라에 온 안무가와 비디오, 영화감독이 모여 토론의 장을 마련해 비디오-댄스를 고차원 예술형식으로 끌어올리려고 고심하고 있다.

새로운 미래의 예술로 떠오르는 비디오-댄스는 새로운 언어를 창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미래를 알려면 과거를 알아야 하는데 헐리우드의 무용 영화의 거장 안무가 헤르케스 펜의 여러 작품들, 마야 데른의 무용 영화에서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으며 머스 커닝햄의 초기 작품들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비디오-댄스는 많은 새로운 시도와 시간과 공간이라는 무대공연의 제한에서 해방될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이용하여 무용의 움직임과 상상의 세계, 내면의 세계, 인간의 많은 영역을 두드릴 수 있는 무한한 표현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예술이란 정신에 말하는 것이고 눈에 말하는 것이 아니다"고 한 폴클레의 말처럼 정신에 작용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비디오-댄스 작업을 하고 예술가들의 책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