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리뷰 / 연극

사랑 이야기의 연극적 형상화




김성희 / 연극평론가·한양여전 교수


우리 연극에서 사랑을 주제로 삼아 본격적으로 사랑의 의미와 본질을 천착하면서도 예술적 품격과 감동을 창출한 연극이 의외로 드물다는 생각을 새삼 해 보게 된 것은 연우무대의 〈사랑을 찾아서〉를 보면서였다. 〈상어와 댄서〉, 〈아이 러브 마이 와이프〉 등이 사랑의 의미와 왜곡, 불모성, 성적환상을 다루고 있는데, 이 연극들이 표현하려 하거나 문제삼고 있는 사랑 이야기의 연극적 형상화는 이 시대 연극이 연극으로서 가져야 할 심미적 요구나 관객의 기대수준이나 정서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느냐에 대해 심각하게 성찰해야 할 문제의식을 안겨주었다.

〈사랑을 찾아서〉에서 느낀 '사랑의 무거움'

〈사랑을 찾아서(김광림 작·연출)〉는 연우무대가 의욕적으로 기획한 '한국현대연극의 재발견'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으로, 1990년에 〈그 여자 이순례〉라는 제목으로 공연되어 호평을 받았던 작품의 개작 공연이다. 이 연극은 우리 시대에 가장 많이 노래되고 추구되면서도 그 본질은 여전히 오역되고 있는 '사랑'을 역사적 관점으로 그리고 있다. 90년대의 관점에서 분단과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피어나 한평생을 두고 지순하게 피어난 사랑 이야기를 되새겨 보고, 오늘의 감각적이고 찰나적인 사랑의 방식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연극의 이중적 시점과 이중적 서술구조의 지적 재미까지 맛보게 하는 작품이다.

이 연극은 추리극적 기법과 극중극을 교차시킴으로써 메타 연극적 형식으로 연극의 형식에 관객의 주의를 끌어당긴다. 보험회사 직원들이 법정에서 피보험자의 고의적 자살을 설득력 있게 입증하기 위한 방편으로 연극을 꾸민다는 발상이 이 연극의 이중시점을 만들어내며, 또한 관객에겐 연극이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예술 형식임을 전달한다. 애인관계인 김 대리와 미스 리가 극중극에서 김억만과 이순례의 역할을 연기한다. 연극이 진행됨에 따라 김 대리가 김억만의 삶에 감정이입되어 원래의 이기적 목적을 포기하고 김억만의 죽음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고 존중하게 된다는 결말은 연극이라는 수단만이 드러낼 수 있는 에피파니임을 발견하게 해준다.

김억만이라는 노동자가 10억 원의 보험금을 이순례에게 남겨 놓고 죽는데, 이순례 역시 죽은 후였는지라 순례의 남편 박영만이 받게되어 있었다. 보험회사에서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법정에서 김억만의 죽음이 고의적 자살임을 입증하기 위한 연극을 김 대리의 제안으로 꾸민다. 김 대리(박연 분)와 미스터 하(이대연 분)는 이 사건의 해결에 과장 진급이 걸려있기 때문에 경쟁을 벌이고, 유부남 김 대리를 사랑하는 미스 리(김호정 분)는 김 대리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특히 미스 리의 성격이나 사랑 방식은 사랑을 위해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적극적이고 감정에 솔직한 현대인의 애정관을 인상적으로 표출한다.

이 연극이 재미있고 매력적인 것은 현재의 인물들이 벌이는 극 행동이 심리적 개연성을 가지고 있으며 오늘의 관객의 감각에 일치하는 일종의 원형적 인물과 상황으로 창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적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진실까지도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오늘의 세태를 연극의 구도로 재치 있게, 때로는 희화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러한 이야기의 기본상황과 교차되어 펼쳐지는 극중극의 이야기 역시 오랜 시간을 관통하며 펼쳐지는 순수한 러브스토리라는 원형적 상황과 성격을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전쟁과 분단, 이데올로기의 갈등, 남편이 있는 여자에 대한 불행한 사랑이라는 시대적·제도적 비극성을 깔면서 지나온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 두 이야기의 줄기는 김 대리와 미스 리, 김억만과 이순례의 불행한 사랑(흔히 불륜이라 매도되는)의 동일성에서는 합쳐지지만, 김억만과 이순례의 사랑의 진정성을 해석하고 어떻게 자신의 삶에 받아들이냐는 태도의 문제에서는 김 대리와 미스 리는 대비된다. 맹목적일 정도로 김 대리를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바친 미스 리는 김 대리가 자신과의 사랑에 대해선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는데 실망하여 김 대리를 떠나고 만다.

오늘의 젊은이 미스 리와 김 대리는 보상을 바라지 않는 사랑의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김억만과 이순례의 사랑은 사랑의 아픔까지도 감내하며 자신들의 존재 의미로 승화시킨 사랑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들의 삶을 연극을 통해 재현해 보지만, 그들과는 달리 결실을 맺지 못하는 불모의 사랑은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김 대리는 결국 김억만의 죽음의 의미를 사기로 만들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모든 자료를 불태워 버린다. 그는 사랑의 고귀한 가치를 비로소 인식하고 이기적 목적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 연극이 사랑의 무거움을 좀처럼 견디지 못하는 오늘의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요인은 여기에 있다.

이처럼 교차되고 서로 대비되는 사랑의 방식을 이중적으로 교직 시킨 이 극의 줄거리는 치밀하게 계산되고 정확한 자리를 차지한 장면들의 배열로, 또 다양한 배역을 연기하며 자신의 삶에 다른 사람의 삶이 스며들어와 얽히는 감정적 동일시의 과정들을 통해 적절히 연극적인 방식으로 구성되어있다.

초연에 비해 연출은 분단문제, 전쟁이나 이데올로기의 갈등이라는 무거운 역사적 관심을 약화시키고 그 대신 개인의 사랑의 비극성과 그 본질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춤으로써, 보편성과 주제의식을 심화시켰다. 사랑의 비극이라는 무거운 내용과 그 사랑을 추적해내는 인물들의 희극적 성격을 긴장과 이완의 리듬을 살려 적절히 안배한 연출의 감각이 돋보였다. 특히 능청스러울 정도로 회사 부장의 성격을 자연스럽게 표현한 최 부장 역의 최용민과, 발랄하고 영악하면서도 순진할 정도의 맹목적 사랑을 앙증맞게, 생동감 있게 표현해 낸 김호정의 연기가 압권이었으며, 박연과 이대연도 훌륭한 앙상블을 이루었다.

그러나 간간이 장면의 사이에 배치한 '사랑을 찾는 남녀'의 무용극적 이미지는 이 극의 발랄한 상상력과 템포를 저해한 사족이었다. 요즘 연극들에서 볼거리를 보여주겠다는 의지로 영화나 텔레비전의 영향이 분명한 영상적 이미지나 쇼를 삽입하는 경우가 일종의 유행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경우 여간 세련되고 심미적으로 창조되지 않으면 경박하게 보일 뿐만 아니라, 연극 자체의 형식을 영상매체적 표현방식에 비해 열등하게 보이는 역작용을 낳으므로 경계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연극은 영상매체의 모방이 아닌, 어디까지나 연극다워야 하고 시처럼 상상력을 자극하고 관객의 상상력을 통해 완성되는 장르라는 인식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극중극에 사용된 서사극적 수법은 좀더 치열하게 고민되었더라 면하는 아쉬움을 남겨 주었다. 슬라이드와 창(박윤초), 시대정서를 대변하는 유행가들로 다양한 이미지를 창출해 내었지만, 두 주인공의 사랑의 장면은 너무 밋밋하게 표현되어 마치 딱딱한 논문 문장을 보는 느낌이었다.

사랑의 왜곡과 불모성 꼬집은 〈상어와 댄서〉

극단 예군의 〈상어와 댄서(돈 니그로 원작, 김혁수 번안·연출)〉는 연출을 맡은 김혁수가 '우리의 것으로 정서화 시키기 위해 번안작업'을 거친, 사랑의 왜곡과 불모성을 그린 심리극이다(그러나 의도처럼 과연 심리극인가 ?). 이 연극은 사랑의 관계를 두 명의 남녀를 통해 조명해 보고 있지만, 결론부터 말한다면 연극예술이 갖춰야 할 작품성이나 미학적 요구 조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공연의 의미를 찾기 힘든 작품이었다.

번역극을 무대에 올리려 할 때는 그 작품성을 우선 검토해야 할 것이다. 굳이 번역되어 관객에게 소개될 만한 가치와 의미가 있는가, 또 그 내용이나 형식이 우리 관객의 정서와 기대에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거나 새로운 심미적 자극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품인가, 하는 문제가 냉정하게 검토되어야 하지 않을까 ? 한마디로, '시간의 시험' 혹은 '관객의 평가'의 시험을 거친 작품을 선별해 소개하는 안목과 기준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 극의 내용은 건달 같은 남자를 사랑했다가 버림받은 여자가 자살하려고 바다에 빠졌다가 어느 무명의 소설가에게 구조되어 그 남자와 새로운 관계를 이루어 보려 하나 결국 과거의 불행했던 사랑의 상처가 남긴 심리적 외상 때문에 실패하는 이야기이다. 연출은 무미건조한 작품 해석과 인물들의 성격이나 심리적 개연성을 전혀 살리지 못했기 때문에, 통속성과 시대에 뒤진 진부한 감각의 이야기를 평면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여주인공의 과거를 현재 이야기와 이중적으로 교차시킨 극의 줄거리도 지나치게 통속적이고 설명적이어서 연극성이 살지 못하고 지루하기만 했다. 비속어의 남용이나 시적 감흥을 전혀 주지 못한 대사들, 장면들의 통속성과 진부함은 이 연극을 맥빠지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남녀 주인공의 고뇌가 살아있지 못하고, 배신당한 사랑의 충격 때문에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 가지 못하는 여주인공의 미묘한 애증이나 심리 상태의 변화, 혹은 도덕적 태도 등이 설득력 있게 형상화되지 못한 공연이었다.

〈아이 러브 마이 와이프〉와 성인용 뮤지컬의 현주소

극단 대중의 뮤지컬 〈아이 러브 마이 와이프(마이클 스투아트 작·정현 연출)〉는 고교 동창생들인 두 부부의 '성적자유'의 시도를 그리고 있다. 이 극은 '개방된 미국에서도 충격을 받은 본격 성인용 뮤지컬'이라고 선전하듯이, 우리 사회에선 수용하기 힘든 성적 환상과 그 대담한 추구를 무대 위에서 실연해 보인다.

코미디의 정석대로 바보형 인물인 알빈(이인철 분)이 친구 윌리(이승철 분)의 부추김을 받아 3명의 남녀가 한 침대에서 사랑을 벌이는 자극적 성생활을 꿈꾸다가, 일이 엉클어져 4명이 한번에 정사를 시도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희극적 해프닝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극의 결말은 이들이 원래의 정상적인 사랑의 방식으로 돌아간다는 도덕적 결론으로 회귀함으로써 파격적인 성도덕의 일탈을 슬쩍 피해가고 있다. 그러나 이 뮤지컬은 시종일관 성생활에 관한 환상과 강박관념을 주요 화제로 삼고 있다.

작은 소극장 무대에서 펼쳐진 이 공연은 확실히 시대의 개방적 흐름을 실감하게 했다. 물론 소재의 내용만 가지고 도덕성이나 공연의 의미를 따지는 경직된 엄숙주의는 피해야 하지만, 이 연극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도된 성인용 뮤지컬의 획을 제대로 긋기 위해선 보다 절제되고 엄격한 미학적 기준과 구도에 따라 만들어져야 했을 것이다.

이 연극을 보면 성애에 대한 집착과 과대망상이 성인들에게 그처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가에 대한 새삼스런 놀라움을 불러일으킨다. 연출의 측면에서 보면 무대 배치가 평면적이어서 시각적 볼거리와 다양한 변화를 주지 못했고, 따라서 뮤지컬의 역동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또한 뮤지컬의 주요한 동력인 춤과 노래가 이 극의 성애에의 환상이라는 내용과 성적 메타포에 기여하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극 분위기를 뮤지컬답게 동화적으로, 축제적 분위기로 표현해 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 극의 재미가 제대로 표출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성병에 대한 지나치게 자세한 묘사나, 여과되지 않는 비속한 표현들도 이 극의 환상을 동화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다. 고르지 못한 마이크의 음량 조절, 깊이 인상에 남지 않는 음악이나 노래도 뮤지컬로서의 맛을 즐길 수 없게 했다.

사랑 이야기는 모든 예술 형식에 있어 가장 인기 있는 주제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모든 매체에서 수없이 다루어 왔고, 수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낯익은 이야기며 원형적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연극에선 극소수의 작품을 빼놓곤 깊이 인상에 남고 심금을 울리는 사랑의 신을 만나기가 힘들다. 사랑의 이야기는 있는 것 같은데, 그 사랑이 극 행동으로 제대로 형상화되거나 육화 되어 표현되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연극에서 다루는 사랑이야기는 연극이라는 매체가 아니면 그려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와 극적 힘과 함축성을 가진 섬세한 미학적 표현으로 떠받쳐져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연극에서 '드디어' 매혹적인 사랑 이야기나 사랑의 장면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