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리뷰·음악

경제적인 어려움 속의 원숙한 음악회들

김원구·음악평론가

2월 중순엔 비중이 큰 연주회가 많았지만 이스라엘 국제 하프 경연대회(제13회)에 한국의 여류 하피스트 이교진(李敎珍)이 3위에 입상한 것은 크나큰 음악의 승리다. 수도 텔아비브에서 3년마다 열리는 권위있는 이 콩쿠르에서 약 20년전 우리나라 여성이 하위 입상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씨가 3위를 차지한 것은 매우 보람있는 일이다. 그녀는 올해 27살로 미국 인디애나대학 연주박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20개 나라에서 모인 천재적인 하피스트들 35명과 기량을 겨뤄 당당히 3위를 한 것이다.

세계 역사에서 문화가 가장 먼저 발달한 메소포타미아의 제1우르 왕조(약 5000년전)때 여러 악기들이 있어서 이것들이 세계 여러 나라에 퍼졌다고 하지만 하프는 고대 이집트 벽화에도 그려져 있듯이 예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우선 이스라엘 왕이 된 다윗이 일찍이 하프를 잘 켰다고 하므로 이스라엘 국제 하프 경연대회에서는 자기 조상인 다윗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하프 콩쿠르를 세계 최고로 만들었다. 그만큼 자부심이 대단한 것이다.

20세기엔 스페인 출신의 남자 하피스트 사발레타가가 세계 최고로 알려져 있지만 하프는 여성의 악기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세계 여러 나라의 일류 오케스트라에도 하피스트는 으레 여성이다. 하프는 플루트와 함께 천상의 주악을 들려주는 신비로운 악기로써 비참이 아니라 열락을 나타내는 데에 어울린다. 설령 눈물이 있다면 슬픔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고귀한 하프를 위한 세계 최고의 국제 콩쿠르에서 이교진이 당당히 상위에 입상한 것은 크나큰 자랑이다.

2월12일과 13일에 세계적인 한국 지휘자 정명훈이 고국의 음악 발전을 위하여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상임지휘자에 취임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연주회를 연 것은 여러 모로 뜻이 크다. 레퍼토리가 한국의 주체성을 내세운 안익태의 「코리아 판타지」, 윤이상의 「예악」에다가 천재소년 첼리스트 고봉인의 「로코코 바리에이션」의 협연, 판소리의 명인 안숙선의 「사랑가」의 협연들이 한결같이 청중을 열광케 했다. 특히 「한국환상곡」에서 서울시립합창단·대학연합합창단의 열띤 협연은 감동을 주었으며 지휘자 정명훈이 애국가 나오는 부분에서 만원을 이룬 청중을 일어서게 하여 함께 노래한 것은 매우 뛰어난 슬기였다.

지휘자 정명훈은 이젠 청년기를 넘어 중년인 만 45세로서 인생관도 무르익어가는 인상을 주었으며 그에 걸맞게 거대한 음악을 만들어나갔다. 첫곡인 베토벤의 레오노래서곡 「제3번」에서는 엄숙과 환희를 느끼게 했다. 이 악상의 유일의 오페라 「피델리오」를 위한 세 서곡중의 이 세번째 곡은 중후하기 때문에 지휘자 정명훈이 심각한 표정으로 지휘봉을 휘둘렀는데 일찌기 영웅 나폴레옹이 “펜은 칼보다도 무섭다”란 명언을 남겼듯이 “가녀린 지휘봉은 싸움터에서 지휘관이 휘두르는 지휘봉보다도 무섭다”란 말을 생각하게 했다.

정명훈은 일찍이 20대에 지휘자가 되어 세계의 저명한 오케스트라들을 개원 지휘하면서 오랜 전통을 지닌 그들 오케스트라의 특성들을 파악하고 있어서 조국의 KBS교향악단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이끌어올리기 위하여 이미 착수한 그 굳건한 창조적 의지가 그의 넓직한 얼굴에 넘쳐 흘렸다. 앞으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드높은 음악정신으로 세계 일류 오케스트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2월 15일엔 예술의전당 음악당 개관 10주년 기념음악회가 있었다. 어떤 기업체의 물질적인 원조가 얼마전에 끊긴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참가시켜 정명훈과 금난새가 지휘를 하게 한 것은 좋은 아이디어다. 제1부는 금난새 지휘로 현재 많이 활동을 하는 소프라노 박정원, 바리톤 고성현이 협연하는 오페라 아리아들이 비중을 차지했는데 한국의 성악이 국제 수준에 이를만큼 발전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최근 더욱 활약이 두드러지는 지휘자 금난새의 위트 유머가 넘치는 지휘솜씨가 청중을 즐겁게 했다.

제2부에서는 정명훈이 드보르작의 대작인 교향곡 제8번을 지휘했는데 스케일이 크면서도 섬세하게 정감을 잘 나타냈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보르작 하면 으레 「신세계교향곡」을 생각하지만 바로 전에 쓴 이 제8번은 「보히미아」나 「노스탤지어」라는 표제가 붙어도 좋을만큼 음악 이외의 어떤 내용을 갖고 있는데 이것을 끄집어내려고 애쓰는 지휘자가 돋보였다. 그리고 로씨니의 「윌 리엄 텔」 서곡도 박력이 있었는데 이 기념음악회의 즐거운 분위기를 정말 멋지게 이끌어갔다.

2월11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명바이올린 협주곡 시리즈Ⅰ’이라는 이름으로 객원지휘자 장윤상의 지휘로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회가 있었는데 특히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의 독주를 맡은 세계적인 한국 여류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엣 강이 연주 효과가 크지 않은 슈만의 이 협주곡을 빛내고자 열띤 연주를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지휘자 장윤성도 장래가 촉망되고 있지만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엣 강이 권위 있는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1994년) 우승자다운 역량을 나타내어 한국이 21세기엔 바이올린 연주에 있어서 세계 최고를 차지하리라는 확신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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