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문화산업 어떻게 할 것인가·문화산업 정책과 제도   

일반문화의 진흥과 거점위주의 진흥정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오지철·문화체육부 문화산업국장 
 

최근 문화산업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학계, 업계, 심지어 대통령선거에서도 문화를 언급할 때 ‘문화산업’이 빠지지 않는다.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이 가지는 수출효과와 같은 익숙한 실례와 함께 말이다. 이런 경우 우리는 ‘문화산업이란 게 그렇게 돈이 많이 벌리는 거였군’, ‘영화가 산업이기도 한가’, ‘우리 영화는 자동차를 몇 대나 수출하고 있을까’, 

‘자동차산업이 영화보다도 못하네’ 등의 여러가지 생각이 들 것이다.아닌게 아니라 몇 년 전 청와대의 ‘과학기술자문회의 보고’에서 나왔던 「쥬라기 공원」의 예는 이후 문화산업에 대한 상징적 실례가 되었고, 동시에 ‘문화산업’에 대한 적지않은 오해를 야기하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문화산업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하고, 나아가 문화산업이 왜 21세기 국가기간산업으로 육성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등을 ‘문화산업정책과 제도’라는 제하로 살펴보고자 한다. 

문화산업이란 

문화산업cultural industry이란 개념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와 아도르노Theodor Adorno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그들은 ‘문화산업이란 건전한 대중문화를 자본주의적 경제논리에 따라 대중의 욕구를 조작함으로써 상업적 이익을 관철시키는 반계몽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등장한 문화산업은 이후 문화산업의 경제적인 잠재력이 점점 더 부각되면서 초창기의 ‘천박한 자본주의적 산물’이라는 오명을 벗게 되었다. 

문화예술진흥법 제2조는 문화산업을 ‘문화예술의 창작물 또는 문화예술용품을 산업의 수단에 의하여 제작, 공연, 전시, 판매를 업으로 영위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문화산업의 범위에 대해서는 분류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나뉘지만 문예진흥원의 분류를 따르면 '도서출판 및 인 쇄, 음악, 미술 및 조형, 공연예술, 영화, 방송, 광고, 뉴미디어, 문화재’ 등으로 크게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분류는 대다수 문화예술 활동을 포괄하는 것으로, 러스킨Ruskin이 이미 19세기 중엽에 예견했듯 문화와 경제의 유기적 연결관계는 모든 문화분야에 적용됨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산업을 왜 육성해야 하는가 

우선 문화산업은 경제적 고부가가치를 그 큰 특징으로 한다. 아이들이나 즐기는 것으로 생각하는 컴퓨터게임(전자오락)은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문화산업이다. 일본의 유명한 컴퓨터 게임제작사인 닌텐도Nintendo와 세가Sega사의 ’96년 총매출액은 약 6천9백억엔, 우리돈으로 5조6천억원으로, ’96년 삼성전자의 반도체분야 총 매출액 약 69억달러(약 5조6천억원)와 같다. 대규모 장치산업인 반도체에 비해 아이디어 집약적 산업인 컴퓨터게임은 경기부침을 모른다는 점에서나 순이익 측면에서 월등하다. 

아이들이나 즐기는 ‘컴퓨터게임’이 이처럼 큰 경제적 부가가치를 가질 줄 누가 예견이나 했을까. 여기에 덧붙여 ‘문화산업’은 멀티미디어기술, 정보통신기술과 같이 최근 기술발전에 대한 수용력이 매우 크다는 장점을 지니므로, 통신 및 저장 기술발달에 따른 그 응용범위가 더욱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적 측면에서 문화산업의 육성은 한층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문화산업의 결과물인 ‘문화상품’은 생산국가의 가치관과 사고방식, 생활양식 등 문화를 상품화한 것이므로, 수요의 지속적인 창출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문화상품이 가지는 파급효과의 범위와 정도가 크다는 점에서 문화정체성cultural identity의 문제를 야기한다. 더욱이 하루가 다르게 지구촌화하는 현실에서 ‘문화적 쇄국주의’는 불가능하므로 반드시 우리의 가치관과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문화산업을 적극 육성,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문화가 바탕이 된 문화상품은 생산국의 국가이미지를 창출해 그 나라 일반 공산품을 비롯한 국가 전체의 경쟁력 제고와 직결된다. 프랑스의 문화비평가인 기소르망이 최근 한국경제의 위기의 한 원인으로 우리문화의 독자적인 이미지 부재를 지적했던 것 역시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Japanimation과 만화Manga, 헐리우드의 영화를 보고 자라난 세계각국의 청소년들이 가지는 일본, 미국에 대한 동경심이 장차 얼마나 큰 경제적, 문화적 효과를 거둘 것인지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이처럼 중요한 문화산업 분야에 우리의 경쟁력은 어떠하며, 또 어떤 정책적 진흥 방법이 가능할지 살펴보자 

올바른 문화산업 마인드 확립은 문화산업발전의 기본전제 

최근 문화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문화의 논리’와 ‘산업의 논리’간의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것 같다. 문화산업은 ‘문화의 산업화’와 ‘산업의 문화화’라는 측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산업의 문화화’란 '김치독 냉장고’, ‘삶아빠는 세탁기’등과 같이, 일반 공산품에 문 화적인 색채를 가미하는 것으로 시장기능에 따라 해결되어야 할 부분이다. 

시나리오·희곡·문화재 등 유무형의 지적 창작물을 영화·비디오·공연상품·컴퓨터게임 등과 같은 ‘문화상품’으로 생산하여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market 에 내놓는 것이 ‘문화의 산업화’이다. 이처럼 ‘문화’를 ‘상품화’한다는 측면에서 문화산업은 ‘문화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이같은 문화산업의 특성을 간과한 접근은 정보의 저장매체, 혹은 전달 망 등 기술적 발전이 곧바로 문화소프트웨어(콘텐트)의 발전을 유도한다는 하드웨어적인 발전논리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시설물이나 기자재 같은 인프라의 구축으로 문화산업의 발전을 완성할 수 있으며, 정부의 투자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물량주의적 정책방안도 도출된다. 

물론 한정된 재원이나 시간적 제약 등을 고려할 때 ‘거점’에 대한 집중투자가 불가피하지만, ‘문화논리’에 입각한 투자없이 결코 ‘문화산업’의 발전은 이루어질 수 없다. 스필버그를 미국사회의 교육제도, 헐리우드의 제작시스템, 대자본의 제작지원 등 여러가지 사회적, 문화적 요인 들과 분리시켜 이해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우리는 문화산업을 문화의 연장으로 접근할 때만이 올바른 이해와 더불어 정책적 진흥방안 모색이 가능해 질 것이다. 

21세기 우리의 문화산업정책 

이제 ‘문화산업의 정책과 제도’라는 정부의 역할을 논의할 대목에 이르렀다. 우리의 문화산업 정책의 기본목표는 ‘문화산업’을 21세기 한국경제를 선도하는 국가기간산업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21세기 정보화시대에 아이디어 집약적이며, 고부가가치 산업인 문화산업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산업이다. 우리나라는 풍부한 고급인력, 문화산업의 훌륭한 소재인 우수한 문화전통과 문화유산 등 산업육성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올바른’ 문화산업 마인드와 정부의 적절한 지원정책, 그리고 민간기업의 활발한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우리 문화산업은 반드시 국가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 믿는다. 예컨대 OEM방식에 의한 수출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97년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분야의 총수출액은 약 1억달러로 ’97년 우리가 해외에 영화로얄티로 지불한 8천7백만달러를 상회한다. 

문화체육부에 문화산업국이 신설된 것은 1994년이다. 이때부터 비로소 개별적으로 추진되던 문화 산업관련 정책기능이 종합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다루어지기 시작하는 등 문화산업에 대한 본 격적인 의미의 정책이 시작되었다. 그간 우리 문화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와 해외진출등 여러가 지 사업을 추진했으나, 재원과 인력의 부족 등으로 인해 미흡했던 점이 적지 않았다. 과거에 이루 어졌던 문화산업 정책을 반성하고 이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21세기를 맞이하는 우리의 문화산업 정책의 큰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해보고자 한다. 

일단 문화산업을 위해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는 ‘재원의 확보’이다. 문화산업국의 ’98년 예 산은 157억으로 문화체육부 전체예산의 2%에 불과하다. 이런 부족한 투자로 ‘문화산업의 전략 적 육성’, ‘국가기간산업화’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이다. 즉 획기적인 발상의 전 환을 통해 ‘문화산업’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정부내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명실상부한 ‘문화산업행정’이 가능해 질 것이다. 

예컨대 ‘문화산업진흥기금’의 확보 등이 가장 먼저 추 진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재원확보를 통해 정부가 본격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문화산업정책 방향은 일단 크게 네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는 전문인력양성 등 기획, 창작력 제고사업의 추진이다. 문화산업은 기본적으로 아이디어 집 약적 산업이자 지적 창작산업이므로 기획, 창작력을 갖춘 전문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점 에서 각종 전문교육시설의 건립, 인력의 해외연수 추진, 교육프로그램의 완비, 교육기자재의 지원 등의 인력양성사업과 각종 문화산업분야의 시상제도 등 창작의욕 제고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동 시에 사전제작지원 등으로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킬 수 있는 여러가지 제도적 방안도 추진하고자 한다. 

둘째는 문화산업 기반 인프라의 구축이다. 서울종합촬영소의 종합영상 지원센터화, 애니메이션 지 원센터 건립, 게임종합 지원센터 건립, 출판산업의 메카로 자리잡을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 건 립, 음반산업발전을 위한 종합녹음실 설치 및 운영지원, 문화상품 개발보급을 위한 문화상품 종합 전시판매장설치 등의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셋째로 각종 제도 및 법제 정비사업으로 불필요한 규제와 각종 심의제도 등을 과감하게 정비하여 문화산업의 창의성을 제고할 계획이다. 또한 산업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출판·음반·비 디오·컴퓨터게임시장 등의 후진적인 유통구조의 정비사업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자 한다. 그리 고 지적창작물의 권리보호가 문화산업 발전의 기초가 된다는 인식하에 지적재산권(저작권)의 보 호를 위한 제도적 정비와 불법 복제물 등의 단속도 지속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다. 

넷째로 우리 영화, 컴퓨터게임, 음반 등 문화상품의 활발한 해외진출 사업을 추진하여, 국가경쟁 력을 갖춘 문화상품의 수출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관련산업의 세계적인 견본시에 공동부스 설치 등의 지원사업과 각종 국제영화제, 공모전에 대한 출품지원 등 다각적인 사업을 추진하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문화산업 관련 정부조직의 효율성 제고와 공무원의 전문화를 추진하여 급변하고 있 는 문화산업 환경변화에 알맞는 정책수립이 가능하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이러한 정책적 방향 아 래 충분한 재정적 뒷받침과 세부정책 추진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문화산업의 국가경쟁력 제고와 국가기간산업화는 충분히 달성 가능할 것이다. 

맺는말 

새 정부가 100대 과제에 ‘문화산업’과 ‘관광산업’을 국가의 전략산업으로 집중육성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데 대해 기대가 매우 큰 것으로 알고 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최근 문화산 업에 대해 쏟아지는 집중적인 관심은 국가정책적 지원와 투자가 뒷받침될 때에만 그 의미를 가지 기 때문이다. 

정책policy이 단순히 대차대조표의 손익으로 평가되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문화산업진흥정책 역시 단순히 투입 대 산출input vs output이라는 단순한 ‘경제논리’ 또는 ‘하드웨어 중심적’ 사고 에 바탕을 두어서는 곤란하다. 바로 ‘문화’와 ‘산업’의 두 개념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가능 할 때 올바른 문화산업정책 및 제도의 수립과 집행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일반문화의 진흥 ’이라는 거시적인 문화정책과 문화산업발전을 위한 ‘거점’ 위주의 진흥정책은 반드시 병행되 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문화시장 전면개방이라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 앞에서 ‘문화산업의 육성’은 더이상 선택 의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21세기 ‘문화국가’로서의 사활이 걸린 당위의 문제임이 자명하다. 문화발전 없이는 결코 경제발전도 존재할 수 없음을 21세기 문화의 세기는 우리에게 진지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목차보기   

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