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리뷰·국악 

전통의 거듭나기 창극 춘향전과 강권순의 정가공연 
 
 

문 현·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
창극 춘향전 

국립중앙극장은 2월14일부터 26일까지 춘향전 완판창극공연을 했다. 현존하는 판소리 다섯마당중 가장 방대한 길이를 가지고 있는 춘향전은 그동안 완창판소리 공연으로는 물론 창극, 오페라, 영화, 연극, 무용 등 가능한한 예술화할 수 있는 많은 분야에서 소재로 사용했을 만큼 우리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국립창극단은 1998년을 여는 첫무대로 이 춘향전을 완판창극으로 무대화한 것이다. 어느덧 95회째를 맞는 무대로 안숙선 명창이 창극단장으로 취임해서 마련한 의욕적인 첫 무대이며, 국립극장 소속단체인 극단, 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 등이 두루 참가한 대규모 행사였다. 

이번의 완판장막창극 ‘춘향전’은 휴식시간 45분을 포함한 6시간짜리 대형공연으로, 그 내용면에서도 그간 무대에 올린 여느 창극들과 차별화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극의 전체 흐름에는 별영향을 주지 않아 생략되기 쉬운-그러나 음악적으로는 중요한-여러 대목을 되도록 모두 집어넣어 춘향전을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닌 방대한 한편의 서사극으로 재탄생시켰다. 또한 한 명이 상황설명을 담당해 왔던 종래의 도창대신, 극중배우 자신들의 힘있는 합창으로 배치한 연출(임진택)의 기법과 속도감있는 무대전환은 박진감을 더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공개 오디션을 통해 외부의 역량있는 젊은 판소리꾼을 선발하여, 주역급에 한하여 20, 30, 40대별로 3개의 공연팀을 구성, 교체출연하게 하였다. 14일 공연에서는 홍팀으로 춘향에 유수정, 이도령에 왕기석, 월매에 김영자, 방자에 이영태, 향단의 전은영, 변사또에 김종엽이 공연했다. 왕기석과 김영자의 안정감있는 연기와 소리, 이영태의 노련한 코믹 연기가 돋보였다. 춘향역을 맡은 유수정은 무르익은 소리로 공연했지만, 외모로 볼 때 춘향역보다는 심청역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중국의 전통종합극과 같이 어릴 때부터 배역을 정해놓고 평생을 한 배역에만 매달리는 전문 배우를 양성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완성도있는 정형의 창극을 만들기 위해서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14일 공연 첫날, 대극장 로비 한쪽에 마련된 춘향전 관련 영화 스틸 사진 및 기타 관련자료 등의 전시를 뒤로 하고 공연장안에 들어섰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무릎장단을 치기도 하고, 적재적소에 추임새를 넣기도 했다. 구경꾼 차원에서의 관객이 아니라 가락을 알고 진정한 음악을 감상하는 귀명창들이 곳곳에 있었다. 「사랑가」라든지, 임방울 명창의 더듬으로 유명한 「쑥대머 리」에서는 따라 부르며, 우리 가락의 멋에 흠뻑 취하는 모습도 보였다. 춘향이 옥중에서 밤새워 꾼 꿈을 장님 점쟁이를 등장시켜 속 시원히 해몽하는 대목은 자칫 지루하기 쉬운 부분에 재미와 해학을 주었다. 

1막의 ‘단오놀이’와 화려한 무용과 취타대를 앞세운 ‘신년맞이’행렬, 2막2장의 ‘장원급제’장면에서의 장대한 규모의 연출은 볼거리를 제공하였지만, 상대적으로 무대 세트가 너무 평면적이지 않았나 싶다. 

이 기회에 국립창극단에 대한 필자의 소망 한가지를 전하고 싶다. 지금까지 창극단을 중심한 일련의 창극운동은 어디까지나 남도소리에 기초한 판소리 창법만을 위주로 하고 있다. 물론, 1986년도에 창극으로 무대화한 ‘용마골장사’의 경우에는 서도창 또는 무가 등의 창법을, 1990년도에 올려진 ‘황진이’에서는 시조 창법을 각각 도입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보다 전향적 으로 우리가 물려받은 모든 장르의 전통 창법을 아우르는 노래극 운동의 시도는 어떨까 한다. 

강권순의 정가공연 

‘新여류가객’ 기획물은 20대 중, 후반 및 30대 초반의 경기민요, 정가, 판소리 및 가야금 명창을 전공하면서 나름대로 기량을 인정받은 4명의 신세대 소리꾼들의 자리로 기획되어, 강권순의 정가공연은 이중 둘째날 공연이었다. 

강권순은 이날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게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잘 알려지지 않은 정가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직접 해설까지 맡았다. 이제 갓 30세의 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노숙하기까지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차분하면서도 또박또박한 말솜씨를 통한 진행, 세련된 무대 매너, 흔들림없는 낭랑한 목소리로 만들어진 그녀의 정가음악 세계는, 자그마한 공연장을 그 옛날 선비들이 모여 풍류를 즐겼던 사랑방으로 옮겨놓은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였다. 가끔씩 해설이 길어지기도 했으나, 직접 해설을 노래하는 것은 계속되는 긴장감을 유도하여 목에 무리를 끼칠 수 있는데, 이 두가지의 힘든 역할을 무난히 소화해 내어 공연 마지막까지 흐트러짐이 거의 없었던 성공적인 무대였다. 

모두 가곡 6곡, 가사 1곡, 시조 2곡 및 시창 1곡 등 총 10곡의 정가를 선보였는데, 그녀의 스승중 한분인 김경배(경북대 국악과 교수)가 찬조출연하여 남창가곡 편락과 남여창으로 부르는 가곡 태평가를 노래하여 여성만의 노래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해소하는 이중 효과를 얻기도 하였다. 

평소 강권순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전공한 정가뿐만 아니라, 민요나 창작성악곡 등에도 남다른 관심과 나름의 인정을 받아 다양한 공연활동을 하고 있는 가객이다. 그러나 이날 그녀에게 주어진 소중한 첫 발표회에서는 원래 전공한 정가만을 노래하여 그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노래세계는 정가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한편, 가곡 우락에서는 기존의 남창과 여창 우락 선율을 각각 참고하여 이중창으로 새롭게 꾸며서 어린 여제자 5명에 의해 선보였다. 또한 편삭대엽 곡에서는 20~30년대를 풍미했던 고 김수정의 창제를 재현하였으며, 여기에 요사이 좀체로 불려지지 않아 전승조차 위태로운 시창 「십이난간」을 지금은 고인이 되신 그녀의 또 다른 스승 김월하 창제로 마지막을 장식함으로써, 정가의 다양한 향내를 관객들에게 듬뿍 전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여성 이중제창으로 꾸며본 우락곡에서는 후반부에서 높은 음을 속소리가 아닌, 풍목으로 부르게 해서 음정의 불안 등 조화를 깨뜨렸고, 김수정 제로 부른 편삭대엽은 현재 불려지는 등 가곡과 비교하여 별다른 큰 특징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그녀의 해설에서도 언급했듯이 더 잘게 떨고, 시김새가 다소 다른 점은 발견된다. 이중 더 빨리 떠는 현상은 고음반에 수록된 다른 곡들에서도 발견되는 일반적인 것중의 하나로, 과연 수십년전인 옛날엔 지금보다 더 빨리 떨었겠는가에 대해선 적지 않은 의문이 있다. 

사실 현재 남창곡에서보다 여창곡에서 더 잘게 떠는 것은 음악적인 원칙에서라기보다는 생리적인 현상에서 기인된다고 보는데, 이보다 더욱 빨리 떪으로해서 우리 전통 창법에서 금기시하는 소위 발발이성(食耳聲)으로 화하여 가곡이 자칫 저속한 음악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왕 고음반에 전하는 가곡을 재현해 보려고 했다면, 10박 의 빠른 속도의 편 계통 가곡보다는 16박의 느린 속도를 가진 가곡을 선택하는 것이 좋았을 듯하다. 

7언율시의 한 시를 노래하는 십이난간은 생전에 김월하가 절창했던 시창중의 한 곡이었다. 다행히 이들 시창곡은 김월하의 득집 음반에 취입되어 전하고 있고 이를 참고로 재현해 본 것으로 안다. 이 곡은 끝부분에서 표현해 내기가 그리 쉽지 않은 화려한 가락이 잠깐 나타나는데 이 부분에서 다소 균형이 흐트러진 듯했으나 전체적으로 무난히 소화해 냈다. 

평시조의 노래말로 ‘청산리 벽계수야’로 시작하는 시조시를 선택했는데, 이 날을 있게해준 스승의 은혜를 기리는 시조시나, 계절감각에 어울리는 다양한 다른 시조시를 선택하여 불렀으면 좀더 의의있는 무대가 되었을 것 같은 아쉬움도 남는다. 

다음 번에는 가곡에 비해 상대적으로 1,2곡밖에 발표하지 않은 가사, 시조 분야에도 보다 많은 곡들이 발표되기를 기대하며, 나아가 비슷한 창법을 가진 서울, 경기 및 서도지역의 전승소리 등으로도 수업을 병행해 자신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해 나가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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