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리뷰·무용

21세기를 향한 춤의 방향전환을 위하여

    김영희 무트댄스work-shop performance


허영일·무용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김영희 무트댄스 work-shop performance Ⅲ가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있었다.

무트는 한국말로 육지를 의미하는 물, 즉 대지를 밟고 서있는 모습으로부터 춤의 원형이 출발한다는 뜻이다. 무트는 영어로는 이집트 여신의 이름이며 모신(母神)을 나타내고, 독일어로는 용기(기력, 의지, 투지)를 뜻한다. 이 단체는 한국전통춤에 대한 창작자들의 주관적 재구성을 하나의 통일체로 이루어 새로운 창작방법론에 따른 21세기를 향한 춤의 방향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양선형의 「계(界)」는 조명이 전혀 없는 어둠속에서 하얀 천이 무대와 관객을 경계 지으며 음악은 이 경계의 안쪽으로부터 새로운 차원의 바깥 세계로 도약하려는 몸부림으로 부터 시작되어 진다. 이 천위를 검은 의상을 한 무용수가 먹물 찍듯이 발자국을 남기고 뒤를 쫓아 한명의 무용수가 이 발자국을 그대로 따라간다. 기본적인 제존의 다섯이라는 숫자가 주는 다섯명의 무용수들이 생명에서 굴레를 벗어나고픈 본능적인 몸놀림이 무대 왼쪽에 설치된 철물로 만든 빔 사이에서 얽히고 풀리고 한다. 이는 마치 애벌레가 번데기 속에서 나비가 되고픈 본능으로 자신을 감싼 한점의 군더더기마저도 모두 떼어 버리고 비상하는 듯이 보인다. 이것은 오고무의 클라이막스의 북울림처럼 5명의 신체리듬이 북소리가 되었다.

음악은 전통의 제례음악으로 변하며 계를 벗어난 속에서 즐기는 해방감은 흥겨움이 내면속에 뿌리 내려진 채 또 다른 세계로 표출되어 진다. 이 부분은 점진적으로 음악이 강하여 지고 몸동작도 빨라지면서 현재의 춤사위성에 저장된 신명이 표출되어 관객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저절로 어깨춤을 추게 하는 혼연일체의 좋은 표현이었다. 이어 오솔로미오의 퇴색할대로 퇴색하고 빛 바랄 대로 빛 바랜 음색이 낡은 축음기판 속에서 축축 늘어져 함께 경계를 맴돈다. 이 부분의 정적구조는 앞 부분의 동적구조와 대조적이다.

펑크 스타일의 노란 머리를 한 다섯명의 무용수는 호흡을 푸욱 끌어올렸다가 푸욱 끌어내려는 상하운동과 수직운동을 많이 한다. 또한 상체를 위로 젖히는 동작은 너무 반복 강조되어 주제를 형상화시키지 못했다. 이어 무대 중앙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마루동작을 주로 한 양선형의 솔로가 전개된다. 무대 왼쪽에는 세트 해체작업이 진행되고 무용수는 무대 전면에 계를 한정 짓는 하 얀 테이프를 붙이고 갇히면서 다시 다른 세계로 넘나들며 막이 내린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스타카토적인 동작이 너무 많아 변화, 대조가 결여된 점이 아쉽다. 주제상 그로데스크한 부분이 많은데 이 또한 신선하고 야성적인 느낌을 주려면 신중하고 밀도있게 다루어 져야 가능하다. 또한 음악에 시각화된 느낌을 주는데 음악을 빼면 춤에서 나오는 여운이 없는 게 아쉽다.

"가던 걸음 멈출 수가 없다. 나는 아픈 두발을 고여 있으면 썩을까봐 부여잡고서라도 이 걸음을 멈출 수 없다”라고 「멈출 수 있을까」의 안무자 황정숙은 말한다. 무대 중앙에 검은 의상의 온몸을 팔로 감싸고 무용수는 웅크리고 앉아 있다. 그런 동작 중간중간 사각형으로 노출된 단전부분이 아주 인상적이다. 고뇌를 감싸고 슬픔을 보듬으며 자신에게 끊임없이 정신을 무장시킬 수 있는 신체의 채찍질을 한다. 단절되고 해체되고 구제하고 싶어한다. 각을 이루는 동작과 자반뒤집기를 접목시킨 동작은 좋은 공간구성을 하여 테크닉이 탄탄하고 기본이 좋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무음악 부분에서는 미세한 동작들이 이어지는데 내적으로는 근육의 조직들이 서로 연결하여 꿈틀거리고 확산되는 에너지를 표출하였다. 영국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는 근육운동은 일반 감정에 의해서 야기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내적인 자발적인 무용활동의 잉여 에너지는 관객에게 투여되어 추임새를 생성한다. 무릇 새로운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있었던 자리, 옛것속에서 시대와 상황의 요구에 따라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수많은 세월에 걸쳐서 이 땅에서 살아 온 우리 한민족의 정서와 감흥, 그리고 생각과 신명을 표현해 왔던 우리의 가락, 몸짓, 그 선율이 전통일진데, 새롭게 무엇을 추구한다고 해서 몸과 마음의 균형을 흐트리고 그냥 아무렇게나 팔다리를 내지른다고 해서 새로운 동작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복을 벗어낸 신체에서도 저고리의 곡선이 배어 나와야 한다. 우리의 전통예술은 여백, 여운, 은은함이 조합되는데, 우리의 실험창작을 시도하고 강조하다 보면 기본틀을 깨게 되어 표현의 극대주의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젊은 안무자들은 간과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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