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영화

대학으로 옮겨가는 영화인들 

조희문·영화평론가, 상명대 영화학과 교수 

영화판에서 가장 큰 재산은 사람이다. 아무리 좋은 첨단 장비가 있더라도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도 기계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능력과 의지를 가진 영화인이 얼마나 있는가는 영화계가 어느정도 자생력을 갖추고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평가의 기준이다. 특히 요즘처럼 영화계가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그래도 기대를 걸 수 있는 부분은 사람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영화를 만드는 일에 땀을 쏟아야 할 영화인들이 어디에 있는가를 돌아보면, 본말이 뒤바뀐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영화계 현장에서 작업을 하는 모습을 찾기보다는 대학 강단에서 강의하는 영화인들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임권택감독’ 하면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만다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아다다」 「티켓」 「길소뜸」 「장군의 아들 」 「서편제」 「태백산맥」 「축제」 「창」 등 그가 감독한 영화들은 그대로 80~90년대 한국영화 대표작 리스트와 함께 한다. 한국영화에 대한 국내외적 인식과 위상이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그같은 결과를 이끌어내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영화계의 원로이자 대가로 평가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그는 아직도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있는 현역 감독이다. 영화계를 지탱해주고 있는 얼굴이자 버팀목인 셈이다. 

그런 그가 이번 학기부터 서울 모 대학의 ‘교수’로 강의를 시작했다. 산학협동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나름대로 뜻있는 일이기는 하다. 미래의 영화인력을 키우는 또 다른 ‘현장’에서 자신의 경험과 기대를 전해주는 일은 그것대로 의미를 둘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학생들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의 생생한 지식과 경험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점에 기대를 걸만하고, 학교 당국으로서도 대외적 이미지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점을 크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계 전체로 본다면 ‘임권택감독마저---’라는 아쉬움을 드러낼만한 일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가 아니라 영화 만들기에 전념해야 할 영화인들이 본업과는 다른 일에 정열을 분산시키는 것이 안타깝다는 뜻이다. 

하지만 임권택감독 같은 ‘외도’나 ‘겸업’은 영화계에서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웬만큼 이름이 있다 싶으면 영화계에서 활동하기보다는 대학강의나 영화관련 행사의 기획이나 프로그래머 등으로 이름을 내세우는 일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만 하더라도 임권택 감독외에도 정지영감독도 모대학의 전임교수로 강의를 시작했다. 박종원, 홍상수, 이장호 감독 등이 그보다 앞서 대학에 몸을 담았고 박광수, 장길수, 이광훈, 김영빈, 김홍준,배창호 등도 강단에 섰다. 편집의 박곡지나 촬영의 박현철, 고 유영길까지 더한다면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면면에서 드러나듯 막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신인급에서부터 영화계 최고의 대가로 평가받는 중견에 이르기까지 범위가 넓고, 분야 또한 다양하다. 최근 몇년 사이 대학에 영화관련 학과가 급작스럽게 늘어난데 따른 현상이다. 

영화를 포함한 영상산업이 고부가가치를 보장하는 첨단산업이라는 평가가 등장하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다투어 투자를 서둘렀다. 대기업들은 경쟁하듯 영상산업 분야에 뛰어들었고, 정부 또한 정책적으로 그것을 뒷받침하려고 했다. 외국영화 수입이나 유통, 제작을 포함한 영화분야는 물론이고 비디오나 케이블 텔레비전 분야까지 투자 대상으로 떠올랐다. 

쥬라기 공원」 한편이 거두어들인 수익이 국산 자동차 1백만대 수출로 번 돈과 맞먹는다는 어느 보고서의 카피는 타오르기 시작한 불에 기름을 뿌리는 역할을 했다. 각 대학들이 영화관련 학과를 설립하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기존 몇몇 대학들에 설치돼 있던 학과의 경쟁률이 수십대 일을 넘을 만큼 인기학과로 떠오르는 것을 보며, 영상산업 분야야 말로 미래가 보장되는 신천지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몇년 사이 영화 관련 학과는 서른 곳이 넘었다. 영화 현장을 누벼야 할 인력들이 학교 쪽으로 자리를 옮겨앉은 것도 불가피한 일이기는 했다. 갑작스레 늘어난 학과만큼 교수 인력 또한 필요했지만 이론과 실기를 고루 갖춘 인력을 급히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현장 경험을 가진 영화인들을 주목하는 것은 손쉬운 선택이었다. 현장에서 쌓은 다양한 실무경험을 강의에 반영하는 것은 자칫 현실과 무관한 이론 속에 빠지기 쉬운 대학교육의 취약부분을 보완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도 결코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작금의 현상은 산학협동의 차원을 넘어 영화계의 중심 인력이 영화판을 떠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학교육이 오히려 한국영화를 죽이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올해 영화계 사정은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어렵다. 지난 몇 년간의 한국영화계 사정이 편안하고 넉넉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총체적 위기감에 빠진 적은 없었다. 새로운 투자자 역할을 하리라던 대기업은 심각한 적자와 부진 속에서 주춤거리고 있으며 제작은 눈에 띠게 줄어들고 있다. 텔레비전은 케이블이나 공중파 가릴 것 없이 위기상황과 직면하고 있는 중이며 광고 시장 또한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상태나 다름없다. 영상산업 전반이 생존을 검증받는 처절한 위기이자 난국이다. 

이런 처지에서 영화계의 중심인력들이 영화판을 떠나 있다는 것은 난파선을 구하기보다는 오히려 발을 빼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더 크게 든다. 강의를 하고 다른 일을 찾아 나선다고 영화판을 떠났다고 단정할 수도 없고, 영화작업을 못한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개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영화계의 일거리가 줄어드는 마당에 그나마라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입장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영화계 전체로 봐서는 전력을 쏟아도 어려운 처지에 이일저일을 병행한다는 것이 결코 최선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강의도 나름대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 영역이다. 현장 경험이 많다하더라도 정해진 시간에, 필요한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준비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강의 준비에 시간을 많이 들일수록 강의내용은 그만큼 충실해지겠지만 에너지가 분산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준비없이 나섰다가는 기대한 만큼의 성과도 거두지 못한채 시간과 노력만 들이는 결과로 그칠 수도 있다. 어떤 생각과 입장으로 시작했던 일단 강의나 그밖의 일에 손을 댔다면 그것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강의와 현장 일을 모두 잘 해낸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어느 한가지에 집중한다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사람조차 그렇지 못하다면 본인을 위해서나 영화계나 학교를 위해서나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또 한가지 걱정스러운 부분은 영화계 밖의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진다면 영화계에서 일하는 것이 경력을 쌓기위한 중간과정처럼 가벼워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점이다. 한가지 일에 집중하는 경우보다 이것저것 두루 하는 것이 더 능력있는 것처럼 비친다면 본업에만 정열을 쏟는 영화인들을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현장을 지켜야 할 영화인들이 무더기로 다른 분야에 시간과 정열을 쪼개고 있는 것은 바람직스럽다고 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어느때보다도 영화인들이 힘을 합쳐 위기극복에 나서야 할 처지에 현장을 떠나 있거나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있는 것은 영화인들 스스로 위기를 외면하는 것이거나 모른척 회피하고 있는 것이란 지적을 받아도 할말이 없을 정도다. 

거듭 말하거니와 영화계의 가장 큰 재산은 사람이다. 어느때보다도 큰 어려움을 겪고있는 영화계 현실을 뒤에 둔채 영화인들이 이런저런 일에 열정을 분산하는 일은 영화계의 힘을 분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유능한 영화인력을 키우기 위해 교육을 펴고있는 대학이 현장의 영화인력을 끌어들이는 흡입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무어라고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역설적이다. 부실한 기반위에서 서둘러 시작한 일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기도 하면서 오늘의 우리 영화계가 서있는 현실이 어디쯤인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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