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문학 
전환의 상상력과 시 읽는 즐거움 

이숭원·문학평론가, 서울여대 교수 
 

동해안 끝에 있는 정동진은 드라마 「모래시계」의 배경으로 등장하여 이름이 났다. 얼마전 「모래시계」가 재방영이 되자 바닷가의 그 인상적인 장면이 다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정동진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최근에는 정리해고 등으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찾는 명상과 관조의 장소로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김영남의 첫 시집 『정동진역』(민음사)은 제목 자체가 이러한 최근의 분위기와 묘하게 부합되면서 대중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시집은 정동진이라는 동해안의 명소가 갖는 대중성이라든가 감상성의 맥락과는 명확히 구별되는 시적 특색을 지니고 있다. 이 시집 덕분에 정동진을 찾는 사람이 늘고 정동진역으로 가는 문학기행 행사가 성황리에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그런 것은 이 시집이 지닌 시적 가치와는 구분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 시집의 시적 특질은 그러한 대중적 호사벽과는 동떨어진 자리에 있다. 

우선 시집의 표제작이자 이 시인의 데뷔작이기도 한 「정동진역」을 보면 관찰하는 대상의 성격을 여러 가지 형상을 통해 정확히 드러내려는 시인의 집요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그 시의 첫 행은 “겨울이 다른 곳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닷가”로 되어 있는데 이 짤막한 구절은 정동진이라는 공간의 속성을 다른 어떤 표현보다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그곳에 “억새꽃 같은 간이역”이 있고 “조개껍질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열차에 몸을 싣는다.  

여기서 억새꽃과 조개껍질이라는 비유의 매개항은 대상의 속성을 절묘하게 드러낸다. 억새꽃처럼 소박하고 미미하면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시골의 간이역이 정동진역이고, 바닷가에서 백사장과 하나가 되어버린, 그래서 육신의 피로에 지친 사람들이 조개껍질에 비유된 것이다. 그런가하면 라면집은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것으로 비유되고 소주집은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 잔을 주고받기 좋은” 곳으로 묘사된다. 해안선의 굴곡진 모습이 라면의 구불구불한 모습과 연결되고 한적한 소주집은 사람 대신 파도와 술잔을 나누는 곳으로 인식된 것이다. 이러한 대상의 개성적인 점묘는 정동진의 한적한 아름다움을 시각적 영상으로 떠오르게 한다. 

「정동진역」 다음에 수록된 「동행」은 삶의 교훈적 의미를 비유로 표현한 것이고 그 다음에 나오는 「초향(草鄕)」 역시 고향에서의 한적한 생활을 꿈꾸는 건실한 삶의 자세를 나타낸 것인데, 이 세 편의 작품 다음에 나오는 시편들은 앞의 작품들과는 성격을 상당히 달리하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김영남 시인의 또다른 개성을 접하게 된다. 김영남 시인의 주류를 이루는 상상력은 전환의 상상력이다. 즉 그는 어떤 대상이나 시어를 선택하면 일단 그것의 일차적 의미에 의해 시행을 구성한 다음에 그것을 다른 맥락으로 변환시키고 뒤집어서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제이, 제삼의 의미를 통하여 시상을 연결하고 시의 마무리를 짓는다. 이러한 전환의 어법, 전환의 상상력을 따라가며 그의 시를 읽는 것은 무척 즐겁다.  

요컨대 그의 시는 시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드문 사례에 속한다. 때때로 시는 사람 머리를 어지럽히고 몇 번 읽어도 그 뜻이 파악되지 않는, 그래서 결국은 골칫거리로 남는 이단적 존재로 치부되기도 했다. 그런 시단의 경향에 비하면 김영남의 이러한 재미있는 시도는 오히려 신선한 자극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시집의 네 번째 작품은 「커브가 아름다운 여자」다. 김영남은 시의 제목을 짓는 데에도 뛰어난 선수의 기량을 보인다. 많은 작품의 제목이 문장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 제목이 하나같이 기발하고 시적이다.  

이 시의 제목 ‘커브가 아름다운 여자’는 문장 형식은 아니지만 역시 제목으로서의 독특함과 함축성은 지니고 있다. 흔히 커브가 아름다운 여자라면 몸의 곡선이 아름다운 여자를 떠올리기 쉽다. 이 시는 그러한 연상을 허용하면서 곧 그 가능성을 지워버린다. “커브가 많은 삶은 슬프다”라는 시행이 바로 그러한 연상의 가능성을 차단해 버린다. 이 시행만 보면 커브라는 말은 인생의 기복, 생의 난관 등을 연상하는 듯하다. 실제로 시인이 대상으로 삼은 여자는 그러한 시련의 곡선을 많이 거쳐갔던 듯하다. 그러나 그 슬픈 커브를 몇 굽이 돌면 “의외로 넓고 푸른 뜰”, “비둘기와 양”을 만날 수 있고 “황소 같은 어진 발걸음 소리”도 들을 수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생의 기복을 거쳐 슬기롭게 절망의 벼랑을 돌아갔을 때, 그래서 마음의 평화와 내면의 너그러움을 간직할 수 있을 때 그것이 진정으로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생이라고 시인은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아름다운 모퉁이에 대하여」에도 나타난다. 각진 모서리가 아니라 둥그렇게 구부러진 모퉁이가 중요하며 그 모퉁이에 의해 ‘아름다운 입체물’, ‘향기로운 내부’가 마련될 수 있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이것 역시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지하는 모퉁이라는 대상을 다른 차원으로 전환하여 시의 문맥 속에 재구성한 방법이다. 이러한 시어와 사물의 재문맥화는 시 읽는 재미와 더불어 우리에게 발상의 전환을 가져다 준다. 우리의 상식을 뒤집고 발상의 전환을 이룩하는 시인의 상상력은 놀랍고도 아름답다. 그것은 표면적 현상의 배후에서 진실의 단서를 찾는 지적 탐색의 자세와 흡사하다. 그런 점에서 이 시의 어법은 사색적이고 윤리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간혹 그 윤리의식이 시적 여운을 가로막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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