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칼럼


위기의 문화, 예술전문가 양성제도의구조조정으로 극복해야


서우석 음악평론가, 서울대 교수


우리는 지금 모두가 공감하는 어려운 시기에 살고 있다. 국민 모두가 우리의 삶이 어렵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 이런 공감대의 형성은 6·25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그 동안의 여유가 거품이었으며 거품의 근원이 빚이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런 뜻에서 보자면 지금의 위기는 기회라고 말할 수 있다.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큰 몸체인 국민이 반성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위기는 필수적이다. 이제 남은 일은 이 합의를 긍정적인 변화로 유도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문화적으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그 하나는 문화적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적 실천 방법의 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일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무엇을 문화라고 생각해야 하는가의 사고방식을 고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인력을 키우는 교육제도를 고쳐야 한다.

그 동안 우리는 문화를 아주 좁은 개념으로 생각해 왔다. 문화를 단순한 오락이나 쾌락으로, 부와 능력을 과시하는 사치로, 아이들의 삶에나 필요한 교양으로 생각해 왔다. 또는 그와는 반대로 문화를 보통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심오한 지적인 세계로 여겨 문화를 나 자신의 생활과는 관계없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이런 경향의 근본적 이유는 20세기 초 갑자기 밀려온 근대문명의 충격과 60년대 이후 빠른 속도의 경제발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근래에는 이에 대한 잘못된 반작용으로 지나친 민족주의와 미신적 사고가 대두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화를 자연과 인간의 교섭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이라고 생각할 때,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념을 갖기 위해 우리는 다음 세기의 인간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19세기 이전, 우리는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고 주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의 우리는 한발짝 물러나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종교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던 시기와는 다른 관점에서, 우리의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자연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 지금까지의 개발 중심의 사고와는 달리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사고가 지배적이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동물을 우리의 필요에 의해 마음대로 죽여도 된다는 과거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인도의 헌법에서 보듯 동물의 생존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사상이 보편화될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 사상은 이미 그러한 생각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불살생(不殺生)이라는 불교적 세계관이 바로 그것이다.

문화가 삶의 구석구석에 침투되어 있는 우리의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할 때,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장기적으로 보아 문화관을 짓고 많은 돈을 들여 공연을 장려하는 일보다는 공원을 조성하고, 그곳을 깨끗이 하고, 산책할 길을 만들며, 어린이들에게 공공의식과 공중도덕을 몸에 배이게 해야 하는 일이 먼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차창 밖으로 꽁초를 던지고, 등산로에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 없어질 때 문화는 시작된다. 값비싼 공연장이 시민적 자질이 없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진다고 해서 문화가 진흥되는 것은 아니다. 공연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식이 먼저라는 뜻이다. 문화는 과시나 칭찬받기 위한 것도 아니고 외국에 수출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문화는 나의 삶을 위한 것이다.

문화의 실천적 구조의 근본은 교육제도이다. 그간 우리의 교육제도는 개인소득 100불 이전(60년대)의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양적인 팽배만 조장해 왔다. 대학교육을 전문인력 양성보다는 교양인의 양산 체제로 바꾸어 버린 지금 그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통이 따를 것이다. 영문학, 독문학, 불문학 등 외국문학 학과는 수준 높은 외국어를 배우기 위한 학과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녹음기가 보편화된 지금 어학은 학원 또는 랩lab에서 배우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예술가를 키우기 위한 대학교육 역시 똑 같다. 너무 많은 교양적 예술가만 키워 온 것이 사실이다. 매년 7,000명 이상이 무용 전공으로 5,000명 이상이 음악 전공으로 졸업한다. 그보다 훨씬 많은 미술 전공 졸업자는 그나마 전공을 살릴 직장을 얻을 가능성이 있으나 음악과 무용은 그렇지 못하다. 수없이 많은 무용단은 학예회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고 골목마다 들어서는 피아노 학원은 지금까지의 음악교육이 전문가 양성에 실패했다는 증거일 뿐이다. 불필요한 무용전공과 음악전공은 축소되어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 것인가를 우리는 안다. 그러나 다시는 오기 어려운 구조조정의 시기에 예술 전문가 양성 제도를 구조조정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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