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연극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가는 길
- 극단 독립극장의 '메카로 가는 길' -


김승옥 연극평론가

이강백 연극제와 오태석의 신작 공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상반기가 끝나고 본격적인 우기로 접어들면서 극장가는 소강 상태에 빠져든 듯하다. 산재한 소극장 주변에서 쉴새없이 공연들이 양산되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이 관객의 말초적 감각에만 영합하는 소모성 흥행물이고 보면 오히려 우려감만 더하고 있는 것이 연극계의 실상이다. 그러한 가운데 인간의 존엄과 존재의 가치를 묻는 묵직한 작품이 공연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극단 독립극장의 「메카로 가는 길」이 바로 그것이다.

국내 관객들에게 「아일랜드」로 잘 알려져 있는 극작가 아돌 후가드Athol Fugard 는 아프리카의 인종차별 및 사회병폐를 문제 삼되 이를 인간 보편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폭넓은 성찰의 기회를 주고 있는 극작가로 정평이 나있다. 83년작인 「메카로 가는 길」에도 아돌 후가드가 일관되게 정착해 온 인간애의 주제가 극명하게 드러나 있음을 확인케 된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소외 계층의 삶의 조건에 기울여 온 작가의 관심이 여성문제로까지 확대 심화되고 있음을 엿보게 된다.

아돌 후가드의 작가적 역량은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으리만큼 치밀한 구성력으로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 매고 있는 극작술에서도 확인된다. 2막으로 구성된 이 극의 시간 배경은 가을날 저녁 무렵부터 어둠이 짙어지는 밤까지이다. 극중에 설정된 시간의 경과와 공연 진행 시간을 거의 동시적으로 맞물리도록 하여 밀도와 긴장감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무대는 카루 사막지대의 변경에 자리잡은 뉴 베데스다라는 작은 마을, 이 곳에서 평생을 보낸 헬렌의 집으로 설정되어 있다. 인물로는 남편과 사별한 이후 조각품을 만드는 일에 전념해 온 60대 후반의 노파 헬렌(전경자 분), 그녀와 특이한 우정을 나누는 20대 후반의 여교사 엘사(예수정 분) 그리고 그 지역 목회자인 마리우스(이현우 분)가 등장한다.

남편의 곁에 얌전히 앉아 있던 지난 모든 세월이 끔찍한 거짓이었다고 고백하는 헬렌의 반란, 자신의 방식으로 헬렌을 보살피려는 마리우스 목사의 호의, 타성에 빠져 있는 영혼을 강하게 뒤흔드는 젊은 엘사의 신념 등 세 인물이 구축하는 팽팽한 삼각구도는 극이 종료되기까지 한치의 양보도 허락하지 않는다.

작가는 이들이 구축해 가는 치열한 삶을 통해 여러 층위의 담론으로 관객의 사유를 자극한다. 인간의 존엄과 자율성, 우정과 신앙 그리고 구원의 문제까지도 정교하게 교직시켜 부유하는 현대인의 영혼에 깊은 정서적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다.

60대 후반의 노파 헬렌은 내면의 요구에 정직한 삶을 사는 댓가로 주민들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살아간다. 고루한 율법의 노예가 된 뉴 베데스다 주민들은 자신들과는 구별되는 삶을 산다는 이유로 헬렌을 적대시하고 있다. 사실 남편이 세상을 떠날 무렵인 50세가 될 때까지 헬렌은 자신을 둘러싼 삶의 조건에 말없이 순종하며 살아 온 여성이다. 그러다가 남편의 죽음 이후 돌연히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자신만의 메카를 조각해 가는 형태로 분출시킨다. 이것이 주민들의 눈에 기이하게 비춰졌던 것이다. 늙은 헬렌이 타인의 거친 눈초리에 지쳐갈 무렵 엘사가 헬렌의 삶속으로 걸어 들어와 그녀를 소생시킨다.

헬렌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전념해 온 생의 의미를 확인하려고 한다. 우연한 사고로 집에 화재가 났을 때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빛의 의미를 음미하려 한 그녀의 행동은 생의 열망과 끝을 극대화시켜서 보여준 부분이다. 그러나 헬렌의 행동은 분명 주민들에게 이상행동으로 내비친다. 주민들과 마리우스는 이를 광기로 간주하고 그녀만의 울타리에서 꺼내 공동체의 공간 속으로 안전하게 영입시키려 한다. 그런데 그들이 보장하는 공간은 인생의 종말에 수족도 놀리기 어려운 노인들이 감금되다시피 수용되는 양로원이다.

어린 시절 한밤중에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보면서, 성장한다는 것은 머리 맡에 자신의 촛불을 갖는 것이라며 용기를 배웠던 헬렌은 지금 인생의 종착역에 서서 더 이상 촛불을 켤 수 없는 자신을 보며 두려움에 떨게 된다. 스스로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던 헬렌은 영혼의 어두운 밤에 엘사에게 편지를 띄운다.

1막은 자신의 메카로부터 쫓겨나게 된 헬렌을 향해서 엘사가 8백 마일이나 되는 먼 길을 달려오면서부터 시작된다. 엘사는 영혼의 자유를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광인 취급을 받아 온 헬렌을 옹호하고 존중하는 인물이다. 헬렌의 거취문제를 두고 언쟁을 벌이던 중 점차 상황을 알아차린 엘사는 헬렌에게 스스로 자신의 삶을 보살필 능력이 있음을 마을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이라고 독려한다. 작가는 엘사로 하여금 헬렌에게 기울이는 자신의 애정이 삶의 도전 때문이었다고 고백케 한다. 이는 헬렌의 삶이 타성에 찌들어 박제가 되어가는 영혼을 깨우는 자유의 타종소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2막은 헬렌의 양로원 입원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마리우스를 포함한 세사람이 한 자리에 모이면서 전개된다. 엘사는 양로원 생활이 영혼의 자유를 구속한다는 점에서 극구 반대한다. 하지만 마리우스 목사의 입장은 다르다. 자유와 해방을 갈구해 온 한 여인의 곁에서 자신의 사랑을 심려와 우정으로 승화시켜 온 마리우스는 헬렌이 사회제도 안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낼 것을 간곡히 설득한다. 마리우스는 헬렌의 메카 밖에서 웅성대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지만 신과의 교통을 통해 상처를 치유받은 신앙인으로서 헬렌을 향한 그의 배려는 깊은 애정에서 우러나온 것임이 확인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논의의 과정에서 헬렌은 자신이 평생동안 찾아 헤맨 메카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게 되고, 세 사람은 각자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된다. 결국 헬렌은 마리우스의 간곡한 권면에도 불구하고 홀로서기를 결연히 선언한다. 작가는 헬렌의 입을 통해 ‘삶이란 자신의 주체가 되어 어두운 방에 촛불을 켰다가 스스로 불을 끄는 의미를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헬렌과 엘사, 그리고 마리우스는 모두 상처입은 인간들이며 어떤 형태로든 치유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임을 보여준다. 헬렌과 엘사는 곰곰히 내면의 목소리가 명령하는 대로 홀로서기를 감행하는 인물들이지만 독자적 인격에 대한 서로간의 신뢰가 밑받침 되었을 때 그 유대감으로 생의 불꽃이 더욱 빛나게 타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존재들이다. 마리우스 또한 신과의 교통으로 상처를 치유받는 인간이다. 이들은 모두 인간이 애정과 신뢰를 먹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입증해 준다.

연출자 박철완은 인간 실존에 대한 궁극적 자각을 보여주는 원작의 의미를 충실히 재현하여 잔잔한 감동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 배우들은 자신을 충분히 녹여서 희곡의 인물로 재창조해내는 데 능란함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에서 강의에 전념하고 있는 교수들로 구성된 출연진의 혼신을 다한 연기는 색다른 감동을 준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메카로 가는 길」을 구축한 등장인들의 구도자적 자세가 존재의 가벼움에 목말라하는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헬렌과 엘사로 분장한 전경자와 예수정이 생의 위기 순간에 동성간의 자매애로 단단한 결속력을 과시하고 있다. 마리우스 역의 이현우가 삼각구도에 안정감을 더하고 있다.

이 연극에서 빛의 이미지는 매우 중요하다. 또한 어두움 속에서 제 빛을 발하는 촛불은 헬렌의 삶을 대변하는 상징물로서 시각적으로 표상하는 바가 크다. 극시간이 진행됨에 따라 차츰 어둠이 깃들면 실내의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각양각색의 촛불이 켜지고, 거울과 벽에 달린 화려한 장식들이 촛불을 반사하면서 헬렌의 방은 서서히 신비의 베일을 벗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토속적 이미지를 자아내는 공예품과 부분적으로 가톨릭의 영향을 상기시키는 문양과 실내장식으로 꾸며진 이번 공연에서 무대미술(김효선)과 조명(고희선)의 몫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느낌이다. 빛과의 색채 조화가 더욱 세심하게 보완된다면 미학적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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