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국악

젊은 패기, 발상의 전환통해 국악 대중화 미래 모색
- 중앙국악관현악단 제19회 정기연주회 -


이인원 국악평론가,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작년말에 시작된 우리 사회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져가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사회구성원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문화부문도 크게 위축되어 숨쉬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사정이 워낙 안좋다보니 문화에 관한 얘기를 입 밖에 내기도 어려운 분위기이지만 어려운 때일수록 문화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더욱더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문화야말로 한번 무너지면 원상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이래 단절된 국악이 해방 이후 5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일제시대와 비교해서 별반 나아진 것이 없는 것은 한번 무너진 문화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문예진흥원의 후원을 받아 중앙국악관현악단이 신작 초연곡만을 모아 연주회를 개최한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사실 신작초연곡만으로 공연을 갖는 것은 예산상의 문제나 준비과정의 어려움 등으로 쉽게 결정하기가 어려운 문제이다. 그럼에도 민간국악관현악단이 이러한 공연을 개최한 것은 높이 평가받을 일이다.

신작초연곡들 모두 젊은 작곡가의 작품

이번 공연의 또 다른 특징은 신작초연곡들이 모두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이날 발표된 작품은 김성국의 「물의 춤」, 최지혜의 「오월에 내리는 눈」, 오혁의 「야인」, 이경섭의 「방황」, 백대웅의 「남도아리랑」 등 다섯곡으로 이중 새로 편곡되어 발표된 백대웅의 「남도아리랑」을 제외하면 나머지 곡들이 모두 대학을 갓 졸업한 신진 작곡가들의 작품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 작품들이 하나같이 수준높은 관현악 서법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곳에서도 어색한 부분을 찾기 어려웠다. 중견작곡가들의 발표무대에서도 미숙한 부분이 종종 눈에 띄게 마련인데 이들 작품에서는 그런 부분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마디로 이들이 짊어지고 갈 21세기 국악의 미래가 매우 밝다고 보겠다. 또한 조만간 국악관현악법이 일정 수준에 오르면서 역사에 남을 명곡이 탄생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기존의 창작국악곡이 일반 대중의 호응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 젊은 작곡가의 등장은 국악대중화의 밝은 미래를 보는 듯하다.

이날 발표된 작품들은 하나같이 섬세하면서도 활달한 작품을 보여줌으로써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감성을 유감없이 표출했다. 그 정서들은 신선하고 활기에 넘쳐 아름다웠으며 일렁이는 흥이 우리들의 숨어있는 신명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또한 곡을 꿰뚫는 탄탄한 구성은 곡의 완성도를 높여주는데 기여했다. 이들 곡의 높은 완성도는 대학을 갓나온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렵게 했다.

국악과 재즈의 만남

특히 그중에서도 「방황」을 쓴 이경섭과 「야인」을 작곡한 오혁은 작곡가적인 예민한 감수성과 타고난 음악성으로 주목을 받았다. 「방황」과 「야인」은 닮은 데가 많았다. 두 곡 다 재즈풍의 가락이 바탕에 깔려 있었고 타악기의 리듬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 이런 류의 가락이 국악관현악으로 완벽하게 연주될 수 있다는 게 경이로웠다. 이것은 아마도 중앙국악관현악단 연주단원 하나하나가 열린 마음으로 작품을 대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작품의 성향이 어떠하건 연주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진지한 자세, 이것이 중앙국악관현악단이 다른 악단과 다른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다. 이들 두 곡은 국악과 재즈가 만났을 때의 대부분의 경우처럼, 그런 어색한 부분이 없었다. 국악과 재즈의 만남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방향을 이들 곡이 제시해 주지 않았나 싶다. 그만큼 이 두 곡은 재즈적인 재미와 흥취를 진하게 풍기면서도 국악적인 맛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이것은 작곡자들이 이들 가락을 완전히 체화해서 국악과 일치시켰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이러한 류의 음악들이 작곡되어 연주된다는 것은 창작국악의 발전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들 곡은 창작국악의 지평을 넓히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다양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는 흑과 백의 단순논리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는 점잖은 곡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가볍고 흥겨운 음악도 필요한 법이다. 다양한 류의 음악들이 서로 다투면서 발전되어갈 때 국악의 토양은 넓어지고 기름지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작품들을 써서는 안된다고 단언해서는 안된다.

이들 작품이 대중음악적인 가락을 썼다고 해서 국악을 망쳤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들 작품의 공과는 후세 사가들이 판단할 일이지 지금 이 시기에 그것도 한쪽에 치우친 편협한 생각으로 이들 곡을 재단해서는 안된다. 특히 언론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잘못된 판단을 대중에게 여과없이 전달했을 경우 역사에 큰 과오를 저지르게 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연스레 흘러간다. 그 흐름은 되돌려 놓는다고 해서 되돌려지는 것은 아니다. 그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고 설 때 그 힘은 커다란 반작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역사의 힘은 무서운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순리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똑같은 이야기를 여성들의 옷차림에 대해서 할 수 있다. 한때는 종아리는 내놓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속옷같은 겉옷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다. 아름다움의 관점에서 볼 때 종아리까지 덮은 옷과 몸매를 다 드러낸 옷 중에서 어느 옷이 더 아름다운지 평가하기 어렵다. 그것은 사람들의 심미안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21세기에는 여성들이 가슴을 다 드러내놓고 거리를 활보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겠지만, 그 때에는 오히려 벗은 가슴이 많은 사람들에게 심미적인 만족을 안겨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음악에 대한 우리의 관념도, 국악에 대한 관념도 끊임없이 변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꾸 변하는 것이다. 그것은 변해야 살아남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는 내 마음의 잣대에 억지로 맞출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에 내 마음을 맞추지 않으면 안된다. 즉, 역사에 대한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사고가 지금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국악계의 좁은 울타리안에서 이쪽이 옳고 저쪽이 옳지 않다고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얘기하지 말자. 서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묵묵히 실천하되 판단은 역사에 맡기자. 특히 언론을 이끌어가는 평자들의 경우 공연의 진정한 의미를 접어두고 겉으로 드러나는 몇가지 피상적인 모습만으로 공연전체를 평가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이번 중앙국악관현악단의 공연은 21세기를 이끌어갈 젊은 작곡가들의 발표무대로 매우 수준높은 작품들이 발표된 의미있는 무대였다. 전체적으로 국악관현악단 연주가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다이나믹한 극적인 구성력이 결여된 것이 흠이긴 하지만 연주자들의 젊은 패기가 이를 극복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조명과 뒷배경에 변화를 준 것이나 독주파트가 부분부분 일어나서 연주한 것은 기존의 연주회 스타일을 벗어나고자 하는 발상의 전환으로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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