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통일의 물꼬를 트며 남북한 문화교류 전망>
 
 
국제협력 통해 북한문화재 보존을 위한 국제캠페인 전개해야

허 권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부장

최근 적지 않은 북한 문화재가 외부로 불법 유출되고 있다. 정확한 점수를 알 수 없지만 북한 문화재 보호 체계망에 구멍이 뚫린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는 북한의 고위 당 관료, 한국·일본의 기업인들, 그리고 중국교포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소문이 있기는 하나 이에 대한 정확한 실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북한 벽화고분 조각이 일본학자를 통해 국내에 반입되었다는 사실은 비록 몇 조각에 불과하더라도 북한의 문화재 관리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허술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북한은 90년대에 들어와서 산림, 농업정책의 실패 그리고 예상치 못한 홍수로 엄청난 재앙에 직면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우리 동포들이 먹을 식량이 부족해 하루하루 연명하는 전무후무한 식량난에 빠져 있다. 그러나 계속된 홍수로 농경지만 피해를 본 것이 아니라,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많은 문화재도 함께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이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도 있지 않았다. 오늘날 당면한 경제 및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급급한 북한당국이 문화유산의 보호와 파괴된 문화재의 복원에 각별한 신경을 쓸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아울러 중국 길림성에 있는 고구려, 발해 유적지들도 관리소홀과 지방정부의 무관심속에 보존상의 문제점을 야기시키고 있으며, 무계획적인 도시개발로 인해 문화재 근방에 주택지가 들어서거나, 유적지가 동네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하고 있다는 답답한 얘기도 들려 온다. 여기에 대한 우리의 대책은 별 뾰족한 방안이 없어 보인다. 중국은 자국 영토에 있는 문화재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며, 고구려, 발해 등의 역사를 중국 변방민족의 유산으로 인식하는 중화사관을 가지고 있기에 한국측에서 제기하는 여러 가지 요구를 내정간섭으로 간주, 이에 대한 불괘한 심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북한은 동일 민족의 유산을 함께 공유하고 있으나 남북한간의 문화재 교류는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협력의 실마리를 찾아 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일부 언론사와 방송사들을 중심으로 북한문화재에 대한 국내 소개가 있어 왔지만 이는 남북한 간의 일치된 공감대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언론사의 탁월한 로비능력과 음성적으로 지불되는 방북댓가에 따라 성사되는 이벤트적 행사에 불과하다. 실질적인 협력망이 남과 북사이에는 없는 것이다.

북한의 문화재를 보호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북한당국의 책임이다. 우리 한민족의 문화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이를 후손에 계승시켜야 한다는 보편적 당위성은 남이나 북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는 여타 가공물과 달리, 문화재는 재생이 불가능한 희소성의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는 시공을 넘어 현재까지 살아있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문화재를 통해 과거를 배우고 삶의 당위성과 앞으로의 과제를 찾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관리와 보호는 많은 국가에서 볼 수 있듯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국가의 책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해당 문화재의 관리와 보호는 그 국가의 책임이지만 유네스코의 ‘세계 자연 및 문화유산보호협약(1972년, 일명 세계유산협약이라고도 함)’의 전문에 명시되어 있듯이 문화재는 인류공동의 자산이라는 관점에서 파괴와 훼손위험에 처한 유산을 국제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인식이다. 따라서 북한의 문화재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과 동참은 보편적인 철학이며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문화재를 국제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여건과 분위기는 무르익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동일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정치적인 분야라는 점에서 볼 때 문화재를 중심으로한 남북한간의 협력과 교류의 가능성은 그 어느 분야보다도 높다. 그러나 남과 북, 그리고 다자간 협력을 통한 북한문화재의 보호사업의 전개는 그 성격상 여러 방법을 함께 유의하면서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국제기구를 통한 여건의 조성, 남북한 직접교류 방안, 그리고 민간단체를 통한 교류의 활성화가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다자간 협력기틀의 마련: 세계유산협약가입 촉진

먼저 북한이 유네스코의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하도록 협조해야 한다. 한국은 1988년 이 협약에 가입한 이래 1995년에 석굴암과 불국사, 해인사 팔만대장경 경판전, 종묘 등 3점을, 그리고 1997년에는 수원 화성과 창덕궁 2점 등 모두 5점의 문화재를 세계유산으로 등재시켜 우리의 수준높은 문화유산을 해외에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고, 이에 대한 국제적 보호의 기반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문화재를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킬 수 없을 뿐 아니라 유사시 긴급한 문화유산의 보호를 위해 국제적인 지원을 받기 어렵게 되어 있다.

현재 남과 북은 유네스코의 협약 중 문화재 반환협약에 다 함께 가입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우리와 함께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하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북한의 태도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북한은 외화 부족 및 협약가입의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협약가입을 꺼리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하게 되면 북한은 2년마다 유네스코에 납부하고 있는 국가 분담금의 1%를 추가로 내야 한다. 사실 우리 기준으로 볼 때 이 회비는 얼마 되지 않지만 북한은 이 협약에 가입해 보았자 별 소득이 없을 것 같다는 이유로 가입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최근 고구려 고분벽화의 보존문제가 대두되면서 국내외 일부학자가 북한당국에 세계유산협약의 가입을 독려해 왔다. 대표적인 인물이 유네스코 친선대사이며 일본의 대표적인 원로 미술가인 이꾸오 히라야마이다. 그는 작년 말 북한 당국자를 만나 남북한 및 일본간의 공동학술조사까지 제의한 바 있으나 이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제의한 것이고 유네스코 본부나 한·일 양국간의 합의에 의해서 취해진 것은 아니었다. 최근 유네스코 본부는 북한의 협약 가입을 여러 경로로 촉구하고 있으며 조만간 가입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문화재 5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에 자극을 받아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

만약 조만간 북한이 이 협약에 가입을 한다면 유네스코를 중심으로한 다자간 협력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 우선 한국은 임기 6년의 세계유산위원회 이사국이기 때문에 북한이 제출한 여러 재정지원 사업을 지지할 뿐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는 기술적인 지원도 모색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각국은 그들의 문화재 보존사업을 위해서 이사국에 협조요청을 하는데 마침 북한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중국, 러시아 등의 국가가 이사국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있다.

둘째, 북한 문화재의 세계유산지정을 위해 우리 정부도 적극 나설 수 있는 잇점이 있다. 적어도 북한은 3점 정도의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고구려 고분, 구석기 유적지 뿐 아니라 금강산과 같은 자연유산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아울러 남북한간의 공조에 따라서는 비무장지대의 일부를 공동으로 세계유산으로 지정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남북한간 쌍무합의서의 체결

문화재는 비정치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학술, 연구, 교육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자료 및 인적 교류가 매우 높은 분야이다. 따라서 양측간에 문화재 보호를 위한 포괄적인 합의서를 교환한다거나 무력 충돌시 문화재를 보호(1952년 헤이그 협약)하기 위한 여러 실무적인 차원에서의 의견교환이 있을 수 있다. 이는 남북한 간의 정치적인 여건의 성숙이라는 변수에 민감한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비정치적인 차원에서 차분히 풀어나갈 수 있는 여지가 매우 높다. 그리고 민간 학술차원에서의 전문가의 상호 교류나 공동연구의 수행, 학술도서의 보급 등에 대한 교류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동독과 서독은 자국의 문화재를 공동으로 보호하기 위해 전시 및 무력충돌시 독일의 문화재 보호를 위한 협정을 체결하고 각 군사학교에서 이에 대한 사전교육 및 문화재 보호지역을 지정해 그들의 문화를 유사시 보호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을 참조할 만하다.

최근 모 국제기구에서 실시한 북한 고구려 벽화고분의 보고서는 북한의 문화재 보존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다. 누수, 낙수, 탈색이 전반적으로 진행중에 있고 어떤 것은 원형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 고분보존벽을 콘크리트로 쌓아 올려 보존과학상 심각한 오류를 범한 곳도 여러 곳이 된다. 이에 대한 북한내부의 관심도 있어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단적으로 북한의 보존과학수준이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빠른 시일내에 과학적인 보존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우리의 찬란한 유산은 다시 회복시킬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남북한간의 교류에는 여러 분야에 걸쳐 기술 및 장비지원, 전문가의 양성 프로그램, 역사문화에 대한 자료의 교환이 필요한 상황에 놓여 있다.

우리 문화재정책의 국제화, 전문화

남북간의 문화재 교류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나름대로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 있다. 왜냐하면 문화재 교류는 남북한간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국제적인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먼저 우리 문화재 정책의 국제성과 전문성이 높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달리 말한다면 남북한간의 교류를 가능케 하는 국제적 환경을 조성해야 하며 아울러 우리의 문화재 보존정책의 기반을 다지는 일을 함께 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는 작년 일본학자들을 중심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추진할 경우, 이에 대한 우리의 대책이 미비했던 점에서 우리의 국제적 역량이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든 국제교류는 상대적으로 우수성이 있는 분야가 기득권을 갖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물론 정치적인 변수와 북한 자체의 이해 득실이 있기는 하지만 여러 분야중에서도 남북한간의 공동협력이 가장 먼저 이뤄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분야인 것 같은데 그러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준비가 충분치 못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재 분야에 대한 과감한 지원과 인적 자원의 확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유산정책에서 국제화란 지금까지 한국문화의 해외홍보라는 지극히 한정된 분야에 머물러 있어 외국 박물관에서의 한국관 설치, 한국문화재 영문자료의 발간 보급 등 지극히 홍보적 차원에서의 국제교류이지 전문적인 교류가 별로 있지 아니하였다. 문화재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ICCROM, ICOMOS, ICOM, IFLA, OWHC 등 많은 국제기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인력의 양성과 그들과의 긴밀한 협조가 매우 중요한 단계에 이르렀다.

일본은 ICCROM과 공동으로 종이와 목재 문화재에 관한 국제 훈련과정을 로마가 아닌 일본에서 실시하여 그들의 보존과학수준을 소개하면서 일본의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다. 그리고 유네스코의 문화재보호정책에 많은 신탁기금을 배정해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수많은 문화유적지 복원사업에 일본 전문가를 파견해 오고 있다. 일본은 바로 다자간협력이 가능한 국제기구를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아시아지역에서의 입지를 강화시켜 가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이다. 그뿐 아니라 그들 전문가를 파견시킴으로써 아시아 각지역의 전문가와의 유대관계를 손쉽게 하고, 나아가 여러 국가의 문화정책과 문화재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습득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국제적인 문화재 보호사업에 신탁기금을 제공한다거나 우리 전문가를 파견해본 적이 없다.

이러한 노력은 비록 남북한간의 직접교류를 지금 당장 실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더라도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문화재 보존 및 중국에 있는 한국관련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여 궁극적으로 북한으로 하여금 문화재 보존을 위한 노력을 환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구려 고분벽화의 보존을 위한 국제 캠페인을 전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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