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예술을 찾아서
 
 
민족의 문화를 대변하는 시금석

- 전통도자기 다시보기 -

정유근 공예평론가

전통도자기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 인식은 우리에게는 도자예술의 빛나는 전통이 있고 그것을 대표하는 것은 고려청자이며 그 가치는 신비롭고 깊이있는 비색(翡色)에 있다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전공한 입장에서, 도자예술을 볼 때 가장 아쉬운 점은 전통도자기의 가치가 주로 미의식의 측면에서 인식되어 추상적이고 애매한 미사여구의 나열로 설명되곤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는 도자예술이 있어 ‘전통의 현대화’라는 이미 해묵은 명제를 풀어나가는 데 가장 기본적인 장애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전통도자기의 우선적인 가치는 미적측면보다는 그 제작과정 전반에서 발견되는 발달된 과학적 지식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확인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려청자가 지니는 미적성취는 세련된 제작기술이 이룩한 결과로서 일정한 수준의 제작여건이 유지되는 바탕위에서 당시의 생활감각이 담긴 조형미를 추구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따라서 전통도자기의 가치를 현대화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검토되어야하는 것은 형태의 미감이 아니라 재료와 제작과정 전반의 집중적인 연구와 일관성있는 꾸준한 투자, 그 연구결과를 실질적으로 도자예술의 각 분야로 연결시키기 위한 효율적인 구조의 구축이라고 생각된다.

하버트 리드는 도자기가 한 민족의 문화를 대변하는 시금석이라고 지적했는데 도자기 제작의 전과정을 살펴보면 그의 지적이 설득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도자기의 기본적 재료는 흙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표면 전체를 구성하는 흙은 지구의 생성과정을 통해 복잡다양한 화학적 구조를 지니게 된 여러 가지 광물의 풍화물이다.

이들 광물은 각 지역의 자연적 조건에 따라 함유된 물질구성이 달라 같은 광물이라도 지역마다 그 성질이 달라진다. 오랜 세대에 걸친 경험을 통해 확인된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도자기 재료로서 적합한 흙의 일반적인 조합이 이루어졌고, 여러 가지 광물의 본질적인 성질을 파악함으로써 다양한 응용방법을 터득하게 되어 도자기의 내용이 점차 분화,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도자기를 만들 때 흙은 두가지 측면에서 소용된다. 그릇의 몸체가 되는 흙과 그릇에 입혀 굽는 유약에 쓰이는 흙이다. 각 용도에 따르는 흙의 화학적 조성이 다를 것은 정한 이치이고 이 과정에서 요구되는 화학적 지식은 축적된 경험과 반복된 실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더우기 도자기는 흙을 불에 구워 화학적 성질이 완전히 다른 구조로 이행시켜 전혀 다른 물질로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불을 다룰 수 있는 물리적인 설비에 대한 기술과 연료의 성질에 대한 깊은 지식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가 보통 도자기라고 하는 말은 도기(陶器)와 자기(瓷器)를 합쳐부르는 것인데 도기는 소성온도가 1,000도 내외이고 자기는 1,250도에서 1,300도 사이이다. 따라서 이 정도의 고온상태를 장기간 유지시켜 흙과 유약을 녹일 수 있는 가마의 구조와 이에 따른 전반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처럼 도자예술은 단순한 표현예술이 아니라 깊고 풍부한 역사성을 함축하고 있으며, 광범위한 영역과의 연계성을 지니고 있어 미술활동의 일부가 아닌 독립된 또다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 속에서 도자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이나 왜 그만큼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구체적 인식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예들 들어 고려청자의 중요성을 살펴본다면 고려청자가 전성기를 누리던 13세기에 전세계에서 중국과 우리만이 고화도 경질자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이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앞서 설명한 대로 자연광물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매우 구체적이고 분석적이었으며, 요업전반의 각 분야가 상당히 발전되어 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이에 비해 유럽에서 자기가 생산된 것은 거의 17세기에 이르러 독일 마이센과 프랑스의 세브르 지방에 자기공장이 설립된 뒤였다. 일본의 경우 1592년 발발하여 7년동안 계속되었던 임진왜란을 통해서 엄청난 규모로 우리 문화재를 약탈했는데 그 중요한 내용은 모두 도자기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도자기 제작기술 보유자와 도자기 제작에 따르는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우리나라 사람 수만명을 무차별로 잡아갔고 도자기 재료와 가마까지 통채로 뜯어서 싣고 갔다. 그 결과 일본에서도 임진왜란 이후 고화도 자기가 생산되기 시작해 유럽으로의 도자기 수출이 발달하게 되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대외수출의 근간이 되고 있다.

특히 고려청자를 통해서 우리는 중국청자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그 특성에서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청자는 발색은 주로 소지(도자기의 몸체를 이루는 흙)의 소성과정에서의 변화와 투명재유의 칠분함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흙이 지닌 전분을 환원소성(가마내의 온도가 약 950도 정도일 때부터 산소공급을 통제하여 산화물로서 흙이 지닌 산소를 모두 태워 버리는 소성방식) 과정에서 회청으로 발색시키고 철분함량이 높은 소나무재를 사용하는 투명유약을 입혀 화학적 변화의 미묘한 단계에서 그 발색을 결정짓는 것이다. 이에 비해 중국의 청자는 소지발색 보다는 주로 유약의 색깔을 통해 푸른 빛을 추구하여 색깔이 선명한 반면 깊이가 부족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바로 우리 전통도자기는 우리가 지닌 자연적 조건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이해 속에서 그 특징적인 가치가 형성된 것이라는 점이다. 지질학적으로 우리나라는 고생대 지역에 위치해 유기물이 풍부한 땅을 가지고 있으며 그 유기물질의 대부분은 바로 철분인데 그 철분의 변화를 잘 파악하여 활용함으로써 가장 한국적인 미적특성을 획득함과 동시에 우수한 기술적 수준에 도달했던 것이다.

선대에 이어 청자제작기술의 연구로 평생을 바친 황종구 교수(이화여대)는 도자기제작에 있어 재료와 소성설비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후학을 향해 늘 이 점을 강조하시는데 연세가 많이 드신 최근까지도 우리나라 각 지역의 도자기재료 산지를 찾아가 직접 채취하고 실험하기를 즐기신다. 그 말씀가운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나라에 풍부하게 자생하는 소나무는 불길이 길고 맑으며 화력이 세어 도자기 가마의 연료로서 적합하고 그 재는 유약 원료로서도 우수한 점을 많이 지니고 있지만 재를 사용할 때는 가지와 줄기, 뿌리가 지닌 철분 함량이 다르기 때문에 그 쓰임새가 달라져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사소한 문제인 듯하나 사물을 바라보고 파악하는 사고의 양식이 자연의 원리를 따르면서도 매우 분석적이라는 점에서 깊이 생각하게 하는 말씀이었다.

오늘날의 세계는 초단위의 정보유통구조를 통해 완전히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간의 경쟁력의 근본은 그 문화의 고유성에서 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구체적 인식은 세계적인 무대에서의 경쟁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전쟁에 나서는 자가 자신이 지닌 무기의 성능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서 승패는 결정되는 것이다. 전통문화를 통해 세계속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 문화적 내용을 형성시킨 배경에 대한 통찰이 우선되어야 하며 긴 안목으로 초등학교부터의 교육과정을 통해 우리 문화의 기본적 사고양식을 익힐 수 있도록 하는 세밀한 교육구조에 대한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초·중·고교 과정 어디에도 이러한 문제를 염두에 둔 일체의 배려가 없고 특히 전통도자기의 가치를 가르치는 내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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