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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를 날아오르는 마법, 와이어 플라잉

2020-12-22

 

극적 연출의 귀재, 와이어 플라잉

툭하고 떨어지는 줄 알았죠?


흉측한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오페라하우스 지하에 숨어사는 천재음악가 유령 팬텀과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귀족 청년 라울의 러브스토리를 담은 영국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이 작품에는 네 번째 주인공으로 꼽기에도 손색없는 중요한 소품이 있다. 바로 샹들리에다.


“빰~ 빰빰빰빰빰”으로 시작되는 넘버(뮤지컬 작품에 삽입된 곡) 만큼이나 상징성을 갖으며 공연 내내 떨어질 것만 같은 위태로움으로 존재하는 샹들리에는 1막의 끝자락에 팬텀의 분노와 함께 추락한다. 이는 크리스틴을 향한 그의 뒤틀린 사랑과 감정이 절망적으로 낙하하고 있음을 전달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관객들은 이 추락을 통해 더욱 강렬한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 스태프들이 전하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 등장하는 샹들리에 출처(https://youtu.be/py__iDeCFkc)


흥미롭게도 샹들리에의 크기와 무게, 떨어지는 방향과 속도 등은 공연장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오페라의 유령> 웨스트엔드 초연에 사용된 오리지널 버전 샹들리에는 폭이 3m, 무게는 1t였다. 또 2019년 부산 드림시어터에서 진행된 공연에서 사용된 샹들리에는 높이 12.5m 객석 위에서 무대 앞쪽으로 곡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기존의 샹들리에 보다 무게를 가볍게 하여 초당 낙하 속도를 무려 1.5배나 빠르게 한 것이 특징이다.


처음 보아도, 몇 번을 보아도 입이 떡 벌어지는 샹들리에 신(scene)에 사용된 기술은 와이어 플라잉(Wire Flying)이다. 액션 영화에서 날아다니는 배우들을 모습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와이어 플라잉 시스템은 1줄 이상으로 구성되며 스틸이나 다양한 소재의 와이어에 배우나 물건을 매달고서 큰 범위를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을 뜻한다. 이는 1개의 서보 모터(위치를 제어하는 모터)로 구동되는 원형 드럼에 감겨있는 와이어로 배우나 물건을 아래위로 이동하도록 제어할 수 있는 1D(1-Dimensional, 1차원) 플라잉 시스템, 1개의 서보 모터로 구동되는 원형 드럼에 감겨있는 와이어와 수평으로 이동하는 트롤리로 구성되거나 2개의 서보 모터로 구동되는 원형 드럼에 각각 감겨있는 와이어로 구성되어서 상하 좌우 움직임의 제어가 가능한 2D 플라잉 시스템, 끝으로 4개 이상의 서보모터로 구동되는 원형 드럼에 각각 감겨있는 와이어를 이용해 3차원을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는 3D 플라잉 시스템으로 나뉜다.




당신도 한 번쯤은 보았을 기술


와이어 플라잉은 주로 컨테이너 운반 등 하중이 큰 물건의 이동을 위해 사용되어 왔다. 이후 영화나 광고의 특수효과 부분에서 크로마키 촬영과 병합되어 쓰였다. 연극 무대에서 날아다니는 연기자 혹은 소품을 표현하기 위해서도 이용됐다. 미국의 ZFX-flying, SGPS 등 ‘플라잉’이라는 분야를 특화한 전문 기업들은 이를 대형 공연의 무대 연출 기법으로 적극 활용하며 그 규모를 키웠다. 대표적인 무대가 뮤지컬이다.


미국 중동부 루이빌에 본사를 둔 ZFX-flying사는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다수의 공연과 쇼에서 와이어 기술을 선보인 기업이다. 뮤지컬 <피터팬>도 그 중 하나다. 와이어 줄에 매달린 피터팬이 무대 위로 떠올라 객석 위로 날아오르며 요정 가루를 뿌리고 후크 선장과 대결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어른도 아이도 동심의 마음으로 동화 나라에 온 듯한 환상에 젖어들 것이다.


▲ ZFX-flying사의 무대 위로 날아오르는 기술이 포함된 뮤지컬 ‘피터팬’ 중. 출처(https://youtu.be/oFEXF7azAts)


‘오즈의 마법사’를 기발한 상상력으로 유쾌하게 뒤집은 뮤지컬 <위키드>의 하이라이트는 1막의 마지막 신이다. 주인공 엘파바는 ‘중력을 거슬러(Defying Gravity)’를 열창하며 날아오르는데, 이때 와이어 플라잉 기술이 사용됐다. 날개 달린 원숭이들이 무대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 뮤지컬 ‘위키드’에는 와이어를 달고 무대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날개달린 원숭이가 등장한다. 출처(https://youtu.be/OQPInY8Q4nk)


활동도가 높은 기술인만큼 뮤지컬 <아이다>, <캣츠> 등 굵직한 작품들에는 와이어 플라잉 기술이 빠지지 않는다. <아이다>에서는 일명 목욕탕 신에서 배우가 와이어를 타고 공중에 매달려 수영을 하는 모습에 와이어 플라잉이 사용됐고, <캣츠>에서는 주인공이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며 관객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마지막 대목에서 연출됐다. 지름 3m의 타이어에 올라탄 배우는 무려 와이어 플라잉 기술 덕에 무려 12m 높이까지 올라갔다.



‘힙한’ 무대에는 빠지지 않는다


와이어 플라잉 기술은 뮤지컬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로도 활용될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우리 전통인 가무악(歌舞樂)을 첨단 기술을 통해 신비하게 그려낸 무대에서도 와이어 플라잉은 제 몫을 한다. 2020년 서울에서 선보인 <궁중문화축전> 중 ‘경회루 판타지’ 공연에는 ‘심청전’을 주제로 한 무대가 펼쳐졌다. 극 중 심청은 깊은 바다 속 용궁에서 용왕의 환영을 받고 그곳에서 죽은 어머니 곽씨부인을 만나게 되는데, 곽씨부인이 딸을 바깥세상으로 돌려보내는데 와이어를 이용했다.


▲ 와이어 플라잉이 사용된 ‘경회루 판타지-궁중연화’ 무대 출처(https://youtu.be/XaThLKiojo0)


2019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세계를 겨냥해 선보인 블록버스터급 대형공연 <무사 MUSA : 불멸의 영웅들>에서는 한경아 감독이 총연출과 각색을 맡아 박씨부인전을 모티브로 주요 인물을 개발하였다. 이 무대에서는 고대 영웅 캐릭터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펼치기 위해 특수 제작한 U자형 무대를 가로지르며 다양한 플라잉 와이어 연기를 선보였다.


▲ '무사' 주요 장면 소개 영상. 3분 49초부터 와이어씬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6HVzD9f24Qk)



장르를 넘나드는 동화 같은 기술


와이어 플라잉은 때때로 장르를 넘나들기도 한다. 2019년 서울에서 선보인 <푸에르자 부르타(FUERZA BRUTA)>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벽, 천장 등 모든 공간을 무대로 활용한 공연이다. 이중 ‘꼬레도르(CORREDOR)’ 장면에서는 러닝머신에서 내린 남자가 계단을 오르며 와이어를 타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 와이어에 매달려 허공을 가로지르는 퍼포먼스가 하이라이트인 ‘푸에르자 부르타’의 한 장면. 출처(https://youtu.be/nLKpb8HbBs0)


2015년 서울에서 진행된 서울발레시어터 창단 20주년 기념 공연 ‘스페셜 갈라 & BEING 더 베스트’에서 와이어 플라잉 기술은 우아하고 위엄있는 몸짓을 드러낼 수 있는 기술로 재평가 되었다. 이날의 공연은 김인희 단장의 은퇴 공연이기도 했는데, 그녀는 와이어에 매달려 무대를 고속으로 가로지르며 관객들의 탄성과 박수를 이끌어냈다.


와이어 플라잉의 기술은 사람이 아닌 카메라를 통해서도 구현된다. 2020년 12월 방송과 온라인으로 전세계에 중계된 ‘2020 MAMA(Mnet ASIAN MUSIC AWARDS) 무대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확장현실(XR), 볼류메트릭(Volumetric) 등 각종 첨단 기술을 도입해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음악을 통해 전 세계 팬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새롭게 만나는 세상인 ‘뉴토피아’를 콘셉트로 한 무대인 만큼 제작진은 1,600평의 규모를 자랑하는 메인 스튜디오의 현장에 4축 와이어캠을 등장시켜 보는 즐거움을 더했다. 축구 중계 등에서나 보던 촬영 기법에 관객들은 박진감 넘치는 영상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처럼 와이어 플라잉 기술은 무대 내 사실감이 더욱 극적으로 표현되고 나아가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기회를 만들어낸다. 또 카메라와 결합해 3차원 영상 촬영에 응용할 수도 있고, 조명, 영상, 음향 등을 기반으로 하는 다른 무대 장치와 함께 ‘스마트 스테이지’라는 이름으로 통합 제어 시스템 안에서 자동화 구축도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하늘로 날고 싶었던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를 만들었다. 마법같은 순간을 가능케 한 와이어 플라잉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또 다른 이름의 비행인지도 모른다.



아트앤테크 플랫폼 운영진

자료협조·감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책혁신부한국생산기술연구원 휴먼융합연구부문

참고/

첨단 무대자동화 기술을 활용한 융합형 공연사례 연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7.12

추락속도 1.5배 빨라진 '오페라의 유령' 샹드리에, 연합뉴스, 2019. 12. 15 .

아이다를 이끈 숨은 공신들, 더뮤지컬, 안세영 기자, 2020.2.27

52세의 발레리나, 무대 위를 날다, 경향신문, 백승찬 기자, 2015.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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