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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과 유머, 예술x과학(science)에서 찾는 예술기술융합의 열쇠(이영준 기계비평가)

2020-12-31

예술과 과학(science)의 융합은 예술과 기술(technology)의 융합만큼이나 활발히 이루어져 온 영역입니다. 과학과 기술을 따로 생각하기 어렵듯이 예술과 과학, 예술과 기술의 융합 역시 서로 맞닿아 있을 것입니다. 예술과 과학의 융합을 선보이는 축제의 예술감독, 또, 기계 비평가로 활발히 활동해 온 이영준 기계비평가의 칼럼을 통해 많은 예술가들이 예술기술 융합을 위한 통찰을 얻을 수 있길 바랍니다./ 편집자 주

 
이영준 기계비평가 

예술과 과학이 만날 수 없는 이유를 몇가지 써보겠다. 우선, 예술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개별적인 존재다. 인간 일반도 원래는 모두 다 개별적인 존재다. 부모자식 간에도 다르고 한 배에서 나온 자식들도 다 다르다. 그런데 완전한 개별성을 가지고 살다보면 부담이 된다. 이 세상이 가하는 온갖 부담을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온전히 나 혼자 다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재해의 형태로 오건, 사람 끼리의 괴롭힘이나 갈등으로 오건, 사건사고건 혼자서 마주 대하기 부담스러우니까 인간은 집단을 만들어 공동의 힘으로 대처한다. 여기서 인간은 개별자를 떠나서 특수자가 된다. 학교, 직장, 조직, 동창회 등 온갖 테두리를 만들어 그 안에 같이 들어앉아 있으면 덜 무섭고 위험하니까 개별성을 벗어난 특수성, 공통성을 추구한다. 인간사회가 그런 식으로 발전해 왔다. 그런데 개별자를 떠나서 특수자가 되면서 인간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데, 그것은 개별자 자체, 혹은 영어의 individual의 다른 뜻인 개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남과 비슷한 존재가 되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래도 그 댓가로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성을 버리고 집단성을 추구한다. 이 세상의 직종 중 그런 특수성 혹은 집단성을 거부하는 것이 딱 하나 있으니 그게 예술가다. 예술가는 애초부터 근원적으로 개별적이었던 인간 존재의 근원을 보존하고 있는 희귀종이다. 



과학실험실은 절대로 공개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과학 바깥의 사람들은 과학의 본모습을 볼 기회가 절대로 없다. 그러면서 누가 노벨상을 탔다거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성과를 발표하는 것을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이러니 과학자가 아닌 사람은 과학에 접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거나 어렵다.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 2019 아티언스대전. 출처(https://youtu.be/LSQOTJfEak0)


예술과 과학이 만날 수 없는 첫번째 이유에서 두번째 이유가 파생한다. 예술과 과학 사이의 간극은 현실적인 것이다. 2019년 필자는 대전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아티언스 프로젝트를 맡아서 진행했는데 이것은 국내 최고의 과학도시 대전에 있는 유수한 연구소들과 예술가들을 연결해 줘서 협업하게 해주는 꿈의 프로젝트였다. 예술가들이 아무리 개별적으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나 한국기계연구원의 과힉기술자들과 협업하고 싶어서 접촉해도 절대로 불가능한데 대전문화재단이 나서서 해주니 이것은 꿈만 같은 일인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예술가와 과학자가 만나기 전부터 냉엄하게 다가왔다. 과학기술자의 하루 일과표 어디에도 '예술가와의 협업'이라는 항목은 없다. 물론 대전문화재단의 주선으로 예술가를 만나주기는 했으나 그는 예술작업이라는 것이 왜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도 없었고 자신의 업무영역과 일치하는 점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과학자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예술가가 생각하는 예술과는 한참 동떨어진 것이었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과학자가 간신히 시간을 내서 어려운 과학을 예술가에게 설명을 해줬으나 그것은 한참 다운그레이드 된 것이었다. 예술가도 마찬가지였다. 예술의 언어도 과학의 언어 만큼이나 난해하긴 마찬가진데 그걸 과학자에게 설명하려면 한참 다운그레이드 시켜야 한다. 결국 양자는 전문가 계급장을 떼고 서로를 초등학생 수준에서 만날 수 밖에 없었다. 그 상황에서 양자가 가진 장점들이 합해져서 고차원적인 작업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로의 영역을 알아가려는 노력 있어야 


이런 상황에서는 예술가 쪽에서 준비라도 많이 해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했다. 어느 예술가는 “나노기술 분야와 협업하고 싶다”고 했다. 이 세상에 나노기술 분야라는 것은 없다. 그 예술가는 나노기술 연구의 현황이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 한국기계연구원 홈페이지라도 보고 왔어야 했다. 홈페이지에서 <연구분야>를 클릭하면 <나노융합장비연구부>가 나오고 그 밑에 수많은 연구자들과 전문연구분야들이 나온다. 예를 들어 광학 기반 나노바이오 진단기술 (센서 소재 합성 / 패터닝 / 디바이스 패키징), 고품질 나노소재 설계 및 제조기술, 나노광학 메타구조 설계 및 제작기술, 나노 공정 및 나노 소자 응용, 나노구조 제작, NEMS 구동기 및 센서, 광간섭 및 기타 광학을 응용한 초정밀 형상 측정 분야, 마이크로 나노 크기의 미세 반도체 응용 패턴을 제작하는 공정 및 시스템 기술 등등 세분화된 분야들이 수도 없이 나열돼 있다. 눈이 빙빙 돌아갈 정도의 전문성이다. 당연한 얘기다. 한국기계연구원은 한국 최고의 전문연구자들이 모인 곳이니 말이다. 어찌어찌 해서 이 중에 하나를 골랐다 치자. 예를 들어 ‘광학 기반 나노바이오 진단기술 (센서 소재 합성 / 패터닝 / 디바이스 패키징)’을 골랐다고 치자. 오늘날의 과학기술이 얼마나 어려우냐면 논문검색 사이트에 들어가서 어느 분야든 논문 하나만 찾아보면 알 수 있다. 우선 온갖 난해한 전문용어와 수식에 기가 질릴 것이다. 운이 좋아서 이해심이 많고 친절한 연구원을 만나면 그가 자신의 연구분야에 대해서 되도록 친절하게 설명해줄 것이다. 한참을 다운그레이드 시켜서 말이다. 반면, 스스로 열심히 과학자들을 찾아다니고 많은 얘기를 나눠서 과학지식을 상당히 쌓은 예술가들도 있었으나 이번에는 그들의 작업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래서 2019년의 아티언스는 필자가 기대한 만큼의 성과는 내지 못하고 말았다. 


결국 예술과 과학이 만나려면 예술가 스스로 과학공부를 열심히 하고 과학자 스스로 예술공부를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술과 과학을 볼트와 너트 조이듯이 강제로 결합해서는 안 되고 용접하듯이 고열로 무리스럽게도 안 되고 윤활제와 접착제가 필요하다. 그것들의 이름은 상상력과 유머다. 상상력은 왜 필요 하냐면 예술과 과학에 숨어 있는 틈을 발견하는데 필요하다. 흔히 예술과 과학을 통합하려는 사람들은 양자의 강한 면을 최대한 강하게 하고 극대화하고 엄청 뾰족하고 무시무시하게 갈아서 맞부딛히게 하려고 한다. 상대방의 목에 창을 들이대고 있는 두 사람이 친해질 리가 없다. 기운을 빼고 허술한 면을 보여야 친해질 수 있다. 상상력은 예술과 과학의 허술한 면을 보아버리는 관찰력을 키워준다. 심오하고 난해하기만한 예술과 과학의 나이를 낮춰서 순진하게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상상력이다. 상상력으로 양자의 허술한 점을 찾아냈다 치자. 그 다음에는 그 둘을 적당히 붙여야 한다. 그런데 축구선수와 수영선수가 같이 할 수 있는 운동이 하나도 없지만 농담은 나눌 수 있듯이, 예술과 과학도 농담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그게 유머의 역할이다. 유머란 어설프게 웃기는 치기가 아니라 켜켜이 쌓여 있는 의미의 무게를 살짝 비틀어 다른 면을 보게 해주는 여유 혹은 재주의 감각이다.



어느 예술가의 유쾌하고 기발한 시도 

작가 안데스는 바로 그런 상상력과 유머를 통해 지질학이라는 어려운 과학에 다가간다. 남미를 여행하다가 안데스산을 보고 너무 좋아서 이름을 안데스로 바꿔 버린 그는 산이 생성된 과정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태고 적에 어떻게 저런 높은 산이 생기게 됐을까? 그것은 지질학의 영역이다. 지질학은 암석학, 광물학, 퇴적학, 고생물학, 광상학으로 나뉘는데 화학과 물리학이 바탕이라서 그것들을 잘 해야 지질학도 잘 할 수 있다. 대학에서 과학이 아니라 미술을 배운 안데스로서는 그런 과학들을 갑자기 잘 하는 재주는 없었다. 그 대신 그가 택한 방법은 자기만의 지질학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빵 만들기이다. 겹겹이 쌓인 안데스산의 지층들을 보고는 케익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후로는 산의 다양한 면모들이 빵으로 보이는 착시현상까지 경험하게 된다. "물, 오븐, 밀가루, 아스트로 빵을 만드는 베이킹의 원리를 알면 물, 불, 흙, 바람으로 구성된 지구의 형성과정을 알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베이킹과 지질학을 공부해 나갔다. 산이 어떤 근원적 힘에 의해 밀려 올라가는지를 공부하다가 지질학에서 물리학으로 수학으로 천문학으로 연구분야가 넓어지면서 결국 우주의 기원을 베이킹으로 추적하게 되었다. 케익은 퇴적하지만 빵은 우주처럼 팽창하는 것이므로!" (팩토리​2>홈페이지에서 발췌. http://factory483.org/exhibition/8145) 그래서 지질학적 베이커리가 탄생하게 된다.


 

▲ 위 사진 무지한 베이킹, 아래 사진 공갈본, 사진(안데스 제공)


여기서 안데스는 매우 중요한 과학의 절차를 따르는데, 그것은 자신의 생각을 가설로 세우고 그것을 실험을 통해 검증한다는 것이다. 베이킹의 원리를 통해 지구의 형성과정을 알 수 있다는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안데스는 일단 실제로 다양한 빵을 구웠다. 달걀우주론, 십자공갈론, 분자 샌드위치 등의 빵을 구워서 그 과정을 하나의 열역학적 과정이라 할 수 있는 지구의 형성과정과 비교했다. 지구의 내부에서는 오늘도 열과 압력의 오르내림, 부피의 팽창과 수축, 물성의 변화, 에너지 대사 등 일이 벌어지는데, 이는 빵을 굽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흡사하다. 안데스의 정성에 화답이라도 하듯 친절한 지질학자들과 연락이 닿았고 그 분들은 안데스의 지질학 관련 질문에 진지하게 답변해 줬다. 사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일반인의 질문이란 넌센스인 경우가 많다. 과학이란 체계적인 지식으로 차근차근 배워야 하는 것인데 일반인들은 대개 과학을 감각으로 대한다. “이 바위는 많이 딱딱합니다”라는 진술은 과학적인 진술이 아니다. 바위의 단단함을 과학적으로 나타내려면 ‘모스 굳기계’에 따라 표현해야 한다. 모스 굳기계란 주위에서 구할 수 있는 10가지 광물들을 서로 긁어 보아서 어느 쪽이 흠집이 나는지 보고 매긴 '상대적인' 굳기이다. 가장 연한 광물인 활석을 1로 매기고 2 석고, 3 방해석, 4 형석, 5 인회석, 6 정장석, 7 석영, 8 황옥, 9 강옥, 10 금강석의 순으로 매긴 것이다. 따라서 “이 바위는 석영에 긁어보니 흠집이 안 생긴 걸로 봐서는 굳기가 7로 보입니다”라고 해야 과학적인 표현이다. 안데스가 택한 방법은 항상 진지했던 그의 습관대로 지질학을 나름대로 교과서를 보며 공부하고, 학자들에게도 최대한 누가 되지 않게 체계적으로 질문하여 전문적인 지식을 쌓는 것이었다. 만일 지질학에 대한 유식함 정도를 숫자로 나타내어 1=완전 무식 ..... 10=박사급이라고 한다면 안데스는 그래도 5나 6은 될 것이다. 안데스는 2019년에 <지질학적 베이커리>라는 주제로 <팩토리​2>에서 렉처 퍼포먼스 형식의 전시를 열고는 2020년이 돼서는 지질학의 현장으로 달려들어 연구해야겠다고 느꼈다. 그래서 서울의 산들을 대상으로 지질학적 연구를 하기로 하고 1주일에 한번씩 네 개의 산을 골라 지질학적 현상들을 관찰하고 해석해 보는 산행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과학자가 예술가의 프로젝트에 참가해서 몇 번 얘기 하다 보니 과학이 예술에 오염되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마침내 지질학자도 빵맛에 취했는지 스스럼 없이 지질학적 현상을 빵만들기의 과정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는 아마도 과학과 예술이 자연스럽게 융합한 희귀한 사례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다음은 지질학자의 말씀. "지질학적 베이커리 프로젝트를 제안 받았을 때 처음에는 생뚱 맞았습니다. 빵과 지질학이 무슨 상관인데. 퇴적암의 경우는 암석을 만드는 지질학적 주요인이 물이거든요, 화성암의 경우는 온도고. 발효는 지질학적 현상과 쉽게 연결시키기는 어렵지만 물과 불은 연결시킬 수 있어서 상당히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효모의 온도, 압력에 따라 빵의 모양이 달라지는데 돌도 온도와 압력에 의해 많은 변화를 겪습니다. 화성암은 내부로부터 여러 가지 결정화가 이루어지면서 성분들이 미묘한 차이에 의해서 이동을 하거든요. 여러 가지 생성과정을 거치면서 광물들이 여러 가지 모양을 가지게 됩니다. 빵의 경우 안은 부드럽게 바깥은 딱딱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그 경우 안에서 빵의 성분들이 이동하거든요. 돌과 빵이 화학적으로, 생성학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아요" 작가가 제안하고 지질학자가 확인해 줬으니 지질학과 빵만들기의 연관짓기는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안데스의 상상력과 유머력은 이제 우주로 향하고 있다. 천문학자는 어떻게 빵만들기와 우주의 생성과정을 연관지어 설명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 이영준
편집/아트앤테크 플랫폼 운영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식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영준 기계비평가. 계원예대 융합예술과 교수. 기계비평이라는 낯선 장르를 개척한 인문학자. 재봉틀부터 첨단 제트엔진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구조와 재료로 돼 있으면서 뭔가 작동하는 물건에는 다 관심이 많다. 원래 사진비평가였다가 호기심을 스스로 설명해보고자 기계비평을 업으로 삼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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