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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기술 융합이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생태미학예술연구소 소장 유현주)

202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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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현상이 전세계적인 이슈로 확장됨에 따라 예술분야에서도 크고 작은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학적 접근과 해법이 주요하게 논의 되었던 날들을 지나, 예술계에 있어서도 기후문제는 이제 주요한 관심사로 조명되고 있습니다. 유현주 생태미학예술연구소 소장의 칼럼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 제시하는 새로운 관점을 많은 분들과 나눌 수 있길 바랍니다 / 편집자 주


 

유현주 / 생태미학예술연구소 소장


인류세 시대, 어느 때보다 긴박해진 기후변화 문제는 동시대 예술에서 커다란 이슈가 되고 있다. 그동안 기후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기술을 사용하는 예술들이 주로 자연생태 즉 자연파괴 현상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적 방식이거나 공상과학적 디스토피아를 그려내는 작업이 많았다. 반면, 21세기 들어서는 점차 과학이나 다른 학문 분야와의 협업이나 융합작업을 하는 학제적 시도들이 다양해지는 현상이 눈에 띈다. 예를 들면, 빛 공기 물 등을 재료로 사용하면서 유사-과학적 작업을 하는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바이오아트를 이용해 새로운 채식 문화를 상상하는 수잔 앵커(Suzanne Anker), 예술가가 만든 특허 받은 도구로 오염된 다양한 장소에서 시뮬레이션을 수행하는 다이아크론(Diakron), 물리학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비가시적인 물질이 환경과 상호작용함을 드러내는 김윤철의 작업은 과학과 잘 구분되지 않을 정도이다.

이러한 초 학제적 융합 기술의 작업은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은 리투아니아 국가관의 전시 <태양과 바다(Sun & Sea)>가 환경재앙을 경고하면서 노래와 퍼포먼스를 통해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린 것과는 다른 차원의 작업으로 기후변화의 주제에 접근한다. 흥미로운 점은 기후문제에 관한 관심이 깊어질수록 예술가들이 점점 초 학제적 작업을 시도하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기후문제에 대한 생태학적 정보들과 데이터들을 얻는 과정에서 과학적 지식과 기술 협력을 얻어야 할 때가 많고, 결과적으로 과학자들이나 예술 바깥 분야의 기술을 동원하여 초 학제적 혹은 융·복합적 예술을 창안하는 경우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몇 년 전 기후변화대응 화학 예술특별전을 대전의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한국화학연구원의 초대로 기획을 한 적이 있다. 이 전시의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예술과 기술(과학)융합이 기후변화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2017123일부터 531일까지 열린 전시 <화성에서 온 메시지>는 한국화학연구원에 신설된 예술공간인 스페이스 C(#)’에서 펼쳐졌다. 이 전시는 화학과 예술이 만난 특별한 기획 전시였다. 화학연구원에서 주관하고 후원하여 필자가 기획하였고, 화학과 예술의 융합 매체를 사용하여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예술가들의 상상을 끌어내고자 하였다. <화성에서 온 메시지>를 기획하면서 필자가 끌어들인 SF적 상상은 영화 마션(The Martian)’에서 빌려온 것이다. 인류가 먼 미래에 화성에 이주해야 한다거나 화성을 지구처럼 개척하여 새로운 식민 행성을 만들자는 제안이 전시의 의도는 아니다. 전시의 초점은 가상으로 예술가들이 화성에 가서 지구의 기후변화 문제를 생각해 보면서 문제의 대안을 찾는 것이었다.


▲ 기후변화 대응 화학예술특별전 <화성에서 온 메시지>


현재 많은 기후변화 보고서들이 언급하는 것처럼,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한 지역에서 십오 분마다 하나씩 생물 종들이 사라지고, 화석연료와 플라스틱, 알루미늄, 콘크리트와 같은 새로운 기술화석이 원인이 되어 지질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토대로 전시는 기후변화의 원인 중 하나인 이산화탄소 배출에 비판적으로 접근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획자로서 필자는 첫째, 화학의 기본 원소인 탄소가 갖는 물질과 에너지의 관계를 예술로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둘째 기후변화에 대한 작가들의 기술적 상상력을 끌어낼 수 있도록 과학지식을 위한 워크숍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그 고민을 담아 전시는 <탄소아트프로젝트>란 또 하나의 부제를 갖게 되었다


전시가 열리기 전 몇 달간, 4인의 외국 작가와 4인의 한국 작가로 구성된 총 8인의 작가들, 아비바 라마니(Aviva Rahmani, 미국), 셔일 사프렌(Cheryl Safren, 미국), 마르쿠츠 베른리(Markuz Wernli, 스위스), 사라 다허((Sarah Daher, 브라질), 길현, 안가영, 김지수, 박형준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기 위해 세 차례의 워크숍에 참여하였다. 탄소란 무엇인가’ ‘화성에서 본 지구’ ‘화성에서 온 메시지란 주제로 과학자들의 강연과 토론 등에 참여하도록 함으로써(당시 스카이프를 통해 참여) 상상의 연료에 불을 지폈다. 워크숍을 통해 화학연구원의 과학자들과 예술가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과학자는 이산화탄소를 에너지화하는 과학적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애쓴다면, 예술가는 과학과의 융합적인 사유로부터 끌어올린 예술 고유의 언어로 지구의 고통을 표현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 미국의 생태과학예술가 아비바 라마니의 < The Blued Trees Symphony > 출처(한국화학연구원 페이스북)


참여한 작가 중에 아비바 라마니는 1970년대 앨런 캐프로, 주디 시카고, 수잔 레이시 등의 예술가들과 협업하는 등 퍼포먼스 예술가로 명성을 날렸고 페미니스트 이슈에도 관심을 가진 작가이다. 라마니의 작품 <Blued Trees Symphony>2015년부터 미국에서 시작한 작업의 연장이었다. 라마니는 뉴욕의 픽스킬(Peekskill) 지역의 산에 매설될 예정인 송유관 설치를 막기 위해서, 산의 나무들에 무독성의 푸른색 물감을 칠하고 참가자들과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의 저작권을 주장했는데, 이는 그곳의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할 뿐 아니라 화석연료의 사용에 대한 저항을 보여준 행동주의 예술실천이었다. <화성에서 온 메시지>에서는 이전에 했던 작업의 연장으로, 작가가 녹음한 새소리 및 자연의 음을 살린 사운드를 들려주면서, 벽에는 해수면이 상승한 미래의 지도를 붙였고 그 앞 쪽에는 천정에 무독성의 파란색 물감을 칠한 나무들을 매달아 지구에 그려진 오선지의 음표를 상상하게 했다. 그 지도는 기후변화로 지구의 해수면이 상승한 지역을 지도화한 것이다.

라마니가 지금처럼 생태예술가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90년대 들어 라마니가 비날하벤(the Island of Vinalhaven) 섬으로 이주하면서, 오염된 그 지역의 생태 복원을 위해 미적 행동주의로서의 트리거 포인트에 기반을 둔 과학적 협업작업을 하면서부터이다. 의학적으로는 통점으로 해석되는 라마니의 트리거 포인트(Trigger Point)”이론은 동양의 침술(acupuncture)과 그녀의 예술프로젝트 중 하나인 고스트 넷츠(Ghost Nets)’ 그리고 지리정보시스템과학의 약호인 GISc(Geographical Information System science)와 연결되는 개념이다. 실제 지리학을 적용해 작가가 만든 지도에서 파란색 점으로 표시된 지역들은 레퓨지아(Refugia, 과거에는 광범위하게 분포했던 유기체가 소규모의 제한된 집단으로 생존하는 지역)를 가리키는데, 이 점들은 미래 지구의 유일한 생물 종들이 생존할 주요한 거점이기도 하다


스위스 작가 마르쿠츠 베른리와 브라질 출신의 네덜란드 디자이너 사라 다허는 한 팀으로 전시에 참여하였다. 두 작가 모두 디자인을 전공한 경력과 풍부한 학제적 경험을 토대로 한 작품 <Aquaforming Mars!>는 실제 실험에 가까운 작업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화성과 지구간의 연결을 고민한 이 작가들은 인간의 소변을 사용해 식물을 자라게 하는 생화학적(Bio chemical) 실험을 통해 물이 없는 화성에서도 생존하는 방식을 구상한다. 그들의 전시를 도왔던 공동실험자와 함께 전시 이전부터 미리 실험을 전개하였고, 그 결과 전시장에서는 민들레와 허브가 인뇨에 의해 자라날 수 있었다. 이것은 기후변화가 악화할 경우의 시나리오로 인간과 자연이 살아남기 위한 바이오 화학적 예술실험이었다.

한편, 박형준 작가의 <호흡, 지구와 몸>은 나의 신체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와 북극에서 녹아내리는 거대한 빙하와의 관계성을 생각하게 한다. 기후변화는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님을 상기시키는 그의 작업에서 흥미롭게도 다시 이산화탄소가 에너지원으로 작동하는 기구가 될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작가는 지구본 모양의 설치물에 관객이 직접 풍선을 불어넣음으로써 우리의 호흡(이산화탄소)을 시각화한다. 작가는 지구본 옆에 설치된 이산화탄소 분리막 장치와 비디오를 설치하여 이산화탄소를 분리 정제함으로써 유용한 자원으로 만들고자 하는 화학연구원의 탄소를 에너지로 전환하는 기술을 소개한다. 이 비디오는 마치 게임 같은 그래픽 영상으로 이산화탄소만 걸러내는 이미지를 시각화함으로써 관객의 이해를 돕고 탄소의 유용한 에너지 전환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화학연구원 김정훈 박사연구팀의 자문을 구하였다.



▲ 김윤철의 <아르고스(Argos)> 출처(김윤철 작가 제공)


지금까지 소개한 과학 융복합 예술의 사례들을 보았을 때, 우리는 예술이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기후변화문제를 단순히 정서적 차원에서만 호소하는 것이 아닌, 훨씬 다층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들을 제기하는 데 효과적임을 알 수 있다. 예컨대 김윤철의 <아르고스(Argos)>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들의 작용 및 주변 환경에 반응하여 변화하는 과정들을 섬세하게 지각하게 하듯이, 기술적인 도움으로 예술은 전통 매체에서 할 수 없었던 실제의 모습들을 시각화 내지 촉각화 하는 등의 공감각적 센서를 작동시킨다. 이는 단순히 기술 매체만으로 그려내기 어려우며 예술가의 상상만으로도 구현되지 못한다.

전준호와 문경원이 카셀 도큐멘타(2012)에서 선보인 <세상의 저편, News from Nowhere>은 과거와 미래의 지구를 비교하고 미래의 기술이 인류를 위해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상상하게 한다. 기후변화의 문제에 정답은 없지만, 실제 일어나는 징후들에 대하여 막연한 상상이나 가설만이 아니라, 과학적 데이터와 VR, AR, AI, 메타버스 등의 기술은 가상의 세계로 관객을 직접 인도하며 그들 스스로가 미적 경험을 통해 판단하도록 한다. 예술가는 해결사는 아니지만, 기술을 통해 실재계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유사-과학자이자 예언자가 되는 것이다. 인류가 달에 착륙하기 전에 만화가가 먼저 달 착륙을 상상했듯이 말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융복합예술페스티벌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Nothing makes itself>전시는 기술적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21세기 융합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이 전시에서 필자는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 기후변화를 다각적으로 모색하는 연결망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본다. 온라인으로 이루어진 많은 전시와 퍼포먼스 그리고 포럼들이 만드는 디지털 지구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이는 기후변화에 대한 다양한 논제와 프로토콜을 만드는 계기를 가져올 것이다. 즉 기후변화를 둘러싼 긍정과 부정의 담론 혹은 행동주의와 그 반대의 정적인 작업이든 간에, 기술 융합적 예술이 열어주는 소통과 연결망은 증식되고 확장될 것이다.


▲ 융복합예술페스티벌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Nothing makes itself>

출처(https://youtu.be/zgIGiKwVSmc)


필자는 예술과 기술 융합이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라는 주제의 원고를 쓰면서 과연 새로운 관점이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융합이란 단어 자체가 재발견될 단어일지 모른다.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우리는 결코 근대인인 적이 없다에서 근대화냐 생태화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화두를 던진다. 이미 우리는 하이브리드의 세계 속에서 살아왔기에 근대(modernity)라는 구분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샤먼과 과학이 공존하고 서구와 아시아, 여성과 남성의 위계질서는 근대라는 말을 서구 중심적으로 사용한 이들의 발명품일 따름이라는 것, 즉 모든 위계질서나 이분법을 넘어서, 라투르는 융합의 사고를 선택한다. 생태의 문제도 과학, 정치, 예술 등이 서로 얽혀있는 채로 현재의 사안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내놓은 이론이 ANT(Actor Network Theory)이론이다.

라투르가 말하는 ANT이론은 모두가 행위자로서 얽힌 연결망 속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학문 각각의 경계선만 지키기보다는 혼종의 속성을 가진 세계에서 기후문제 역시 정치적사회적예술적 즉 다차원적으로 풀어나가야 하는 시대에 그러한 연결망을 잘 이어주고 보여주기에 적합한 예술이 있다면, 바로 기술과 융합된 예술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술과 기술 융합이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란 혼종된 세계의 기후변화 문제를 각 전문분야의 대표자들, 문제를 일으킨 자연 혹은 인공의 물질들, 피해의 당사자들과 함께 연결망을 이루어 풀어나가기 위한 수평적인 연대와 공감에서 취해지는 비전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하이브리드와 융복합의 시대, 아도르노가 말했듯이, 예술작품의 주어는 가 아니라 우리즉 집단적 주체라는 문장이 새롭게 환기된다


글/ 유현주

편집/ 아트앤테크 플랫폼 운영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식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생태미학예술연구소 소장, 홍익대 미학과 박사졸업, 2017년 한국화학연구원이 주최한 <기후변화대응화학예술특별전: 화성에서 온 메시지>전 감독, 2020년 제주문화유산측전의 아트프로젝트 <불의 기억>감독 역임2021 아르코미술관의 융복합예술페스티벌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전과 연계한 온라인국제심포지엄의 모더레이터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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