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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횡단하는 물질들의 세계> 융복합 예술 페스티벌 리뷰

202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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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창궐하기 전 출장으로 먼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낯선 이국의 섬 나라에서 밤을 맞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열대 야자수 잎 사이로 폭포수 같이 별이 쏟아져 내렸다. 신이 있어도, 신이 없어도, 지금 이곳에 서 있는 나로부터 아주 먼 시간을 날아와 나에게 도달했을 저 빛들 사이에 셀 수 없는 시간과, 공간과, 만물의 존재함에 대한 감사를 새삼 깨달을 수밖에 없게 하는 그런 밤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흐른다. 


지난 2021년 9월 17일부터 12월 12일까지 아르코미술관 내외부와, 아르코아카이브라운지, 스페이스 필룩스와 온라인 플랫폼에서 진행된 아르코 융복합 예술 페스티벌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는 그 제목부터 몇 년 전 망망대해 위 별이 가득한 밤을 떠올리게 했다. 미국의 문학자이자 생태문화이론가인 스테이시 엘러이모의 ‘횡단-신체성’에 이론적 기반을 둔 이 페스티벌은 환경과 기술 사이를 대립적 틀로 바라보았던 지난 세기의 시선에서 벗어나 기술을 필수불가결한, 그리고 자연과 인간과 기술 사이를 직조하듯 얽혀 있는 관계들을 다룬다. 이러한 관계망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너머 세계 곳곳에서 그 이면과 그들이 추가하는 예술적 실천과 삶의 가치들을 통해 다시 투영되며, 부분과 부분이 촘촘한 신경망처럼 연결되어 망을 이루고, 분리되어 있으나, 분리될 수 없는, 다르나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다룬다.



 아르코 융복합 예술 페스티벌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  출처(아르코)


그 중에서 단연 이 전시의 주제를 관통하는 작품은 우르술라 비에만(Ursula Biemann, b.1955)의 <어쿠스틱오션(Acoustic Ocean)> 이다. 영상의 주인공은 노르웨이 북부에 위치한 로포텐 제도에서 해양 생태계 속 생물종간의 관계와 해저 세계를 탐구하는 해저탐험가다. 그녀는 해안 곳곳에 소리를 수집하는 기계와 마이크를 설치해서 소통할 수 없었던 생물과의 교감을 시도한다. 바다의 깊은 곳에서 채집된 소리를 변화하는 기후 속에서 사라지는 종들이 남기는 마지막 말이다. 나의 세계가 하나의 단일한 세계가 아님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존재함으로 연결되어 있는 생물들의 또 다른 세계를 소리로, 눈으로, 상상으로 조우하게 한다.



 우르술라 비에만(Ursula Biemann, b.1955)의 <어쿠스틱오션(Acoustic Ocean)>  출처(nothingmakesitself.art)


이 세미-픽션 다큐멘터리에서 해저탐험가를 연기하는 주인공은 노르웨이와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과 러시아 서북부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인 사미족 출신으로 과거 빙하기 때 대서양 해안가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주한 민족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스페인 서부에 살고 있는 바스크인이나 바바리아인과 비슷한 DNA를 가진 것으로 밝혀진 민족은 그들의 문화와 경제, 삶 전체를 순록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기후 변화로 인하여 혹한의 땅인 북유럽에 비가 많이 내리고, 눈 위에 얼음이 끼면서 순록이 이끼와 같은 먹이를 먹을 수 없게 되자 이들의 삶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민족적 배경을 가진 주인공을 통해 자연-인간-세계로 연결되는 비에만 작품의 주제의식은 더욱 공고해진다. 


김아영 작가는 역사와 신화, 상상과 SF적인 요소들을 뒤섞어 독특한 미장센으로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번에 아르코미술관의 커미션 작업으로 부산시립미술관과 공동제작하여 제작된 <수리솔: POVCR>은 작가의 다양한 미적인 실험들과 독특한 스토리텔링의 요소들이 VR이라는 매체로 확장하여 선보인다. 작품의 시작에서 <수리솔: POVCR>은 관람객을 미래의 어느 지점으로 이동시킨다. 자리에 앉아 헤드셋을 끼면 약 20여분간 바닷속 실험실로 순간 이동한다. 전세계적인 전염병이 창궐한 이후 바다 속 다시마 등을 양식하여 만들어낸 바이오 연료를 주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가까운 미래가 배경이다. 



 김아영의 <수리솔: POVCR>  출처(nothingmakesitself.art)


관람자가 행위의 주체가 되어 연구소의 AI와 대화하며 탄소배출권, 에너지의 지속 가능성, 이상 기후와 같은 문제들을 파악한다. 마치 게임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혹은 다른 차원으로 이행한 영화 속 주인공처럼 VR 속 세계를 탐방하며 작가가 만들어내는 상상의 세계를 유영하는 경험은 황홀하다. 바다 속 연구실을 탐험하는 경험은 높은 기술적 완성도로 인하여 가상과 실재를 착각하게 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몰입감이 관람을 지속하는 데는 방해의 요소가 되기도 하였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가도 작은 화면 속 이동으로 인하여 어지럼증이 유발되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수잔 앵커의 작업은 예술과 기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가장 이상적인 접점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온라인에서 소개된 앵커의 <원격 감지(Remote Sensing)>은 NASA에서 사용하는 지도제작기술을 활용하여 전쟁이나 오염 등의 위험으로 인하여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지역의 데이터를 아 수집하여 사물로 변화시키는 디지털 조각의 일종이다. 이 변환된 오브제는 해당 지역을 표상하는 일종의 마이크로 풍경화이며, 가상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가 이 가상의 풍경을 보여주는 형식은 17세기 네덜란드의 바니타스 정물화를 연상시킨다.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과 종교 전쟁 등으로 인한 사회상과 상인 세력의 부흥으로 인한 물질적 가치관이 팽배하던 시기의 충돌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정물화의 주제를 현재에 불러옴으로 인류의 반복되는 역사와 예술이 담아내고 바라보아야 하는 지점을 드러낸다. 또한 디지털 정보, 미 우주항공국에서 사용하는 기술, 3D 프린팅을 재료로 만들어내는 오브제는 가장 예술가가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가장 모범적인 답안을 제시한다. 



▲ 〈원격 감지〉에 대하여: 수잔 앵커와 미술사학자 테레세 리히텐슈타인의 대담

출처(https://nothingmakesitself.art/Suzanne-Anker)


노르웨이에서, 한국에서, 미국에서 그리고 여러 다른 곳에서 이어진 이러한 부분적인 세계의 집합은 부분들로 하여금 삼라만상의 그물에 놓인 생명의 궤적을 추적하게 한다. 이러한 것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기술의 진보다. 기술의 발전으로 바다의 깊은 곳에서 들리는 소리를 추적하고, 변화하는 지구의 속살을 발견한다. VR로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이자 근미래의 풍경은, 사실 가장 현실적인 세계에서 우리가 미처 보고 싶어하지 않은 지금이다. 위에서 소개한 세 작품 이외에도 이번 융복합 예술 페스티벌에서는 총 35명(팀)의 작가와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3D프린팅, 로봇 기술, 영상, 데이터 시각화, 사운드 인터랙션, 웹 기반 등 다양한 기술과 생물학, 지리학, 빙하학 등 다학제 이론을 함의한 50여 점의 작업이 소개되었다. 전시장에서, 온라인에서, 혹은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서 만나는 그들의 작업은 현재 우리가 다루는 중요한 고민의 지점을 관통한다. 


온도가 오른다. 빙하가 녹는다. 해수면이 상승한다. 비가 오지 않던 곳에 비가 오고, 비가 오지 않던 곳에는 더욱 오랜 가뭄이 계속된다. 불이 타오르고, 재로 가득 찬 하늘은 바람을 타고 지구의 반대편 다른 끝까지 날라간다. 지하수가 사라지고, 땅이 가라앉고, 바닷물이 산성화된다. 매릴린 스트랜선은 이미 30여년 전 그의 저서『부분적인 연결들』(1991)에서 인간중심주의 적인 전체론적 사고에 대한 한계를 지적하고,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세계를 포괄하는 것은 애초에 실현불가능한 것임을 이야기한 바 있다. 스트래선은 그 대안으로 무한하고 광대한 우주의 시간에서 인류의 소임을 다하기 위한 방법으로 무수한 세계들이 연결하여 만들어내는 관계성에 주목한다. 작은 편린에서 편린으로, 우리의 할머니의 할머니에서 손자의 손자로 이어지는 관계의 그물망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나 해러웨이는 2017년 『트러블과 함께하기』속에서 지구라는 행성에서 다양한 종의 생물들과 동맹과 연대하여 공생하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최근 수년간 일어난 기후변화나 팬데믹과 같은 상황들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보지 않고 듣지 않았을 뿐이다.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 떠올려본다. 멀게 만 느껴졌던 전 세계에 흩어진 우리와 ‘공생하는 것’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2년 전 그 섬으로 되돌아간다. 야자수 아래 별이 내리던 그 섬에는 얼마전 유래 없이 큰 눈이 내렸다. 이 광대한 삼라만상에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지금이다. 


글/ 박경린
편집/ 아트앤테크 플랫폼 운영진


전시를 만들고 책을 만든다. 전시공간 '리플랫' 디렉터로 활동하며 평면 예술을 기반으로 한 시각예술가들의 도전을 응원한다. 

현대미술, 공예, 예술과 기술, 그리고 다양한 산업과의 접점을 찾아 전시를 만들며 미술을 통해 미술을 넘어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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