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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문제를 정의하고 좋은 질문을 만드는 사람(이진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202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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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이진준은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영상, 소리, 퍼포먼스, AI 기술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비물질적인 재료를 활용한 작업을 주로 해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매체보다 주제인 듯하다.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이십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꾸준히 시간의 비선형성과 경계 공간에 관한 작품을 연구해왔다. 영국왕립예술대학원에서 빛과 소리, 영상 등 비물질적인 조각 작품 연구로 졸업 최고작품상을 수상하고, 2021년에는 인간이 탄생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AI 기술로 생성한 <Empty Garden〉으로 영국 블룸버그 뉴 컨템포러리즈(Bloomberg New Contemporaries)에 선정되었다. 그는 이제 한국첨단과학의 산실 카이스트에서 학자로서 기술과 예술의 담론을 만들어 나가려 한다. 매체를 넘나들며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는 지금 예술과 기술 융합의 최전선에 서 있다. 



▲ <Your Stage>, 2008. (작품 일부), 출처(이진준)


 Q. 오랜 기간 국내에서 미디어아트 작가로 활동하고 최근 카이스트 교수로 부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트앤테크 플랫폼 독자 여러분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진준입니다. 주로 뉴미디어아트의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대미술가, 예술가 학자(artist scholar)입니다.

 Q다년간 국내에서 창작 활동을 진행하시다가 영국에서 작업과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미디어아트,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분야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창작 방식 등, 국내와 해외는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지점에서 차이가 있나요?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경우, 국내는 좀 더 기술적인 점에 치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해외는 개념적인 틀을 중시하고요. 

 Q. 창작자로 활발히 활동하다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에서 돌아와 한국에서 잠깐 머물렀습니다. 당시 영국왕립조각원(Royal Society of Sculptors)의 추천을 받았습니다. 특별예술가비자를 받고 다음 해 영국으로 건너가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고 느림의 밀도가 있는 영국이 마음에 들었고, 자연스럽게 영국왕립예술대학원(RCA)에서 인터렉티브 디자인과 무빙 이미지를 공부했고, 옥스퍼드대학에서 순수미술철학박사(DPhil)를 받게 되었습니다.

 Q. 2000년대 미술계에서 통용되던 미디어아트의 흐름과, ‘아트앤테크’ 혹은 ‘예술기술융합’으로 불리는 지금의 흐름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가령, 창작 방식, 작품 주제 등이 비슷한 맥락을 가지면서도 다른 것 같습니다. 

예전의 미디어아티스트 중에는 몇 가지 비디오 편집기술을 반복하며 작품을 만들어내는, 자기 복제형 비디오 아티스트가 많았습니다. 이십 년이 흐른 지금은 기술적으로 새로운 시도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술적인 효과에 치중하면서 관객을 현혹하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유행에 편승해서 미디어아트를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이야기가 공허하게 들립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요즘 조각이나 회화를 다시 보고 있습니다. 

 Q.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예술가가 지휘자, 연출가의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하였습니다(2021년 제2회 아르코 현장 대토론회).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지휘자와 연출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보다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작가는 최종적으로 이루어 낸 결과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입니다. 상상하는 것과 실제로 만드는 것은 차이가 큽니다. 특히, 미디어아트는 공연성을 지니고 있어 그 과정과 결과까지 모든 것을 세심하게 연출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창작의 고통과 긴장이 반복되는데, 이런 일상을 제어하면서 날 선 감각을 유지하는 것도 예술가의 능력입니다. 


▲ <They>, 2010, 출처(이진준)


 Q. 인상 깊게 본, 혹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창작 사례나 창작 방식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영국의 포렌식 아키텍처(Forensic Architecture)1 의 공동창작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또한, 독일의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2 처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연구 중심의 예술가 학자들의 활동을 지켜보면 좋겠습니다. 

1. 런던대학교를 거점으로 모인 여러 학문 분야 간 연구 그룹. 건축과 기술을 이용해 국가 폭력과 인권 침해를 조사한다.

2. 독일 출생의 무빙 이미지 아티스트. 대리 정치를 위한 연구 센터(Research Center for Proxy Politics)를 설립했으며,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뉴미디어 아트를 강의하고 있다.

 Q.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예술가들은 기대와 동시에 우려를 하기도 합니다. 일부는 기술을 새로운 매체로 받아들이지만, 일부는 거부감을 갖기도 합니다. 예술가의 입장에서 예술과 기술의 융합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혹은 예술가로서 유념해야 할 지점들이 있을까요?

우리는 ‘예술’에 대해 더욱 본질적인 질문을 해야 합니다. 지금은 장르의 시대가 아니라 융합의 시대입니다. 양식의 감옥에 갇히지 않길 바랍니다. 저는 어설픈 미디어 작업들을 보면서 거부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매체의 효과에 매몰되어 예술의 본질적인 속성을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Q. 많은 창작자가 기술자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네트워킹은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달려 있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 혹은 참고할 만한 사례를 통해 네트워킹을 형성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결국 어떤 면에서는 기술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면, 기술자들과 소통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네트워크를 만들기 전에, 왜 이 기술을 사용할 필요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하길 바랍니다.

 Q. 많은 기관을 통해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지원하는 사업이 실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기술과 예술 중심 사업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술적인 완성도를 위해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원사업만 바라보는 아마추어 작가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미디어 유저와 미디어 아티스트를 구별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창작지원도 좋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디어아트 비평 활동을 정책적으로 지원하여 인문학적 담론을 형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기술과 예술 중심 사업뿐만 아니라 예술 전반에 다양한 지원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Q. 철학도 전공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결국 모든 것은 철학으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현대미술은 오래 전부터 인문학, 사회학 그리고 과학, 공학 등의 영역으로 넘어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 공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셈이죠. 지금은 예술가 학자들이 현대미술의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 

 Q. 최근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의 전임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교육자로서도 앞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실 텐데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연구와 교육을 진행하실 건가요?

개인적으로 예술을 가르칠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카이스트는 연구 중심의 대학입니다. 학생들이 창작 연구의 과정을 옆에서 봄으로써 각자 어떤 씨앗을 품기를 기대합니다. 카이스트는 새로운 예술이 탄생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예술을 가르칠 수는 없지만, 배울 수는 있습니다.

 Q. 작가로서는 앞으로 어떠한 창작 작업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학문적으로는 AI 전공의 연구자들과 함께 새로운 창작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작품, 강의, 그리고 여타 저술이나 해외 저널의 논문 등을 통해 연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아무도 안 가본 길을 계속 걸어가려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보다는 제가 만족할 만큼 하는 것이 늘 중요했습니다. 요즘은 몸을 사용한 조각을 즐기고 있습니다. 과거를 다시 읽으며 미래와 대화하는 중입니다. 작년에는 물리학을 전공한 교수님과 함께 실험영화를 한 편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음악, 무용, 문학, 미술의 총체적 경험(TX, Total Experience)을 기획하는 퓨처 오페라(future opera)를 연출하고자 합니다. 

 Q. 끝으로 아트앤테크 플랫폼을 찾는 예술가, 기술자, 관객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예술가는 답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좋은 질문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뉴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작품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경계공간 체험(liminoid experience)을 탐구한다. 2007년 아르코 미술관에서 개인전 《Art Theatre-역할놀이》를 시작으로 다수의 개인전과 기획전을 열었다. 2010년에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 설치된 12m 높이의 공공 미디어 조각 〈They〉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Empty Garden〉으로 영국 블룸버그 뉴 컨템포러리즈 2021(Bloomberg New Contemporaries 2021)에 선정됐다. 현재는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로서 ‘TX lab’을 설립하고 AI, NFT 등의 기술을 이용한 예술과 디자인, 건축, XR 퍼포먼스 등을 연구하고 있다. 카이스트 미술관의 초대 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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