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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기술융합지원 선정작 리뷰] 무한표현도구를 쥔 창작자는 어떤 세계를 직조하는가 - 박재훈 <실시간 연옥>

202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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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대찬 앨리스온 편집장 


익숙하나 기묘한. 박재훈의 개인전 , 《실시간 연옥》의 전시 제목을 보며 든 첫 생각의 물꼬였다. ‘실시간(Realtime)’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꽤 친숙하다. 물리적으로 우리의 삶은 늘 실시간이기에 일상에서 그 의미가 무화되는 이 단어는 컴퓨팅의 영역에서 의미가 명확해진다. 컴퓨팅 영역에서의 실시간은 컴퓨터의 사용자가 요구하는 만큼 신속하게 응답해야 하는 애플리케이션 관련 시간 단위이다. 우리는 이 단어를 영상 관련 작업에서 자주 발견한다. 실시간 렌더링, 실시간 프리뷰와 같은 내 명령과 의도가 별도의 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고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때를 지칭한다. 즉 실시간은 바로 이 순간, 즉시 응답하며 반응을 보이는 기능적 언어이다. 


‘연옥’이라는 단어 역시 익숙하다. 그 어원과 사용영역을 따져보면 익숙하지 않아야 할 단어라서 기묘하다. 그런데도 여러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이용된 만큼 현재의 어떠한 상황을 묘사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매력적인 개념이라는 이야기이다. 연옥은 어떤 종교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이 장소는 천국과 지옥의 중간 지점이다. 천국에 갈 수 없는 죄를 지은 자들이 지옥과 같은 고통을 감내하며 정화 받아 천국에 진입하기를 기다리는 유보의 장소이다. 이곳은 사이이고 중간지대이며 유예의 공간이다. 믿음에 기반한 종교의 영역이고 희망과 고통이 공존한다. 작가는 실시간의 이 중간권역으로 무엇을 드러내려 하는가. 



▲ <실시간 연옥>,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입구에서 맨 처음 맞이하는 것은 연기를 내뿜고 있는 풍차의 모습이다. 제목을 보기 전까지 이 장면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풍차 내부에서 무언가 연소하며 발생하는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풍차는 회전하고 있기에 바람이 존재함을 알 수 있으며 그 바람 방향은 구름의 이동 방향과 검은 연기의 방향이 일치함을 통해 타당한 상황임을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작품의 제목은 이 타당함을 뒤엎는다. 〈과열된 풍차〉. 풍차가 과열되었을 때 이 정도의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아니, 이 정도로 과열될 수 있는가. 심지어 이 상황은 동적이지만 고정되어 있다. 지극히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상황이며 그 끝을 앞두었지만 영원히 지속되고 있다. 동적이지만 고정된, 풍부하나 황량한. 현실적이지만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사이의 사건 현장이다. 작가는 풍차에 대항해시대의 식민지 수탈에 대한 원동력과 오늘날의 관광자원이라는 기능, 그리고 그 근간으로서 자본의 생산을 무한히 과열되어 돌아가는 풍차의 상황에 중첩해냈다.


양옆의 상황도 이와 다름없다. 〈경계 위에서〉는 경계초소로 보이는 구조물을 중심으로 남북 분단의 현실을 가늠케 하는 철조망, 끊어진 철도의 종말점, 사용된 탄피, 지하 벙커 등의 사물이 정교하게 모델링 되어 놓여있다. 그 주위에는 그 외에도 시위 현장의 최루탄 또는 연막탄, 무속신앙을 연상케 하는 대나무와 삼색 깃발, 세월호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다이빙 벨 등 한국 사회의 다양한 사건·사고와 순간에 대한 사물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이 조합된 기묘한 전경은 <대제단>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네덜란드 헤이그 백화점 1층에 입점해있던 에스티 로더(Estée Lauder) 화장품 판매대를 실측하여 모델링한 진열장이 대리석 제단 위에 놓여 있다. 접근을 위해 제단까지 뻗어있는 나선 계단의 끝에는 반쯤 썩어 문드러졌지만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대리석 조각이 있다. 이것은 썩어가는 육체를 표현한 리지에(Ligier)의 트랑시 드 레네 드 샤론(Transi de René de Chalon)의 모델링 구조물이다. 16세기의 유한함을 상징하는 조형물과 21세기의 영속성을 나타내는 것 두 개를 함께 병치시키는 한편 그 주위는 번잡한 공사장으로 구성하여 기묘한 불협화음의 구도를 조성했다. 



▲ <실시간 연옥>,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시장 지하로 내려가며 마주하는 <샤워룸>은 가장 일상적인 순간이 비현실적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개인 공간에서 사회 공간으로 나아가기 전 수행하는 샤워는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청결에 대한 사회적 강요이기도 하다. 따뜻함과 상쾌함은 한순간에 갑갑함으로 변이될 수 있다. 샤워의 중추 물질인 물은 작품 속에서 일상에서 맞이하는 그것과 다르게 자리한다. 저중력 상황에서의, 좀 더 점도가 강한 덩어리로서의 액체로 그 현장에 있다. 24프레임이 채 안 되는 영상 상황은 더더욱 그 이질감과 낯섦, 갑갑함을 배가한다. 일견 공포스럽기까지 한 샤워의 과정은 고통의 현장이 된다. 


그 옆 작품 <회전문>은 네덜란드 헤이그 중심가의 드 비옌코르프(De Bijenkorf) 백화점의 회전문을 가상공간에 재현했다. 작가가 밝히는 회전문, 회전식 출입문은 건물의 온도 조절과 효율적인 흐름 조절, 보안 용이성 등의 탄생 목적을 떠나 사람을 통제하는 기구이자 쇼핑이라는 자본주의의 숭고한 행위를 위한 통과의례, 욕망을 투영하는 자본주의 숭배를 위한 절차 지대이다. 그가 제작한 이 곳은 사람이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않는다. 욕망의 자극을 위해 상품을 돋보이게 하는 마네킹만이 그 숫자를 늘려갈 뿐이다. 작품의 공간 속에서 출입이라는 기능이 사라진 ‘문’은 그 안의 마네킹과 사물을 끊임없이 뒤섞는 ‘믹서기(blender)’처럼 동작한다. 하지만 여기에 파쇄 대신 영속이 있다. 이곳은 동시에 상품이 진열되고 그 안에서는 절대 부서지지 않는 영속의 ‘쇼윈도’처럼 그 존재감을 내뿜는다. 


▲ <실시간 연옥>,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뒤돌아 마침내 다다른 지하 전시장 공간에서 장대한 크기의 〈사건의 지평〉이 우리를 맞이한다. 블랙홀을 연상시키는 원근적 깊이가 있는 검은 공간 위에 돌의 모델링 오브젝트가 부유하고 곧 다양한 장면이 교차한다.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의 도시를 스캐닝한 풍경이 수많은 점으로 구성된 포인트 클라우드의 형식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이들은 커다란 굉음과 함께 구성단위 채 분해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어떤 미래의 후쿠시마 오염수 탱크의 전경으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Conseil Européenne pour la Recherche Nucléaire)가 소유하고 있는 거대강입자가속기(LHC, Large Hadron Collider)를 보여주다가 또 다른 포인트 클라우드 풍경의 붕괴와 승리를 상징하는 공간 전체를 흩날리는 색종이 콘페티(Confetti)의 향연에 닿는다. 이러한 각각의 순간과 사건은 그 현장에서는 이를 눈치챌 수 있는 별도의 정보를 주지는 않는다. 이러한 맥락을 모른 상태에서 맞이하는 이들 순간은 각각이 낯설고 기묘하며 압도적인 가상의 사건이고 공간적 충격이다. 디지털 스캐닝 기술을 통해 데이터화된 사건은 각 장면이 다루는 비극과 위험, 가능성의 다양한 레이어가 부각되는 대신 기술적 이미지가 펼치는 장대한 스펙터클 속에 묻혀 사라졌다. 다만 근원에서 벗어나 증폭되고 스펙터클한 상황만이 남아 반복 재생된다. 수많은 사실적 모델링 덩어리들이 모여 구성된 상황이 몰아치는 파도는 작가가 제시하는 실시간적 연옥의 불꽃일 것이다.



▲ <실시간 연옥>,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실시간 연옥은 게임과 영화에서 익숙한 ‘실시간’ 모델링의 시각적 문법으로 작가의 ‘연옥’을 제시하는 전시이다. 이 전시에 놓인 모든 작품은 현장에 어떤 물리적 자취가 없이 존재하는 영상이다. 입구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과열된 풍차〉와 양옆에 위치한 <경계 위에서〉와 〈대제단〉. 계단을 내려가 지하로 진입할 때 스치는 〈샤워룸〉과 〈회전문〉을 지나 시야를 거대하게 채우는 <사건의 지평>과 역시 양옆에 자리 잡은 〈밤을 위한 제의〉와 〈포집된 자연〉까지. 


각 작품이 드러내는 풍경은 작가가 사용한 그래픽 소프트웨어의 기능 아래 표현된 지극히 현실적인 시각적 묘사와 함께 한 물리적 상황이다. 블렌더(Blender), 마야(Maya)와 같은 3D 모델링 프로그램 또는 언리얼(Unreal)이나 유니티(Unity) 같은 게임엔진 모두 물리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이 물리 엔진을 통해 이들 프로그램은 그 어떤 제한 없이 사람들이 현실로 납득할 수 있는 다양한 대상, 상황, 세계를 창작해 낼 수 있다. 일종의 무한표현 도구를 통해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세상을 자유롭게 창조하고 시뮬레이션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작가는 이 도구를 사용해 현실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인공적이며 이질적으로 다가오도록 구성해내었다. 기본적으로 공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중력으로부터 물체 간의 마찰과 관성, 표면에 대한 광원과 반사 등 우리가 대상과 상황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물리적 요건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이들을 뒤트는 현장이다. 이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물리 법칙에 근간해 동작하며 외견과 재질감은 물리엔진의 다양한 기술과 기능에 의해 더욱 현실적으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작가가 의도한 바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배치와 조합, 상황에 의해 뒤틀린 이해의 연계 속 경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장면 속에서 인간은 제외되어 있다. 



▲ <실시간 연옥>,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간에 의해 탄생하고 조성되었지만, 그 주체가 배제된 상황에서 몰아치는 3D 데이터 오브제의 몰아침은 무미건조하게, 냉정하게, 그리고 고통스럽게 우리의 지각을 자극한다. 그 곳으로부터 우리는 모델링된 사물, 상품, 재화, 기술,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사고에 닿는다. 이들은 모두 우리가, 우리를 위해 만들어 낸 대상이다. 그 대상만이 활개하고 정작 사람은 소외된 세상. 모든 동작과 논리, 존재에 사람이 배제된 상황은 지금 우리가 위치한 현실과 좌표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오늘의 기술은 인간에 종속된 대상이 아닌 인간과 독립된 존재로서 별개의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인간을 떠난 기술의 강력한 후원자는 자본주의이다. 인간의 필요와 편리, 수요를 위해 만들어지던 기술은 자본주의와 연결되어 별도의 논리와 속도로 작동한다. 인간이 배제된 가운데 기술과 자본주의는 고유의 상황과 사실, 현실, 세계를 조성해낸다. 인간이 배제된, 인간의 손을 떠난, 수동적으로 부유할 수밖에 없는 세계. 작가가 그 어떤 물리적 제약 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 안의 상황과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게임엔진’을 통해 만들어 낸 것. 기술적 가능성과 희망, 소외와 격리가 공존하고 있는 곳은 바로 실시간 연옥이다. 


글/ 허대찬
편집/ 아트앤테크 플랫폼 운영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식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뉴미디어문화예술채널 현대 앨리스온 편집장을 맡고 있으며 큐레이팅 및 관련 분야의 자문 및 심사 등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환경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가. 기술 환경의 변화는 어떠한 세상을 예견해 왔는가. 그리고 이러한 환경이 인간의 지각과 사고 등에 어떠한 영향을 끼쳐왔는가’ 라는 것이 주 관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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