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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기술융합지원 선정작 리뷰] 이예승의 인생게임 - 이예승 <SOMEDAY>

202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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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현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디자인예술학부 조교수  


수학자 존 콘웨이(John Horton Conway)의 생명·라이프 게임(Game of Life)은 바둑판처럼 정사각형의 여러 칸으로 나뉜 공간에 한 마리씩 있는 세포들의 삶과 죽음이 펼쳐지는 게임이다. 콘웨이가 고안한 아주 단순한 규칙의 조합에 의해 무수히 많은 세포가 생성되고 소멸하는 ‘게임이 아닌 게임’이다. 일명 ‘인생게임’이라고도 알려진 콘웨이의 생명 게임이 게임이 아닌 이유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직접 조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임을 시작하기 위한 초깃값을 게이머가 설정하면(처음 세포의 위치를 입력하면) 존 콘웨이가 정한 규칙에 의해 게임이 진행(세포들이 번식, 생성, 소멸)되며, 플레이어는 이러한 변화의 과정과 종료를 구경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이예승의 <SOMEDAY>는 게임일까 아닐까.



▲ <SOMEDAY>,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예승의 개인전 <SOMEDAY>가 진행되는 전시장은 사각형의 붉은 벽돌들이 벽을 이루고 있다. 전시장 건물은 교회 간판을 그대로 달고 있지만 교회가 아니다. 이 건물 3층에 위치한 전시장에 들어서면 사각의 프레임들이 서로 맞물려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구조물은 쌓여 있는 듯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허물어진 듯 흩어져 있다. 또한, 그 구조 속에는 몇 겹의 층으로 빛을 발하는 사각 프레임도 있고, 영상이 출력되는 프레임도 있다. 곳곳에 놓인 오브제와 그것을 다시 복제한 오브제도 발견된다. 모니터 안에서 부유하던 이미지는 출력되어 고정된 채 바닥에 놓여 있다. 흑백의 사각형들이 일정한 규칙으로 패턴을 이룬 QR 코드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QR 코드는 또 다른 가상의 공간으로 향하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 <SOMEDAY>,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작가는 어느 날 한때의 세상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작품을 분석하고 이해하기 위해 작정을 하고 덤벼들면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 미로에 갇혀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맬 수 있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비선형적이고 여러 가지가 혼재된 가변적인 상황을 담아내고 있기에 출구가 여러 가지일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풍경이 아닐 수도 있겠다. 어떠한 시점이나 때를 표현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가지 속성이 맞물려 있는가.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나의 전제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작품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 미리 특정한 전제를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이런 나에게 그는 동양적 세계관을 제안한다. 동양의 대표적인 신화인 『산해경』 속 신물들을 통해서 인간과 생물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지점과 이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정의를 나누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하고, 가상과 현실을 가르는 지점이 흐릿해지는 현재의 상황을 반추한다. 


▲ <SOMEDAY>,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러한 이예승의 시도는 나와 주변 사물 또는 자연, 객관과 주관의 경계를 허물고 관점의 위계와 질서에서 벗어나 구분 짓는 것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는 듯하지만, 그로 인해 다시 서양과 동양의 세계관이 구분되는 지점이 생기는 듯하다. 따라서 나의 관점에서 바라본 <SOMEDAY>를 생명 게임과 비교해 묘사해 보고자 한다. 생명 게임 속 천태만상도 하나의 이치로 돌아가고 있듯이 <SOMEDAY>에 나타나는 온갖 형상들의 관계 속에도 명쾌한 이치가 있지 않을까.


생명 게임 속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패턴은 움직임을 멈춘 고정된 형태, 일정한 주기로 무한히 반복되는 형태 그리고 특정 방향으로 이동하는 패턴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예승의 작품이 설치된 공간에서도 이와 같이 고정된 정물과 구조물, 일정한 주기로 반복 실행되는 영상과 빛 그리고 공간을 가로지르는 사운드와 관객들의 움직임이라는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생명 게임 속 생태계 또는 진행 과정과 무척 닮아있다. 



▲ <SOMEDAY>,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주 단순한 규칙에서 촉발된 패턴의 형상들은 진행 주기와 시간, 안정화 여부와 세대에 따른 분류 등으로 더욱 세분화 되며 규칙의 변종들도 나타나고 있다. 격자형 그리드와 알루미늄 프로파일로 구축된 탑을 단순히 비교해 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작가가 숨겨 놓은 규칙이 궁금했기 때문에 생명 게임과 맞대어 놓은 것이다. 언젠가(SOMEDAY)의 모습이 실제와 가상이 중첩되고 구분하기조차 힘들어지고, 구분하는 것 자체에 대한 의미가 희미해질 수 있다고 해도 그에게 규칙을 구하고 싶었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에서 방황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를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글/ 윤지현

편집/ 아트앤테크 플랫폼 운영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식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디자인예술학부 조교수. 데이터로 구축되는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인지와 행동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와 작품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 그 자체에 관한 연구뿐만 아니라 미디어가 사회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관찰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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