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을 경험하는 새로운 공간
연희예술극장
연희예술극장
Q. 연희예술극장은 어떤 곳인가요? 극장을 개관하게 된 계기와 운영 방침에 대해 들려주세요.
연희예술극장은 2018년에 연희동에 문을 연 카페 떼아뜨르(Cafes-theatres) 극장입니다. 카페 떼아뜨르는 먹고 마시면서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뜻합니다. 연희예술극장의 시작은 2016년에 설립한 극단 ‘이방인’으로 이어집니다. 대학로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시절, 제가 추구하는 작품의 결이나 방향성이 대학로의 분위기와는 조금 맞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연극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만났던, 저와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극단을 만들며 이방인이라고 이름을 지었죠. 대학로를 벗어나 연희동에 극장을 개관하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은 예술인과 관객이 연희예술극장을 찾아오지만 개관 후 일이 년 동안은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카페 떼아뜨르라는 개념이 잘 알려지지 않아 연희예술극장을 낯설어하는 연극인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개관 일 년 만에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죠. 예정된 공연을 올리지 못하게 되었고, 공연을 올리더라도 수용인원에 제한이 있다 보니 극장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컸습니다. 어떻게든 활로를 모색해 보기 위해 망원동과 상수동, 연희동과 합정동에서 활동하는 예술인을 모아 ‘망상연합’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회의도 여러 차례 해보고 연희예술극장을 찾아오는 미술 작가나 음악인, 패션디자이너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과 협업을 활발하게 진행했습니다. 다행히 그 과정에서 연극과 미술 전시, 무용, 콘서트, 심지어 패션쇼까지 여러 장르를 아우르고 융합하는, 연희예술극장만의 독특한 개성이 만들어지면서 지금처럼 많은 분께 사랑받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속 가능한 ‘아트크루’로 발전을 꿈꾸다
자생력 확보를 위한 극단 이방인의 노력
자생력 확보를 위한 극단 이방인의 노력
Q. 극단 이방인과 연희예술극장의 운영 방식이 궁금합니다. 어떤 사업을 진행하고 계신가요?
극단 이방인은 연희예술극장을 중심으로 자체 기획 공연과 공동 기획 공연, 공간 대관 사업 등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총 34편의 작품이 연희예술극장에서 공연됩니다. 하지만 연희예술극장의 대관 수익은 대부분 극장 운영비로 사용되는 만큼, 극단으로서 작품 활동을 꾸준하게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수익구조를 확보해야 했습니다. 카페 떼아뜨르인 연희예술극장의 특징을 살려 극장 내에서 에프앤비(F&B, Food and Beverage, 음식과 음료)를 판매하고 포스터나 키링 등 공연의 엠디(MD)를 제작해 판매하기 시작한 것도 그래서였죠.
그동안 극단과 극장을 운영하며 쌓인 노하우를 활용해 다른 사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선 연희예술극장 외에 북촌창우극장과 슈피겐홀을 위탁 운영하며, 극장 운영으로 발생하는 수익을 연희예술극장에 재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극단의 디자이너 등 스태프와 함께 포스터 디자인과 공간 브랜딩도 진행하고 있죠. 사실 작품 활동만으로는 극단을 운영하거나, 삶의 터전을 가꾸는 데 충분한 수익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기 위해 스태프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 사업을 확장한 거죠. 이러한 시도는 저희 극단이 배우나 작가 중심으로 운영되는 극단이 아니라 디자이너와 프로듀서, 테크니컬 디렉터 등 다수의 스태프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Q. 극단 이방인은 월급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예술단체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월급제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좋은 작품을 창작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작품의 창작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극단에는 저와 5년, 10년 넘게 함께 작업해 온 스태프가 많습니다. 연극 아카데미를 운영하던 시절에 선생과 학생으로 만나, 지금은 극단 대표와 극단원으로 같이 일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요. 그들에게 예술을 위해서라며 기약 없는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극단원이 작품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삶의 터전을 보장하고,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어주기 위한 방법으로 월급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배우는 저희 극단 작품 외에도 다양한 공연과 매체에서 활동하다 보니 월급은 극단에 소속된 스태프에게 우선적으로 지급하고 있습니다.
월급제는 극단의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하고 선순환구조를 만들기 위한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월급제를 통해 생활이 안정되면 극단원은 작품 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활발한 창작 활동을 통해 공연 제작이나 제작 실무, 디자인 등 극단원 개인의 역량이 상승하게 되면 이는 곧 극단의 질적인 성장과 직결됩니다. 극단의 자체 기획 공연은 더 높은 퀄리티로 관객과 만날 수 있을 거고, 포스터 디자인이나 공간 브랜딩 등 외주 사업을 통해 극단의 부가적인 수입을 창출할 수도 있겠죠. 다른 장르와 협업을 통해 극단의 활동 영역을 넓힐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극단 설립 초기에는 제가 영리적인 사업에 관심을 두는 걸 보고 예술인이 아니라 비즈니스맨 같다고 이야기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극단 내 창작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수익성에 관심을 두는 건 극단 대표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안정적인 공연 창작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좋은 작품은 자연스럽게 뒤따라올 거라 믿습니다.
Q. 극단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공연을 올릴 때 저희가 꼭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는데요. 티켓을 유료로 판매하며 ‘초대권 없는 공연’으로 운영하는 것입니다. LG아트센터는 2000년에 처음 개관했을 때부터 초대권 없는 공연장을 지향해왔습니다. 초대권 문화가 공연 생태계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죠. 매우 동의하는 바입니다. ‘공연은 공짜’라는 인식이 생겨나면 좋은 공연을 골라 적정한 값을 치르고 관람하는 바람직한 공연 관람 문화가 저해될 위험이 큽니다. 또 이러한 티켓 판매 방식은 극단 운영진과 배우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아요. 지원사업으로 공공기금을 받아 활용하는 예술단체라면, 지원금을 발판 삼아 자립성을 키움으로써 장기적으로는 공공기금을 완전히 탈피하려는 목적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연희예술극장은 지원사업을 받아 제작한 공연도 티켓을 유료로 판매하고, 그 판매 수익을 다른 공연이나 프로그램 기획에 끊임없이 재투자하며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연희예술극장의 개성을 강화해 마니아층을 만드는 것도 극장의 자생력을 확보하기 위한 목표 중 하나입니다. 지금은 불특정 다수보다 소수의 마니아가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이들과 깊이 있는 교류를 나누는 것이 중요한 ‘팬덤 4.0 시대’잖아요. 연희예술극장도 저희 극장의 운영 방향성에 공감하며, 극장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을 믿고 꾸준히 찾아주시는 마니아 관객을 만들려 합니다.
그리고 저희 극단은 평소에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극단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각자 시도해 보고 싶은 분야가 무엇인지 꾸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 또한 극단의 자생력 확보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연극 제작에 좀 더 집중하고 싶어 하는 극단원이 있다면 연극을 제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평소 아기자기한 디자인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디자이너에게는 엠디 제작을 권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민과 시도가 즉각적인 수익 창출로 이어지거나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극단원 모두가 자생력 확보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며 활발하게 의견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 극단이 더 다양한 기회를 창출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다양한 수익 구조를 창출하고, 발생한 수익을 공연 제작과 다른 사업에 재투자하며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일이 극단으로서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왔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연희예술극장이라는 독특한 공간을 운영하며 그 경험을 발판 삼아 다른 공간 위탁 사업에 도전했죠. 극단 디자이너와 스태프를 키우는 데 집중한 결과 디자인과 공간 브랜딩 사업도 진행할 수 있었고요. 그리고 올해 4월 연희예술극장에서 재공연을 올린 연극 <인간실격 시즌2>도 과감한 도전을 통해 극단의 실력을 키우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었던 사례였습니다.
연극 <인간실격>은 지원사업 없이 극단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작품이었습니다. 지원사업에 지원은 했는데 선정되지 못했죠. 그러나 지원사업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덮어두기에는 아쉬움이 있었고, 재공연을 통해 작품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공연을 올리지 않으면 앞으로 작품이 지속되기 어려울 거라는 조바심도 들었고요. 그래서 작품의 수익성이 크지 않더라도 자체적으로 공연을 제작해 무대에 올려 보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다양한 관객층을 확보할 수 있도록 실력 있는 배우를 추가로 섭외하고 볼거리를 풍성하게 기획했죠. 무대의상도 일반적인 연극 의상이 아니라 홍익대학교 패션디자인과 출신인 저희 의상 디자이너의 장점을 살려 힙하게 준비했고, 홍보마케팅을 실험적으로 진행하는 등 평소 극단에서 해보고 싶었던 시도들도 마음껏 해볼 수 있었습니다. 결과는 무척 성공적이었습니다. 무대의상의 변화 때문인지 많은 스타일리스트가 공연을 관람했고 일반 관객의 반응도 아주 좋았습니다. 공연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며 내년에 기회가 된다면 참여해보고 싶다고 따로 연락을 준 배우도 있었고요. 이 경험을 토대로 <한 평을 위한 모노드라마> 프로젝트와 연극 <캐빈방정식>, <아파트모먼트 시즌2> 등 이후에 진행한 다른 작품들도 더 발전적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연희예술극장, 연극 <인간실격> 등 극단 이방인이 만들어 나가는 것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이 종합된 하나의 작품이라는 거죠. 연희예술극장은 공연과 극장의 인테리어, 에프앤비가 접목되어 있고 <인간실격>도 패션의 힘이 강력한 작품이었죠. 저는 공연뿐만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이 예술이고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제가 만드는 것을 공연으로 제한하지 않고 다양하게 시도해 보려고 해요. 오는 하반기에도 ‘이방인’의 개성이 담긴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Q. 극단 이방인의 대표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앞으로의 활동 계획도 궁금합니다.
올해 12월에는 미국을 방문해 극단의 다음 비전을 계획해보려 합니다. 연희예술극장을 처음 만들 때 모티브가 되었던 극장이 뉴욕에 몇 군데 있어요. 그곳을 돌아보며 다른 소규모 극장과 제작사는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있고 어떻게 자생력을 확보하고 있는지 직접 살펴보며, 극단원과 예술인이 적극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극단을 넘어 아트컴퍼니, 아트크루로서 새로운 형태와 비전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2000년대 초에 테슬라를 설립하며 내세운 목표는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가 아니었습니다. 머스크는 종착점이 있는 목표 대신 ‘전기차의 보급과 상용화’라는 큰 비전을 제시했죠. 그 후로 지금까지 테슬라의 비전은 변한 적이 없고요. 저 또한 마찬가지로 예술단체가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기업과 같은 형태로 발전할 수는 없을지 고민하며 극단 운영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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