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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정의 개정
그 의미와 전망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이 제정된 이후 ‘문화예술’의 정의는
여러 차례 변화를 거듭해왔으나 개념적 모호성과 열거주의 방식의 한계,
범주적 위계 관계의 비체계성에 대해 지속적인 비판을 받아왔다.
한편 올해 9월 문화예술진흥법 일부 개정을 통해 다시 한번 ‘문화예술’의
정의 조항이 변경되면서 새로운 변화가 예상된다. 이번 개정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한 문화예술 분야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그 전망을 짚어본다.
글_양혜원(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문화예술의 법적 정의
어떻게 변화해왔나?1
2022년 9월 문화예술진흥법(이하 문예진흥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문화예술 분야의 모법으로 불리는 문예진흥법 제2조 제1항 제1호의 문화예술의 정의 규정이 변경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이 첫 개정은 아니다. 1972년 법 제정 이후 문예진흥법은 총 37회에 걸쳐 개정됐고, 이 중 ‘문화예술의 정의’ 규정이 변경된 것은 이번을 포함해 4번째이다. 1972년 제정 당시 문예진흥법 제2조는 “이 법에서 문화예술이라 함은 문학·미술·음악·연예 및 출판에 관한 사항을 말한다”로 4개의 예술 장르와 1개의 비예술 부문을 열거하는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1987년 일부 개정에서는 ‘무용, 연극, 영화’가 추가됐고, 1995년 전부 개정에서 ‘미술에 응용미술을 포함’하고 ‘국악, 사진, 건축, 어문’을 추가해 10개 장르와 2개 비예술 부문으로 그 외연이 확장됐다. ‘국악’을 ‘음악’과 별개로 규정했고, ‘어문’이 추가됨으로써 예술 영역과 구분되는 문화 영역의 정책 대상이 가시화된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제2호에 문화산업 정의 조항도 추가되면서 문화예술이 문화산업의 토대인 기초예술로 이해되는 기반을 마련했다. 뒤이어 2013년에는 ‘만화’가 추가돼 이번 개정이 있기 전까지 문예진흥법은 “문화예술이란 문학, 미술(응용미술을 포함한다),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 국악, 사진, 건축, 어문, 출판 및 만화를 말한다”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예술의 정의 조항은 여러 측면에서 비판받았다. 첫째, 문예진흥법은 ‘문화예술’이라는 특이한 정책 조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개념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2007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문화 분야 법제 정비 방향 연구」 에 따르면 동법에서 ‘문화예술’이란 ‘문화’와 ‘예술’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문화 및 예술’과는 다른 의미로, ‘예술을 기본 대상으로 하되 문학, 미술 등 좁은 의미의 예술 영역보다는 그 대상을 확장할 수 있도록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만약 ‘문화 및 예술’로 볼 경우 예술 이외의 문화 전반을 포괄하게 돼 그 대상이 문화의 개념에 따라 무한정 확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예술’에서 ‘문화’는 ‘예술’을 수식해 ‘예술’의 개념을 다소 확장하는 기능을 할 뿐, 그 핵심적 범위는 ‘예술 영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인데, 이러한 해석에 따르더라도 동법에서 ‘문화’의 의미와 범주는 불명확하다는 한계를 가진다.2
둘째, 동 조항은 문화예술의 속성을 서술하는 방식이 아니라 법 적용 대상이 되는 장르와 부문을 나열하는 ‘열거주의’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 경우 법 적용 대상은 명확해지지만 새로운 예술 영역이나 장르의 발현, 예술과 비예술 부문과의 통섭과 융복합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어려우며, 이에 따라 문예진흥법에 따른 보호나 공적 지원 대상에서 배제 또는 누락되는 등 ‘법의 지체’ 현상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갖는다. 또한 그간 개정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동법의 정의 규정에 포함되기 위해 각 장르 및 부문의 법 개정 노력이 과도하게 경주되는 것 또한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됐다.
셋째, 열거된 장르 및 부문 간 개념적, 범주적 위계 관계가 체계적이지 않고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특히 ‘음악’과 ‘국악’, 그리고 ‘영화’와 ‘연예’의 의미 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전통예술’이나 ‘융복합 예술’, 또는 새로운 예술 형태와 같이 누락된 장르나 부문이 있어 통상의 범주 구분을 위해 필요한 총망라성과 상호 배타성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러한 문제점들로 인해 그간 문화예술의 정의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돼 왔다. 특히 2013년 문화기본법 제정을 계기로 기존 문예진흥법의 역할과 기능을 재조정하고, 관련한 타 법률(문화산업진흥기본법, 지역문화진흥법 등)과의 관계에서 문예진흥법의 목적과 성격을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문예진흥법을 예술진흥법으로 분법화해 동법의 규율 범위를 예술 영역으로 명확화하고, 예술의 발전과 진흥을 위한 핵심적인 법률로 그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2020년 이뤄진 『문예진흥법 정비를 위한 사전연구』에서 문예진흥법의 전면 개정과 함께 문화예술에 대한 정의를 문화예술의 핵심적, 본질적 속성을 일반조항으로 제시하고 더불어 문화예술에 포함되는 유형을 예시 규정으로 제시하는 방식을 활용해 재구성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문화예술 정의 개정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번 문예진흥법 정의 조항의 개정은 4개의 일부 개정 법률안, 즉 문화예술에 게임을 추가하는 조승래 의원 안(의안번호 제2104926호), 애니메이션을 추가하는 유정주 의원 안(의안번호 제2106028호), 뮤지컬을 추가하는 이병훈 의원 안(의안번호 제2106041호), 문화예술의 핵심적인 속성을 기술하는 정의 방식으로 변경하는 이병훈 의원 안(의안번호 제2114322호)을 종합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대안(의안번호 제17269호)’을 국회 본회의에서 채택함에 따라 이뤄졌다.
위원회 대안은 ‘현행법상 문화예술에 대한 정의를 열거하는 방식은 사회적 환경과 인식의 변화로 새로운 예술 영역이나 장르의 발현, 예술의 융·복합화 등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으므로, 문화예술의 정의로 문학·미술·음악 등의 장르를 열거하는 방식 외에 문화예술의 핵심적인 속성을 일반적인 표현으로 규정하고, 문화예술’의 범위에 게임·애니메이션 및 뮤지컬 장르를 추가’한다고 제안 이유를 밝히고 있다.
제2조(정의) ①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문화예술”이란 문학, 미술(응용미술을 포함한다),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 국악, 사진, 건축, 어문, 출판,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및 뮤지컬 등 지적, 정신적, 심미적 감상과 의미의 소통을 목적으로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 또는 타인의 인상(印象), 견문, 경험 등을 바탕으로 수행한 창의적 표현활동과 그 결과물을 말한다.
이번 개정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문화예술의 핵심적 속성을 활용한 포괄적 정의’의 채택, 그리고 ‘등’이라는 표현을 통해 기존 열거주의 방식에서 예시주의 방식으로 전환해 보다 유연하고 개방적으로 문화예술을 정의하게 됐다는 점은 분명히 긍정적인 변화라 평가할 수 있다. 그간 동 조항에 열거되지 않아 보호 대상에서 누락되거나 배제됐던 부문과 활동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으며, 새로운 형태의 문화예술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이를 통해 문화예술의 외연이 크게 확장될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문화예술의 정의 조항에 포함되기 위해 각 분야가 과도한 입법 노력을 경주하거나, 사정이 생길 때마다 법률을 개정하는 소모적인 행태도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리그 오브 레전드 ⒸRIOT G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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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먼저 개정된 정의 조항이 발의된 4개의 법률 개정안을 정치적 타협3에 의해 단순 종합해 담아냄에 따라(기존에 열거된 장르나 부문을 체계적으로 재조정·재정돈 하는 작업 없이 단순히 3개 장르를 추가함에 따라) 예시된 장르나 부문 간 개념적·범주적 위계 관계가 여전히 불명확하고 체계적이지 않다는 점은 매우 아쉽다. 특히 동조 제1항 제2호에 규정된 문화산업과의 관계나 비예술 분야에서 이뤄지는 창의적 표현 활동과 결과물의 경우, 어디까지를 문화예술로 볼 것인지에 대한 범주와 경계의 모호성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간 문화예술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던 영역들, 특히 게임, 애니메이션, 웹툰, 웹소설 등과 같은 문화산업의 영역이 문화예술로서 지위를 획득하고 보호받게 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우려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향후 문예진흥법에 대한 전면적인 재정비와 함께 이 부분에 대한 보완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전망
그리고 남겨진 과제
이번 개정이 문화예술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가장 직접적으로는 문화예술진흥기금을 활용한 문화예술 지원사업과 예술인복지사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문예진흥법은 제16조 이하에서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사업이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문화예술진흥기금을 설치하고 사용할 것을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예술진흥기금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개정은 문화예술진흥기금 지원사업의 구조나 구성, 타 지원기관과의 업무 분담 등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창작준비금지원사업 지원 기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창작준비금지원사업 지원 기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한편 이보다 더 문화예술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예술인복지사업 영역일 것이다. 현재 예술인복지법 제2조 제2호는 “예술인이란 예술 활동을 업(業)으로 하여 국가를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데 공헌하는 사람으로서 문화예술 분야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창작, 실연(實演), 기술지원 등의 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이때 문화예술이란 ‘「문화예술진흥법」 제2조제1항제1호에 따른 문화예술을 말한다’로 문예진흥법의 정의 조항을 준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등에서 수행하는 다양한 예술인복지사업, 예컨대 예술활동증명이나 창작준비금지원사업, 활동지원금 사업 등은 대부분 문예진흥법 상 열거된 장르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데 이번 개정은 예술인의 정의, 예술활동증명제도, 예술인복지사업의 실행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이번에 발의된 3개의 일부 개정 법률안의 제안 이유나 국회 회의록을 보면 해당 장르·부문의 종사자들이 예술활동증명을 받기 어려워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이외에도 문예진흥법의 정의 조항을 준용하는 타법, 예컨대 문화예술교육지원법, 국민여가활성화기본법, 조세감면규제법이 규율하는 사항들이나 관련 실태 조사, 통계 작성 등도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법률은 만능이 아니라는 점이다. 법률은 당대의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인식한다면 개정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시대의 문화예술과 예술인의 본질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성찰과 공감대일 것이다. 인공지능이 시를 쓰고 메타버스에서 공연과 전시가 열리며,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는 현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문화예술로 부르고 보호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함께 성찰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만큼 해답은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1) 문화체육관광부(2020). 문화예술진흥법 정비를 위한 사전 연구 참고
2) 다만 문화예술진흥법의 영문 표기는 ‘Culture & Arts Promotion Act’로 돼 있다.
3) 이 중 3개의 의원 발의안은 게임, 뮤지컬, 애니메이션 업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게임 분야의 경우 2019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게임 이용 장애(게임중독)를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에 정식 질병코드로 등록함에 따라 국내 게임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악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조치였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양혜원
양혜원(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학부에서는 사회학을, 석·박사는 행정학을 전공했으며 문화예술의 아우라에 사로잡혀 이 분야 정책 연구자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2011년부터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재직하며 예술정책, 예술인복지, 문화복지, 지역문화정책, 문화예술교육정책, 생활문화정책, 문화영향평가, 문화통계 등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문화예술이 가진 고유한 가치와 가능성을 신뢰하며, 정책과 현장의 매개를 통해 그 작동과정에 동참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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