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국가에 따라 달라지는
예술의 기준
예술의 기준
지난 9월, 문화예술진흥법(이하 문예진흥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법률이 규정하는 문화예술의 범주를 수정하는 내용이다. 기존 법률안에서 문학, 미술, 음악, 무용 등 13개 장르만을 문화예술로 정의하던 조항에 게임, 애니메이션, 뮤지컬을 추가했다. 나아가 ‘지적, 정신적, 심미적 감상과 의미의 소통을 목적으로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 또는 타인의 인상(印象), 견문, 경험 등을 바탕으로 수행한 창의적 표현활동과 그 결과물’로 문화예술을 다시 정의하면서 앞으로는 매번 법안을 개정하지 않고도 정부 소관 부처 판단에 따라 문화예술 관련 업무를 확장할 수 있게 했다.
문신 합법화를 위한 1인 시위 Ⓒ(사)대한문신사중앙회 페이스북
그렇다면 이번 법률 개정으로 무엇이 바뀌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무엇을 예술로 분류하는지에 관한 본질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시대에 따라 예술의 범주가 크게 바뀌어 왔다는 점은 널리 인정되는 사실이다. 당나라 때는 바둑이 예술이었다. 2세기 그리스 시대에는 천문학이 예술이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문법, 수사, 논리, 대수, 기하, 천문 등이 예술이었다. 지금은 과거에 없던 사진, 영상, 만화 등을 예술로 분류한다. 오늘날의 예술의 분류 체계는 비교적 최근에 발명된 근대의 산물이라 과거 어느 때와도 같지 않다. 그런가 하면 같은 시대라도 국가마다 혹은 사회마다 예술 분류에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문신을 예술로 간주한다. 이미 문신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여러 판례가 있으며, 정부 저작권청이 문신을 저작물로써 보호한다. 또 ‘예술에 관한 미국인 공개 발언(ASOAA)’의 2015년 설문 결과처럼, 미국인 70% 이상이 문신을 예술이라고 생각한다는 여론 조사 사례가 많다. 이와 달리 법 제도적으로나, 일반 대중의 여론을 통해서나, 문신을 예술로 보지 않는 나라도 있다. 이렇듯 예술의 범주는 나라마다 다르다. 따라서 ‘무엇이 예술인가’라고 묻는다면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르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예술의 의미는 항상 바뀌었고,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예술의 범주가 가변적인 까닭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관점으로 그것을 다르게 정의해 주먹을 동반하지 않은 학술적 토론으로는 절대 합의에 이를 수 없다. 이를테면 요리나 조향(調香)도 감각 기관을 통해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인데 왜 예술이 아닌지를 따진다든가, 디지털 시각 매체가 발달한 초강력 21세기에도 손으로 그린 그림이 여전히 예술의 지위를 갖는지를 의심하는 식으로, 인생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온갖 의문을 품고 사는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같은 장르의 예술인끼리도 저 인간의 그림은 예술이 아니고 내 그림만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주장할 때도 많아, 이와 같은 영원한 합의의 불발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 진흥정책을 펴기 위해 마련한 최소규정이 문예진흥법 2조인 것이다.
요컨대, 문예진흥법의 문화예술 규정은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이미 예술로서 작동하고 있는 모든 활동과 양태를 반영하지 않는다. 그 가운데 특정 분야를 선별해 진흥하고 지원하기 위한 규정일 뿐이다. 이 점을 분명히 해 두자. 게임과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은 이번 법안 개정을 통해 예술로 인정된 것이 아니라, 법안과 무관하게 원래 예술이었는데, 이제부터는 진흥의 대상이 됐을 따름이다. 구체적으로는 2조 1항 2, 3호에 나오는 문화예술의 업(業)과 문화시설 관련 규정을 통해, 개정안에 추가된 분야의 종사자는 법적으로 문화예술인의 지위를 갖게 됐고 관련 시설은 문화시설로 인정돼 공공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공통 감각을 공유하게 하는
문화예술의 힘
문화예술의 힘
이 변화를 나는 ‘원래 예술이었던 분야가 법적으로 문화예술이 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 그냥 예술과 문화예술은 다르다. 법안이나 시행령에 숱하게 등장하는 문화예술의 의미를 해석하는 관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문화를 에티켓이나 생활 양식에서부터 전통적 관습까지 모두 포함하는 광의의 문화 개념으로 파악하고 이를 예술도 포괄하는 상위 개념으로 보는 관점이 있고, 특정한 문화적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예술이 복무한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또는 예술을 발전된 문화적 성취를 드러내는, 문화의 최종 심급으로 보는 개념도 있다. 그런데 이런 해석들은 어느 것도 실제 문화예술 진흥정책의 당위를 설명하지 못한다.
국가가 헌법 9조의 문화 국가 의무를 지고 이에 따라 문화예술을 적극적으로 진흥하는 까닭은 문화예술이 국민을 창출해 근대 국민 국가를 이루는 데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 문화란 사전에 나오는 광의의 개념이 아니라 일본어로 ‘분카게이쥬쯔리고쿠(文化藝術立國∙문화예술로써 나라를 세운다)’라고 할 때의 문화, 즉 20세기의 문화 개념이다. 우리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아들의 감정과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간 딸의 감정, 설렁탕을 사 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냐고 따지는 사람의 감정을 함께 이해하고 나눌 수 있기에 하나의 공통 감각을 공유하는 국민이 되는 것이다.
이에 비춰 설명하면 문예진흥법이 연예(演藝)를 문화예술로 규정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유재석과 이경규의 개그 코드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할 수 있고 비슷한 지점에서 웃는다. 그럼으로써 집단 외부와 구별되며 동질감을 가진 국민으로 형성된다. 이것이 문화예술이다. 무한한 표현의 자유와 활동의 영토를 가지는(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냥 예술과 다르다. 문화예술은 반드시 집단 내부에서 널리 공유되면서 동일한 이해, 또는 적어도 비슷한 이해를 받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같은 감각으로 소통하는 국민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도록 국가는 문화예술을 진흥하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에 이르러 문화예술에의 접근을 달리하면서 시민의 문화 향유라든지 문화의 분권화, 문화 주체의 다양화∙다원화 등을 강조하는 새로운 정책이 개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법 제도는 여전히 20세기 문화예술 개념의 틀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문화예술 진흥을 왜 하겠는가? 국가의 문화예술 진흥은 서구에서는 이미 반세기 전에 뒤집힌 고루한 생각이 아닌가? 그리고 이번 개정안에서 문화예술의 범주를 최대한 늘린다고 늘린 것이 ‘창의적 표현 활동과 그 결과물’에 머무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일 문화민주주의의 가치가 반영됐다면 모두가 창작자요, 예술가인 시대이니 창의적 표현 활동보다 시민의 커뮤니티 활동과 네트워크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작품의 창조를 넘어
공동체의 창조로의 확장
공동체의 창조로의 확장
앞 문단을 우리 문화예술 진흥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오해하는 독자가 없기를 바란다. 범죄자를 가두는 징역 제도는 수천 년 전에 탄생했지만,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수천 년간 이어져 온 틀 안에서도 처벌보다 교화에 무게를 두는 방식으로 점차 옮겨갈 수 있는 것처럼, 나는 우리의 문화예술 법 제도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제부터 게임을 문화예술로 규정키로 한 것은 큰 변화다. 영상 예술이나 가상 현실 예술도 아니고 게임을. 표결에 참여한 국회의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개정안에 반영됐는데, 현재 국가 단위에서 게임을 예술로 분류하는 나라가 사실상 프랑스뿐임을 감안하면 대단히 획기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애니메이션과 뮤지컬의 추가는 관련 계통 창작자들의 환영을 받기야 하겠지만, 게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비한 변화다. 법 개정 이전에도 애니메이션은 영화나 영상 미술의 일부로서, 뮤지컬은 연극, 음악, 문학의 일부로서, 말하자면 미술의 하위 범주에 있는 판화나 캘리그래피 같은 것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다만 앞으로 문예진흥법 개정과 맞물려 지역문화진흥법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크다. 재정적으로 부유한 지방자치단체, 똘똘하고 야심 있는 지방자치단체장, 문화적 요구 수준이 높은 주민 모임의 삼박자가 맞는 지역에서 애니메이션 창작을 지원하거나 뮤지컬 전용관을 세울 것이므로 법 개정 이전에 비해 지역 문화로 안착하기 쉬운 조건이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
2022 게임문화제 Ⓒ한국콘텐츠진흥원
그렇다면 게임은 무엇이 다른가? 게임은 애니메이션이나 뮤지컬과 달리 아직 보편적 예술로 승인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게임을 이루는 문학적 서사, 배경 음악, 그래픽 디자인, 영상 예술 등의 요소가 기존 예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게임을 총체 예술로 볼 수 있다는 점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지만, 게임 자체를 예술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여전히 세계적인 논쟁거리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심미적 감상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술관이나 클래식 공연장에 가는 기분으로 게임방에 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게임을 예술로 승인하는 견해는 귀족주의적 근대 예술관(뛰어난 재능을 부여받은 위대한 예술가가 창작물을 만들면 나머지 사람들이 정신적 활동으로 그것을 향유한다는 예술관)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에 대해 게임을 커뮤니케이션 예술이나 인터렉티브 시네마의 일종으로 보는 미학적 견해도 있다. 게임은 창의적인 표현의 한 형태 또는 여러 예술을 아우르는 복합 장르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참여자에게 가상의 역할 경험을 제공하고 참여자들 간의 상호 작용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근대 예술이 아닌 그다음 시대의 예술관을 담고 있다. 이번 법 개정에 게임을 문화예술로 규정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법 제도가 철 지난 문화예술 개념을 가지고 있기에 오히려 쉬웠을지도 모른다. 게임도 다른 문화예술처럼 공통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존의 문화예술처럼 수용자들이 일방적으로 경험을 전달받는 형태가 아니라, 참여자들이 스스로 경험을 만들어가는 형태다. 그렇다면 여기서부터 다음 시대의 예술이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개별 작품의 창조에서 공동체를 창조하는 예술로, 예술은 확장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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