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커뮤니티, 함께 융합한 기업 브랜딩
경영 비즈니스에서 디지털 커뮤니티 문화에 바탕을 둔 마케팅 전략은 흔히 벌어진다. 이는 팬덤 기반의 마케팅보다 매우 포괄적이고, 불확정성을 지니며, 한편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잠재성을 의미한다. 디지털 커뮤니티의 일환인 멤버십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를 것 같은 출판사와 일반 기업이 문화예술로 묶일 수도 있다. 이 같은 초기 모델은 텍스트에 이미지가 더해진 ‘웹진’이라고 할 수 있다. 웹진은 디지털 공간에서 콘텐츠를 매개로 고객 중심의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일반 기업은 기업 이미지 홍보 차원에서 사보를 만들었고, 이후 디지털 시대에 맞게 웹진으로 진화했다. 출판사는 고객의 책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웹진을 적극적으로 발간하기 시작했다. 출판사와 기업의 웹진은 문학을 기본으로 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겸비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다양한 문화 행사를 담아내거나 연계된 콘텐츠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많은 고객을 불러 모으는 효과를 꾀했다. 점차 스마트 모바일 기술에 맞게 웹진은 앱과 유튜브 등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그런데 출판사와 일반 기업의 문화예술 멤버십 비즈니스는 이와 다른 결로 진화해 가고 있다. 먼저 출판사는 멤버십 출판 모델을 지향하는데 ‘북클럽 문학동네’와 ‘민음 북클럽’을 예로 들 수 있다. 고객이 회원에 가입하면 굿즈 세트를 선물하고 특색있는 자사의 발행 책들을 묶어 선택할 수 있는 혜택을 준다. 가입 고객을 대상으로 할인 행사도 여는데 단지 책 구매 유도에만 한정하지 않고, 저자 특강, 교양 강좌, 공연, 전시와 연계한다. 자사 관련 책을 매개로 한 소모임에 지원해주기도 한다. ‘민음 북클럽’은 가입 고객을 대상으로 스탬프 마일리지 혜택을 주거나 창고를 크게 개방하고 ‘북클럽 문학동네’는 완독 챌린지를 통해 독서를 유도하며 책 판매를 증대시킨다.
민음 북클럽 굿즈 Ⓒ민음북클럽
이와 달리 일반 기업은 문화 콘텐츠를 통해 기업 브랜드의 가치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직접 상품을 홍보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지닌다. 다만 기업에 따라 그 결이 역시 다른데 롯데월드타워 웹진 ‘GEEP’은 문화, 예술, 음식, 브랜드 등 각 분야의 정보를 큐레이션 한 웹진을 발행한다. 큐레이션 된 콘텐츠는 원하는 정보를 얻고 싶은 고객에게 선별적으로 이를 제공할 수 있다. 송파구의 로컬 정보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깊이로 접근하는 콘텐츠도 돋보인다. 현대카드의 ‘다이브’는 브랜딩 활동을 온라인으로 확장한 개념으로 이른바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오프라인 공간에 초점을 맞춘 브랜딩 활동에서 디지털을 통해 그 범위를 새롭게 확장한 사례이다. 독자는 이곳에서 공연이나 전시를 360도 뷰잉을 통해 살펴볼 수 있고, 행사의 비하인드 스토리, 관련 정보도 볼 수 있다. 관심사와 취향을 설정해두면 이에 알맞게 큐레이션된 콘텐츠도 즐길 수 있는데 이 정보가 매일 업데이트되면서 일시적으로 콘텐츠를 올리는 기존 웹진 형식과는 완전한 차별성을 이뤘다. 무엇보다 상호 작용성도 돋보이는데 다이브 내의 콘텐츠를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고 독자가 직접 콘텐츠를 올릴 수도 있다. 다만 기업의 멤버십 비즈니스는 출판사들과 달리 회원비를 받는 것이 원칙이며, 대형 서점처럼 책을 구매한 액수에 따라 각각 다른 혜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수익과의 연결은 간접적이며 포괄적이다. 기업과 고객의 관계는 문화 마케팅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이뤄진다.
출판계는 고객 확장을 위해 ‘구독’이라는 방식에서 벗어나 고객의 기호와 취향을 파악하고 분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목표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문화는 정해진 법칙대로 움직이지 않고 개인의 행태 데이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의 멤버십 비즈니스가 얼마나 기업의 수익에 영향을 미치는지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하지만 긴 시간 인류가 쌓아온 문화예술의 가치를 고객과 공유하고 교감하며 기업의 브랜드로 형성해 나가는 것은 수익 모델을 넘어선 의미를 지니기에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감정과 관계에 기반한 공연 멤버십
공연계에서 멤버십 마케팅은 안정적으로 고정 관객을 확보하기 위한 고전적인 마케팅 방법으로 자주 언급된다. 공연계 멤버십 프로그램은 유통이나 다른 분야의 멤버십 프로그램에 비해 한정된 집단을 대상으로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어느 곳에서도 제공할 수 없는 자신만의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자신만의 콘텐츠를 이용한 회원 서비스가 가능하므로 멤버십 운영의 우월성을 갖게 되지만, 그 우월한 혜택을 원하는 사람들이 한정돼 있다는 점 때문에 확장성이 적다.
공연은 무한 복제하거나 재생산할 수 없는 한정 상품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소멸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실제 티켓이 오픈했을 때 안정적인 구매율을 확보하지 못하면 리스크가 크게 발생한다. 공연 제작사 입장에서 멤버십은 충성도 높은 고정 관객을 통해 안정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다. 반면 관객 입장에서 멤버십은 특별한 서비스를 받으며 조금 더 유리한 환경에서 공연 관람 혜택을 주어서 실질적인 이익 이외에 호의적인 감정을 얻게 된다.
일본 극단 ‘시키(四季)’의 경우 1984년부터 운영한 멤버십 프로그램의 유료 회원이 무려 25만 명에 이른다. 시키가 회원들에게 주는 혜택은 단순하다. 회비(오프라인 잡지 배송 3,300엔, 온라인 잡지 구독 2,200엔)를 내면 일부 공연의 할인 혜택과 시키가 발행하는 공연잡지 ‘라 아르프(ラ・アルプ)’를 제공하고 선 예매 권한을 부여한다. 시키는 멤버십을 통해 안정적인 작품 운영을 도모한다. 2021년 6월 신작인 ‘겨울 왕국’은 회원들의 선 예매와 단체 예매만으로 1년 치 티켓이 거의 다 팔렸을 정도다.
매거진 ‘라 아르프(ラ・アルプ)’
국내에서도 지속해서 공연 콘텐츠를 제공하는 극단이나 공연장이 충성도 강한 회원을 확보하기 위해 멤버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유료 멤버십을 운영하는 곳은 콘서트 관객을 주 대상으로 하는 예술의전당과 롯데콘서트홀이 대표적이다. 국내 클래식 시장에서 해외 유명 필하모닉의 내한 공연이라 하더라도 1회 이상 공연하기 힘들다. 그만큼 관객층이 얕아 공연장으로서는 극장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충성도 있는 관객 확보가 중요하다. 반대로 클래식 마니아 관객은 적은 공연 횟수에서 좋은 좌석을 선점하길 원한다. 그래서 유료 회원에게 가장 중요한 혜택은 선 예매이다. 모두 할인율이나 추가 혜택 등에 차등을 두는 등급형 유료 멤버십 제도를 운영하지만, 회원 등급에 상관없이 유료 회원이라면 선 예매를 할 수 있다.
무료 멤버십을 운영하는 단체들은 장르의 관심과 더불어 단체에 충성도 높은 회원을 늘리려는 목적으로 운영되는 편이다. 무료 멤버십을 운영하는 대표적인 단체로 ‘LG아트센터’, ‘신시컴퍼니’, ‘HJ컬쳐’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관람 실적에 따라 일반 회원과 우수 회원으로 구분해 우수 회원에게 높은 할인율과 더 많은 혜택을 준다. LG아트센터의 경우 일반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가입만 하면 되지만, 지난 1년 동안 10회 이상 공연을 관람하거나 100만 원 이상 구매한 경우 다음해에 우수 회원 자격이 주어진다. 신시컴퍼니 역시 LG아트센터와 유사하게 등급을 나눠 운영한다. 단지 종종 신시컴퍼니는 멤버십 회원을 쇼케이스 등 특별 이벤트에 초대하는 등 특별 혜택을 제공한다. 대학로 뮤지컬 마니아를 주 타깃으로 하는 작품을 주로 선보이는 HJ컬쳐는 더 세분화한 기준으로 다양한 등급의 멤버십을 운영하면서 단체에 충성도 높은 회원을 양성하고 있다.
공연 단체들이 멤버십 제도를 운영하는 부차적인 이유는 마케팅을 위한 관객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체들은 멤버십 운영을 통해 기본적인 마케팅 데이터에 활용할 수 있는 회원 정보를 얻는 동시에 회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해당 작품의 만족도를 파악하기도 한다. 멤버십은 기본적으로 거래의 원리로 유지되지만, 주최사와 회원과의 밀접한 관계를 토대로 한다. 공연 멤버십은 감정과 관계의 밀도가 다른 분야의 멤버십보다 크다. 국립극단은 유료 회원과 무료 회원을 병행한다. 국립극단의 멤버십 제도가 다른 점이 있다면 단체와 작품에 애정을 갖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점이다. 2021년까지 운영했던 ‘읽어양득(일거양득)’과 같은 회원 참여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읽어양득’은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희곡을 회원들과 즉석에서 배역을 정하고 읽어보는 프로그램이다. 회원들에게 작품과 가장 먼저 만나는 특별한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단체와 작품에 대한 애정을 갖게 한다. 국립극단 작품이 초반 사전 예매율이 40~50%대로 상당히 높은 데에는 멤버십 프로그램을 통해 연극과 극단 자체에 애정을 갖게 된 회원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크게 한몫을 한다.
미술관을 후원하는 쉽고 재밌는 방법
미술관이 매년 새롭게 문을 열고 있다. 미술관은 기본적으로 연구와 교육에 힘쓰며 전시를 보급하는데 몰입한다. 그러나 새로운 관람객이 꾸준히 유입되지 않는다면, 미술관 또한 지속적인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미술관은 고정적인 관람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멤버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2019년도 ‘미술시장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멤버십을 운영 중인 미술관은 총 57개로 이 중 대부분은 티켓, 카페, 주차 등의 할인을 제공하는 기본적인 형태로 운영한다.
그런데 해외에서는 멤버십 가입자들이 고정 관람객일 뿐 아니라 미술관의 든든한 재정 후원자로서 이바지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가령 멤버십 가입자들이 회원 전용 프로그램을 통해 미술관에 대한 애정을 키우고, 네트워크를 형성해가면서 소액 후원자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멤버십 프로그램을 지속하는 관여도가 높은 회원들은 가입비가 증가해도 미술관의 재정에도 큰 도움이 되기 시작했고, 이들을 위해 미술관은 프로그램을 고도화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뉴욕현대미술관의 경우 멤버십과 후원자 프로그램으로 구분해 운영하고 있는데, 대대적인 멤버십 리뉴얼을 거치며 멤버들이 원하는 것이 ‘연결(Connect)’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극대화하는 프로그램을 설계해 높은 회원 수를 확보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가상 공간에서 이뤄지는 작가 스튜디오 방문과 같은 온라인 프로그램 혜택을 추가했으며, 멤버십 회원들의 관심사에 따라 드로잉, 판화, 사진 등의 장르와 취향별로 멤버들을 묶어주는 커뮤니티를 강화하고 있다.
리움미술관 ‘다르게 보기’ Ⓒ국립중앙박물관
국내에도 최근 단순 할인 혜택을 넘어 보다 정교한 멤버십 프로그램을 출시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리움미술관을 들 수 있다. 리움미술관은 개편 준비와 코로나19 확산 등이 겹치며 장기간 휴관 후 최근 대대적인 변화와 함께 재개관했다. 공간 구성과 로고 변화 등 다양한 부분이 바뀌었는데 그 중에서도 멤버십 프로그램이 눈에 띄게 변화했다. 그중에서도 새로 추가된 ‘다르게 보기’는 관람객의 작품 감상 시간이 평균 17초 내외로 짧다는 점에 착안해 미술관 소장품을 10분 이상 감상하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이외에도 미술관 고유의 장점을 살려 보존 연구실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추가하는 등 기존에 비해 보다 강화된 설계로 4개월 만에 회원 수가 기존의 2배로 증가했다. 또 다른 사례는 국립현대미술관의 ‘MMCA프렌즈’가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코로나19로 멤버십 프로그램을 중단했지만, 관람객이 자발적으로 미술관 활동에 참여하는 미션 참여형 프로그램인 MMCA프렌즈를 만들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실험을 이어갔다. 또한 토탈미술관은 작가의 작품을 NFT로 발행하는 것을 지원하고, 이를 미술관 멤버십과 연계했는데 판매 수익금의 일부는 또 다른 비영리단체에 기부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며 멤버십을 응용했다.
이처럼 미술관의 멤버십은 충성도 높은 관람객의 확보뿐 아니라 미술관의 뜻에 동참하는 이들과의 연대하는 기능을 한다. 또한 등급과 프로그램 모두 좀 더 정교하게 발전하고 있는 사례들이 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정부 지원과 기업의 스폰서십에 의존하던 대부분의 미술관이 정권 변화와 코로나19 팬데믹 등을 경험하며 새로운 방식의 재원 조성의 필요성을 실감했고, 이에 따라 멤버십 운영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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