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QU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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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다른 목소리들이 함께하는
문화예술정책을 꿈꾸며

타인과 의견을 나누는 소통은 단순한 대화의 단계를 뛰어넘습니다.
상대방을 설득하고, 문제를 공유하며 함께 해결해가는 것이 소통의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소통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함께할 때
더욱 큰 가치를 지닙니다. 거버넌스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구성원이 신뢰를 기반해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_김대현(A SQUARE 편집위원장)
자기 통치로서의
거버넌스
거버넌스는 여전히 진행 중인 사안으로 아직 그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담론의 방향이 일치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세부적인 사안을 뒤로 미루고 거칠게나마 정리하자면, 거버넌스는 문제 상황에 대해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복수의 사람 간의 상호 협력적 조정 양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정이 성립되기 이전에 참여자 사이의 갈등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참여자 사이의 이해 상충이 없다면 거버넌스 또한 불필요한 허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예고된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이 거버넌스 자체에 내장된 절차를 통해 조율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결정을 통한 거버넌스의 폐지나 거버넌스 바깥의 외력에 의한 해결을 유인하는 형식으로 표출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현상이 정치권력의 변동과 연동됐을 때 거버넌스는 ‘거버먼트의 연장’에 불과한 것이며 행정이 자신의 책임을 외주하기 위한 도구이자 단순한 수사에 그치는 것이라는 회의나 무력감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32개 위원회 중 무려 13개 위원회가 폐지 대상으로 지정된 것이나 서울문화재단 예술청에서 발생한 갈등도 이의 일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버넌스는 우리가 여전히 추구해야 할 중요한 과제임은 분명합니다. ‘민중(demos)의 통치(kratos)’라는 어원처럼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이 주권자로서 자신에 대한 자기 통치를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예술의 영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상생을 위한 동행,
문화예술 거버넌스
이번 호 SQUARE 코너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할 주제는 <상생을 위한 동행, 문화예술 거버넌스>입니다. 시작을 여는 정창호의 ‘문화예술 본질을 실현할 거버넌스의 핵심은?’은 이번 기획 전반을 아우르는 총론의 성격을 가진 원고로 정책 집단 및 문화예술 현장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거버넌스의 의미망과 그에 따른 이론적 배경을 설명하며 문화예술 거버넌스의 고유한 특성과 필요성을 톺아봅니다. 이와 함께 문화예술 거버넌스의 지향점을 ‘우리 함께’ 규정하고 참여자들 사이의 ‘공유된 이해’를 통한 신뢰 구축이 거버넌스를 유지할 수 있는 핵심 동인이라 설명하며 바람직한 문화예술 거버넌스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이원재의 ‘시련을 극복할 연대의 힘, 거버넌스’는 문화예술을 과정이 아닌 성과 중심으로 바라보는 현 정부의 태도 및 ‘따뜻한 동행’을 강조하는 국정과제와 달리 구체적인 문화정책에서 거버넌스 차원의 접근이 부재하다는 것을 비판하며 이에 따른 문화민주주의의 약화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합니다. 나아가 이를 극복할 방안으로 정치권력의 변동 여부와 무관하게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이자 실천의 도구로서 시민 주도의 거버넌스가 새로운 준거점이 돼야 함을 언급하며 민간과 정부의 책무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장석류의 ‘서울문화재단 ‘예술청’에서 벌어진 거버넌스의 가치 충돌’은 ‘민-관 정책 거버넌스 기반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설립된 서울문화재단 예술청에서 벌어진 민간과 지방자치단체의 갈등 상황을 분석합니다. 글은 거버넌스의 설립 근거, 조직의 독립성, 권한과 의무 설정 등 제도적 기반이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참여자들의 선의에 기반한 거버넌스 구조가 가지는 취약점을 분쟁의 구조적 원인으로 파악하며, 해당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향후 더욱 좋은 거버넌스로 거듭나기를 당부합니다.
양현미의 ‘설계의 실패인가, 운영의 실패인가 중앙정부의 문화예술 거버넌스 진단’은 정부 위원회 중 불필요한 위원회 통폐합을 목적으로 하는 ‘정부 위원회 정비 방안(2022.9)’을 중심으로 공적 기관에서 대표적인 거버넌스인 위원회 제도의 목적 및 현황에 대해 개괄해 해설하는 글입니다. 나아가 위원회 정비 방안을 제도 설계의 실패와 제도 운영의 실패 측면에서 그 타당성을 검토하며 해당 정책을 통한 문화예술 거버넌스의 위축을 우려하는 한편, 문화예술 분야의 대표 거버넌스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위상 정립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강보름의 ‘일방적인 거버먼트가 아닌 지속가능한 거버넌스를 꿈꾸다’는 행정기관이 인식하는 거버넌스가 다수의 예술인에게는 여전히 거버먼트로 인식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여성, 청년, 지역, 퀴어 등 소수자들이 거버넌스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에 대해 점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합니다. 또한 안전한 창작 환경 조성을 위한 공연예술자치규약 워킹그룹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 성과와 한계에 대해 평가하며 해당 사례를 통해 좋은 거버넌스의 요건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김상철의 ‘정책의 미로 속 나침반, 거버넌스 실현을 위한 제언’은 거버넌스를 정책 공급자를 중심에 두는 ‘정부의 기능’과 정책 소비자의 관점을 중시하는 ‘정부의 효능’, 두 측면으로 분류하고 ‘정부의 기능’만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이 있음을 인정하고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나아가 정부 위원회 정비와 관련해 의견 수렴 과정의 부재로 야기될 수 있는 공적 신뢰의 상실에 대한 우려와 함께 수직적 관계를 강제하는 보조 사업의 구조에 대해 비판하며 현장과의 공통 경험을 확보하는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PRISM에서는 나혜영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소위원회로 살펴본 문화예술 지원기관의 거버넌스 체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해당 기사는 독임제 기관이던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거버넌스에 기반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의 전환 과정 및 소위원회 설치 논리를 소개합니다. 또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참여했던 위원들과 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해 각자가 활동 과정에서 경험했던 성과와 한계를 토대로 앞으로의 소위원회 운영 개선 방안을 제안합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내부의 거버넌스 구조에 관심을 가지신 분이라면 일독을 권합니다.
SCENE에서는 ‘보람 공동체와 발전하는 문화예술 거버넌스’라는 제목으로 고윤정 영도문화도시센터장과의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좋은 거버넌스를 운영하기 위한 요건으로 참여자들에게 요구되는 사항은 무엇인지, 거버넌스 내부에 갈등이 발생했을 때 해결 방안은 어떠한 방식들이 있는지, 문화예술이 지역 공동체에 밀착할 방안은 무엇인지 등 거버넌스를 위한 좋은 참조점이 될 수 있는 인터뷰이니 꼭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예술 현장의 동향을 소개하는 FLOW에서는 ‘경험을 넘어 교감으로, 문화예술 멤버십’을 소개합니다. 예술 작품의 유통 과정에서 새로운 마케팅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는 멤버십 프로그램에 주목했습니다. 멤버십 프로그램은 초기에는 수익 증진을 위한 목적이었지만, 이후 서로에 대한 특별한 ‘감정’에 기반해 공급자와 소비자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또한 유사한 취향을 가진 창작자와 다른 향유자들과 연결돼 고도화하며 창작 및 향유 양식의 변화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김헌식, 박병성, 이지현 세 필자가 각 분야별 양상을 살펴주셨습니다.
이번 A SQUARE 3호는 거버넌스에 대한 원론적인 논의부터 시의성을 가지는 최근의 쟁점까지 고루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마주할 수 있는 문화예술 거버넌스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이정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뤽 낭시(Jean-Luc Nancy)는 ‘소통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 언급했습니다. 낭시에게 소통이란 공통된 사고 회로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과 같은 논리를 가진 사람과의 대화는 같은 사고의 경로가 반복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소통이 아닌 동일성의 강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소통이란 불완전한 존재들이 서로의 한계를 인식하고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는 데 있습니다. 거버넌스 또한 이와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이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에게 기댈 때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의미를 생산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A SQUARE 또한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고 끊임없이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김대현
김대현(A SQUARE 편집위원장)

2011년 ‘플랫폼’ 문화비평상, 2012 ‘실천문학’ 문학평론 신인상을 수상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플랫폼’, ‘내일을 여는 작가’의 편집위원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소위원회 민간위원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당신의 징표-이름의 존재론과 성의 정치학』, 『불온한 제국』, 『이소선의 기억과 기록(편저)』, 『전태일의 친구들(편저)』, 『법정에서 만난 역사(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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