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QUARE

지난호 보기

  • ∙VOL.12 [2024.09]
  • ∙VOL.11 [2024.07]
  • ∙VOL.10 [2024.05]
  • ∙VOL.09 [2024.03]
  • ∙VOL.08 [2024.01]
  • ∙VOL.07 [2023.11]
  • ∙VOL.06 [2023.09]
  • ∙VOL.05 [2023.07]
  • ∙VOL.04 [2023.05]
  • ∙VOL.03 [2023.03]
  • ∙VOL.02 [2023.01]
  • ∙VOL.01 [2022.11]

FLOW

감각과 예술의 페어링
오감의 협응이 만드는 플레이

같은 작품도 환경, 감정에 따라 다르게 감각된다.
좋은 향기가 시각적 만족도를 높이기도 하고
공간의 매력이 미각을 살리기도 하는 것처럼.
인간은 감각적으로 완벽히 협응하는 멀티플레이어다.
때로는 뇌가 기억하는 감각을 대입해 플레이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의 감각을 확장시켜 상상력을 자극하고
예술의 본질을 극대화하는 멋진 사례들을 소개한다.
글_강유정,이지현,조인선
이야기의 뼈대 위에
감각의 집을 짓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논픽션 <위건 부두로 가는 길(The Road to Wigan Pier)>에는 냄새에 대한 인상적 진술이 하나 등장한다. “하류층 사람들은 냄새가 고약하다”라는 문장으로 우리는 이 문장을 읽음과 동시에 고약한 냄새를 떠올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냄새는 각자의 주관적 기억과 경험에 의존한다. 문장은 같지만 떠올리는 냄새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만약 책과 함께 그런 냄새가 담긴 병이 함께 전달된다면 어떨까? 물론 악취일 때야 열어 볼 엄두가 나지 않겠지만, 향기로 묘사될 땐 어떨까? 강신재의 소설 <젊은 느티나무>의 첫 문장,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에 등장하는 그런 비누 냄새라면 말이다.
문학은 가장 이념적 매체인 문자를 통해 형상화된다. 시각을 통해 활자를 읽지만, 활자가 구성하는 세계는 고도의 추상화 과정을 거친 세계의 압축이다. 청각이나 후각, 촉각과 같은 오감의 세계는 묘사나 진술을 통해 전달되곤 한다. 이에 비해 영화, 드라마 등의 영상 매체는 시각적 요소를 통해 상상의 부담을 상당 부분 제거해 준다. 문자를 통해 상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쉽고 분명하다. 문학의 가장 오래된 감각화 방식은 바로 시각과 청각을 동원한 영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대프니 듀 모리에(Daphne du Maurier)의 소설 <레베카(Rebecca)>에 등장하는 맨덜레이 저택이나 대문자 R의 형상, 저택을 휘감는 왕성한 생명력의 장미는 스크린에 재현된 이미지로 충분히 드러난다. 피터 쉐퍼(Peter Shaffer)의 희곡 <아마데우스(Amadeus)>는 시청각을 동원한 연극으로 모차르트 음악을 재현해 왔다. 하지만 무대 예술의 한계상 완벽히 복구할 수 없었던 시대극의 풍미는 밀로스 포만(Miloš Forman)의 영화 <아마데우스>의 미술, 무대 장치, 의상을 통해 훨씬 더 풍성한 감각으로 재현됐다. 시각과 청각의 요구를 영화라는 매체가 훌륭히 증폭해낸 것이다.
영화관이 점차 4D 같은 감각적 자극을 추구하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영화는 시각과 청각의 자극을 통해 관객에게 가상 현실에 대한 몰입감을 높인다. 하지만 스크린은 2차원이고, 현실은 3차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집에서의 시청 환경에 익숙해진 관객을 위해 차별화된 상영 환경을 제공하는 영화관의 물리적 노력이 늘고 있다. 물과 바람을 이용한 촉각적 자극 그리고 냄새를 뿌리는 후각 자극을 보탬으로써 다차원, 다감각의 만족을 노리는 것이다. 이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도구를 통해 좀 더 실감 나는 체험을 추구하는 VR 스토리텔링의 성장과도 연결된다. 선댄스 영화제에서는 매년 VR 작품들이 소개된다. 2018년 소개된 <벽 속의 늑대(Wolves in the Walls)>는 가상현실이 추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준다. 그것은 기술적 완벽함이 아니라 몰입 가능한 이야기, VR이라는 새로운 매체에 어울리는 이야기이다.

영상 : <벽 속의 늑대> 예고편 ⒸFable

즉, 문학과 다른 예술의 감각적 페어링, 그 성패를 가늠하는 것은 기술적 완벽함이 아니라 바로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얼마 전, 작가와 문학 작품 속 캐릭터의 이름을 딴 향수가 판매된 적 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 작품 속에 등장인물인 싱클레어의 향수였다. 성장하는 소년, 알을 깨고 나오는 새의 이미지를 가진 소년의 향기는 매력적이다. 문학 작품 <데미안(Demian)>의 맥락이 없었다면 싱클레어라는 허구적 인물의 향기가 궁금할 리도, 매력을 가질 리도 없다. 체험형, 이머시브(Immersive) 공연의 성공적 사례로 꼽히는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사례도 그렇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가 1925년에 출간한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의 황금기, 뉴욕이 성장과 발전의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오르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세련된 상류층, 보브컷, 플래퍼 스타일, 뉴욕 시내의 환락과 매일 밤 열리는 파티, 쓰러질 만큼 넘치는 압생트(Absinth), 재즈 시대라고 불렸던 미국의 1920년대가 없었다면 <위대한 개츠비>가 감각적으로 풍요로운 스펙트럼을 가질 리가 없다.
2022년 연극, 미디어 아트, 설치미술, 현대무용, 웨어러블 아트 등 다양한 표현 방식을 통해 재현된 이선희 작가의 소설 <계산서> 역시 여성에 대한 동시대의 새로운 이해와 요구 없이는 불가능한 재해석이다. 연애와 결혼, 임신과 유산 같은 사건의 갈등이 근대 신여성과 2000년대 여성의 시간차를 넘어 감각적 세련화와 다양화를 통해 소통된다. 주제에 대한 공감이 세월을 무색하게 만든 것이다. 볼거리, 들을 거리, 먹을거리 오히려 지나치게 감각을 자극하는 것들이 많아진 시대. 만약 문학이 감각의 페어링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시대를 초월해 감각의 중심이 되어 줄 뼈대이며 그 뼈대가 바로 문학과 이야기이다.
강유정
강유정(강남대학교 글로벌문화학부 교수)

조선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KBS <강유정의 영화관, 정여울의 도서관>을 진행 중이며, 경향신문에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를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시네마토피아』, 『타인을 앓다』, 『스무살 영화관』 등이 있다.
 

협업의 핵심이 된
작가의 상상력
미술 분야에서는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이 활발히 이뤄진다. 여러 감각 중에서도 시각은 컬래버레이션의 결과물을 가장 극명하고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컬래버레이션의 기준은 무엇일까? 컬래버레이션의 사전적인 의미는 ‘협력하는 것’이지만, 기업과 브랜드 간 컬래버레이션은 단순한 협업과 협력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컬래버레이터와 컬래버레이티가 상호 동등한 위치에서 협업하며 두 주체가 서로의 강점을 나눠 가져야 한다. 이 과정은 상호 모두에게 이익이 돼야 하며, 협력의 결과물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야 한다. 성공적인 컬래버레이션이란 이 모든 것을 충족하면서 그 자체로 독창성을 지녀야 할 것이다.
최근 국립박물관문화재단과 페이퍼 아트워크(Paper Artwork) 작가 ‘나난’과 협업해 탄생한 ‘나난 롱롱타임플라워 초충도 에디션’은 미술 분야의 좋은 컬래버레이션 사례로 들 수 있다. 먼저 해당 작업은 재단과 예술가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탄생했다. 작가는 종이로 만든 작품, ‘시들지 않는 그림 꽃, 롱롱타임플라워’를 통해 감사와 축하의 의미를 전통성과 연결해 작가만의 미감으로 제시하는 실험을 이어왔다. 이 같은 철학 아래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 중 신사임당의 <초충도 10폭 병풍> 속 그림 두 점을 선정했고, 이를 재해석해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으로 탄생시켰다. 주로 음료나 휴대폰 케이스처럼 작품의 이미지를 커버로 활용하는 등 디자인 측면으로 접근하던 기존의 아트 컬래버레이션과 달리 이번 작품은 박물관의 소장품과 작가의 새로운 시선이 결합해 제3의 창작품을 만들었다. 두 주체가 동등한 위치에서 진정한 의미의 협업을 했다고 여길 수 있으며, 섬세한 시선으로 풀과 곤충의 모습을 담아낸 초충도를 오늘날의 시각에서 재조명해 관람객들이 박물관 소장품에 다시 관심을 갖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초충도 에디션

<초충도 10폭 병풍>

‘초충도 에디션’과 <초충도 10폭 병풍>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이렇게 탄생한 ‘양귀비와 줄장지뱀’, ‘맨드라미와 소똥구리’ 2종은 각 500세트 한정으로 판매했으며, 박물관에 직접 방문해 구매하기 힘든 고객들을 위해 온라인으로 추가 판매를 진행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관심의 배경에는 과거와 현재, 시각과 후각 등 다양한 정서가 다채롭게 교차하며 소비자의 감각을 확장시켜주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여러 개의 종이꽃을 나만의 방식으로 조합해 완성할 수 있는 점 또한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갔으리라 생각한다. 이번 사례처럼 앞으로 미술 분야에서 작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그 과정 자체가 예술이 되는 컬래버레이션 작업이 늘어나길 기대해본다.
이지현
이지현(널 위한 문화예술 COO)

학부에서 경영학과 회화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예술 경영학을 공부했다. 스타트업 〈널 위한 문화예술〉에서 예술의 가능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하고 있다. 회사 밖에서는 예술이 작동하는 순간을 탐구하는 문화 기획자로 활동하며, 예술을 기획하는 사람들과 연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가 주목한
전통예술의 매력
진부함과 고루함의 대명사로 인식된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은 마치 전통예술인의 윤리 의식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전통예술인과 글로벌 명품 브랜드와의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전통문화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전통예술의 혁신과 새로운 가능성을 엿본 두 가지 콜라보레이션 사례를 소개해본다.
1764년 루이 15세의 지시로 설립된 프랑스 최초의 크리스털 제작소 ‘바카라(Baccarat)’는 250여 년 동안 ‘최고의 소재, 최고의 기술, 장인 정신의 계승’이라는 이념을 이어가며 세계적인 라이프 스타일 명품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설립 이후 250여 년 동안 한 번도 꺼지지 않은 바카라 제작소의 섭씨 2,000℃ 용광로에서는 최고급 수제 크리스탈 샹들리에부터 테이블 액세서리, 조형 장식물 등 최소 수십만 원에서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크리스탈 제품이 만들어졌다. 국내에서는 GD(지드래곤)이 소장한 샹들리에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품격과 헌신의 가치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 바카라가 국내에서 뜻깊은 전시회를 열었다. 지난 4월 21일부터 5월 21일까지 ‘메종 바카라 서울’에서 열린 한국 전통 민화 협업 전시 ‘Traditions in Harmony: Baccarat Reimagined in Korean Folk Art’이다.

Traditions in Harmony

Traditions in Harmony

Traditions in Harmony

‘Traditions in Harmony’ Ⓒbaccarat_korea

이 전시는 오스트리아 빈 세계박물관(Weltmuseum Wien)에서 열린 ‘책거리-나의 서재, 나의 자신(Chaekgeori: Our Shelves, Our Selves)’ 전시에 초청받았던 현대 민화 작가들이 참여해 한국의 민화와 바카라 브랜드가 결합한 작품을 선보였다. 특별한 점은 작가들의 작품을 주제에 맞춰 나열하는 것에서 벗어나 조선시대 서가를 배경으로 현재의 장식장에 옛 물건과 현대 물건을 어우러지게 놓고 그사이에 바카라 제품을 담아냈다. 작품과 브랜드의 세계관을 연결한 민화인 셈이다. 조선시대 책거리를 모사한 작품부터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까지 다채롭게 선보이며 책거리 속 물건을 매개로 프랑스와 한국의 아름다운 예술과 문화를 융합해 과감하게 표현했다. 책가도에 바카라의 대표 제품을 이질감 없이 드러내야 함에 따라 참여 작가들은 6개월 이상의 전시 준비 기간 동안 새로운 작품을 완성했다.
한편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브랜드 ‘발베니(Balvenie)’는 대를 이어 증류소를 운영하며 전통 방식으로 소량의 프리미엄 위스키를 생산하는 명품 브랜드이다. 장인 정신을 브랜드 최고 가치로 삼는 발베니는 한국의 전통문화가 가진 온고지신에 주목한다. 전통의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새롭게 진화하는 한국의 전통문화에 반해 2021년부터 한국의 장인들과 협업하는 ‘발베니 메이커스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음악, 미술, 디자인 등 장르를 넘나드는 전통예술 장인의 ‘만들기(Making)’ 과정을 통해 매해 6명의 장인을 선정하고, 예술의 본질적인 가치와 과정을 공유하며 서로의 영감을 주고받는다. 2023년에는 훈, 장구, 가야금, 거문고, 대금, 해금 등 한국 전통 국악기를 만드는 악기 명장들과 캠페인을 이어가고 있는데 장인들의 악기로 연주한 뮤직비디오 형식의 연주 음원과 영상이 단일 영상 기준 1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대중들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발베니 메이커스 캠페인 송훈 편 ⒸThe Balvenie KOREA

앞서 언급한 전통예술과 글로벌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은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의 성공 사례로 여겨진다.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역화(Localization)가 결합한 협업에서 기업과 브랜드는 고유한 문화와 풍토가 반영된 세계화를 추구하는 동시에, 각국의 전통예술과 예술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어느덧 한국의 전통예술은 글로벌 기업의 뮤즈(Muse)로서 세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조인선
조인선(전통예술 디렉터)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아쟁을 전공했다. 한국관광공사와 서울시의 대표 스타트업으로 선정된 국내 최초 전통예술플랫폼 ‘모던한’을 운영하고 있다. ‘전통은 진화 중’이라는 슬로건으로 한국의 다양한 전통예술의 우수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글로벌 시장으로 확산시키고자 한다.

함께 읽으면 좋을,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