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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내일을 위한 질문들
in 베니스 비엔날레

‘미래의 실험실’을 주제로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한국관은 2086년, 인류가 마주할 문제를 다룬다.
인간의 이데올로기와 욕망을 드러내는 수단인 건축은
산업화, 도시화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오늘날의
인류가 마주한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묻는다.
박경과 정소익, 두 예술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어_김광수,정다영 | 인터뷰이_박경,정소익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전경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전경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전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Daniele Nalesso

‘미래의 실험실’을 주제로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 제18회 건축전에서 한국관은 <2086: 우리는 어떻게?>라는 이름으로 두 갈래 전시를 선보였다. ‘투게더 하우’ 게임과 함께 구성된 네 개의 ‘미래 공동체 프로젝트’에서는 동인천, 군산, 경기도 일대가 안고 있는 지역의 문제를 언급한다. 동인천은 지역 전문가 민운기(스페이스 빔)와 건축가 서예례(Urban Terrains Lab)가 함께 작업한 <미래로서의 폐허, 폐허로서의 미래> 프로젝트로, 군산은 우당탕탕(윤주선, 채아람)과 강예린(서울대학교), SoA(이치훈)의 <파괴적 창조> 프로젝트로 조명됐다. 경기도 일대 마을은 지역 전문가 김월식과 건축가 팀 N H D M (황나현, 데이빋 유진 문)이 원주민과 이주민이 따로 또 같이 섞여 살면서 환경을 변화시켜가는 모습을 표현하는 <이주하는 미래>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그 과정에서 그린 2086년의 세 도시의 모습은 건축적 미래 시나리오, 정재경 작가 <어느 미래>로 그려졌다. 이번 한국관 전시는 박경 미국 샌디에이고 시각예술학과 교수와 도시건축가 정소익 도시매개프로젝트 대표가 공동으로 예술감독을 맡았다. 먼 미래가 아닌 지금의 이야기, 국가가 아닌 지역에 초점을 맞춘 두 사람은 부의 불평등, 환경 파괴, 인류 멸종 시나리오에 직면하게 된 이유가 우리의 ‘선택’에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미래는 과거의 성찰에서 출발한다”
박경 예술감독에게 묻다
박경은 2007년부터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캠퍼스 시각예술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뉴욕에서 스토어프론트를 설립해 디렉터로 활동했고, 디트로이트의 국제 도시 생태 센터와 로테르담의 센트랄라 미래 도시 재단 디렉터,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제3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예술감독 및 수석 큐레이터 등으로 활동했다. 개인전 <Kyong Park: New SilkRoad>, <Imagining New Eurasia>를 개최했고, 최근에는 컬렉티브 협업 기반의 연작 프로젝트 시비촌(CiViChon)을 진행했다.
Q. 감독님은 도시의 중심이 아닌 주변의 상황, 혹은 대도시뿐만 아니라 지역과 건축에 관한 관심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뉴욕에 스토어프런트(Storefront for Art and Architecture)를 설립하고 디렉터를 하시던 1982년까지도 그 관심사가 회고되는 것 같고요. 감독님은 예술적인 혹은 건축가적인 작업뿐만 아니라 심도 있는 리서치와 연구를 오랫동안 해 오신 것으로도 알고 있습니다. 간단하게나마 그러한 관심사와 함께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시게 된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말씀하신 대도시의 중심부뿐만 아니라 쇠락하는 도시에 대해서도 40년 넘게 관심이 있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은 지방이나 시골 지역에도 관심을 뒀는데 그 과정에서 2021년 ‘시비촌(CiViChon)’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이를 비엔나 비엔날레에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이 작업이 한국의 마을을 대상으로 작업했던 첫 프로젝트였는데요. 이후 지난해 ‘옵/신 페스티벌’에 초대돼 그 프로젝트의 두 번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시비촌2(CiViChon2)’를 선보였습니다. 이 작업들은 군산이나 목포 등의 마을지역 커뮤니티와 협업하며 워크숍과 리서치를 병행하는 과정이었고, 같은 주제 선상에서 동인천의 배다리 커뮤니티와도 관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대도시나 지방 도시와 작은 마을 혹은 지역 커뮤니티와의 상관성에 주목하는 작업으로 이러한 과정이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작업의 밑거름이 됐고, 참여의 계기를 만들어줬습니다.
Q.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최 측 총감독인 레슬리 로코(Lesley Lokko)는 이번 전시의 키워드를 ‘미래를 위한 실험실’이라고 했더군요. 이번 한국관은 이 질문에 군산, 경기도, 인천의 작은 지역 커뮤니티로 응답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의 지역 커뮤니티에 대해서 어떤 가능성과 문제 상황을 보신 걸까요? 해외의 주변부 지역 커뮤니티와 다른 특이점들이 군산, 인천, 경기도의 작은 마을에서 보이던가요? 세 지역을 선택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먼저 다른 나라들과의 유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역 마을의 인구 감소 및 경제적 쇠락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도시화이잖아요? 사람들은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했습니다. 이 도시화는 물론 산업화 및 근대화의 결과이겠지요. 한국은 6∙25 전쟁 이후에나 본격적으로 시작됐죠. 물론 일제 강점기에도 이뤄졌지만 아마 양곡 수탈이 더 중요했으니 도시화, 산업화는 아주 부분적이었던 것 같고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한국이 이토록 뒤늦게 산업화와 도시화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서구나 북미의 그것을 추월하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지방의 마을이 버려지게 됐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시골이나 지방 마을이 점점 식민의 대상으로 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도시 권력에 의한 지역 식민화죠. 사실 이 현상은 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다른 점은 도시에서 지방 마을로 되돌아가려는 귀농이나 귀촌의 움직임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해외와 다르게 아주 특이한 점은 이 움직임에 모든 세대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은퇴한 세대들이 있고 도시의 삶이나 일에 염증을 느낀 중년 세대도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하게는 청년 세대들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도시에서 생기는 취업과 같은 기회의 어려움이나 낮은 연봉에 대한 실망감, 도시 생활비의 부담 등의 이유로 귀농이나 귀촌을 하는 것 같습니다. 지방에서 이들은 소매업이나 자영업을 하고, 소주나 막걸리를 개조해 새로운 상품을 생산하는 등 과거의 지역 특산물을 되살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도시와 건축의 측면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 세대들이 도시의 문화를 지방 마을로 가져온다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도시의 생활 혹은 생활권이 지방마을로 들어오는 것인데, 저는 이 점이 가장 특이한 한국의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운기X서예례 <미래로서의 폐허, 폐허로서의 미래>

민운기X서예례 <미래로서의 폐허, 폐허로서의 미래>

민운기X서예례 <미래로서의 폐허, 폐허로서의 미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Daniele Nalesso

Q. 감독님은 기후 변화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그리고 이로 인한 이주, 이동성 등에 대해서도 주목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기후 변화, 이주 및 이동성 그리고 지역의 상관관계가 있을 텐데, 이를 어떻게 보시나요?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말씀하신 세 가지는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한국은 저출산에 의한 인구 절벽 때문에 걱정이 많은데, 저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다소 래디컬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2002년 독일 투자은행 도이치뱅크에서 발표한 자료를 읽은 적이 있어요. 당시 독일 인구가 8,200만 명이었는데, 2050년 즈음에 5,400만 명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연구와 달리 현재 독일 인구는 8,200만 명가량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구 환경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인구 감소는 좋은 일입니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이유는 결국 경제 문제 때문으로 이는 영원한 경제 성장이라는 생각에 몰두해 경기 후퇴, 저성장에 지나친 두려움을 갖고 있기에 발생합니다. 저는 이 예측이 통계상의 실제 상황보다 훨씬 과장돼 있고, 심리적 불안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먼저 생산과 소비에 관계 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독일처럼 수출 기반 국가인 한국은 이주나 이민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가령 최빈국인 아프리카는 가구당 5명 이상의 출산율을 보이고 있어요. 국가 내에서 빈부격차가 클 뿐 아니라 국가 간 빈부격차도 극심한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노동력을 출산율이 높은 저성장국가에서 출산율이 낮은 고성장 국가로 이동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동남아시아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죠. 저는 이것이 오래전 제국 식민주의 이후의 촉발된 국가 간 불평등 문제를 개선할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은 노동 상품 시장으로서 새로운 식민적 상황이 있기는 하지만요. 그리고 동시에 우리 역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은 동질성이 강한 집단이고 외국인 혹은 외국 문화의 국내 유입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고, 그렇기에 그 수와 범위가 증가하면 갈등과 두려움이 발생할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이미 많은 나라가 먼저 이 같은 문제를 경험해 우리가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 서구를 좇기보다 서구의 부정적인 상황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우당탕탕X강예린, SoA <파괴적 창조>

우당탕탕X강예린, SoA <파괴적 창조>

우당탕탕X강예린, SoA <파괴적 창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Daniele Nalesso

Q. 그렇다면 말씀하신 이슈를 이번 한국관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담아냈는지, 또는 작가들이 이러한 부분에 어떤 문제의식을 느끼고 개입 혹은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관은 3개의 서로 다른, 그리고 아주 작은 지역의 커뮤니티를 다루고 있습니다. 3개의 사례이자 3개의 서로 다른 이슈로 각각의 작업은 그 지역의 커뮤니티 리더와 건축가, 아티스트와의 협업했습니다. 동인천 배다리 마을은 고속도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마을을 둘로 자르고 많은 건물을 파괴되도록 예정됐습니다. 지역 커뮤니티가 15년 넘게 이에 대항해 싸우면서 완공이 중단되고, 고속도로는 지하화됐습니다. 커뮤니티가 복원 작업을 하고 있지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배다리 주민들은 거대한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야심의 희생자들입니다. 한국관은 배다리 마을 커뮤니티가 희생자의 관점에서 그들의 미래를 어떻게 자체적으로 그릴 수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신들의 미래를 가질 수 있는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이죠.
군산에서는 ‘SOA건축가그룹’이 리서치 하고 지역 커뮤니티 리더가 경험을 공유하며 함께 작업했습니다. 군산은 다른 많은 지역처럼 시청이 신도심으로 옮겨가면서 주택 단지가 새로 개발됐고 도시 중심부에도 상당히 많은 빈집이 있습니다. SOA건축가그룹은 군산 외부에서 온 대안적 그룹 ‘우당탕당’과 작업을 시도했습니다. 우당탕탕은 외부에서 왔지만, 군산의 전통시장을 재생하거나 오래된 시민회관을 개축하는 등 지역 특성이나 전통을 되살리는 활동을 합니다. 동인천 배다리 마을이 개발에 저항했다면, 군산은 쇠락과 폐허를 받아들이자고 말합니다. 싸우기만 할 수는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자연이 폐허의 도시로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이자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빈집을 철거하고 쌈지공원 같은 휴식시설, 공공시설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당탕탕은 이 같은 작업을 해왔고, 그 결과 쌈지공원 주변에 지역 커뮤니티 관련 교육, 청년을 위한 프로그램이 실행될 수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지방자치단체 정부로부터 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특이하게도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도시재생이나 탈도시, 인구 분산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죠. 경기도 안산은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네팔, 티베트, 동남아시아 등 다른 문화 인구가 어떻게 한국의 농촌 지역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안산의 중심부로 이주하게 됐는지, 그리고 이것이 만들어낸 혼합 문화, 그들의 생활 조건과 생각을 다룹니다. NHDM은 이러한 것들에 대한 설문조사와 콜라주 작업을 했죠.
Q. 동인천 배다리팀과 군산팀의 접근이 꽤 다릅니다. 배다리팀이 자신의 지역에 대한 장소적 소속감으로부터 비롯한 의미를 고수하고 실존적 투쟁을 한다면 군산팀은 아예 복원이나 건설보다는 해체에 의미를 두고 항구적인 이동을 전제로 하며, 장소보다는 해체를 위해 들고 다니는 도구에서 소속감과 실존적 의미, 커뮤니티 매개의 가능성을 두는 것 같습니다. 대단히 다른 접근인데 감독님은 두 가지 중 어떤 접근이 한국 사회에서 더욱 유효할 것으로 생각하시나요?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배다리 커뮤니티는 싸우고 변화에 저항하며, 지속적인 지역민이 되고자 합니다. 군산팀은 쇠락을 비롯한 대부분 상황을 받아들이고 외지인도 받아들입니다. 군산은 명백히 문화나 사회, 도시와 마을의 분열에 바탕 한 관계성을 바탕에 두고 접근합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의 접근만을 생각한다면 모든 것이 해결책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해결책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각 지역의 사람과 문화, 마을 등 모든 상황이 다르기에 문제도 해결책도 미래도 다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Q. 한국관 전시 도록에 ‘내일의 신화’라는 챕터가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며 전면에 등장합니다. 지금 시대에 신화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또한 ‘내일의 신화’가 전시 구성과 내용에 어떤 관련이 있나요?
신화는 과거와 관계돼있습니다. 그리스 신화는 모두가 알고 있고 서구뿐만 아니라 아시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는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미래에 대해 할 수 있는 생각은 그저 하나의 픽션이 될 뿐입니다. 픽션보다는 신화가 훨씬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신화에는 스토리와 전통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이 챕터는 큐레이터 플랫폼 이플럭스(e-flux)와 함께 협업했습니다. 사실 그들이 저희를 이플럭스의 섹션에 초대했고 우리가 신화를 다루자고 제안함으로써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이플럭스에서 해외의 3인을 초청하고 저희가 한국 작가로 나머지 분들을 초청했는데 결과적으로는 한국 작가들의 텍스트가 더 흥미롭게 나온 것 같습니다. 제가 희망하던 신화의 성격에 더욱 부합했으니까요. (웃음) 이 작업의 의미는 한국관 전시의 정소익 감독님과 구성한 ‘투게더 하우’ 게임으로 연결됩니다. ‘투게더 하우’ 게임은 진보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되며, 지역이 아닌 글로벌과 역사에 대한 것입니다. 진보 관념은 미래가 과거보다 낫고 시간은 예정된 완전성을 향한다는 전제로부터 탄생했습니다. 어떤 이는 그 시작을 르네상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합니다만, 계몽주의 시대에 확연해졌다는 것은 명확하죠. 저는 이 관념이 에덴동산과 같은 평화로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거나 혹은 인간에서 신이 되는 그런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후 변화는 이 같은 관념을 깨뜨렸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미래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한 것이죠. ‘투게더 하우’ 게임은 ‘우리의 미래는 무엇인가’를 묻는 테스트입니다. 정치, 시민 사회, 문화, 종교기관을 대변하는 다국적 등장인물이 지금부터 전 세계 인구가 정점에 달하는 2086년 사이의 미래에 관해 14개의 질문을 던지는 가상의 게임이지요. 참가자는 일종의 퀴즈쇼 형식의 게임에서 질문을 듣고 객관식의 세 개 답과 이어진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버튼 중 하나를 누릅니다. 전면에는 폭 12m에 높이 2m의 스코어보드가 있습니다. 1시간 동안 16명의 참가자가 초대되는데 이것은 최초의 컴퓨터인 애니악에서 따온 모델입니다. 3일 동안 정보 축적이 이뤄지고 그 결과는 알고리즘, 우리가 ‘에코그램’이라 붙인 방식으로 스코어보드에 등장합니다. 이 과정에 따라 1년간의 환경 정보가 등록된다고 가정하고 베니스 비엔날레가 종료되는 11월까지 실행됩니다. 그때가 되면 어떤 미래가 그려질 것인지 한번 확인해보자는 것이지요.
Q. 이것이 미래의 신화를 만드는 하나의 방법인 것인가요? 아니면 그저 환경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 위한 수단인가요?
미디어를 통해 무수히 많은 기후 변화 소식을 듣고 전 세계 지도자들과 전문가들이 환경위기에 대처하는 대안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저는 사실 무엇 하나 합의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위기의식이 가중되면서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기도 하고 전기차의 판매율도 높아졌지만, 아무도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반기를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계속 위기를 향해 가고 있죠. 그 이유는 ‘소비자의 선택권’ 때문입니다. 아무도 차를 작게 만들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10년에 한 번만 바꾸자는 주장도 하지 않습니다. ‘소비자의 선택권’이라는 관념은 ‘홍보의 아버지’인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Louis Bernays)’1창작물입니다. 버네이스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미국 대량 소비 형태와 연결하면서 그전까지 필요나 수요에 의해 규정된 산업 생산량이 욕망으로 인해 필요 이상을 사거나 사길 바라게 됐습니다. ‘투게더 하우’ 게임은 이러한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스코어보드에는 제가 쓴 44개의 질의와 선택 문구가 있습니다. 이는 이미 과거에 인류가 던졌던 일종의 ‘파우스트 거래’에 관한 질문들입니다. 인간이 자연에 속하거나 그 바깥에 머무르기도 하면서, 자연에 속하면서 자연을 정복하려는 이중적인 인류 모습, 그로 인한 갈등과 거래를 이야기합니다.
Q. ‘투게더 하우’ 게임과 신화가 어떤 상관성을 갖는지도 궁금합니다. 근대에 와서 역사주의가 우주론(Cosmology)을 대체하면서 우주론이 사라지고 물량화돼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죠. 지금 시점에서는 역사주의조차도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역사주의에는 기술적 산업적 진보 사관도 있지만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가치도 함께하잖아요? 감독님은 역사주의를 폐기하자는 견해를 갖고 계시나요?
저는 지금의 기후 변화 엔드게임이 신대륙을 발견한 해이자 이베리아반도를 가톨릭이 재정복한 레콩키스타(Reconquista)2해인 1492년도에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이때부터 두 가지 일이 발생했는데 하나는 서구 제국주의 시대가 열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 세계관이 세계를 지배한 것입니다. 두 가지가 팀을 이루면서 우리는 단 하나의 선형적 역사관을 갖게 됐습니다. 우주론은 이와 매우 다릅니다. 우주는 원형이었고 그 안에 카디널 축 혹은 로만 축을 따라 정방형으로 도시, 인간 세상이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림 속에 인간이 떠 있는 모습을 보면 코페르니쿠스 이전에도 우리가 더 이상 우주론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말하자면 역사는 우리로부터 자유로워지기로 한 것입니다. 인간과 접촉했던 수많은 것들이 결국 절멸했고 인간 역시 절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인간과 함께 사라지길 원하지는 않습니다. 역사는 더 이상 인간에 의해 쓰이길 원치 않고 인간에 의해 제어되길 바라지도 않습니다. 혹은 인간이 성취한 모든 것들이 거대한 공동묘지가 되길 바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는 우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왜 이런 기후 변화를 일으켰는지 심문하는 듯 보입니다. 이것이 ‘투게더 하우’ 게임이 전하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는 역사가 우리의 운명을 제어하는 것이지요.

투게더 하우(Together How) 게임

투게더 하우(Together How) 게임

투게더 하우(Together How) 게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Daniele Nalesso

Q. 환경 문제나 기후 변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지만 말씀하신 대로 많은 사람들이 나아지는 것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다 보니 저항이나 비판도 무력해지고 심지어 그런 태도 혹은 비판적 행동주의는 별 의미가 없다라는 입장도 생기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속주의3자들의 주장이 그러한데 왼쪽으로는 마크 피셔(Mark Fisher)나 오른쪽으로는 닉 랜드(Nick Land) 같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 사람들은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나 기술적인 진보를 오히려 더욱 가속화시켜서 다음의 패러다임으로 빨리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지역 생태주의자들이나 생태활동가들은 과거의 자연 친화적이고 장소 중심적인 삶의 태도를 고수하고 복원해야 한다는 다소 복고적인 입장도 있습니다. 제도권에서는 이 두 가지가 교묘하게 접합되는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하고요. 감독님은 이 양자의 입장도 아닌 것 같은데 이러한 견지에서 감독님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 생태에 대한 견해, 혹은 자본주의의 대안 행동에 대한 의견을 짧게나마 듣고 싶습니다.
대단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죄송하지만 아직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더 공부해야 할 것 같고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 제 고민을 이야기하자면, 근본적인 질문이 드는 거예요.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이에 대해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가? 실제로 중요한가? 같은 질문 말이죠.
Q. 감독님은 상당한 비관주의자 아니십니까?
아 그렇죠.(웃음)
Q. 그런 비관적인 의식에서 한국관과 같은 제안을 하시는 것이 그래도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다는 것이고 어느 정도 낙관적이고 싶다는 마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웃음)
한국관을 통해서 저는 무엇보다 사람들의 의식을 흔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 안주하면 안 된다고요. 세계 곳곳에서 재난이 일어나고 있고 무엇보다 사회 속에서의 갈등과 폭력이 만연하고, 금융은 마치 부두교의 주술 행위처럼 느껴집니다. 때로는 국가가 순식간에 몰락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미래에 누군가에 의해서 ‘새로운 믿음’이 반드시 생겨날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예를 들어 김월식 작가의 작업에서 안산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이주하다 보니 그들이 ‘이주의 신’을 믿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인터넷이나 GPS에 의존하지 않고 바람을 피하며 태양을 따라 이동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샤머니즘 같은 접근이죠. 샤머니즘은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취하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의 만연은 우리가 더 이상 전통적인 종교에 의지할 수 없게 됐다는 방증입니다. 밑바닥에서 이뤄지는 믿음과 신화의 재구성이 다시 시작된 것이지요. 이제는 초국가적 제도권 기관의 탑다운(top-down) 관점을 믿지 않습니다.
Q. 조금 엉뚱한 질문을 해볼게요. 감독님은 건축가인가요? 예술가인가요? 연구자인가요? 이런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큐레이터도 넣어야죠. (웃음) 저는 르네상스적 인간이 되려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한 가지, 중요한 것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에 대해 중요한 것 말고 나를 제외한 나머지의 중요한 것들이요. 가령 우리가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가 하는 것 말이죠. 전시 제목인 ‘투게더 하우’처럼 어떤 프로젝트인지에 따라 건축가나 아티스트가 될 수도, 큐레이터가 될 수도 있습니다.
Q. 이번 비엔날레 한국관은 처음으로 공동감독 체제 하에 이뤄졌습니다. 두 감독과 작가들 간 의사소통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또 참여하신 소감도 궁금합니다.
정소익 감독과는 언제나 그렇듯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정소익 감독이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직후 안양공공미술제를 시작으로 함께 작업해왔는데요. 그 이후 정소익 감독님은 큐레이팅에 많은 경험과 실적을 쌓아왔고 저 역시 한국의 가장 우수한 큐레이팅 인재이자 건축가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소통이 익숙해지면서 작가들과의 협업과 소통도 원만히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전시 결과에서는 언제나 미진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지만, 전반적으로 좋았고 기대한 바를 보여주게 된 것 같습니다. 특히 ‘투게더 하우’ 게임은 저에게도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관람객들이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다소 의문이 있었는데 잘 진행돼 기쁩니다.
Q. 이 전시를 계기로 한국의 현실에 대해 많은 것을 접하셨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이번 전시가 그 계획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합니다.
두 가지를 소개하고 싶은데 하나는 제17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선보였던 ‘쿨시티 랩(COOL CITY LAB)’ 프로젝트를 나폴리 건축가들과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폴리에는 고대 그리스에 사용됐던 놀라운 지하 상수도 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이를 재생해 도시의 열섬 현상을 완화하고, 공공 공간을 창출하는 계획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의 경계에서 이뤄질 예정입니다. 두 나라 사이에는 고리치아(Gorizi)라는 이탈리아 마을과 노비고리차(Nova Gorica)라는 슬로베니아 마을이 있습니다. 1948년 이탈리아와 유고슬라비아 사이에 새로운 국경이 형성되면서 당시의 유고슬라비아 지도자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Јосип Броз Тито)가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자본주의 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조그만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슬로베니아가 EU에 가입하면서 경계가 사라졌죠. 이 배경에서 한국 정부와 북한 정부의 관료를 사라진 경계에 초대해 정상회담을 개최해보고 싶습니다. 물론 실현할 수 없는 계획이죠. 그래서 ‘투게더 하우’처럼 게임 형식으로 이뤄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참가자가 필요와 욕망에 대한 문제를 알아가고 배우는 과정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이런 작업을 구상하고 있는데, 어쩌면 그냥 은퇴하고 책이나 쓰고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웃음)
  1. 심리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조카로 대중심리학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결합해 최초로 선전과 홍보에 이용했고 홍보를 과학으로, 산업으로 정립했다. 1923년에는 뉴욕 대학교에서 최초로 ‘홍보’라는 교과과정을 가르쳤고 최초의 PR 전문서 『여론 정제(Crystallizing Public Opinion)』를 출간했다. (“에드워드 버네이스”,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078083&cid=44546&categoryId=44546참고)
  2. 레콩키스타는 718년부터 1492년까지, 약 7세기 반에 걸쳐서 이베리아반도 북부의 로마 가톨릭 왕국들이 이베리아반도 남부의 이슬람 국가를 축출하고 이베리아반도를 회복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레콩키스타”,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레콩키스타 참고)
  3. 가속주의는 정치 및 사회 이론에서 급진적 사회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사회의 진보을 가속시켜야 한다는 관점. 다른 의미로는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자기파괴적 경향을 가속시켜 자본주의의 붕괴를 앞당길 것이라는 생각도 가속주의라고 한다. (“가속주의”,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가속주의 참고)
김광수
인터뷰어_ 김광수(건축가)

스튜디오케이웍스 대표. 건축사사무소 커튼홀 공동대표. 2004 베니스건축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여해 <방들의 가출>을 전시한 바 있으며 오스트리아국립미술관(2013), 독일 아데스갤러리(2019),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에서도 작업을 전시했다. 주요 건축 프로젝트로는 부천아트벙커B39(대한민국공공건축대상, 건축평단작품상, 한국건축역사학회작품상), 철원DMZ철새타운(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장관상), 광주시민회관재조성사업 등이 있으며, 공저로는 『제주현상』, 『느림의 도시_순천』, 『독일-한국 퍼블릭스페이스포럼』 등이 있다.

“건축, 그 너머의 이야기”
정소익 예술감독에게 묻다
정소익은 2008년 도시매개프로젝트를 설립해 건축, 도시, 공공예술, 사회복지 관련한 연구와 전시, 교육프로그램 개발, 출판 등을 지속하고 있다. 2018년부터 연구 분야를 사회복지로 확장해 건축, 도시, 공공예술과 지역사회복지, 사회적 경제, 사회공헌의 연계 및 협력을 모색하는 연구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제3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예술팀장 및 협력 큐레이터, 제4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협력 큐레이터, 제1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괄 사무국장 등을 역임했다.
Q. 한국관의 <2086: 우리는 어떻게?>는 크게 ‘투게더 하우’ 게임과 네 개의 ‘미래 공동체 프로젝트’로 이뤄져 있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의 주제인 ‘미래의 실험실’(The laboratory of the Future)과 어떻게 연결돼 있나요?
게임 방식으로 진행되는 ‘투게더 하우’가 관람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끈다면, 사례 연구로 이뤄진 네 개의 ‘미래 공동체 프로젝트’는 상대적으로 정적인 관람을 유도합니다. 게임은 단순히 답을 제시하고 고르는 게 아니라 계속 질문을 던지고, 관객은 그 질문에 답하기 전, 관련한 정보를 ‘미래 공동체 프로젝트’에서 얻는 것이지요. ‘투게더 하우’ 게임은 전시가 진행되는 6개월 동안 그 결과를 누적할 예정으로 전시가 끝날 때까지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국내에서 열렸다면 관람객의 성향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으니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한국관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대체로 참여를 강조한 건축의 수행성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건 비엔날레의 주제가 ‘미래의 실험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불확실성의 시대에 놓인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 변화를 거치면서 경각심과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대상을 관조하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지요.
Q. 균사체부터 우주 계획까지 각 국가관에서 건축을 정의하는 스펙트럼이 매우 확장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통적 관점인 ‘건물’로서의 건축에 관한 이야기가 다소 부족해 보이기도 합니다. 건축의 확장과 수렴의 경계를 잘 설정해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건축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건축은 시대정신이나 시대의 요구를 반영한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건축 경험 역시 공감대를 통해 또 다른 환경을 만들어내는, 즉 사회적 실천을 드러내는 것이지 이를 이끄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건축전이기 때문에 전시에서 우리가 소통하는 언어는 ‘공간적인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상 매체에 치우치지 않고 공간 경험과 물성이 있는 전시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가 군산팀의 <파괴적 창조> 집의 형태, 동인천팀의 <미래로서의 폐허, 폐허로서의 미래> 속 곡면 벽 같은 것들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전시 내용에서 건축물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건축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경우가 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건축에는 공간만 있는 게 아닙니다. 보이는 않는 건축적 요소도 있고, 문화가 총체적으로 반영된 것이 건축이기 때문에 건축전의 주제가 당연히 확장된다고 생각합니다. 주제는 넓어지더라도 물성과 공간 경험이 중요한 점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Q. ‘투게더 하우’ 게임의 데이터 축적과 해석 방식, 네 개의 ‘미래 공동체 프로젝트’의 전시 완성 과정이 궁금합니다.
‘투게더 하우’ 게임의 결과는 로그 파일로 실시간 추적됩니다. 하루에 총 40번 게임이 열리는데 매일 그 데이터를 엑셀 파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프로그래머들과 함께 데이터를 공유하며 그것을 해석하는 나름의 수식이 있습니다. 그 수식에 넣어 변화한 지표를 3일에 한 번씩 칠판에 게시합니다. 칠판에 올라간 7개 지표는 환경에 관한 것입니다. 지금 인류가 맞닥뜨린 기후 변화는 사회, 정치, 경제 행위의 종합적인 결과물입니다. 인류가 그동안 해온 행위 때문에 기후 변화를 겪고 있는데 그것은 곧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이 환경의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여러 연구와 데이터를 참고해 수식을 만들었고, 일상생활과 관련한 질문도 수식에 넣어서 번역해서 게시합니다.

김월식XN H D M <이주하는 미래>

김월식XN H D M <이주하는 미래>

김월식XN H D M <이주하는 미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Daniele Nalesso

네 개의 ‘미래 공동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팀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간 전시에 등장한 건축가들이 비슷했기에 다른 분들을 찾아보고 싶어 여성을 위주로, 리서치 기반의 작업을 시각화하고 공간 경험으로 만드는 데 능숙한 분들을 찾았습니다. 이후 지역의 크기, 인구 규모 등을 고려해 각 특성이 보일 수 있는 장소를 선별했습니다. 군산, 동인천, 안산은 그 크기와 인구수가 다르며, 처한 상황 역시 다릅니다. 동인천과 군산은 비슷한 문제를 공유하고 많은 지역 전문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만큼 데이터가 축적돼 있습니다. 군산과 인천은 개항 도시, 간척지였던 공통점이 있어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지만, 충분한 리서치를 할 만한 여건이 되는 역사적인 곳이라 선정하게 됐습니다. 장소가 선정된 후에는 팀을 만들어 매칭했습니다. 군산팀은 지역 전문가들도 건축 전공자였기에 공감대가 있었으나, 안산팀은 건축가들이 뉴욕에서 생활해 한국의 현황을 잘 몰라 정보를 흡수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동인천팀은 이미 많은 데이터가 나와 있어 건축가들이 이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협업이 이뤄졌고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정재경 <어느 미래>

정재경 <어느 미래>

정재경 <어느 미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Daniele Nalesso

Q. 그간 한국관의 주제였던 서울 외의 지역을 다뤘다는 점이 특별합니다. 해외 관람객에게는 생소한 도시임에도 전시에서는 세 도시의 배경이 잘 설명되지 않습니다. 또한 직접적으로 세 도시를 다루지 않는 정재경 작가의 영상 작업이 기획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네 개의 ‘미래 공동체 프로젝트’는 지역 자체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지역이 품은 이슈에 관한 프로젝트입니다. 일종의 사회 연구이기 때문에 한 장소의 특정 이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동인천팀에서 다룬 개발 압력과 보존의 저지선, 그사이의 갈등은 세계 각국이 경험하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입니다. 군산팀이 다룬 빈집의 웰다잉(Well-Dying) 이슈도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제이며, 안산팀에서 이야기하는 이주민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각 지역의 특별한 컨텍스트가 반영된 결과가 나왔지만, 이는 그 장소에만 통용되지 않습니다. 즉 구체적인 장소에서 보편적인 이슈를 찾고 이를 강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정재경 작가의 작업은 세 개의 건축적 사례 연구를 관통하지만, 그 형태는 구체적인 픽션으로 구성됐습니다. 이는 작가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저는 정재경 작가가 세 도시를 관통하는 주제를 ‘불확실성’으로 이해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동떨어진 작업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전체 구조 안에서 보면 우리의 의도를 잘 구현했다고 생각합니다. 박경 감독이 정재경 작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픽션으로 구성되면서 훨씬 더 강한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Q. 전시에는 큐레이터의 서사가 담깁니다. 감독님은 최근 사회복지 박사과정을 마치셨는데 그러한 개인적인 경험과 이번 전시가 연결된 부분이 있을까요? 또한 앞으로 이어질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건축을 대할 때 건물 자체보다는 건물의 주변을 둘러싼 것들을 더 면밀히 생각합니다. 10년간 이탈리아 유학 생활을 했던 이유도 건물이 가진 아우라 때문이었습니다. 그 아우라는 단순히 미적인 요소가 아닌 문화와 역사에 기반합니다. 이탈리아는 가구나 건축, 도시 계획을 구분 짓지 않습니다. 건축물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죠. 유학 시절 이탈리아에서는 참여형 도시 계획이 한창 논의됐는데 앞서 이야기한 도시 아우라의 연관성 속에서 사람의 관계가 궁금했습니다.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가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le città invisibili)』에서 말한 것처럼 모두가 연결된 것입니다. 그런 지점들을 건축학에서 바로 배우기 쉽지 않았고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 사회복지 박사과정을 밟았고 그런 배경이 이번 전시에도 반영됐다고 생각합니다. 2025년 한국관이 30주년을 맞이하는데 한국관 전시에서는 한국의 성과를 드러내는 전시는 지양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가 세계의 문제라는 인식 속에서 이슈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질문을 던지는 전시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세계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정다영
인터뷰어_ 정다영(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건축과 디자인 분야 전시 기획과 글쓰기를 하고 있다. 기획한 주요 전시로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2013),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2014), <아키토피아의 실험>(2015), <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1997>(2017), <김중업 다이얼로그>(2018), <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2020) 등이 있다.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홍시, 2015), 『건축, 전시, 큐레이팅』(마티, 2019) 등 여러 책을 기획하고 공저자로 참여했다. 베니스건축비엔날레 한국관 공동 큐레이터(2018),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겸임교수(2019-2021)를 지냈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공식 웹사이트 : http://korean-pavilion.or.kr/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인스타그램 : http://instagram.com/korean_pavi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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