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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

경험의 확장을 만든
문화예술의 새로운 시도들

기술의 발전으로 예술을 창작하고
유통하는 방식, 이를 향유하는 형태가 점점
다양해지는 가운데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도로 이목을 끄는 사람들이 있다.
영감과 아이디어에 문화예술을 더해
이전과 다른 경험을 전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글_이성동,윤영빈,김재은
패션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다
패션 브랜드 ‘얼킨(ULKIN)’
업사이클링(Up-cycling)이라는 단어도 생소하던 시기, 회화과 친구의 졸업작품 전시에 갔다가 전시가 끝나면 작품이 모두 버려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는 패션 브랜드 ‘얼킨(ULKIN)’의 작은 아이디어로 발전했다. 의류학을 전공하고 창업 경험도 있었던 나는 신인 작가들의 이 습작을 활용해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작가들에게 회화 작품을 받는 대신 새 캔버스를 교환해주고, 이를 다시 가방으로 만드는 과정을 ‘재능 순환’이라는 키워드로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들의 작업 환경이 매우 혹독한 것을 알게 됐다. 학원 강사나 단기 아르바이트 같은 투잡을 하며 작가 일을 병행하다 생계유지가 어려워지면서 활동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장에서 경험한 사례도 많았지만, 해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간하는 ‘예술인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이를 객관적인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내가 줄 수 있는 더 큰 도움이 무엇인지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했고, 그 결과 작가들의 작품을 활용한 의류 및 잡화를 제작, 판매하는 것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그리고 작품을 얼킨에서만 활용하기에는 작가들에게 정산되는 로열티와 기회가 적은 것이 아쉬워 얼킨과 함께하는 작가의 작품을 오픈 소스로 공개하는 플랫폼 ‘얼킨캔버스(ULKIN CANVAS)’를 만들었다.

서울패션위크에서 선보인 얼킨의 리사이클링 의류 Ⓒ서울패션위크

이렇게 기술을 결합한 IP∙라이선스 유통 영역으로 사업이 확장되면서 필자 또한 패션 디자이너에서 스타트업 기업가로 눈을 뜰 수 있었다. 확장한 비즈니스 모델로 시장 분석과 연구를 하던 중 가치 있는 수많은 시각예술 작품들이 지식재산권을 보유한 음원과 달리 비즈니스적으로 고도화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에 따라 해당 작품이 다른 콘텐츠 기술과 접목하는 것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데 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나 애니메이션, 캐릭터 회사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지금이 있기까지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다. 무엇보다 IP∙라이선스 유통에 있어 개인 간의 거래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대기업과의 거래가 필수적이었다. 또한 이는 유저들의 데이터를 통해 예측 가능한 비즈니스가 되도록 끌어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다행인 점은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해 온 지난 시간과 기록이 이 비즈니스에 있어 신뢰와 권위를 만들어줬고, 유명 IP∙라이선스를 확보함에 있어 상당히 유리한 이점을 가질 수 있었다. 현재는 이 같은 노하우를 내재화하는 중이고 해외 IP까지 확보하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앞으로는 더욱 적극적으로 IP∙라이선스 유통에 임할 예정이다. 특히 국가 간 거래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K-컬처의 영향력 덕분이다. 이미 한국 아티스트 IP를 결합한 완제품 형태로 수출하고 있다. 소셜벤처로서 나는 지금의 소셜 임팩트를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싶다. 자극적이고 소비적으로 여겨지는 패션의 시스템을 혁신해 사회적으로 리워드가 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프랑스의 작가 까스텔바작(CASTELBAJAC)이 우리나라 상장사가 된 것처럼 우리나라 아티스트가 타국에서 가치있는 브랜드가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이성동
이성동(패션 디자이너, 패션 브랜드 얼킨 대표)

한양대 의류학과를 졸업 후 소셜 패션 브랜드 얼킨(ULKIN)을 설립했다. 서울패션위크 오프닝에 두 시즌 연속 선정됐으며 파리 패션위크와 뉴욕패션위크 패션쇼에 참여했다. 2022년 올해의 최우수디자이너상을 받는 등 디자이너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더 나아가 시각 IP・라이선스의 체계적인 유통과 시스템 구축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맥락 속의 또 하나의 실천
예술 경험 서비스 플랫폼 PRPT(PromptSet)
해마다 다양한 기획을 바탕으로 쌓아 올린 수많은 전시와 공연이 오픈한다. 기획자, 작가, 연출가 등 문화예술의 지형을 조형하는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생성하고 실현하는 과정의 반복 속에서 과연 ‘새롭다’는 것은 무엇이고 어떠한 맥락 속에서 이해돼야 할까? 이 질문에 새로운 시도’라는 평가를 들었던 자체 플랫폼 전시 를 사례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필자가 운영하는 오아에이전시(Oaah Agency)는 2023년 가변적인 예술 경험 서비스 PRPT(PromptSet)를 런칭했다. PRPT(PromptSet)는 시행 명령어인 ‘Prompt’와 공간을 의미하는 ‘Set’가 합쳐진 단어로 급변하는 예술 문화의 주제와 발화자의 관심사를 담아내고자 입력값에 따라 예측 불가능한 결과물 내는 인공지능 메커니즘과 같은 변화하는 서비스 플랫폼이다. 첫 전시인 는 다이닝 공간 속 테이블 문화에서 착안한 작품 경험 서비스로 관객이 테이블에 앉아 작품을 주문하면 작품이 서빙되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작품은 물성과 형태적 특성을 코스 요리에 빗댄 Entree(미디어, 키네틱, XR), Plat(오리지널), Dessert(에디션)의 3가지로 구성되며, 관객은 ‘Table Order System’ 앱을 통해 자신의 취향으로 큐레이션 한 작품을 테이블 위에 올려 관람하고 소장한다.

PRPT Ⓒ오아에이전시

감사하게도 이번 전시에 대한 피드백은 긍정적이었다. 신기했던 점은 대부분의 포커스가 ‘새로움’에 맞춰진 점이다. 이러한 피드백들이 모이니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PRPT’가 새로운가? 필자는 ‘새로움’의 의미가 ‘전에 없었던 것(Having not existed before)’이라면 는 우리에게 새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보다 적절한 표현을 찾자면, PRPT는 그간 오아에이전시가 전개해 온 맥락과 가치관에서 이어진 파생, 즉 또 하나의 실천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아에이전시는 지난 8년간 이미 익숙해진 경험의 구조나 언어 등을 빌려와 예술과 도치·조합하는 방식으로 시각예술 플랫폼을 전개해왔다. 경직되지 않고 익숙하다고 느껴지는 환경 속에서 예술을 소개함으로써 예술이 일상적인 것이자 취향의 영역으로 인식되게 하는 ‘넛지(Nudge)’를 제공한다. 이러한 방식은 예술이 일상적인 이야기의 대상이자 주제로써 끊임없이 재생산될 수 있어야 한다는 가치관을 기반으로 한다. 예술가들이 모인 가상의 도시, <그림도시>(2016~2023)가 이러한 가치관의 첫 실천이었다.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해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을 하는 이 플랫폼을 시작으로, 손 안의 PC와 모바일을 통해 가상의 버추얼 환경에서 아바타를 움직이며 작품과 인터렉션 하는 버추얼 갤러리 ‘desk desk’(2020~2021), 집과 정원 등 다양한 일상 속 환경을 빌려와 작품을 소개한 쇼룸 ‘OA Seoul’(2021~2023), 패션위크의 형태를 빌려 다양한 물성의 작품을 동등한 런웨이에서 순환시킨 플랫폼 (2021~2022)까지. 모두 익숙한 환경의 구조나 언어, 방식을 차용해 작품을 소개하며 더욱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넛징하는 플랫폼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아에이전시에게 <PRPT: Table Service>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식사 테이블은 일상에서 가장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공간이자,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수단이다. ‘식사’라는 행위를 이루는 ‘무엇을 먹을지 선택하고, 다른 이들이 먹는 것을 보고, 나누어 먹고, 감상을 이야기하고, 남은 것을 싸가고, 후기를 공유하는’ 일련의 테이블 경험이 오아에이전시가 추구하는 예술을 경험하는 방식과 목적과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이 경험의 과정에서 대상에 대한 이야기는 필연적인 요소이다. 즉 PRPT의 첫 서비스는 오아에이전시가 늘 전개해오던 도치와 통합이라는 맥락 속에서 ‘다이닝’이라는 익숙한 문화와 ‘테이블’이라는 환경 구조를 가져와 예술로 대체한 또 다른 하나의 실천이다. 예술은 이야기를 기본으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시각예술, 문학예술, 공연예술 등 표현의 문법은 다르더라도, 화자(Presenter)-청자(Receiver, Re-representer)로 이어지며 이야기가 회자되고 재생산될 때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갑자기 생겨나기보다는 개인 또는 단체의 가치관, 맥락과 방향성에 따라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쌓여가며 파생·변화·통합되는 과정에서 생성된다. 그렇기에 문화예술의 기획에서 ‘새로운 시도’란 한 또 하나의 실천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윤영빈
윤영빈(오아에이전시 대표)

시각예술 기획사, 오아에이전시(Oaah Agency)를 운영하고 있다. 시각예술의 네러티브가 실체적·가상적 경험을 통해 공유되는 큐레이션 서비스와 플랫폼을 만들며 일상 속 예술이 새로운 영감, 이야기와 행동으로 재생산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국악 대중화를 위한 가야금의 변신
잰이펙트(JENNIEFFECT)
잰이펙트는 누구나 쉽게 가야금을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위해 기존 가야금을 축소한 미니 가야금 ‘내 손안에 이어:가(이하 이어:가)’와 가야금 콘텐츠를 제작∙판매하고 있다. ‘이어:가’를 통해 기존 12현 가야금이 가진 전통의 미를 계승하는 동시에 우리 국악을 쉽고 재밌게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이다. 잰이펙트는 긴 시간 이어온 우리 국악임에도 현대에 이르러 서양음악에 비해 관심과 노출이 현저히 저조한 것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단지 사무실 안에서 나온 진부한 고민이 아니었다. 국악 공연기획, 국악 교육, 방과 후 학교 등 여러 국악 현장을 몸소 뛰어다니면서 그 문제와 원인을 찾았는데 그 결과 우리 국악기의 가격과 휴대성 문제, 그리고 확장성 있는 국악 콘텐츠가 부재한 점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국악 전공자나 국악 마니아층 대부분이 초등학교 시절 국악 공연 혹은 방과 후 학교 등에서 국악을 배우고 접하고 관심을 가진 것을 알게 됐는데 어렸을 때부터 국악에 대한 좋은 경험과 추억을 만들면 나이가 들어서도 국악을 즐길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잰이펙트는 초등학생이 연주하기에 적합한 크기와 무게로 기존 가야금을 축소하고 코딩 기능을 연결해 다양한 곡을 연주하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어:가’를 제작했다.

‘이어:가’로 연주한 홀로 아리랑 Ⓒ잰이펙트

전통악기가 가진 불편함을 개선하고 기술 발전의 흐름에 맞게 기능과 서비스가 진화하지 않는다면, 전통예술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오랜 고민 끝에 기존 가야금의 불편함을 하나하나 해소하면서도 기존 가야금의 청아한 소리를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줄, 크기 등을 개선했다. 먼저 기존 가야금은 명주실을 사용하는데 이보다 작은 크기의 가야금에 명주실을 사용하면 다른 재료의 줄보다 더 큰 장력을 요구해 줄의 소재를 교체해야 했다. 소재를 바꾸는 것에 고민이 있었지만, 전통악기의 저변 확대를 위한 다채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더 좋은 소리를 찾기 위해 판매 중인 모든 줄을 구매해 테스트를 거쳤고 철 가야금에서 착안해 철을 사용하기로 했다. 물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최상의 소리를 구현하기 위해서 철 줄의 굵기나 소재 등의 변수도 조건을 맞춰가면서 수십 차례 테스트했다. 다음 문제는 악기 몸통의 길이와 두께였다. 초등학생 책상 평균 길이인 64cm를 기준으로 50~55cm까지 다양한 길이로 테스트했고, 가야금의 음색이 가장 훌륭하게 나는 악기의 두께도 여러 실험을 통해 파악했다. 이 밖에도 부분별 나무의 종류와 건조 시기에 따라 소리가 천차만별이었고, 각각의 조건을 조합한 수백 개의 프로토타입을 제작하며 연구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백 번의 프로토타입 작업을 거쳐 탄생한 것이 바로 지금의 ‘이어:가’이다. 여기에 더해 국악을 더 재밌게 배울 수 있도록 코딩 기능도 접목했다. 완성된 프로토타입을 바탕으로 잰이펙트의 뜻을 공감한 국악기 제작 장인을 모시고 2022년 11월 와디즈 펀딩을 통해 ‘이어:가’를 출시했다. 펀딩 오픈 18분 만에 초기 수량을 모두 판매하는 등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고 펀딩 목표 달성률 4,752%를 성공적으로 기록하면서 시장성과 상품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문화예술은 전통이라는 특성상 보수적인 부분이 남아있기에 다른 분야보다 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평소 ‘Do or Do not, There is no Hesitation(일단 망설임 없이 무엇이든지 시도해보자)’을 좌우명으로 삼는데 그런 마음으로 전통 국악기에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모든 상황을 예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일단 도전하고 끊임없이 마주하는 미션들을 해결해 나가며 영감을 얻는다. K-팝을 필두로 한 지금의 한류 열풍을 지속적인 관심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나 역시 타 장르와 우리 고유의 국악을 접목한 다양한 형태의 시도를 통해 의미 있는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김재은
김재은(잰이펙트 대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전통예술을 전공 후 성균관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스타트업 잰이펙트 대표로 대중이 국악을 즐길 수 있도록 ‘내 손 안에 가야금 이어:가’와 전통예술을 소재로 다양한 콘텐츠를 창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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