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선택’은 ‘배제’를 수반한다. 심의를 맡은 사람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감이나, 심의 결과에 대해 신청자(출판사)가 갖는 실망감, 불만 등도 모두 ‘선택’이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배제’로 간주될 수 있기에 생기는 심리 현상일 것이다. 그런데 이 ‘선택’과 ‘배제’ 가운데 어떤 것은 심의 주체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행해진 것이지만, 또 어떤 것들은 사업의 취지나 시스템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은 다음의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있는 공적 사업이다.
첫째, 국내에서 발간되는 문학도서 선정‧보급을 통해 창작 여건 강화 및 문학 출판시장 활성화
둘째, 선정도서와 연계한 다양한 문학 활성화 프로그램 확산을 통해 국민의 문학 향유 기회 확대
이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심의 과정에는 다양한 기준이 적용된다. 가령 출판사별로 분기당, 연간 총 선정도서 종수를 제한하는 것이나, 특정 분야(장르)의 선정 종수를 제한하는 원칙 등이 대표적이다. 같은 이유에서 동일조건 또는 동점일 경우에는 생애 첫 작품집, 지역소재 출판사, 직전년도 미지원 출판사 등을 우선 고려한다는 기준도 존재한다. 간혹 심의의 공정성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생기기도 하는데, 그 비판의 상당 부분은 이런 구체적 기준을 인지하지 못한 데서 생기는 것으로 짐작된다.
10월 31일부터 시작된 이번 3분기 심의는 1, 2차에 걸쳐 진행되었다. 1차 심의는 접수된 228권을 3개 분과(9명의 심의위원)가 나누어 검토해 66권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2차 심의는 1차 심의에서 결정된 66권을 세 명의 심의위원이 검토, 채점하여 최종 34권을 선정하는 과정으로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심의위원들에게 주어진 기준은 작품수월성, 문학발전 기여도, 파급효과 및 기대도의 세 가지였다. 심의위원들은 각 시집에 대해 점수와 함께 근거, 인상 등을 사전에 기록으로 제출했고, 그 기록들을 근거로 2차 심의를 진행했다. 심의위원의 주관적 기준이 반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출판사의 경우는 한 분기에 선정 가능한 종수를 상회한 숫자가 선정권에 포함되었고, 그에 따라 해당 출판사의 시집들 가운데 최대 2권을 제외한 나머지를 제외하는 조정 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선정권 바깥에 있던 몇몇 시집들을 선별하여 선정권에 포함시키는 작업도 진행했다. 자세히 표현하긴 어렵지만 이 과정이 꽤 힘들었다는 것을, 특히 몇몇 출판사에서 출간된 시집 가운데 일부를 선정에서 제외하는 일이 어려웠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작품의 수월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출판사별 제한 조건 때문에 선정되지 못한 시집을 두고 논의했으나, 이 사업의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에 합의했다.
심의 과정에서 발견한 몇 가지 현상에 대해서 간략하게 밝히고자 한다.
첫째, 시적 경향성에 있어서 세대 간의 차이가 갈수록 선명해지고 있다는 점. 시는 개인의 내면적 언어를 통해 발화되는 것이지만, 언어나 형식에 있어서 순전히 개인적인 것일 수는 없다. 삶의 이력은 물론 경험의 층위, 나아가 문학에 대한 지향에 따라 시의 발화방식이나 상상력에는 일정한 제약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세대’라는 프레임이 일정한 편향을 과장 또는 정당화한다는 비판적 지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는 까닭은 이러한 동일성과 차이를 손쉽게 포착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명의 심의위원에게 똑같이 높은 점수를 받은 시집의 대부분은 ‘세대’ 감각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이었다.
둘째, 시집 출간에 있어서 다양성이 시도되고 있다는 점. 소수의 대형출판사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과거의 시집 출간 방식에서 벗어나 현대문학, 아침달, 달아실, 걷는 사람, 심미안, 시와 반시 등에서 새로운 시집 시리즈를 만든 효과가 어느 정도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지역에 거점을 둔 문예지나 출판사에서 시집 시리즈를 기획하여 본격적인 시집 출판에 참여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시조집의 출간이 활발하다는 점. 이번 심의과정에서도 다수의 시조집을 접했다. 전통적인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정형시의 반복으로 평가된 시조도 있었지만 현재적 소재나 일상과 시조라는 형식을 접목하여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려는 실험적인 작품도 있었다. 이를 통해 시조를 창작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양적인 평등이 최선은 아니겠으나 시와 시조를 동일한 잣대로 심의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차후 일정한 논의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분기별로 진행되는 이 심의가 문학상 수상작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 여건을 강화하고, 나아가 문학 출판시장의 활성화에 이바지함에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어떤 순간에 이르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을 피하기 어려웠다. 전체적인 규모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각 장르별로 할당된 선정 권수가 적절하냐는 물음이 그렇고, 시 장르만 놓고 말하자면 출판사별 선정 제한으로 인해 수월성에 있어서 높은 평가를 받은 시집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이 그렇다. 이 규정을 느슨하게 하거나 없앨 경우, 문학출판에서 대기업, 수도권 편중이 극심해질 것을 모르지 않기에 규정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지만, 적정선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논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이 사업의 목표 가운데 하나가 다양한 문학 활성화 프로그램 확산에 있는 만큼 향후 선정된 책들을 매개로 어떤 프로그램이 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별도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