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차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 소설 부문에 신청된 작품은 총 85종이었다. 이를 대상으로 총 6명의 심의위원이 1차 심의를 진행한 결과 총 44종의 작품이 2차 심의대상으로 선정되었다. 2차 심의에서는 3명의 심의위원이 작품 수월성, 문학발전 기여도, 파급효과 및 기대도 등의 심의 기준을 바탕으로 꼼꼼히 검토하였으며 총 22종의 작품이 최종 선정되었다.
우리는 이번 심의 과정에서 다양한 차이들을 내포하는 독특한 개성적 소설들의 생성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생성한다는 것, 이를테면 아직 소설이 아니었던 어떤 것이 소설로 되어간다는 것, 그것은 초월적 변형의 과정이며 자유의 모험이다. 그리고 이때 ‘자유’란 말은 우리에게 ‘창조(혹은 창작)’의 동의어로 나타난다. 자유는 창조적인 것이며, 창조는 자유로운 것이다. 자유 없는 창조성은 없으며, 창조성 없는 자유도 없다. 다른 모든 진정한 생성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소설의 생성 역시 창조적 자유, 혹은 자유로운 창조성의 출현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의과정은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각각의 소설들에서 자유로운 창조성이 출현하는 강도나 양태에 대한 해석과 가치평가에 집중된 것이었다.
닮았기도 닮지 않았기도 한 ‘우리’의 서로 다른 해석과 가치평가를 통하여 도출된 판단들은 완벽한 객관성이나 만장일치의 합의에 도달하기 어려운 성질의 것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많은 경우 유사한 선택을 했으며 서로 동의했다. 물론 동의에 이르지 못했기에 선택받지 못한 많은 소설들에 대해 우리는 그저 아쉬워하며 그 소설들 자체의 창조성이 스스로 열어나갈 미래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객관성 없는 주관성은 없으며, 주관성 없는 객관성도 없다. 다르게 말하자면, 비판적 가치평가에 있어서도 실패와 오류를 감내하며 불확실한 미래의 관계적 가능성을 향해 가는 창조적 자유의 희미한 흔적이 발견되는 것이다.
비판적 가치평가의 요소는 심의과정에서 마주친 모든 소설들 속에서도 쉽게 발견될 수 있었다. 그 어떤 소재나 주제의 소설적 형상화과정에서도 비판적 시선의 개입을 통한 선택, 배제, 차등적 가치부여 등의 활동은 필요 불가결한 것이었다. 차등적 가치부여 자체에 저항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들조차도 그 활동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심의에 포함되었던 다수의 SF, 스릴러, 추리, 판타지, 로맨스, 무협 등의 장르 소설들이나 문학적 언어와 이미지 자체의 미학을 추구하는 소수의 본격문학들 모두의 궁극적 관심은 ‘무차별적 동등성’이나 ‘동등한 차이’를 향해 있지 않았다. 과거의 역사적 문제나 현재의 정치-사회적 문제나 미래의 우주-환경적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는 여러 소설들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거기서 우리는 소설의 창작과 수용 양쪽 모두에서 ‘자유 즉 창조’를 향한 충동이 가장 근원적인 충동임을 새삼 확신할 수 있었다.
물론 좋은 소설들은 창조적 자유의 충동이 ‘정의, 평등, 의무의 윤리’와 평화롭게 공존하지 못한다는 결점을 본능적으로 자각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좋은 소설들 속에는 그러한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자유의 윤리’를 향한 지향성이 감지되었다. 그것은 개별적 자유에 기초한 창조란 ‘보편적 인류애’와 본질적인 관계성 속에 있다는 윤리다. 이번 심의를 통해 마주친 가장 희망적인 사실은 현대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프랑스혁명의 세 과제인 ‘자유, 평등, 인류애’ 중에서 그 실현을 보기가 너무나 어려워 보이는 ‘인류애’를 추상적 구호가 아닌 구체적인 미시적 차원의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서 추구하는 소설들이 지금 여기서 여전히 새롭게 생성되고 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