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도 1차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 평론/희곡 분야의 심의는 2020년 1월부터 3월 사이 발행된 희곡/평론 초판 단행본 11종을 대상으로 모두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시, 소설, 수필, 아동·청소년 문학 등 여타의 분야에 비해, 그리고 예년에 비해 지원 종수가 줄어든 것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해당 영역이 처한 위기를 어떻게든 넘어서야 한다는 위기의식 때문일까, 지원한 각 도서의 경우 긴장감은 팽팽했고 밀도 또한 촘촘했다. 만약 우리가 심의 기준으로 삼았던 1) 문학적 우수성, 2) 한국문학의 발전에의 기여도, 3) 독자에의 영향 및 한국문학 저변 확대의 기여도를 상대적으로가 아니라 절대적인 기준으로 잡았다면 우리가 선정한 것보다 더 많은 도서를 선정해야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가 선정할 수 있는 권수는 제한되어 있었고, 최종적으로 4권의 도서를 선정하고 말 수밖에 없었다.
평론의 경우 우선 개별 작품 속에 깃든 진리내용을 날카롭게 짚어내는 데에 주력한 평론집들이 여럿 있었다. 각 작품의 내적 원리를 예리하면서도 총체적으로 구조화하고 그를 통해 각 작품 속에 웅크리고 있는 진리내용을 톺아내는 장면들은 문학의 저변을 확대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소중해 보이는 작업들이 있었다. 현재의 상징질서와 쉽지 않은 쟁투를 거듭하는 문학(의 시대) 이후의 문학적 모험을 시종일관 진지하고 안타깝게 바라보고 그 안에서 한국문학의 계보학적 가능성을 끝까지 읽어내려는 시도, 그리고 최근 한국문학 평론에서 시대착오적인 테마로 전락한 문학의 정치성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을 그간 문학사에서 배제한 여러 작가와 여러 텍스트의 새로운 발견 혹은 그간 문학사가 주목한 텍스트의 전혀 새로운 읽기를 통하여 계보화하고 있는 시도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 시도들은 향후 한국의 문학평론이 향후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이정표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희곡의 경우 편수는 많지 않았지만 거의 모든 작품이 출판하기까지의 고단한, 그러니까 작가의 작업으로만 끝나지 않고 연습을 거쳐 관객 앞에서 연극성의 검증을 받은 뒤에야 출판되는 작업을 거친 작품다운 품격을 추고 있었다. 특히 선정된 작품들은 남근중심주의적인 문명화라는 대문자 역사에 의해 지역으로 떠밀려간 주변부적 삶을 통해 대문자 역사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한편 파국에 처한 대문자 역사를 구원할 가장 현실적인 헤테로토피아를 제시하고 있어 이채로웠다. 서울이라는 표준화된 중심과는 달리 (경주) 지역의 신화, 언어, 아직도 살아있는 끈끈한 관계들 속에서 살아가는 주변부적 존재들의 삶을 기존의 극형식과는 다른 형식으로 구조화한 시도는 한국 연극의 고유성을 확보하기 위한 의미 있는 모험으로 다가왔고, 한국전쟁을 앞둔 경상도 지역, 남성들은 사라지고 여성들만 남은 고택을 공간삼아 펼쳐진 화전놀이를 재현하는 것을 통하여 여성/일상의 시선으로 남성 중심의 역사가 지닌 폭력성을 전경화한 시도는 갈등과 클라이막스 중심으로 구성되는 서구적 극작술과 달리 잔잔한 일상 속에 서정미와 긴장미를 구축하고 있어 충분히 주목받을 만했다.
앞서 말했듯 희곡·평론 분야의 도서 발간이 눈에 띄게 주춤하고 있는 모양새다. 희곡·평론 분야의 도서가 특히 시장의 논리와 잘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희곡·평론 분야는 한국문학의 발전을 이끌고 그 저변을 확대하는 데 있어서 중추적인 영역이며, 이 영역이 그 본래적 역할을 충실히 행할 때 한국문학의 지속가능한 발전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시장으로부터 점점 소외되고 있는 희곡·평론 분야의 공공 영역에서의 더 큰 관심과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복잡한 얘기같지만 사실 간단한 이야기이다. 희곡·평론 분야의 지원 대비 선정 종수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 물론 여기에는 또 다른 전제도 필요할 터이다. 평론·희곡 작가들의 더 큰 분발이 있어야 한다는 것. 하여간 다음 분기에는 이번 분기만큼 밀도 높은 작품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