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모든 심의 회의를 비대면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장악한 코로나 시대에도 문학은 새로운 시간을 상상한다. 좋은 작품을 읽을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다. 아동청소년 문학작품은 신청된 총 310종의 작품을 4개 분야, 14명의 심의위원이 신중히 심사하여, 최종 56종이 선정되었다. 짧은 시간 안에 깊이 있는 심의를 위해 심의위원의 인원을 늘리고, 다양한 연령과 성비를 고려한 문학나눔팀의 심사 방식에 박수를 보낸다.
규모가 다른 출판사에서 동일한 기간 동안 출간할 수 있는 책의 종수는 당연히 차이가 난다. 그런 면에서는 출판사당 최종 선정 권수의 제한을 두는 것은 다소 무리한 심의 기준으로 보인다. 하지만, 철학과 체계가 다른 출판사의 작품이 같은 기준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면, 이 최소한의 기준은 사업의 취지와 다양성의 측면에서 평등을 실현하는 한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사별 선정 권수의 제한 때문에 훌륭한 작품을 제외해야 했을 때 우리는 모두 슬퍼했다. 좋은것은 저절로 퍼지고 모두가 알아볼 테니 걱정이 없다고 애써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송구한 일이다.
아름다운 동시집이 많았다. 테마를 살리고, 감각과 정서를 세심하게 담아낸 작품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즐거움을 주었다. 새로운 방식으로 말하는 것만으로 영역의 확장을 시도한 시집이 있는가 하면 전통적인 결을 살려 깊이 있고 묵직한 시선을 담아내는데 성공한 시집도 있었다. 학교나 도서관에서 시를 읽고 쓸 누군가에게, 이 시집들이 다양한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어린 시절의 한 때, 시를 읽고 쓰는 시간을 가질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동화와 청소년 문학에서는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시도가 특히 좋았다. 편견을 빠르게 생성하고 또 망설임 없이 뒤집는 나이엔, 세상의 다양한 면을 넓고 깊게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이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유연하고 편견 없는 시선을 다룬 책들은 정말 소중하다. 전래동화나 전설, 역사 속의 인물을 비틀거나 제대로 들여다보려는 시도와 일상적 풍경 안에서 발생한 독특한 일을 계기로 한 성장의 경험, 청소년과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판타지물은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이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소재를 다루던, 작품 사이사이 성인지 감수성을 예민하게 신경 쓰거나 다양한 형태의 가족, 장애인의 인권, 환경에 대한 덤덤하고 단단한 시선을 고수한 작품들의 힘은 대단했다.
그림책은 책의 특성상, 그림이 큰 몫을 하는 문학작품이다. 그렇기에 그림이 하는 말과 글이 하는 말이 각자의 색과 리듬으로 제 길을 가는 조화로운 작품은 단번에 눈에 띄었다. 그렇지만 유려한 그림과 유의미한 글로만 그것이 달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림책은 쉬운 방식의 말하기도, 짧은 선언도, 예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걸 훌륭한 작품들을 통해 저절로 알게 되었다.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전달하려 애쓰고,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상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며, 빛과 색의 미학에 천착한 작품이, 하려는 이야기와 균형을 이룰 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거칠어도 할 말을 끝까지 해내는 작품들이 선정되지 않아 조금 아쉽다. 뾰족하거나 뭉뚝해서 다소 불편하기까지 한 이야기들이 힘을 잃지 않고, 계속 책으로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문학의 분야 구분은 이제 의미가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역설적이게도 그렇다면 아동문학이 가져야 할 미덕이 무엇인지 더 분명해진다. (이것은 창작자인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무엇을 어떻게 쓰고, 또 그려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이 지점에서 치열하게 해 나간 훌륭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행운이었다.
아동·청소년 분야 심의위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