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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차혜림 개인전_밤의 무기들
    차혜림 개인전_밤의 무기들
    전시기간
    2013.08.23~2013.09.14
    관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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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혜림 개인전_밤의 무기들
2013.08.23 - 2013.09.14
차혜림



 

 

▶ 1층 전시전경, 2013

 

□ 전시 서문

(글 / 이단지 _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

 

 

세계의 틈은 필연적으로 만나지기도 하고, 우연히 나타나기도 한다.

 

“나에게 주어진 집인 동시에 덫이며, 보호구역이자 수용소이며, 모든 것들의 외부이자 심연 속에 존재하는 익명의 별인 밤은 작업이라는 매혹의 대상 앞으로 항상 나를 데려다 놓았다.”
_작가 노트 중

 

 

차혜림이 지속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창작의 배경은 우리의 앎이 닿을 수 없는 어떤 세계의 그림자이다. 실재(實在)로써 현현되기 전의 중간상태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의 파편으로 엮어내기도 하고(paraxis: 중간스토리_공간해밀톤. 2010), 주인이 없는 어느 낯선 공간에 들어가 사건의 흔적들을 이어 붙이고, 무대를 증폭시키려 했던 실험(교환 X로의 세계_잠원동 10-32번지. 2011)을 진행하기도 한다. 동시에 이러한 시도들은 소설의 형식으로 집필되기도 하며, 이번의 경우처럼 다음 전시의 실마리가 되어 자기 오마쥬(hommage) 적인 지시들로 이어지고 확장된다. 전작들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이성적 원칙의 부조리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나아가 보이지 않는 세계의 범위를 확인하기 위해 의식의 균열을 벌리고 관찰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인사미술공간에서 소개되는 <밤의 무기들>은 상당히 상징적이다. 이번 전시는 구체적인 낮의 표상 너머, 그 이면의 시간인 ‘밤’을, 의식의 실존을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상정한다. 차혜림이 빚어낸 익명의 오브제와 운동하는 이야기들은 낮의 빛(이성의 지각)이 잔상으로 남아 현실과 비현실이 중첩되듯 모호한 상태에서 태어난 것들이다. 어둠 속에서 새롭게 호명된 모든 사물과 이미지, 이야기들은 논리적인 기승전결의 나침반을 파악하기에 실패하며 현재의 시간과 무관하게 앞 뒤를 구분하기 어렵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작업들은 거대한 좌대에 설치된 여러 가지의 상징들인데, 작가는 이것을 나열하듯 펼쳐 놓고 <밤의 무기들>을 여는 서사의 시작으로 “림보(Limbo_성경에서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머무는 보류된 수용소로써의 공간)”의 상태를 제시한다. 세 개의 다른 조각을 이어 붙여진 레코드 판과 분절된 신체로써의 귀, 여러 개의 렌즈가 하나의 구조에 달라붙어 있는 안경, 맹인에게 길을 안내하는 개 등은 결론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실패의 차원, 미끄러짐에 대한 묘사이다.

 

▶ voix off 나무, 레코드판, 아크릴, 낙엽_가변크기_2013

 

1층의 풍경이 어떤 중성적인 플랫폼과 같이 지시된 파편의 나열로 구성되어 있다면 지하 전시장은 기묘한 설정이지만 관객에게 이야기의 흐름으로 더욱 다가가게 한다. 전진하듯 운동성을 암시하는 형태를 띈 보조 구조물 위에 걸린 회화들은 “기묘하다”는 표현처럼, 그것이 마치 스스로 생명을 가진 듯한 제스츄어로 연출되고 있다. 전시장의 한 쪽 벽면에 빛으로 일렁이는 커튼과 같은 연극적인 상황은 보는 이로 하여금 화면 속 내러티브에 대한 객관적인 거리를 놓쳐버리게 하고 마치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세계로의 이행을 위한 장치(bridge)로써 설치된 회화들은 낮과 밤을 가늠할 수 없는 풍경과 화면 속 인물들이 몰두하고 있는 행동이 부각되면서 더욱 모호하게 번져간다. 이번 전시에서 회화의 이미지는 보다 적극적으로 관객을 가담자 혹은 목격자로 전치시키기 위해 오브제 그 자체의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이것은 앞서 말한 현실적 상황(일반적인 사물 또는 작품을 보는 시각)과 달리 비현실적 틈(환영으로의 회화와 내러티브에 의해 컨트롤되는 관객의 심리)의 능동적 확장, 그것들의 대치상황으로 이해된다. 커튼의 은폐와 회화의 발언, 이중의 코드는 이성의 바깥에 존재하는(존재한다고 여겨지는) 균열의 경계를 시각적인 재현으로 전달한다. 
이 모든 경계의 모호함들은 2층 전시장에서 봉합과 결합의 장면으로 희석되는데, 그것은 다른 세계에서 발굴되어 박물관의 한 켠에 안착 되듯이 놓여짐으로써 다시 한번 보는 이의 시선과 거리를 넓혀간다. 일상적인 오브제들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덩어리들은 얕은 모래가 쌓여있는 제법 긴 테이블 위에 올려진다. 긴 테이블은 세 개의 방처럼 나누어진 인사미술공간 전시장에서, 문이 있었을 법한 뚫린 구조에 놓이고 구획의 안과 밖, 두 개의 공간을 가로지른다. 방과 방 사이의 하얗고 커다란 애드벌룬은 그 자체로 본질적인 불안감을 낳기도 하지만, 한편 팽창하는 에너지를 중재(仲裁)하며 가로 막고 있는 껍질 내부의 보이지 않는 현상을 인지하게 한다.

 

▶슬픔에 갇힌 눈 안경렌즈, 안경테_가변크기_2011

 

우리는 우리의 현실에서, 또는 구전 되어 온 많은 신화에서 끊임없이 안으로 침잠하는 자유로운 심연의 ‘밤’을 그리워해왔다. 가능성의 영역, 응축되고 압축된 세계,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 닿을 수 없는 거리, 결핍과 과잉의 과정들이 기준점에 도달하지 않는 거리, 닫힌 상황에서의 탈출,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것들이 축적되어 쌓이는 공간으로서 명명된 ‘밤’은 적어도 작가에게는 회복과 소생의 순간이며 창작을 촉발시키는 리듬이 된다. 세계의 틈은 이렇게 안간힘의 붙잡음으로 만나지기도 하고, 우연히 나타나기도 한다.
눈꺼풀이 닫힌 지점에서 시작되는 밤의 이야기들은 물 위에 투영된 일그러진 이미지와 같이 모험적일 수 밖에 없다. 손에 닿으면 일그러지기 일쑤인 밤의 그림자는 빛 아래에서 느낄 수 없었던 모든 촉각의 다발을 곤두세우게 만든다. <밤의 무기들>에 등장하는 많은 상징과 장면들은 논리의 분산을 맹목적으로 지향한다거나, 양가의 합의점을 찾기 위한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기를 거부한다. 다만 그것은 이성의 세계와 그 이면들이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마주하게 함으로써 벌어진 틈만큼의 공간을 대체하는 여러 기호들을 고안하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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