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문화예술대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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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수용자 지향적인 문화재 보존정책을 기대하며
양현미(한국문화정책개발원 연구원)
Ⅰ. 발상의 전환이 필요
무엇이 문제인지는 어떻게 물어보는가에 달려있다. 문화재 보존의 문제점과 향후 대책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 지금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동안 숱한 기사, 논문, 보고서 등에서 문화재 보존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 그렇게 논의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총체적으로 뭔가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문은 이것이다. 일반 시민에게 문화재, 문화유산, 전통문화, 민족문화 이러한 것들은 얼마나 실감나는 말들일까? 그들의 고단한 일상생활 속에서 잠시 누리는 여가시간 동안 과연 박물관 관람이나 문화유적 답사를 얼마나 기꺼이 선택하는가? 우리의 청소년들은 HOT나 핑클의 공연을 보러 다니는 열성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문화재에 대해 관심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들의 일상생활 속에 문화재에 대한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데 우리는 얼마나 기여한 것일까? 이에 대답은 긴 질문에 비해 매우 간단하다. 문화재 보존은 일부 전문가들에게는 매우 중요하지만 일반 시민의 일상생활 속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는 일종의 부담 같은 것이라고. 박물관에 단체견학 온 학생들의 태도와 눈빛에서 우리는 문화재 보존의 현실과 미래를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이것은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화재 보존을 위해 애쓰신 분들을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쓴 근본적인 목표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기 위해서이다. 박물관에서 우리가 접하게 되는 전시는 길어야 몇 개월이지만 수면 위로 보이는 이 작은 빙산 조각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받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부분 때문이며, 아직 그 성과가 미약하다는 것은 아마도 우리에게 수면 위로 밀어올릴 만한 힘이 부족했거나 아니면 상대적으로 표면장력이 너무 컸기 때문일 것이다. 표면장력에 관해 말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질 수도 있지만 간단하게 말해서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신문의 정치면, 국적불명인 대중문화의 전면적인 확산 속에서 그 장력을 뚫을 수 있는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다. 문화재 보존을 도덕 교과서 수준에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우리는 최소한 성공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 그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많이 고안되었고 부분적으로 성공한 사업들도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성공한 사례를 꼽으라면 나는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들고 싶다. 문화재 보존하면 늘상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보존상태가 열악하고 주변경관이 엉망이며 안내판은 어렵고 살만한 문화상품이 없다는 등의 지적인데 사실 1년 가야 몇 사람 찾아가지 않는 곳에 단지 사명감만 갖고 막대한 예산을 투자한다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 산에 길이 나듯이 문화재 보존도 문화재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비로소 제 값을 하게 된다. 하다 못해 먹고사는데 직접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게 만드는 것이 현대의 상품미학인데 정말 볼만한 것인데도 한 번 보면 다시 가고 싶지 않게 만드는 것이 박물관의 전시들이 아닌가? 보고 싶게 만드는 것, 안보면 대화에 낄 수 없게끔 만드는 것, 이것이 문화재 보존정책의 최우선 과제이며 수용자지향적인 문화재 정책은 이러한 발상의 전환에서부터 시작된다.
Ⅱ. 문화재 보존인력 양성에 큰 역할 할 것을 기대하며
우리는 시간의 켜 위에서 산다. 지금 내가 있는 예술의 전당 자리에도 어떤 시간의 흔적이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근대화 과정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더 폭력적이었기 때문에 반대급부로 우리의 문화재 보존정책이 원형보존에 더 치중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문화재청에서 마련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문화재 보존의 기본원칙은 원형보존에 있으며 아울러 주변환경까지 고려하는 환경친화적인 문화재 보존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일차적인 대상은 지정문화재일텐데, 1999년 11월 9일 현재 국가지정문화재, 시도지정문화재, 문화재자료를 합친 숫자는 총 8,216건이다. 1만건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정문화재의 관리조차 재정, 인력, 시설, 장비 등의 부족으로 관계자들의 안타까움을 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을 보면 이러한 강조가 지나치지 않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출저 : www.ocp.go.kr /위표는 지정문화재 중 해제건수를 포함한것임
우리나라 문화재 보존을 총괄하는 기관은 문화재청으로 1999년 5월 24일 문화관광부 외국에서 독립된 청으로 승격하였다. 문화재 관계자들의 10여년이 넘는 설득과 주장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올해는 문화재 보존의 획기적인 전기를 이룬 해로 기억될 것이다. 문화재청은 2국 7과와 산하기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문화재기획국에는 문화재기획과, 궁원문화재과, 문화재기술과가, 문화유산국에는 유형문화재과, 무형문화재과, 기념물과가 있으며 이외에 총무과가 있다. 산하기구로는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전통문화학교, 궁중유물전시관, 국립해양유물전시관, 현충사관리소, 세종대왕유적관리소, 칠백의총관리소, 궁·종묘관리소(3개), 지구관리소(13개)가 있다. 문화재청의 모든 활동은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외에 문화유산헌장(1997년 12월 8일 제정)을 제정하여 문화재 관계자 및 일반시민의 소명의식을 일깨우고자 힘쓰고 있다. 문화재청의 역할은 크게 일곱가지로 첫째, 문화재의 원형보존과 유적정비 둘째, 문화재 보급 및 해외선양 셋째, 문화재의 현상변경과 국외반출 관리 넷째, 매장문화재의 보존관리 다섯째, 보조금지급 여섯째, 문화재의 관리와 수리 일곱째, 한국전통문화학교의 설립 운영이다. 우선 문화재의 원형보존과 유적정비를 위해 문화재청은 문화재를 직접 보수·정비하거나 지방자치단체에 보조금을 주어 문화재 보수사업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문화재의 원형보존을 위해 문화유적 및 유물의 학술조사, 매장문화재의 발굴조사, 고미술 조사, 과학적 보존처리 기술의 습득, 첨단과학 기자재의 활용기술 제고, 문화재보수·보존 전문인력 양성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둘째, 문화재 보급 및 해외선양을 위해 문화재청은 문화재 문화학교 운영, 문화재에 관한 소프트웨어 개발, 해외 소재 우리문화재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또한 1995년에 불국사, 석굴암, 종묘, 해인사 장경판전, 1997년에 창덕궁, 수원화성,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셋째, 문화재의 현상변경과 국외반출 관리를 위해 문화재청은 매우 강력한 법적 제한조건을 두고 있는데 국보· 보물·중요 민속자료는 원칙적으로 국외로 반출 또는 수출할 수 없고 다만 문화 교류를 목적으로 할 경우 2년 내에 들어오는 것을 조건으로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얻어 반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넷째, 매장문화재의 보존관리를 위해 문화재청은 매장문화재 발견시 문화재청장에게 신고하고, 고분·패총 등 매장문화재가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토지와 해저는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아 발굴하도록 하며, 발굴된 문화재는 소유자가 판명되지 않을 경우 국가에 귀속되게 하되 문화재를 발견·신고한 자에게는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매장문화재 보존관리에 있어서 올해 최대의 성과는 사전지표조사제와 사전협의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는 점이다. 사전지표조사제란 건설공사 시행자가 3만제곱미터(약9천평) 이상의 건설공사시 사전지표조사를 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며, 사전협의제란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법인 등이 15만제곱미터(약4만5천평) 이상의 개발계획을 수행할 경우 매장문화재와 관련되는 사항을 문화재청장과 사전협의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 문화재청은 각종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국가지정문화재를 관리·보호·수리하거나, 무형문화재의 보호·육성에 필요한 경비와 기록의 작성을 위하여 필요한 경비를 지급하고 있다. 여섯째, 문화재의 관리와 수리를 위해 문화재청은 특히 국가지정문화재의 소유자가 없거나 불분명한 때에 직접 관리하거나 지방자치단체나 법인 또는 단체를 지정하여 관리하도록 하고 있으며 문화재의 수리는 문화재청에 등록된 문화재수리업자, 문화재수리기술자, 문화재수리기능자가 하도록 하고 있다. 일곱째, 한국전통문화학교는 2000년 3월 개교를 예정으로 신입생을 선발 중에 있으며,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문화재의 보존·보급 및 선양을 위한 이론과 실기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하는 전문교육기관으로 앞으로 문화재 보존인력 양성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문화재의 지역별 관리책임은 지방자치단체의 문화관광국 또는 문화관광과에 있으며, 문화재 보존 전문기관으로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과 박물관·미술관진흥법에 근거하여 설립 운영되는 국립, 공립, 대학, 사립박물관·미술관들이 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주로 무형문화재의 전승과 보급사업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범주에 국립국악원과 전수회관들이 포함될 수 있다. 반면에 박물관·미술관은 유형문화재의 발굴·연구·보존과 함께 전시·교육을 통한 보급사업을 하고 있으며, 이들 기관보다 더 생활과 밀접한 기초단위의 문화재 보존기관으로는 지방문화원이 있다.
Ⅲ. 상상력과 호기심과 자부심을 자극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
사실 원형보존이야말로 문화재 보존의 제1단계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수용자 중심적인 문화재 보존 정책을 이야기하는 필자의 견해에 대해 문화재 보존에 종사하시는 많은 분들께서 우리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생각이라고 하실 것 같다. 그러나 문화재의 원형보존은 문화재의 박제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만큼 그것이 살아 숨쉴 수 있는 공간과 그것을 살아 숨쉬게 만드는 후손들의 관심 속에서만 의미가 있으며 이것은 앞서 문화재청과 여타 기관들이 상정하는 역할 속에서도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목표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어째서 쉽게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원형보존의 측면에서 최근 문화재 보존에 위협을 주고 있는 요소는 두가지 정도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는 문화유산을 자원으로 하는 문화관광을 통해 자치단체의 경제적인 수익을 증대시키고자 하는 흐름이다. 문화유적 답사 코스를 개발하고 축제를 만들어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더 많이 끌어모으기 위해 자치단체마다 고심하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이 한편으로는 문화재에 대한 일반 시민의 이해를 높이는데 기여한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는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졸속 개발로 인해 문화재의 원형보존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전까지는 자치단체가 문화재 보존에 너무 무관심하고 성의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 뭐든 건수만 되면 개발하려고 든다. 무관심에서 경제적 관심으로의 급격한 선회는 오히려 더 관계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둘째는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규제개혁의 흐름 속에서 문화재 보존과 자유경제 원칙 간의 상반된 이해관계를 매우 우려스러운 방향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다. 행정규제개혁을 위한 제도 개선사항 중에서 문화재 보존과 관련된 항목을 몇가지만 예로 들어보면, 문화재청장의 문화재보호·관리에 대한 지시권 폐지, 문화재보존의 안전을 위한 국가의 직접관리권 및 필요조치 권한 폐지, 문화재 수리기술자의 보수교육 이수 의무 폐지, 문화재소유자가 문화재 매도시 국가기관 등에 우선 매도해야 하는 의무 폐지, 문화재 소유자의 문화재 공개 의무 폐지, 매장문화재 발굴 완료신고 의무 폐지, 문화재 매매업의 허가제 폐지 및 신고제로의 전환, 문화재 소유자·관리단체 등의 문화재 안내 표지 설치 및 관리 폐지 등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문화재 보존을 국가 주도에서 민간 자율관리로 전환하라는 말이다. 우리나라 문화재 보존정책이 국가 주도, 규제 위주라는 것은 사실이며 그렇게 갈 수밖에 없었던 근거는 문화재 보존을 위한 재정, 인력, 시설 등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보존을 하려면 그러한 강제규정이라도 있어야 했다는 점이다. 최소한 예산이라도 풍부했다면 사정은 달랐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와 같이 첨예한 폐지주장까지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발굴신고를 하게 되면 신고자가 발굴비를 대야하는 현실, 대학박물관이 힘들여 발굴한 유물을 갖고 있어도 정리는 커녕 수장고 하나 변변하게 지을 돈을 지원받지 못하는 현실이 가중되면서 문화재는 민간의 경제적 손실과 직결되는 대명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민간 차원의 문화재 보존을 촉진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원인은 규제가 아니라 민간의 재산권과 부딪치지 않으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수단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예산의 부족이다. 그러나 여전히 관리력의 한계가 눈에 보이고 민간 자율관리라는 게 말은 좋지만 최소한의 윤리도 부재한 현실 속에서 이제는 정부 스스로가 문화재 보존의 규제자이자 해체자가 되려고 하는 모순에 빠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정문화재의 확대, 비지정문화재에 대한 보존관리 대책 수립, 점적인 보존에서 면적인 보존, 더나아가 권역 보존으로의 전환, 문화재의 과학적인 보존처리 능력 제고, 전문인력 양성 및 전문인력에 대한 처우 개선, 문화재의 데이터베이스화, 문화상품의 개발 등등 수많은 과제들은 요원한 일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용자 지향적인 문화재 보존정책은 현재로서도 가능하고 또한 원형보존 다음이 아니라 오히려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당장 가능한 것은 두가지이다. 우선 문화재청과 박물관·미술관, 전시관, 전수회관 등 문화재 보존과 유관한 전문문화시설이 연계되어 문화재 보존 및 보급 정책이 추진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현재도 무관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충분하지도 않다. 박물관·미술관을 예로 들면, 이곳은 동산문화재의 보고이자 문화재를 일반시민에게 공개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다. 현대미술관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제 20세기 문화유산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물관·미술관이야말로 문화재의 발굴, 연구, 보존, 전승, 보급 선양의 센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낙관적이지 않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문화기반시설 관리운영 평가의 일환으로 박물관·미술관을 조사하였는데, 결론은 이러한 센터들이 일반시민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드웨어를 재정, 시설, 인력, 소장품으로 보고 소프트웨어를 연구, 전시, 교육, 지역사회와의 연계 영역을 구분해 볼 때 소프트웨어 부문의 전반적인 침체는 일반시민의 마음 속에 우리의 문화유산이 갖는 매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소관부서가 달라도 상관 없다. 양쪽에서 다 지원할 수 있다면 더 좋다. 문제는 이러한 전문문화시설이야말로 문화재에 대한 일반시민의 관심을 일깨우는 최적의 장소라는 점에서 문화재청의 문화재 보급 선양 정책의 제일선에 문화기반시설의 활성화 정책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문화재에 대해 일반시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하는 책도 좋고 만화도 좋고 방송 프로그램도 좋고 인터넷 사이트도 좋으니 일반시민의 마음 속에 ‘상상박물관’을 갖도록 해주는 소프트웨어가 많아졌으면 하는 것이다. 다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되돌아가서 이야기하자면, 정작 찾아가서 보면 관리상태도 엉망이고 볼 것도 별로 없는 곳에 닳아빠진 돌 한조각 보기 위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 돌조각에 대한 컨텍스트를 마음 속에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전시디자인 기법이다. 책 한권 값이면 전국 어디를 돌아다니든지 그곳을 상상박물관처럼 볼 수 있게 만들므로. 문제는 학자와 일반시민 사이의 의사소통을 매개하고 일반시민의 상상력과 호기심과 자부심을 자극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없는 것이다. 알아야 보이고 볼수록 더 잘 알게 된다는 이 싸이클이 시작될 수 있는 동기부여는 학자들이 보기에는 일종의 사기처럼 시작될 수도 있다. 일전에 창덕궁에 초등학교 1학년짜리 딸아이를 데리고 가면서 난 이렇게 말했다. “얘 너 ‘왕과 비’에 나오는 왕비가 어떤 집에서 살았는지 보고 싶지 않니?”라고. 물론 능력부족으로 계속 관심을 부추기지는 못했지만, 알라딘과 토이 스토리와 포켓몬스터에 빠져있는 아이에게도 뭔가 계기를 줄 수는 있었다. 나는 누군가 이런 멋진 사기를 내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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