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예

재미교포 문학연구 이루어져야…

 

이 건 종  (고려대 영문과교수)

 

문화적 기여도에 따른 정착의 성공여부

다양한 인종들과 민족들로 구성된 미국사회에서, 한 민족의 성공적인 정착을 상징하는 것은 아마도 그 민족의 미국사회에 대한 문화적 기여도일 것이다. 단적인 예는 미국의 브로드웨이에서 각광을 받아온 중국계 미국인 작가, 연출가, 배우들의 활약상이다. 브로드웨이에서 「엠 버터플라이 M. Butterfly」나 「미스 사이공 Miss Saigon」을 관람한 사람들은 -그 작품들에 관련된 논쟁들을 논외로 하면- 중국계 미국인들이 미국문화의 중심부로 진입했다는 사실에 큰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이 미국문화의 전부는 아니지만, 중국계 미국인들이 문화의 다른 장르들이나 매스컴과 영화산업에서도 비슷한 비중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은 중국계 미국인들의 미국사회에 대한 기여도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척도일 것이다.

 

중국의 경우

문학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예를 들면, 중국계 미국문학계의 대표 주자인 맥신 홍 킹스턴 Maxine Hong Kingston 의 「여전사 The Woman Warrior」는 이미 미국문학의 정전으로 인정되어, 대학의 여러 강의(미국사, 미국문학/화, 여성학, 소수민족문학/화, 이민사)에서 필독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소설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이나 연구 서적이 여러 권 출판되었다. 「여전사」는 문단과 학계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었고 청소년들의 애독서가 되었다. 「여전사」의 성공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최근에 디즈니에서 제작하여 전세계에 배포한 만화영화 「뮬란 Mulan」이다. 「뮬란」은 킹스턴이 「여전사」에 포함시킨 화목란(花木蘭)의 이야기를 극화한 것이다. 이제, 중국의 고전인 화목란의 이야기는 중국계 미국인 사회에서 대대로 전해지던 동화에서 전세계의 어린이들이 즐겨 보는 디즈니의 고전이 된 것이다. 「여전사」의 이러한 성공은 중국계 미국인 학자들의 노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미국의 백인 학자들은 「여전사」의 작품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작품을 적절히 비평할 수는 없었다. 「여전사」에 관한 그들의 비평력 부족은 중국문화에 대한 무지에 기인했다. 사실, 「여전사」를 비평의 대상이 되는 텍스트로 읽기 위해서는 중국계 미국인들의 역사뿐만 아니라 중국의 역사와 문학/화를 알아야한다. 특히, 작가미상의 「목란시이수(木蘭詩二首)」, 한나라의 채염(蔡琰)의 「호가십팔박(胡茄十八拍)」, 「삼국지」, 「수호지」뿐만 아니라, 전거가 의심스러운 송나라의 악비(岳飛)의 일화에 관한 적절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미국 비평계의 이러한 틈새를 발견한, 중국문학에 관한 교육을 받은 중국, 대만, 홍콩 출신 학자들은 출신국과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무시하고 ‘킹스턴 산업’에 대거 참여했다. 그들은 연구 논문과 서적에서, 킹스턴의 작품을 적절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작품에 나타나는 중국문학작품들을 잘 알아야함을 강조하고, 동시에 그러한 고전작품들의 영어번역작업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들의 공동 노력은 미국의 주요 대학에 중국계 아시아계 미국문학을 가르칠 교수직을 창출해내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러한 중국계 미국인 학자들의 노력에 보답하듯, 킹스턴은 「서유기」를 미국화한 작품을 쓰고, 「엠 버터플라이」로 유명한 데이비드 헨리 황 David Henry Hwang은 「삼국지」의 관우를 경극과 함께 미국의 무대에 올렸다. 결과적으로, 중국계 미국인 작가들과 학자들은 상호 협력에 의한 시너지효과를 얻고 있다. 이제, 미국의 독자들은 킹스턴과, 데이비드 헨리 황, 그리고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화 된 「죠이 럭 클럽 The Joy Luck Club」을 쓴 에이미 탄 Amy Tan과 같은 중국계 미국인들의 작품을 계속 요구하고, 그 작품들을 이해하기 위해 중국의 고전들을 찾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재미교포 문화의 미국내 위상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재미교포의 이민사는 1902년 12월에서 1905년 5월 사이에 하와이로 떠난 7,000여 명의 노동 이민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중국계 미국인들에 비해 이민의 역사가 짧은 재미교포들의 경우에는, 몇몇의 배우들이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의 역을 맡으면 재미교포 사회와 국내의 매스컴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화신처럼 주목을 받는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재미교포들의 미국문화의 중심부로의 진입은 아직은 미미하다.

 

한국의 경우

1세기에 걸친 재미교포 이민사에서, 그들의 예술적 역량을 가장 잘 보여준 장르는 문학이다. 특히 소설 분야에서는, 강용흘, 리차드 김, 김용익, 테레사 학경 차, 김난영, 타이 박, 노라 옥자 켈러, 하인즈 인수 펜클, 이창래에 이르는 훌륭한 작가들을 배출해왔다. 재미교포 소설가들에 대한 미국문단의 초기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많은 작가들이 호의적인 서평을 받았으며, 일부 작가들은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강용흘과 김은국의 대표 작품들은 10개의 외국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재미동포 소설가들의 성과는 아시아계 미국문학의 정전 만들기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1972년에 출판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유산: 그들의 산문과 시 선집」에 강용흘, 리차드 김, 김용익의 작품들이 실림으로서 인정을 받았다.

재미교포문학에서 가장 최근의 성과는 올해 미국의 문단에서 화려한 각광을 받고 출판된 이창래의 「제스처 인생 A Gesture Life」이다. 권위있는 「뉴욕커 New Yorker」가 지난 7월에 「미국소설의 미래」특집호에 21세기를 대표할 20인의 소설가들 명단에 이창래를 포함시키고 그의 대표 단편작품으로 게재한 「자원자들 The Volunteers」이 당시에는 미발표작 이었던 「제스처 인생」에서 발췌된 것이라는 사실이 말해주듯이, 「제스처 인생」은 출판되기 이전부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출판 전부터 시작된 출판사의 판매홍보의 영향은 국내까지 미쳐, 지난 8월과 9월에 국내 주요 일간지에는 이창래와 그의 「제스처 인생」에 관한 기사가 경쟁적으로 실렸다.

재미교포 작가에 관한 국내 매스컴의 관심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굳이 강용흘의 「초당 The Grass Roof」과 김은국의 「순교자 The Martyred」의 예를 들지 않아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차학경의 「딕테 Dictee」, 김난영의 「토담 Clay Walls」, 이창래의 「원어민 Native Speaker」, 노라 옥자 켈러의 「종군위안부 Comfort Woman」, 이혜리의 「벼가 있는 정물화 Still Life with Rice」,수잔 최의 「외국인 학생 A Foreign Student」등이 매스컴을 통해 국내의 독자들에게 소개되었다. 과거의 예가 하나의 기준이 된다면, 이번에도 매스컴에서는 이창래의 「제스처 인생」에 관해 더 이상의 관심은 보이지 않을 것이고, 일부 출판사에서 그 소설을 번역, 출판한 후에 판매촉진을 위해 작가를 초청해 싸인회를 한두번 개최하고, 형식적인 독자와의 만남의 시간을 가진 후에, 시간이 지나면 모두들 잊을 것이다. 재미교포 작가들은 이렇게 일회성의 관심만 보인 후에 잊혀질 존재들인가?

 

학자들의 의무

재미교포 문학은 일종의 회색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한국어로 쓰여진 작품들은 미국이나 한국의 문단·학계에서 거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중국계 미국문학 연구자들은 19세기 중반이후 중국어로 쓰여진 작품들을 모아 영어로 번역하여 출판하고 그 작품들에 관한 좋은 논문들을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에 조규익교수가 편집한 「해방전 재미한인 이민문학」은 아주 중요한 시도이다. 앞으로는 해방후 지금까지 발표된 작품들의 선집을 만들고, 중요한 작품들은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이루어져야한다. 지금까지 정부기관이나 문화재단에서 국문학 작품들을 영역하는 작업에는 많은 지원을 해주었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작업과 함께 이민문학의 영역작업과 동시에 이루어 져야한다. 이 것은, 미국의 독자들에게 익숙한 내용의 이민문학을 국문학 소개의 교두보로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영어로 쓰여진 재미교포 문학도 동일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최근에는 국내의 일부대학에서 재미교포 소설들을 가르치는 경우가 있지만, 그러한 작품들에 관한 연구성과는 미미하다. 외국인들에 의해서 가장 많은 논문이 쓰여진 차학경의 「딕테」는 재미교포와 한국인 학자들의 무관심이나 책임회피를 입증하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압권으로 불리는「딕테」에는 한국의 현대사와 한민족의 유·이민사가 잘 나타나 있을 뿐만 아니라, 관련 사진들 -유관순, 일본으로 징용간 노무자들이 탄광의 벽에 써놓은 절규, 일제 관헌에 의해 처형되는 독립운동가들,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의 지도, 해방을 환영하는 인파들- 까지 실려있다. 이러한 요소들이야말로 한국인이나 재미교포 학자들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하는 분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내의 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식민주의 그리고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딕테」를 논하는 미국학자들의 학문적 토론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한국인이나 재미교포 학자들의 고유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의 민족주의와 「딕테」’에 관한 논문조차도 최근에 중국계 미국인 학자가 발표했다. 국내 학자들의 무관심이 계속된다면, 앞으로는 「종군위안부」에 나타난 바리공주설화와 한국의 샤머니즘에 관한 논문도 외국인에 의해서 쓰여질 것이다. 외국인들이 이러한 주제들에 관해 연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미국의 학계의 추세에 방관하고 있는 한국의 학자들의 태도이다.

재미교포 문학을 연구하는 것은 미국문학의 한 변방을 연구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중국계 학자들이 중국문학을 미국에 소개하는 간접적이지만 중요한 방법으로 중국계 미국문학을 연구해온 사실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재미교포 문학 연구를 범한민족 문학 연구의 한 분야로 발달시키고 동시에 한국의 문화와 문학을 해외에 우회적으로 소개하는 한 교두보로도 이용해야한다. 많은 문학상을 수상한 이창래의 「원어민」에 관한 연구 논문이 한국인 부인을 둔 미국인에 의해서 쓰여진 단 한 편뿐이라는 사실이 시사하듯이, 재미교포 문학에 관한 연구는 우리 학자들의 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