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생산자들의 만남을 위하여 -최혜실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굿모닝 미스터 구텐베르크 작년 연말에는 참 편하게 보냈다. 연하장을 사서 글씨를 쓰고 봉투에 주소를 쓰고 난 후 연말에 폭주하는 우편물량 때문에 때맞춰 도착하지 않을까 하고 우려하면서 우체국에 가야 하는 수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공짜로 다양한 전자 카드를 제공해주고 보내주기까지 한단다. 덕분에 나는 받는 사람의 성별, 연령, 직위, 취향에 맞는 카드를 골라 좋은 사연들을 쓰고 곧바로 상대방의 전자우편 주소에 그것을 보낼 수 있었다. 더구나 전자 카드는 종이와는 달리 동영상에 소리까지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그 카드를 받은 상대방은 즉시 밑에 제시된 카드들 중 하나를 골라 답신을 보낼 수 있다. 나는 그 대가로 단지 카드 밑에 뜨는 광고만 참아주면 된다. 이 작은 일에서 나는 디지털 미디어가 아날로그 미디어를 대체하면서 과학의 영향으로 문화 예술이 산업과 손잡는 징후를 감지할 수 있었다. 종이 카드는 부피와 무게가 있기 때문에 운반에 품이 들어야 하는 반면, 전자 카드는 전자의 흐름을 켜고 끄는 원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보이기 때문에 보관과 운반에 문제가 없다. 또 부피와 무게가 없기 때문에 소리와 색, 문자가 섞이기 쉬워 온갖 종류의 동영상, 음악들이 카드 속에 펼쳐져 있다. 양방향성이기 때문에 답장을 보내기도 쉽다. 이 카드가 미래의 카드산업을 석권할 것이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물론 아쉬움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손수 그림을 그리고 붓으로 정성들여 글씨를 써서 우표를 부치고 우체국까지 걸어가며 상대방을 생각하는 정성이 그리울 때도 있으리라. 최근 출판계에 책이 팔리지 않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책은 문자 기록의 집적물이고 문자는 수천년 동안 인류가 지식을 습득하고 전달하는 가장 유용한 도구로 존재해왔다. 따라서 책의 위기는 인류 정신의 위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하면 이런 논리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엄밀히 말하면 책의 위기를 조장하는데 출판계에서도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요즈음 잡지사는 대부분 홈페이지를 만들어 책의 내용을 올리고 있고 저명한 국내외 학자들은 자기 사이트에 논문과 책의 내용을 올려놓고 있다. 도서관마다 학술잡지, 학위 논문의 원문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 놓고 있다. 신문사마다 전자신문을 만들어 인쇄물의 내용을 그대로 하이퍼텍스트에 옮겨놓고 있다. 종이매체와 관련하여 일하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독자에게 동시에 디지털 미디어의 세계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최근 문학계의 논쟁들도 본질적으로는 텍스트 세계에서 하이퍼 텍스트 세계로 이행하는 현상을 그 밑바닥에 깔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특정 작가를 특정 출판사에서 너무 띄우는 것 아니냐는 항의, 그것을 둘러싼 논박은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예술에 대해 우리가 가졌던 개념을 반성하게 한다. 디지털 미디어는 그 속성상 대량생산과 대량수요를 함축하고 있다. 때문에 디지털 미디어를 매체로 한 예술에는 ‘대량’이라는 개념과 수요 공급의 생산 개념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이 마당에 천재적인 예술가가 필생에 걸려 완성한 하나뿐인 대작이라는 예술의 개념은 이미 낡은 것이 된다. 매체의 속성상 ‘수요자’가 좋아하는 ‘상품’을 생산해야한다는 논리가 이미 알게모르게 스며들어 있는 상황에서 스타 생산 시스템이 은연중 가동된다. 시나리오 작가가 있고 PD가 있고 기술진들과 다른 배역들이 어우러져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는 한 인물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방식에 그리 모순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차피 스타는 그 작품 속의 한 요소이면서 작품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빛남을 생산자나 소비자가 일종의 묵계 속에 승인하고 있다. 그러나 문학작품을 쓰는 작가에게 이런 방식이 적용될 경우 그것의 모순이 두드러져 보이게 된다.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글은 한 사람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문학을 비롯한, 문화 예술계의 이런 논쟁들을 올바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 사회의 문화 예술 생산 방식을 이해하고 일정 부분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한다.
디지털과 문화산업의 성립 , 그리고 생산자들 사이의 간극 1) 문화 산업의 성립 그것은 현실이다. 긍정적이라거나 부정적이라거나 가치판단을 하기 전에 이미 개인 맞춤 생산 방식은 문화 소비자의 취향을 흠뻑 만족시켜주고 있다. 일방적으로 시청자에게 정보를 퍼붓는 TV나 라디오와 달리 인터넷 등 인터렉티브한 미디어는 종래 대량생산 체제의 모순들을 많이 완화시켜 주었다. 이미 문화는 산업과 손잡았고 그것이 21세기에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현재 정부에서는 미래의 주력 산업으로 영상, 애니매이션, 디자인, 컴퓨터 게임 등을 들면서 권장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상품’들이 고부가가치 상품이기 때문이다. 타이타닉 같은 영화 한편을 만들어 수출하면 자동차를 몇 만 대 만든 것과 같다는 선정적인 구호를 내세워 주위의 열기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이 현상을 보면서 아마 훨씬 더 많은 예술가들이 순수예술과 문화가 질식해버리는 현실에 대해 한탄하며 이런 종류의 문화형식들은 이윤을 창출하려는 기업인들의 욕망에 종속되고 산업의 구조에 조작된 것이라고 단언할 것이다. 거기에는 예술에 ‘이윤’, ‘대량생산으로 인한 획일화’가 스며드는 이상 그것이 ‘진정성’을 지닐 수 없다는 뿌리깊은 불신감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 ‘예술’의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밖에 없도록 하는데까지 이르고 있다. 예술가의 창조성과 개성이 강조되는 경향은 근대이후부터였다. 종래 수공업자, 영주의 고용자, 떠돌이, 혹은 민중들 자신의 위치에 있었던 예술가들은 근대이후 분업 등의 영향으로 전문성, 독창성을 부여받는다. 또 예술은 기술복제와 대량생산에 대한 비판 세력으로 존재하면서 그 경향은 심화된다. 작품은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고 작품의 연주는 그 시간, 그 공간에서 한 번 밖에 연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형언할 수 없는 영기(aura)를 내뿜는다. 그러나 예술이 이 새로운 미디어를 매체로 하는 이상 생산과 수요, 이윤의 문제는 예술의 운명이 되고만다. 그나마 기술 복제의 시대에는 원본과 모사품이라는 분류가 가능해 오히려 ‘진짜 예술’이 더 대접을 받을 수 있었으나 모든 정보가 전자의 켜짐과 꺼짐(on-off)으로 운용되는 이분법 속에 씨앗으로 숨어있는 디지털 미디어에 이르면 모사품이 원본이 되고 인공의 상황이 현실이 되며, 문화가 산업이 되는 세계로 진입한다. 이제 문화 예술은 돈이 되는 아주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잡았고 산업 또한 은연중에 문화 예술의 향유 방식을 본뜨고 있는데 이 둘이 연결되는데는 취향집단으로서 대중이 자리잡고 있다. 과거에는 대중들이 단지 추위를 해결하기 위해 옷을 입었지만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살아가면서 교육과 문화 제도 속에서 형성된 자신들의 취향으로 옷을 고른다. 한편으로 베네통, 라쿠시테, 버버리 등의 브랜드들은 광고와 각종 이벤트를 통해 기업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들의 취향을 좀 더 확실하게 하고 하나의 계층으로 묶어내는데 일조를 한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문화 산업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대중들은 성장 과정과 사회생활에서 접한 문화 제도를 통해 일정한 취향을 갖추는데 문화 생산자들은 이 취향 집단들의 기호에 작품 생산을 맞추기도 하고 그들의 기호를 조작하기도 한다. 이제 어찌되었건 문화 예술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이 생산과 수요의 틀을 벗어날 수가 없게 된 것이고 예술과 산업의 연결, 대중예술과 고급 예술의 개념의 중첩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고 본다.
2) 문화 예술 생산자로서 기업가 이즈음 들어 기업은 단순히 지역사회 발전, 자신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문화 예술을 지원하는 한편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문화와 예술을 생산하는 생산자로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범국가적인 문화 산업의 장려는 이런 현상을 심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 필연적인 현상을 놓고 생산자들 사이에 뿌리깊은 간극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금세기 최고의 유망 산업으로 부각하고 있는 대중문화 산업에 대한 지원을 통하여 고부가가치를 획득하고 국가의 문화적 역량과 산업적 경쟁력을 제고시키려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한국 대중문화 산업의 세계 시장에서의 위상과 미래 발전 방향, 그리고 전략이 필요하다. 게임 산업, 비디오를 포함한 영화 산업, 애니메이션 산업, 그리고 음반 산업의 세계 시장 위상을 점검하고 미래 발전을 위하여 가장 적합한 거시적인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위의 인용문은 요즈음 기업체 연구소들이 대중 문화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내어놓은 대안들의 서두에 으레 등장하는 전제이다. 그리고 이 전략의 준비 작업으로 한국 대중 문화 산업의 경쟁력을 조사한다. 문화관광부의 추정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게임 산업, 비디오를 포함한 영화 산업, 애니메이션 산업, 그리고 음반 산업의 세계 점유율은 1% 미만으로 미미하다고 한다. 기술적 자산의 경쟁력은 중간 정도로 세계 수준에 비추어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기획력, 마케팅력, 파이낸싱(financing) 능력, 유통력 같은 경영적 자산은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더구나 아무래도 그 나라 고유의 정서, 언어가 중요한 음반 시장에서는 세계 산업 환경과의 긴장감이 낮지만 다른 세 분야에서 나타나는 시장 잠식의 위기 의식은 매우 높은 현실이다. 이런 열악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 게임, 영화, 애니매이션 사업은 세계적인 업체들과 정략적인 제휴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 분야에서는 주로 마케팅이나 엔터테인먼트에 중점을 둔다. 예를 들면 닌텐도 회사는 어린이가 관심을 가질 만한 귀여운 모양의 괴물 캐릭터 창조, 사용자 위주의 기술로 야심작 <포케몬>을 내어 놓았으나 어린이라는 소비자의 취향을 파악하지 못해 고전을 면치 못했다는 조사, 블리자드 회사는 오히려 고객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게임 메니어를 마케팅 전선의 전위로 나서게 했다거나 생산자들의 창의성을 우선시하여 오히려 게임의 카리스마를 높였다는 분석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 문화 산업의 분완전한 환경을 파악하고 필요한 지식을 창조할 사람으로서 신지식인을 꼽고 있다. 전문 지식 뿐 아니라 그것을 네트워킹하며 유연한 사고를 지녔고 리더십도 있어서 타인과 유대를 형성할 줄 아는 인물, 이들이 미래의 문화 산업을 이끌어 갈 주역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자칫 가장 중요한 작품 그 자체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하는 발상법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마케팅 기법으로 문화 소비자의 취향을 공략하고 만들어낸다고 하여도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부분은 그 사회의 문화 속에 녹아있는 것이고 이것을 계산만으로 조작해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신지식인들이 온전히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문화 상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3) 문화 예술 생산자로서 과학자 산업, 경영 분야 쪽에서 전공 관계상 마케팅에 치중한 논의를 하고 있다면 과학 기술계 쪽에서는 기술개발에 역점을 두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게임 난이도에 따른 뇌전환 변화에 관한 연구>, <조직 대형을 이용한 그룹 경로 찾기>, <분산 시스템을 이용한 인터넷 온라인 게임 서버 구성 기법> 등은 컴퓨터 게임을 위한 연구 논문들이다. 또 <벡터 집합 합성 방식의 모핑에 기반한 얼굴의 표정 애니매이션>, <MPEG-4 파라미터 기반의 계층 구조를 갖는 얼굴 모델 생성 툴의 설계 및 구현>, <MPEG-4 3차원 얼굴 모델 애니매이션> 등은 만화 영화의 주인공들이 보다 사실적으로 보이게끔 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논문일 것이다. 컴퓨터 게임을 위해 화려한 영상이 필요하고 빨리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편리할 것이다. 또 최근 출현하고 있는 사이버 캐릭터들은 아직 만화적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고 현실감이 별로 없다. 때문에 좀더 사실적으로 보이게 하여 영화 주인공처럼 만들면 대중들이 열광하는 사이버 스타가 탄생할 가능성이 많다. 실감나게 하기 위해서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기술, 머리카락의 움직임이 사실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기술들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세분해서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컴퓨터 그래픽스 기술은 최근 들어 <쥬라기 공원>, <토이 스토리> 등 영화를 만드는데 활용되면서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영상 소프트웨어 분야로 발전하고 있고 디지털 액터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다. 과학 기술은 이런 부분적인 분야에 활용될 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을 계산학적 이론으로 모델링하는데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예로서 작곡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로봇의 개발을 들 수 있다. 특히 음악은 추상성이 강하기 때문에 비교적 창작이 쉬운 것으로 알려져 있고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음악을 창작, 공급, 소비하는 유형의 종래의 방식과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똑같이 발생하는 문제는 이런 기술의 개발이 예술 발전에 궁극적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과학 기술자 혼자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이버 스타를 개발했을 때 그 주인공이 실재 인물과 똑같아 보인다고 해서 문화 소비자의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는 가상 인물이 너무 실제 인물과 흡사한데 질려버린 사람들에게 거부 반응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애니매이션의 주인공에게도 매력을 느끼고 그가 진행해가는 이야기와 말에 공감을 느끼고 감동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음악이 화려하거나 웅장하다고 해서 컴퓨터 게임에 매료되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디지털 미디어의 속성상 작품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과학 기술의 개발이 필수적이지만 그 기술이 작품에 어떤 효과를 줄 것인가는 전체를 두루 살피고 그것을 총괄하는 체제가 없는 이상 예측하기가 불가능하다. 최첨단 기술이 곧 작품의 효과와 직결되지는 않는 것이다.
예술, 산업, 과학이 만나는 장소 지금까지 나는 미래의 예술이 새로운 매체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 현실임을 전제하고 논의를 진행시켰다(물론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경험으로 보건데, 새로운 매체가 출현했다고 해서 그전의 예술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미디어가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접 소통을 가로막고 네트워크 관리 기구, 운영 체제와 하드웨어 독점 기구들의 영향 하에 진행된다 하더라도 이미 그것은 현실이다. 현실 속에서 있을 수 있는 온갖 불길한 시나리오들을 예상하고 대비하며 이 새로운 국면을 맞아들일지언정 그 현실 자체를 외면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제 만나야 한다. 아무리 발달한 과학 기술이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인간을 감동시킬수 없음을 알고, 또 기술적으로 우세하거나 내용이 재미있더라도 경영이나 마케팅 능력에서 우세할 때 오히려 승리할 수 있음에 모순을 느끼면서, 진정 우리를 즐겁게 할 수 있고 우리에게 정신적 감성적 자양분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야 한다. 예술, 산업, 과학의 세 분야가 만나는 접점에 미래의 우리 예술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