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현상읽기/ 출판

새천년을 달구는 출판계의 화두 - 책값마저 파괴되어야 하는가

김기태 (출판평론가, 한국출판학회 사무국장)

 

도서정가제, 무엇이 문제인가

요사이 출판계를 둘러싼 논쟁 가운데 으뜸은 도서정가제의 존폐 여부가 아닌가 싶다. 서점에서 책에 표시된 가격대로 책을 구입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의아한 대목이겠지만, 출판사와 서점을 경영하는 이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로 다가온 문제가 바로 도서정가제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국민들에게 책은 신성한 존재로서 오랜 세월 동안 그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 그렇기에 서점에서 책값을 가지고 흥정을 벌이는 일이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출판사에서 정한 가격 그대로, 책 뒤표지에 적혀 있는 가격 그대로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 왔으며, 이러한 정가를 토대로 출판사에서는 각 서점과 위탁판매협약을 맺고, 그에 따르는 마진율을 결정해 온 것이 정착된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책은 정가에 입각해서 소매서점과 독자들 사이에 매매가 이루어져 왔으며, 이를 가리켜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도서정가제가 정착되었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 그러한 풍조가 변하고 있다. 대형 할인매장을 중심으로 책값이 서서히 파괴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아예 도서정가제를 폐지하고 자율경쟁체제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는 것이다. 모든 소비제품에 있어 할인 혹은 가격파괴가 만연해 있는 우리 풍토에서,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디 있나’라며 우선 깎고 보는 것이 물건값인 세상에서 유독 책만큼은 값을 깎을 수 없는 품목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 그 동안의 사정이고 보면 책값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방향으로의 변화가 불러온 파장은 상당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특히 출판업계로서는 매우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원래 도서정가제는 ‘재판매가격유지제도’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마땅하다. 도서의 유통질서 확립을 위해 1977년 12월 1일부터 전국적으로 실시된 도서의 정가판매는 서점업계의 자율적인 결의로 실시되기 시작했으나, 1980년 12월 31일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이 제정되면서 동 법률 제20조 제2항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저작물은 재판매가격 유지행위를 할 수 있도록 예외규정을 둠으로써 도서의 정가판매가 법률적으로 보장받게 되었던 것이다. 즉, 생산자→도매업자→소매업자→소비자 등 판매단계별로 생산자가 정한 가격대로 거래(재판매)하여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한다는 의미인 ‘재판매가격유지’ 행위는 우리나라의 경우 도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흔히 ‘도서정가제’라 부르고 있다.

이렇듯 다른 상품에는 일절 부여하지 않는 공정거래법상의 출판물에 대한 예외적 재판매가격유지행위의 제도적 인정은, 국가·민족의 정신문화적 총화인 출판물이 사유재(私有材)이기에 앞서 공공재(公共財)이며, 시장에서의 가격경쟁 부재로 인한 폐해나 역기능보다는 국민의 교육·교양 및 문화복지 증진에 기여하는 문화적 순기능이 훨씬 크다는 것을 법적으로 승인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처럼 20년 이상 뿌리내려 온 도서정가제가 20세기 말부터 불어닥친 가격파괴 바람에 휩쓸려 존폐의 기로에 처하게 된 것은 시장경제원리의 추세에 비추어 보면 사실상 예견된 수순일 수도 있다. 또 우리 출판 산업이 국내외의 출판환경 변화에 따라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점에서 도서정가제 문제를 살펴보면 당연한 흐름일 수도 있다. 영상문화의 범람, 독서 인구의 급격한 감소, 인터넷 등 정보 기술의 첨단화 등에 따른 출판물 수요의 감소, 1997년 출판시장 개방을 비롯하여 WTO(세계무역기구)체제의 출범에 따른 저작권법 개정 등으로 인한 무한경쟁체제로의 진입은 출판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강요하고 있다. 도서대여점의 확산, 대학가의 무단복제 풍토, 빈약한 공공도서관 등 출판시장의 확대를 가로막는 기본 인프라의 미비와 아울러 영세한 업태환경, 전근대적 유통구조 및 거래관행 등 내부적 문제점도 산적해 있다.

결국 우리나라 출판산업은 산업사회에서 해결하지 못한 근대적 과제와 지식정보사회에서 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적응이라는 이중적 과제를 안고 불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1994년부터 유통업계 전반에 확산되기 시작한 가격파괴 현상은 IMF(국제통화기금) 체제와 맞물린 서점가의 할인판매로 이어지면서 재판매가격유지제도(도서정가제) 존폐문제라는 새로운 쟁점을 낳고 있다. 즉, 지금까지의 관행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경제학계, 관련업계 일부의 재판매가격유지제도 철폐론이 비등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지 하나의 의견에서 끝나지 않고 출판유통의 새로운 조류로서 사회적 힘을 얻어가고 있다.

 

도서정가제 파괴를 몰고 온 일련의 변화들

도서정가제 철폐 요구의 저변에는 새로운 유통환경의 구축이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작용하고 있다. 여기서는 우선 도서정가제의 고수가 어렵게 된 현실을 진단해 보고자 한다.

첫째, 대형 할인매장의 등장을 들 수 있다. E마트, 농협 하나로마트, 까르프, LG마트, 한화마트, 삼성홈플러스, 롯데마그넷, 프라이스클럽 등 대부분의 대형 할인매장(양판점)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일부 신간과 베스트셀러, 아동도서 등을 10∼25%까지 할인판매하여 고객을 유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 할인서점의 증가를 들 수 있다. 할인서점의 증가로 인해 부천, 인천 등과 같이 도시 전체가 할인판매 지역으로 변모하는가 하면, 할인서점은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 할인서점의 주요 취급분야는 학습참고서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셋째, 인터넷서점의 등장과 발전을 들 수 있다. 미국의 도서판매 경로 중 인터넷의 비중이 이미 20%를 넘어선 것을 비롯하여 일본에서는 2003년도 전체 전자상거래(EC) 시장규모 71조 엔 가운데 서적·CD가 3.5%나 점유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고객이 인터넷을 이용해 주문한 책을 세븐일레븐과 같은 집 근처 24시간 편의점에서 대금을 지불하여 받고 있다. 물류비 절감, 신속한 배송, 현금 지불에 따른 편의성을 동시에 고려한 것이다.

인터넷 인구 세계 10위권인 우리 나라에서도 1997년부터 종로서적(5월), 영풍문고(6월), 교보문고(9월), 서울문고(10월) 등 대형서점이 경쟁적으로 인터넷서점을 개설한 데 이어 알라딘, YES24, 와우북, 규장&책마을 등 인터넷 전용서점이 대거 등장하였고, 삼성물산, 데이콤 등 대자본까지 인터넷서점 분야에 뛰어들어 경쟁과 발전이 가속화되고 있다. 또한 1999년에는 삼성물산이 미국의 아마존, 일본의 기노쿠니야와 제휴를 하였고, 영풍문고가 미국의 반즈&노블, 일본의 닛판, 독일의 베텔스만과 각각 제휴를 하는 등 다국적 인터넷기업 또는 거대 체인서점·유통업체 등의 잇달은 국내 시장진입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1998년 초에는 규모에 따라 4000만원∼1억원 정도의 월매출을 올리던 대형서점들은 1999년 후반기에는 10배 가까이 매출이 증가하였고, 할인을 전문으로 하는 인터넷 전용서점 역시 급속한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결국 시대적 흐름에 따라 무조건 도서정가제가 지켜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르게 된 셈이다.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부정책

외국의 경우 재판매가격유지제도는 신축성 있게 탄력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선 영어권국가에서는 판매경쟁 촉진 및 소비자 선택권 확보 등 시장논리에 의해 재판매가격유지제도가 존재하지 않으며, 주요선진국 중에서는 프랑스, 독일, 일본 등에서 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프랑스는 특별법으로, 기타국에서는 공정거래법에서 독점금지 예외 조항으로 이를 인정하고 있다.

프랑스는 1981년부터 도서정가특별법인 랑법을 제정하였는데, 신간도서의 경우에도 5%이내 할인을 인정하고 있다. 독일어권 3개국 공동정가제를 실시하는 독일은 독자의 발행전 예약 주문의 경우 20%까지 할인을 하는 등 탄력적인 제도운용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출판유통의 뿌리가 된 일본의 경우에도 대학구내서점의 10% 할인 등을 시행하고 있는데, 공정거래위원회의 2001년 3월 재판매가격유지제도 폐지결정방침에 따라 이의 탄력적인 운용을 위한 제도개선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속출하고 있는 할인 전문매장, 대형 할인매장 및 일부 소매서점의 도서 할인판매로 인한 출판·서점업계의 재판매가격유지제도 붕괴에 따른 위기의식은 보다 확고한 출판물 재판매가격유지제도의 유지를 위한 법제화 논의로 발전하였다. 이는 출판업계 및 서점업계의 정가판매제도 법제화 추진으로 귀결되었다.

출판업계는 출판사 등록 및 납본의무 등 행정절차법의 성격이 강한 현행 ‘출판사 및 인쇄소의등록에관한법률’을 폐지하는 대신 국가지식문화 기간산업인 출판산업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진흥법 제정을 문민정부 이래 주창해 왔는데, 정부입법에 의해 제정하려는 법이 바로 가칭 ‘출판문화산업진흥법(안)’이다. 출판업계 주요 단체들이 망라된 공동대책위원회 명의로 제안된 이 법안에서는 출판물 정가판매제도에 관해 규정하고 정가표시 및 판매준수 의무를 골자로 한 정가판매 준수의 예외, 벌칙 등을 명시함으로써 출판업계의 재판매가격유지제도의 법적 관철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서점업계에서 1999년 연내 법률 제정을 목표로 출판물의 재판매가격유지제도만을 규정한 특별법 형태로 입법화하려고 했던 것이 가칭 ‘저작물의 정가유지에 관한 법률(안)’이다. 이 법안은 기존의 재판매가격유지계약서를 토대로 전문 할인매장 및 할인을 주무기로 하는 인터넷서점 등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한편, 사업자간 할인행위 방조를 철저히 근절한다는 것이 입법 취지이다. 서점업계는 이 법안을 1999년 가을 정기국회에 입법 상정하기 위해 문화관광부에 입법 추진을 청원하였으나 출판계 등 관련 업계의 의견 수렴 및 정부 법률안 작성을 이유로 이를 보류하자 의원입법 형태로 1999년 11월 22일 국회에 법안을 접수시켰다. 그러나 이에 대한 네티즌, 일부 서점 및 인터넷서점업계, 공정거래위원회, 국회 정보통신위원회 등의 반발도 제기되었다. 독자를 위한 서비스인 할인행위가 범죄화되고, 소비자의 가격 선택권이 침해받으며, 새로운 유통방식인 전자상거래의 발전 가능성을 차단함으로써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결국 이 법안 제정 추진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강력한 반발로 국회 본회의 상정조차 못한 채로 유보되었다.

이러한 관련업계의 출판물 재판매가격제도 법제화 움직임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출판 소관부처인 문화관광부의 ‘지지’ 입장과 재정경제부·공정거래위원회 등 경제부처 중심의 ‘반대’ 입장으로 대별된다. 먼저 문화관광부의 출판정책은 ‘도서정가제 유지’를 골간으로 한다.

그 목적은 “서점업계의 과당경쟁으로 도서정가의 할인판매가 성행할 경우 중·소형 서점의 도산으로 존립기반이 무너질 뿐 아니라 지식의 근간인 도서의 특수성과 출판산업의 발전을 위해 정가제 유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출판유통 경로가 발전해 나가고 있는 사회적 제반여건을 고려할 때, 서점만을 유일한 출판물 유통경로로 키우고자 한다는 편협성을 면하기 어렵다.

문화소비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즉, 업계의 요구에는 민감한 듯하면서도 도서관 시설확충은 예산이 부족해서 하지 못하고, 출판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도서대여점은 역부족인 도서관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규제나 대여료 징수도 어렵다는 정책의 모순성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정책집행자의 출판에 대한 인식결여로 인해 뚜렷한 정책지향의 목표가 없으며, 지속적인 장단기 계획도 수립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정책의 일관성이 없었던 데서 연유하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정책적 입장 역시 모순되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도서정가제는 판매전망이 불투명한 도서의 시장도입 촉진, 출판활동의 활성화, 서점의 대형화 유도 등 긍정적인 효과를 갖고 있으나, 이와 함께 여러 가지 문제점도 노출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이유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고 있다.

첫째, 모든 서적에 대해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고 있어서, 취미서적·사전·참고서·베스트셀러·전집류 등 판매전망의 불확실성이 낮고 따라서 도서정가제로 보호할 필요가 없는 서적까지 재판매가격이 유지되고 있어 가격경쟁이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

둘째, 출판된 지 1∼2년 경과한 재고서적도 서점에서 자율적으로 할인판매하는 것이 금지되고 있어 소비자들이 재고서적을 싸게 살 수 있는 방안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는 것이다. 현재 일부 서점에서 재고서적을 싸게 판매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안 팔린 책을 출판사로 다시 보내서 출판사에서 정가를 낮추어 서점으로 보낸 후, 낮추어진 정가로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할인판매라 할 수 없다.

셋째, 이렇게 도서정가제가 엄격하게 시행되다 보니 도서의 가격경쟁이 없어 책값이 비싸게 유지되고, 그에 따라 도서대여점의 등장, 독서인구의 증가 미흡 등으로 도서판매의 증가가 안되어 출판업계의 발전도 저해되고 있다.

위와 같은 정책적 판단은 출판현상에 대한 정책당국의 이해부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첫번째로 제시한 ‘판매전망의 불확실성’은 출판분야별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며, 베스트셀러 등에 의해 축적한 자본으로 다른 다양한 출판물의 기획이 가능하다. 두 번째로 제시한 ‘진정한 의미의 할인판매’란 출판사가 아닌 서점 단독의 할인판매를 뜻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 역시 출판사들의 방조를 부추길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세 번째에서 재판매가격유지제도 시행으로 가격이 비싸진다는 논리 역시 비현실적인 지적으로, 주지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도서가격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싼 편이며, 다른 물가에 비해서도 인상폭이 훨씬 완만하다. 특히 도서대여점 증가의 근본원인은 공공도서관 부족에 있다.

또 책값이 비싸 독서인구의 증가가 어렵다는 설명도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이다. 따라서 이 같은 경제논리로는 소비자의 입장도 대변하기 어렵고, 더욱이 출판관련 업계를 설득할 수도 없는 것이다.

 

책값마저 파괴될 수는 없다

최근 일본에서는 영어를 그들의 공용어로 지정하는 방안이 확정적이라고 한다. 지구촌을 하나의 공간으로 이어주는 인터넷상의 언어가 곧 영어이기에 세계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영어 공용어론’이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고 국경 없는 무한경쟁 체제의 글로벌 환경에서 이제 ‘한국’의 정체성은 ‘한글’이라는 언어·문자를 제외하고는 달리 찾아볼 대상이 없다. 이러한 언어·문자를 통해 민족문화를 계승하고, 교육·정보·교양을 매개하며, 가장 많은 민주주의적 언로(言路)로서의 채널을 가진 것이 바로 출판물이다. 더욱이 오늘날 일반화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지식기반 정보사회에서 그에 걸맞는 전문성, 다원성을 충족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공적(公的) 미디어로서 거의 유일한 것이 바로 출판물이다. 출판물 재판매가격유지제도의 문화정책적 배려와 법리적 의의가 그 동안 유효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출판물 재판매가격유지제도의 붕괴는 출판의 질을 떨어뜨리고 영세한 출판사 및 서점의 도산을 야기시키는 한편, 동일한 출판물의 가격 불균등에 따른 지역간 문화복지권의 격차를 발생시키며, 할인율을 감안한 출판사의 가격책정으로 오히려 실질적인 도서구입가격이 인상되어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등 재판매가격유지제도 폐지에 따르는 악영향이 훨씬 커질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물론 앞서 살핀 것처럼 오늘날 시장환경에 비추어 볼 때 무조건적인 정가고수에 무리가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기왕의 책이 먹고 마시고 입는 소비제품이 아닌 정신적 표현의 산물, 즉 문화상품이라는 본질을 감안한다면 재판매가격유지로 지탱되고 있는 도서정가제만큼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소신이다. 책값마저 파괴된다면 책 속에 간직되어야 할 고유성 또한 파괴되어 상품가치로만 판단될 것이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는 결코 일반적인 경제논리나 업계의 주장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 문화발전을 위한 출판정책적 측면에서 종합적이고 정밀한 검토작업이 절실히 요구되며, 책의 본질이 최대한 수렴되는 판단이 뒤따라야 한다. 책다운 책이 살아남는 세상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