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현상읽기 - 영화 |
춘향전과 춘향뎐
하 재 봉 (영화평론가) 소설 「춘향전」과 판소리 「춘향가」 고전이 고전인 이유는, 그것이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변치 않는 가치를 주기 때문이다. 고전이 갖고 있는 이러한 영원불멸성이야말로 표피적 흐름에 영합하는 가벼움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적 의문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생성된 것이다. 그러나 고전을 그것이 생산되던 시대의 가치 척도가 아닌, 당대의 시각으로 읽어내려는 노력은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세익스피어의 희곡이 시간과 장소를 바꿔 가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다양하게 해석되어 공연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그만큼 인간적 삶의 보편적 감성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전으로 가장 유명한 「춘향전」은 원래 판소리로 불리우다가 소설로 정착된 판소리계 소설 중의 하나이다. 소설의 이본이 무려 120여종에 이를만큼 다양한데 각 이본의 기본 줄거리는 비슷하지만 그 세부묘사는 각 판본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이본으로는 경판본 4종, 완판본 3종, 안성판본 1종이 있고 사본으로는 조선 영조 때인 1754년 쓰여진 유진한의 한시 「춘향가」를 비롯해서 한문본 5종, 한글본 30여종, 그리고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일본, 중국 등에서 번역된 번역본 16종이 있다. 신극 운동의 중심점이 된 원각사가 창건된 이후 자주 올려진 연극도 「춘향전」이었다. 시대와 양식을 달리 해도 대중들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전달될 수 있는 「춘향전」의 열려진 개방성은 창극, 신소설, 현대소설, 연극, 영화, 오페라 등 다양한 예술장르의 소재가 되어왔다. 「춘향전」의 서사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구운몽」처럼 저자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지 않고 오랫동안 민간 전승되면서 민중들의 집단 창작에 의해 그것의 서사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KBS-TV의 「역사스페셜」에서 조선조 후기 암행어사였던 성창순이 이몽룡의 실제 모델이라는 주장을 해서 화제를 모았다. 남원에서는 부사 자제 도령을 사모하다 죽은 기생 춘향의 원귀를 달래기 위해 그같은 소설이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으며, 거기에 억압받는 민중들의 희망이었던 암행어사 설화가 결합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는 이야기들을 종합해서 조선조 후기 민중적 연희양식으로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던 판소리 예술가가 하나의 소리극을 만들어 불렀을 것이며 후대로 전해져 불리워지면서 서사구조가 좀 더 뚜렷해졌으리라고 추측된다. 「춘향전」의 문학적 작품성은 이보다 조금 앞선 시기인 숙종 때에 창작된 「구운몽」에 비해 떨어지나 춘향과 몽룡의 계급을 초월한 사랑이라든가, 탐관오리를 멸하는 몽룡의 어사출또 장면 등이 민중들의 사랑을 받은 커다란 원인이 되었다. 또 권력계층의 대표적 인물인 변사또의 어떠한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정절을 지킨 춘향의 열녀적 행실이 당대의 윤리적 풍토와 결합되어 하나의 전범이 됨으로써 오랫동안 민간 전승된 것으로 판단된다. 판소리 다섯 마당 중의 으뜸으로 꼽히는 판소리 「춘향가」는 판소리의 각 창자들이 각각 고유의 더늠으로 이야기를 덧붙이기는 하였지만 근본이 바뀐 것은 별로 없다. 「춘향가」는 판소리 다섯마당 가운데 하나로써 「춘향전」 이야기를 다시 판소리로 재구성한 것이다. 「춘향가」는 판소리 다섯마당 중 가장 음악성이 뛰어나고 사설도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판소리 「춘향가」를 완창하는데는 짧게는 5시간, 길게는 8시간이 걸린다. 현재 전해지는 것 중에서는 송만갑, 정응민, 김창환의 판소리가 비교적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창자에 따라 약간씩 짜임새는 다르지만 대체로 초앞, 광한루 경치, 책방독서, 백년가약, 이별가, 신연맞이, 기생점고, 십장가, 옥중가, 과거장, 어사행장, 춘향편지, 옥중상봉, 어사출또, 뒤풀이로 이루어진다. 「춘향가」 가운데 가장 대중들에게 알려진 소리 대목은 적성가, 사랑가, 이별가, 옥중가, 농부가, 어사와 장모, 옥중상봉, 어사출또 등을 들 수 있다. 또 부르는 사람에 따라 남창, 여창, 동창의 3종류가 있는데 남창은 웅건하고 간결하며 여창은 전해지지 않는다. 동창은 미완성인 채로 전해진다.
영화화된 「춘향전」 영화는 이제 탄생된지 갓 백년이 넘는 신생예술이지만, 대중들의 일상적 삶에 토대를 두고 영상정보화 시대의 가장 흡인력 있는 예술양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대중들은 스크린에 펼쳐지는 삶의 다양한 형태를 바라보면서 즐거움을 얻고 인간 존재에 대한 본질적 문제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초기에는 소설이나 연극의 아류 장르로 치부되었던 영화가 빠른 시간 안에 대중들 속으로 파고들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자극적 재미와 함께 삶의 구체적 모습들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수많은 시간을 통해 검증된 고전만큼 훌륭한 가치를 갖고 있는 소재는 없다. 우리의 대표적 고전 「춘향전」은 일제 식민지 치하였던 1923년, 일본인 감독의 손으로 처음 영화화되었다. 첫 번째 「춘향전」에서는 종로 뒷골목 우미관의 이름난 변사 출신인 김조성이 이몽룡 역을, 당대의 이름난 기생 한룡이 성춘향 역을 맡았다. 일제시대에는 기생들이 영화의 주관객이었고 또 여배우로 자주 캐스팅되었다. 여염집 여자들은 배우의 길을 걷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1923년 12월 「황금관」에서 개봉된 일본인 하야가와 감독의 「춘향전」이후 지금까지 모두 13편의 「춘향전」 영화가 만들어졌다. 27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진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는 못하지만 「춘향전」은 우리 영화사상 가장 자주 영화화 된 대표적 고전이다. 한국영화사에 기록된 최초의 유성영화도 「춘향전」이다. 이명우 감독이 만든 「춘향전」은 1935년 10월 4일 개봉되었다. 세계 최초의 유성영화인 「재즈싱어」가 만들어진 것이 1927년이니까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우리도 유성영화를 만든 셈이다. 그때 춘향 역에는 고전적 얼굴로 큰 인기를 모았던 문예봉이 출연했다. 그녀는 1932년 이규환 감독의 「임자없는 나룻배」에서 나운규의 딸로 출연해 인기를 모았는데 이후 「아리랑 고개」 「장화홍련전」 등에 출연했고 해방 후 월북해서 북한의 인민배우가 되었다. 최초의 「춘향전」 영화였던 1923년작 「춘향전」의 일대 춘향역을 맡은 한룡이 문예봉의 외숙모이다. 1955년 1월 6일 국도극장에서 개봉돼 12만명을 동원한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은 당시 서울 인구가 150만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100만 관객동원 못지 않은 엄청난 흥행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성춘향 역에 조미령, 이몽룡 역에 이민, 방자 역에 전택이, 향단 역에 노경희 등 당대의 인기 배우들이 출연했고 6.25전쟁으로 황폐해진 대중들의 정서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고전의 따뜻함으로 녹아내렸다. 특히 청순한 이미지의 조미령은 남성 관객들의 애간장을 태웠고 옥중 장면의 비극적 이미지로 여성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후 「대춘향전」(1957년, 김향 감독) 「춘향전」 (1958년, 안종화 감독) 「탈선춘향전」(1959년, 이경춘 감독) 등이 이어졌지만 가장 관심을 모았던 것은 1961년 제작된 두 편의 춘향전이었다.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과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이 맞대결을 벌이면서 관심을 집중시켰다. 당시 홍성기 감독은 「별아 내 가슴에」의 흥행 성공으로 최고의 멜러 영화 감독이었고 신상옥 감독은 연이은 흥행 참패로 제작자들의 관심 밖에 있었다. 1961년 1월 18일 국제극장에서 김지미 주연의 「춘향전」이 먼저 개봉되었지만 흥행 참패를 했고, 열흘 뒤 1월 28일 명보극장에서 개봉된 「성춘향」은 36만명의 기록적인 관객 동원을 하며 신필름을 탄탄한 입지에 올려 놓았었다. 제작비 조달이 수월치 못해 신상옥 감독은 최은희의 패물을 처분해서 제작비를 조달할 정도로 고생하며 만들었는데, 「성춘향」에는 김진규 최은희 열연했지만 방자 역의 허장강과 향단 역의 도금봉 연기가 압권이어서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김지미는 슬픔을 자극하는 눈물많은 춘향역을 연기했고, 최은희는 현모양처형의 슬기로운 춘향역을 연기했는데 당시의 관객들에겐 후자가 훨씬 박수를 받았다. 그 뒤에도 「한양에서 온 성춘향」(1963년, 이동훈 감독) 「춘향」(1968년, 김수용 감독) 「춘향전」 (1971년, 이성구 감독) 「성춘향전」(1976년, 박태원 감독) 「성춘향」(1987년, 한상훈 감독) 등이 만들어졌다. 1971년 제작된 이성구 감독의 「춘향전」은, 전 문화부장관 이어령씨가 각본을 맡은 우리나라 최초의 70미리 영화이기도 하다. 이처럼 「춘향전」은 최초의 영화, 최초의 유성영화, 최초의 70미리 영화라는 기록을 갖고 있을만큼 우리 영화의 중요한 소재로 활용되었다. 춘향역을 맡은 여배우들만 해도 한룡, 문예봉, 조미령, 박옥린, 고유미, 박복남, 김지미, 최은희, 서양희, 홍세미, 문희, 장미희 등 우리 영화사에 기록될만한 쟁쟁한 여배우들이다. 춘향의 이미지도 각 시대에 따라 변모되었는데 처음에는 당대의 기생이 춘향 역을 맡았던 것처럼 기생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50년대에는 청순가련형, 60년대에는 현모양처형으로 바뀌었고 60년대 후반에는 쾌활한 모습으로 그리고 76년 장미희 주연의 「성춘향전」에서는 앙칼지고 표독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80년대에는 당찬 모습의 신세대 춘향이 탄생했고 2000년의 「춘향뎐」에서는 권력에 저항도 하면서 섹스도 즐길줄 아는 모습으로 바뀌어졌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이번에 개봉된 「춘향뎐」은 「춘향전」 영화로서는 14번째, 임권택 감독 영화로서는 97번째이지만 지금까지의 「춘향전」과는 궤를 달리한다. 「만다라」 「씨받이」 「서편제」 「태백산맥」 등을 발표하면서 한국의 대표적 영화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임권택 감독의 작품이어서가 아니라, 수천대 일의 경쟁을 뚫고 선발된 신인 이효정 조승우의 연기가 탁월해서가 아니라, 판소리 「춘향가」와의 영상적 결합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것은 분명히 모험적이고 야심에 가득찬 새로운 시도이다. 시각과 청각 이미지가 부딪치면서 자칫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면 뒤죽박죽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시각 이미지 위주인 영상 장르와 청각 이미지로 가득찬 음악 장르간의 행복한 교접을 꿈꾸었던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모차르트의 일생을 그린 「아마데우스」, 베토벤의 연인을 중심으로 한 「불멸의 연인」, 작곡가 「토스카니니」 등 음악가들의 일생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이나 「가면 속의 아리아」 「바이올린 플레이어」 「파리넬리」처럼 음악 자체가 중요한 플롯이 되는 영화는 있었다. 하지만 「춘향뎐」처럼 소리와 이미지가 서로의 입속으로 깊숙이 혀를 주고 받으며 은밀히 삼투된 영화는 없었다. 「춘향뎐」의 근간이 되고 있는 조상현의 판소리 춘향가는 조선 철종 때 명창 김세종에서 비롯된 동편제로서, 성음이 분명하고 리듬을 구사하는 기교가 탁월해 애닯은 정서보다는 호쾌한 맛을 준다. 김세종의 동편제 판소리는 그의 제자 김찬업을 거쳐 정응민, 조상현으로 이어졌는데, 조상현의 「창본 춘향가」 특징은 각 명창들의 뛰어난 대목들이 고루 담겨 있다는 것이다. 조상현씨는 12세때인 1951년 정응민의 제자로 들어가 7년을 사사했다. 임권택 감독은 지금까지의 춘향전 영화들처럼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과 이별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 위주가 아니라 대담하게 청각적 이미지인 판소리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하는 새로운 영상을 만들어냈다. 과연 영화가 시작되면 조상현의 남성적 힘과 기교가 어울어진 탁트인 판소리가 흘러나온다. 서울 정동극장에서 실제로 공연된 조상현의 판소리 「창본 춘향가」 공연을 보기 위해 관객들이 극장에 들어오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의 끝도 마찬가지다. 정동극장의 판소리 공연이 끝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 즉, 무대 위에서의 판소리 공연이 영화를 열고 닫는 극중극 형식으로 되어 있다. 2시간 12분의 런닝타임에서 조상현씨의 판소리가 들리는 시간은 55분. 판소리는 인물들의 감정을 전해줄 뿐만 아니라 나레이션 기능도 맡고 있다. 옛날 말투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관객들을 위해 판소리가 연창되는동안 화면 아래에는 한글 자막이 나온다. 영상은 마치 소리와 앞뒤를 다투며 서로 소매를 끌고 가듯 펼쳐지고, 몸에 꼭맞는 옷을 입은 듯 안팎이 하나로 꽉 짜여진 절묘한 시청각적 조화가 우리를 황홀하게 만든다. 판소리의 영상적 결합을 위해 춘향전에서 잔재미를 주었던 방자와 향단의 사랑이야기도 가지를 쳐버렸다. 「춘향뎐」의 대본은 국립극장장 김명곤씨가, 조상현 ‘창본 춘향가’중에서 사랑가 옥중가 십장가를 중심으로 각색했다. 영화 속에서 흘러나오는 판소리는 조상현씨의 소리 이외에도 오랜 창극 활동으로 소리가 다져진 월매 역의 김성녀는 물론, 방자와 매맞는 춘향을 구경하던 기생도 한가락 뽑는다. 「춘향뎐」에는 또 한국의 아름다운 사계가 정일성 촬영감독에 의해 수려하게 담겨져 있다. 가을 걷이가 한창인 들녁은 오곡이 익어가는듯한 노란색, 겨울은 인상주의풍의 터치로 회색톤이 첨가되었다. 곡선이 아름다운 처마, 원경으로 잡힌 지리산 등도 아름답다. 태흥영화사 제작진은 화면의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2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들여 전북 남원시에 1천3백평 규모의 춘향마을과 옥사를 만들기도 했다. 이효정 조승우로 짜여진 「춘향뎐」의 신인 연기자들은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엿보이며 선전했지만 그러나 지나치게 소극적이며 조심스러웠다. 산전수전 다 겪은 월매 역의 김성녀가 없었다면 「춘향뎐」의 다른 연기자들은 오합지졸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김성녀는 그동안 창극 무대에서 갈고 닦은 솜씨로 탁월하게 좌중을 제압하며 상황을 리드해 나갔다. 이몽룡 역의 조승우는 단국대 연극영화과 2학년으로 70년대 인기가수 조경수씨의 아들이다. 다소 한량끼도 있으면서 지적이고 귀티가 나야 한다는 임권택 감독의 주문을 충실히 소화할 외모였고, 정신여고 1학년인 성춘향 역의 이효정은 춘향과 같은 16살 나이이면서 한국 여자다워야하고 기품있으면서 섹스어필해야 된다는 감독의 까다로운 외적 조건을 만족시켜 준 캐스팅이었다. 그러나 춘향 역만을 놓고 보면, 역대 춘향 중에서 가장 연기력이 모자란 춘향으로 기억될 정도로 소심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변사또(이정헌 분)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암행어사 앞에서 무릎을 꿇는 비굴한 모습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주관이 뚜렷한 강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수청거절한 괘씸죄를 그리 과하게 다루시셨소」라고 이몽룡이 묻자 변사또는 「에미의 신분을 좆아 기생이 되고 종이 되는 종모법을 아니라하니 나를 향한 발악이 아니라 이 나라의 근본을 부정하는 국사범」이라고 대답한다. 임권택 감독은 「처음 두세 달 찍은 필름을 리듬이 나오지 않아 버리기도 했고, 편집을 하다 말고 방자가 춘향을 데리러 가는 봄 장면을 가을에 다시 찍기도」 했다. 또 「변학도의 수청을 거절하고 춘향이 매맞은 「십장가」장면에서 저항하는 춘향을 클로즈업시키는 대신 거대한 관아의 전경을 잡아서 권력구조가 갖는 중압감을 보여」 주었으며 춘향의 절규를 조상현 명창의 소리로 묻어버리기도 했는데 이 모든 것이 춘향 역의 연기가 충분치 못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서편제」의 한서린 판소리 리듬으로부터 임권택 감독이 비로소 벗어났으며, 장인다운 솜씨로 소재를 힘있게 버무리면서 오직 그만이 만들 수 있는 영상적 경지를 개척해냈다는 것이다. 「서편제」의 성공 이후 여전히 대가다운 풍모는 잃지 않았지만 「축제」에서는 소재와의 탄력적 거리를 확보하지 못해 힘이 들어갔고 「창」에서는 소재에 짓눌려 비틀거리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줄거리인데도 볼구하고 2시간 12분의 상영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춘향뎐」의 시청각적 결합이 그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사랑가」 처럼 열여섯 청춘남녀가 농탕지게 어우러지는 장면에서 판소리의 구성진 리듬과 영상이 농익게 넘나든 것이나, 「이별가」 「옥중가」처럼 유장한 비장미가 흘러 넘치는 곳에서 관객들이 눈시울을 적실만큼 애달픈 화면을 만든 것도, 모두 섬세하게 판소리의 영상화를 시도한 감독의 공이다. 임권택 감독은 춘향에 대한 해석도 다르게 하고 있다. 춘향은 「엄청난 열녀에 교양을 갖춘」 여자가 아니라 이도령이 한양으로 떠나겠다고 하자 「치마를 찢는」 평범한 아낙네였다는 것이다. 춘향전이 우리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이유 중의 하나는, 문학 내적인 탁월성도 있지만 높은 예술성을 지닌 판소리 창자에 의해 끊임없이 연창되면서 대중들의 공감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판소리 발성법은 독특한 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오랜 기간의 전문적 훈련이 필요하다. 설성경 교수는 춘향전에서의 춘향과 월매, 이도령과 변부사는 사실 한 인물의 음양의 속성을 극대화해서 표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 인물이 지닌 음양의 두 속성을 선한 인물과 악한 인물로 현시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음양적 인물 배치와 주역적 인생론을 서사적 사건으로 펼쳐 보인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음으로서의 여성들의 길과 양으로서의 남성들의 길이 상생과 상극의 대대적 조화를 이루고 있다. 즉, 춘향전에서 춘향과 도령이 상생적 음양 관계를 구성한다면, 이는 다시 각각의 상극적 음양 관계의 인물 구조로 확산되고 있다」(「새로 읽는 춘향전」, 「문학과 의식」 2천년 봄호) 판소리라는 장르의 우수성과 뛰어난 구성이 전제된 춘향전은 임권택 감독의 손을 거치면서 「춘향뎐」으로 거듭 태어나 기존 영화문법의 틀을 깨트리면서 충격적으로 표현되었다.
「춘향뎐」 파동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파동은, 다시 한 번 이 나라 문화수준이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는지 확인시켜 주었다. 지금까지 14번이나 영화화 된 「춘향전」은 전국민이 그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는 우리의 고전이다. 춘향의 나이 꽃다운 이팔 청춘 16세. 영화 「춘향뎐」은 원작 속의 춘향과 똑같은 나이의 여주인공 이효정양을 캐스팅했다. 그런데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는 미성년자인 이효정양에게 영화 속에서 성행위신을 연기하게 했다며 임권택 감독과 제작진을 고발하겠다고 시비를 걸고 나온 것이다. 내 눈에는 이것이 시비를 위한 시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결국 「예술성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미성년자에게 성행위 장면을 연기하게 해서는 안된다」라며 고발하지는 않았지만, 현실도 아닌 허구적 서사구조의 영화 속에 청소년보호법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춘향뎐」은 국내용과 해외용, 두 가지 버전으로 편집되었다. 물론 가장 큰 차이는 성적 묘사 부분이다. 국내용은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12세 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해외용은 춘향과 몽룡의 정사신이 좀 더 과감하게 편집되어 있다. 부감으로 찍힌 정사신은 두 사람 모두 올 누드로 연기하고 있다. 세익스피어 원작을 영화화 한 프랑코 제페릴리 감독의 「로미오와 쥴리엣」(1968년작)에서는 16살, 15살의 레오날드 파이팅과 올리비아 핫세가 농염한 섹스신을 소화해냈다. 「춘향전」이 등장했던 18세기 우리 사회는 거의 모든 남녀가 15세 전후로 결혼해서 성경험을 했고 기방출입도 가능했다. 유교적 질서가 엄격하게 지켜지던 조선시대는 사실은 성적 타락과 방종이 극치를 이루던 음란한 사회였던가? 성에 대한 절대적 가치 기준은 없다. 그 시대 대중의 보편적 성의식이 법적 잣대가 된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의 법은 우리 시대의 보편적 성의식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춘향뎐」 파동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한 편의 코미디였다. 젊고 패기있는 감독이 「춘향뎐」같은 시도를 했다면 우리는 좀 더 실험적이고 야심찬 결과를 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영화 제작 풍토는 젊은 감독들로 하여금 실험을 할 수 없게 한다. 흥행 위주의 영화를 만들고 인정을 받아야만 비로소 임권택 감독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영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좀 더 다양한 영상을 원하는 관객층의 형성, 실험적 영상이 가능할 수 있는 제작풍토와 영화정책 등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