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화예술의 흐름/ 북한 미술의 오늘

단절된 우리 미술의 역사, 상호가 진정한 이해로 복원해야...

 

김찬동(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팀장)

 

최근들어 북한 미술의 국내 소개가 빈번해 지고 있다. 북한 미술품의 전람회도 심심치 않게 열리고 있는데 90년대 중후반부터 가속화된 개방화의 영향으로 중국이나 일본 등 제3국을 통한 북한의 미술품의 반입이 잦아지기 시작하였고 최근에는 작가나 평론가 등 미술계 인사들이 북한을 방문하여 북한 미술계와 직접적인 접촉이 제한적으로나마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북한 미술의 실상을 파악하기에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50년간의 분단상황에서 비롯된 시.공간의 단절이라는 물리적 요인 뿐만아니라 분단에 따른 이념과 체제상의 차이를 이해하고 극복해야하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 미술에 대한 정보나 자료들이 책자나 전시 등을 통해 단편적으로 또 피상적으로 소개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불투명한 출처와 유입경로로 굴절되어 있거나 왜곡이 심하여 그 전모를 밝히기엔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필자는 제3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인 「북한 미술의 어제와 오늘」 전의 큐레이터를 맡으면서 짧은 기간동안 북한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탐구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제3국을 통해 북한의 미술계 인사들과 행정책임자들을 만나 전시에 필요한 작품도 수집하고 미술의 남북교류 방안에 필요한 문제점들을 협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전시준비의 경험을 기초로 북한 미술의 현재 상황을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그 이해를 다소나마 돕고자 한다.

 

해방이후 북한 문화예술 변천

북한 미술의 현재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해방이후 현재까지 진행된 북한의 문화예술 분야의 변천과정을 개괄할 필요가 있다. 해방이후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 북한은 일제의 사상잔재 청산, 새로운 사회주의 사상으로의 의식개혁, 그리고 이를 통한 새 사회 건설에 문예정책의 목표를 설정하였다. 전쟁기간 동안에는 문화예술이 ‘승전’을 위한 강력한 무기로 작동하도록 하였으며. 휴전 이후 60년대 초반까지는 전후의 복구와 사회주의 기초 건설기로서 계급교양, 공산주의 교양, 사회주의적 애국주의 교양에 이바지하는 예술, 천리마 시대에 걸맞는 문화예술의 발전을 목표로 삼았다. 김일성 유일 사상체계가 완성된 60년대는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활동을 소재로 한 공산주의 혁명투사와 천리마 기수의 형상화가 요구되던 시기였다. 또한 주체사상의 보급과 함께 권력기반이 확고해진 우상화 예술이 등장하는 시기로 사회주의적 내용과 민족적 형식의 결합이 진행된 시기이기도 하다. 후반기에는 김일성 유일 사상 체계가 확립되어 본격적으로 김일성 우상화를 위해 문화예술이 동원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70년대는 ‘제1차 문학예술 혁명’이 시작된 시기로 72년 개정된 사회주의 헌법을 기초로 ‘주체문예이론’이 정립되어 주체문학예술의 대전성기로 불린다. 김정일 후계구도가 완성된 80년대가 되면 소위 ‘김정일식 대응방안’이라고 하는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데 전세계적인 사회주의 개혁의 흐름 속에서 북한 역시 국제적으로 개방을 요구받게 되고, 김정일 체계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주제나 표현기법 면에서 다양한 자본주의식의 변화가 나타난다. 또한 사회주의 세계의 붕괴가 시작된 80년대 말 이후에는 다시 사회주의적 내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다.

90년대에 들어서면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 붕괴에 따른 대내외적 환경변화에 대처하여, 종래 경제건설을 위해 노력동원을 독려하던 지도노선을 사상통제와 사상교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민족의 자주성과 주체사상의 강화를 기본방향으로 하여 90년대 이전에 이미 제기되었던, ’사회 정치적 생명체론’, ‘조선민족 제일주의’등을 비롯하여 ‘인민대중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와 ‘붉은 기 사상’, ‘붉은 기 철학’의 구현이 최우선의 문예정책 과제로 대두되었다. ’92년 김정일은 ‘제2의 문학예술혁명’ 총노선을 통해 대중성을 표방함으로 종래 김일성 중심의 사고에 인민을 결부시켜 인민대중의 지위를 격상시킴으로 내외의 위기상황을 문학예술을 통해 돌파해 보려는 의지를 보인 바 있다. 제2차 문예혁명의 명목은 북한 문예인들의 무사안일과 나태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북한은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을 절대가치로 설정함으로써 문화. 예술정책과 목표 및 향유방법을 정치적 목적에 종속시키고 있으며 예술에 있어서 혁명성과 사상성을 강조하고 있다. 70년대까지 북한에서는 사실주의적 사실주의를 예술의 기본원리로 삼아왔다. 그러나 1980년 이후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김일성 동지의 위대한 주체사상’을 절대화하게 된 이후부터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주체문예이론으로 대체되었다.

주체문예이론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문예관, 기본 이념, 창작방법 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 종국적으로는 모든 문학예술의 기본 원리를 ‘김일성 유일 사상’으로 종속시키고자하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주체문예이론은 주체사상의 기본 원리인 ‘공산주의적 인간학’을 기초로 하고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기본이념인 ‘당성, 노동계급성, 인민성’을 김일성 유일 사상으로 종속시키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전형화론, 종자론, 속도전 등을 기본이론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 이론의 양식화를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구별하여 주체사실주의라 한다.

“우리시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주체사상에 의하여 현실에 대한 예술적 일반화와 미학적 평가의 새로운 원칙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발전시켜나감으로써 사회주의 문학예술의 사상성을 높이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우리시대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본질에 있어서 주체의 창작방법, 주체사실주의 이다.” 다시 말하면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는 것이 주체사실주의의 기본원칙인 것이다.

 

주체적 사실주의를 기초로 한 ‘주체의 미학관’

오늘의 북한 미술은 사상성과 예술성을 결합하고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창작방법에 기초하여 사회주의적 내용을 철저히 민족적 형식에 담아 발전시킨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에도 생활의 사실성에 민족 정서의 복합이라는 양면을 충족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북한은 미술을 노동과정에서 생겨나서 인간생활과 밀접한 연계를 가지고 발전해 왔지만 지난날의 미술유산에는 착취계급의 사상과 취미를 반영하고 그들에게 이용된 것이 많으며 일제식민지 통치에 의해 왜곡되어 민족적 및 계급적 대립과 투쟁을 심각하게 제기하여 예술적으로 해결하지 못하였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참된 미술의 전통을 항일혁명미술에서 찾는데 김일성이 이끈 항일 혁명미술이 최초로 당성, 노동계급성, 인민성의 원칙을 철저히 구현한 혁명미술이었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북한의 미술에는 기념비 미술이라는 명칭의 목적적 작품이 많고 선전화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북한의 미술은 사회적 기능에 따라 기념비미술, 영화미술, 무대미술, 장식미술, 산업미술, 건축미술, 일반미술로 나누고 있다. 추상미술은 사실주의의 원칙에 따라 철저히 배척되며, 인간성격과 인간생활을 현실 그대로의 구체성과 진실성을 가지고 생동하게 그려낸 사실화만이 존재한다.

북한의 회화는 조선화, 유화, 벽화, 출판화 등이 망라되어 있다. 조선화는 동양화의 맥을 이은 것이지만 채색과 서양화적 기법을 혼합한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민족적 형식의 전형을 획득한 주체 사실주의적 성격을 가장 탁월하게 구현해 낸 독자적 위상을 가지는 것으로 모든 미술의 중핵이 되고 있다. 사상성과 현실,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세 개의 요소를 가장 완벽하게 이룩한 미술장르를 조선화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조선화는 동양화의 고유한 미술형식으로써 힘있고 아름답고 고상하며, 선명하고 간결하여 작품 창작에서 생동감과 진실성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조선화의 이러한 특성은 힘있고 아름답고 고상한 것을 즐기려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잘 부합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 미술의 제장르는 모두 조선화를 기본으로 한다.

유화나 판화에 있어서도 조선화의 창작기법의 도입이 요구되어지고 있는데, 유화의 경우 형식주의적이며 교조주의적이고, 사대주의적인 요소를 배격하고 주체를 확고히 세워 조선화의 선명하고 간결한 전통적 화법을 끊임없이 도입하면서 간결하고 선명하고 조선적인 유화 화법을 발굴할 것이 요구되어지고 있다. 템페라화나 아크릴화, 수채화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한 회화작품들에 있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조각은 인물 형상을 중요시하며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적 정형성을 띠는 인물 형상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조각가들은 조각 작품들의 주제가 생활에 투영되도록 할뿐만 아니라 높은 형상성을 추구하여 깊은 인상을 주고자 애를 쓰고 있다. 따라서 모든 조각 작품은 주인공의 성격을 심오하게 표현해 냄으로써 주어진 생활의 미적 본질을 선명하게 드러내게 된다.

북한의 공예는 재료에 따라 매우 다양한데 도자기, 금속, 자개, 목공예 이외에도 만년화라는 독특한 소재의 작품들이 있다. 만년화는 조개껍질을 이용하여 모자이크 형태로 그려 일상용품을 장식하는 일종의 자개공예이다. 또한 이외에도 80년대부터 개발되기 시작한 보석화는 보석 원석의 분말을 자연색으로 활용하여 제작하는 북한 미술만이 가지는 독특한 장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의 자수공예는 그 기법이 매우 탁월하며 그 독자적 지위를 부여하여 강조하고 있다.

순수미술품의 영역과는 별개로 북한에서의 선전화는 빠른 시간 내에 당의 정책을 인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포스터화를 의미한다. 속성상 강렬한 색채의 그림을 위주로 하면서 힘있는 구호,설득력있는 짧은 글을 배합한다. 북한에서는 이러한 선전화가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 여러 분야에서 의의 있는 현상과 대상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형식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역사적 사실이나 혁명적 사건들을 기록한 주제화로 구분하여 제작하고 있다. 이외에도 판화나 출판화, 그리고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도 중요한 미술영역으로 인정되고 있다.

현재까지 북한미술의 주된 사고는 주체적 사실주의를 기초로 한 ‘주체의 미학관’ 이라는 이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체제 존속과 아울러 북한 미술의 특징은 프로퍼갠더를 완고하게 지켜오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프로퍼갠더로서의 예술을 효율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 북한은 만수대창작사, 중앙미술창작사를 비롯하여 많은 지역의 창작사를 조성 운영하고 있는데, 1959년 11월 창립된 노동당 직속의 만수대 창작사는 그 규모나 특질에 있어 북한을 대표하는 작가집단이다.

북한 미술의 경우 그 제작방식에 있어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면, 개인작업보다는 집체적인 작업이 강조되고 있는데, 작가 개인의 개성을 최소화시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에 따라 모든 작품들이 특정한 전형을 따라 획일화되고 몰개성화 현상이 급속도로 진전되고있다. 이러한 획일화와 몰개성화 현상의 가속화는 최근 낙후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방세계나 제3국, 또는 한국측을 겨냥하여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제작되는 작품들에서도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주체적 사실주의와는 무관한 순수미술품들이 제작되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개방화에 직면하여 자본주의 체제와 경제논리가 어느 정도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출처불명의 저급한 수준의 작품들 또한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항간에는 한국측에서 제작되어 연변 등 중국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이나 사업가들을 대상으로 팔리고 있는 가짜 북한작품들도 양산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민족정서에 부합되며 주체 사상을 구현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

필자는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전시를 위해 평양미술박물관 소장작품들을 빌려 전시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판단하여 노력했지만, 남북간의 정치상황이 이를 성사시키기엔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차선책으로 북측의 가장 공신력 있는 창작기관인 만수대창작사를 통해 인증된 수준 높은 작품을 입수하기로 하였다.

북경을 경유한 만수대 실무진들과의 접촉과 작품의 입수 작업도 그리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만수대 보유작품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특히 1999년 11월부터 12월에 걸쳐 평양에서 개최된 만수대창작사 창립 40주년 기념전의 출품작들을 다수 확보한 것은 기대이상의 성과였다. 출품작 중 조선화, 유화, 템페라화, 조각, 아크릴화, 판화 심지어는 골뱅이화에 이르기까지 가급적 다양한 장르의 작품의 입수가 가능하였다. 작품의 반입과정에 있어서도 작품들이 가지는 주체 미학적 속성으로 인해 국내 관계당국으로부터의 승인과정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음을 밝혀둔다.

이번에 전시될 작품들은 대개 주체적 사실주의에 입각한 작품들로서 인민예술가나 공훈예술가들의 조선화나 유화 등 회화작품 뿐만 아니라 민족정서에 부합되며 주체사상을 구현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북한의 조각작품을 선보이는 일은 이번 전시에서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주제화의 경우 최근 북한사회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난국을 헤쳐가기 위한 선무적 측면이 강조되어 있다. 보석화나 골뱅이화,자수 등은 우리와는 다른 북한이 중시하는 장르로서 특기할 만 하다. 분단상황이라는 현실적 여건으로는 도판을 통해 익히 알고있는 북한의 국가보존 작품들과 같은 매우 의미 있는 작품들을 확보할 수 없었다. 이러한 미흡함은 후일로 미룰 수 밖에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머지 않은 장래에 실현이 가능하리라 기대해 본다. 뿐만 아니라 남북의 작가들이 한데 어울려 교류전을 갖는 일이나 북한미술에 대한 연구소를 개설하여 남북한 학자들이 함께 연구하고 단절된 우리미술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 등등 너무도 많은 과제가 우리에게 놓여있다. 그러나 그 실현이 단순한 의지나 관념만으로는 불가능하리라 본다. 생각보다 엄청난 상호간의 진정한 이해와 다각적인 노력들로 채워질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