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논단 -인문학의 자양분 없이도 교육은 존재하는가!

 인문학의 자양분 없이도 교육은 존재하는가!

박용숙(본지 편집자문위원, 동덕여대 교수

본지 지난 3월호에 실린 두 편의 글을 읽고 느끼는 바가 많았다. 그 하나는 김주환 교수가 쓴 '인문학이냐, 이미지냐의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이고 또 하나는 정현기 교수가 쓴 ' 인문학의 기초 없는 이미지 예술의 운명'이다. 구 편의 글은 문제제기의 출발점이 서로 다르긴 하지만 전달하고자 한 내용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훌륭한 글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필자에게는 정현기 교수의 글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던 것은 그가 제기한 문제 의식이 실제로 오늘의 대학교육은 물론이고 필자가 대학에서 담당하고 있는 미술교육의 장에서 볼 때 심각하다고 해야 할 만큼 중차대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미 낡은 해의 일이 되고 말았지만 지난 해 도하신문에 신설된 지 얼마 안되는 종합예술학교가 일반대학에서처럼 교양학부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대학체제(명칭)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찬반양쪽의 성명서사 발표되었던 일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밥그릇 싸움을 하는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사건의 진상을 진지하게 들여다 보면 거기에는 우리 나라의 슬프고도 초라한 예술교육의 허상이 그 저변에 깔려 있음을 목도할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인문학과 전혀 상관 없이 거행되었던 우리 나라 예술교육의 허깨비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쓰면 물론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예술교육이 인문학의 전당인 대학 안에서 당당하게 그리고 충분히 그 자양분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어찌 우리의 미술교육이 인문학과 전혀 상관 없다고 말하고 있는가 라는 것이다. 또 혹자는 그 점 때문에 종합예술학교가 애초의 취지를 깨고 교양학부를 신설하면서까지 일반대학으로 전환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와 반대의 질문도 가능하다. 종합예술학교는 인문학적인 교육이 불필요한 이른바 천재적인 학생들을 모아 가르치는 특수교육기관이므로, 그 본래의 성격을 버리고 일반 대학체제로 복귀한다는 것은 본래의 설립취지를 저 버리는 부적절한 처사라는 식으로, 필자는 물론 두가지 질문의 어느 쪽고 치켜 세울려는 의도가 없으며, 이미 앞에서 말했듯이 이런 식의 문제의식 자체가  실은 알맹이가 빠져 버린 '허깨비 명분론'임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우리나라 대학에서 배우고 있는 현행 인문학의 비주체적인 기반이나 그 학문의 취약성을 언급하는 일은 그만두더라도 그나마 그 허약한 인문학적 교양이 제대로 미술교육과 연계되어 있지 않는 현실이 더욱 심각하기 때문이다.

  정현기 교수는 그의 글의 말미에서 한 코미디언이 만든 ‘용가리’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아이디어는 높게 평가하지만 그것이 서양 영상물의 모방작품이지 독창적이거나 인문학적 기반을 둔 참신한 작품이 아님을 지적하고 그것이 결코 성공한 작품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썼다. 필자도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확실히 ‘용가리’는 영상 이미지로 볼 때 헐리우드에서 만든 그런 류의 영화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작품에 도입된 용의 이미지는 동양적(중국)이거나 한국적이지가 않으며, 도리어 서구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용은 거대한 폭력의 상징이기보다는 지혜로우며 대개의 경우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무구하고 정의로우면서도 전천후 변신하는 신출귀몰하는 신비한 변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정현기 교수가 ‘용가리’에 대해 인문학의 기반이 없다고 지적한 것은 그런 시각에서 매우 적정하며, 따라서 그것이 국제무대에서 얼마나 경쟁력을 갖게 될지는 더 두고보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은 2천년을 맞이하는 우리 시대에 있어서 성공한 모델이 되었고 그 제작자에게 ‘신지식인’이라는 새로운 명예가 주어졌다. 우리의 방화가 세계시장에서 전혀 눈길을 끌지 못하고 있는 형편에서 그만한 일을 해냈다는 것은 칭찬할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사례가 우리의 대학교육, 특히 예술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어떻게 되는지를 한번쯤은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외환위기 정점으로 인문학의 쇠락현상 심화되

최근 몇 년 사이, 특히 지난 97년의 외환위기를 정점으로 대학의 경영위기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인문학의 쇠락현상이 심화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결정적인 계기가 각 대학 유사학과의 통폐합의 움직임과 학부제 운영이 그 원인이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 저변에는 필자가 이 글에서 강조하려는 인문학의 고질적인 비주체적인 성향과 그나마 그것이 우리의 예술교육에서 괴리되고 있는 이른바 ‘겉도는 인문학’, ‘죽은 인문학’이라고 해도 되는 불행한 현실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은 이 글에서 차츰 언급할 것이지만, 아무튼 인문학의 위기와 함께 부상되기 시작한 실용과학, 특히 각종 영상매체, 컴퓨터, 디지털, 그리고 사이버 공간의 화려한 등장은 상대적으로 인문학만이 아니라, 재래의 수공업적인 미술교육을 쑥밭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대학당국은 오랜동안 인문학의 덕을 톡톡히 보며 몸집을 키워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아침에 조강지처를 버리고 신식 마누라를 맞아들이듯이 학부제를 장려하며 인문학 분야를 통폐합하거나 축소하고 앞을 다투어 영상매체, 컴퓨터를 발판으로 확산되는 디지털아트, 비디오아트, 애니메이션, 컴퓨터그래픽 디자인 분야에 돈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그런 결과 속된 표현으로 인문학의 분야는 물론 소위 아날로그 방식의 예술교육 분야는 찬밥 신세가 되고 첨단매체라는 신식 배를 탄 디지털 매체나 영상매체 분야는 한껏 상대적인 우월감으로 새로운 2천년의 총아가 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필자도 디지털미디어의 중요성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며 김주환 교수의 글에서처럼, 새 천년을 맞이하는 문명조건에서 영상매체와 인문학이 서로 분리될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의 관계에 있을 때만이 바람직한 문명의 미래상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론상으로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우리가 신문화기(개화기) 이후, 고등교육에서 배운 인문학의 주류란 거의 대부분이 서구의 인문학이며 우리의 것이라고 해 보았자, 자의든 타의든 일제 식민지 사관에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인문학의 토대가 고작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강력한 영향력을 지녔던 서구적인 인문학에 눌리거나 밀려나 거의 빈사상태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결과 우리의 대학생은 서양 미술에 대해서는 그런대로 알지만, 정작 자국의 미술사나 문화사에 대해서는 깜깜이다. 필자가 교환교수로 미국의 버클리 대학(U·C Berkley)에 있을 때 겪었던 이야기다. 어느 날, 같은 기숙사(I·House)에 투숙하고 있었던 한국 유학생들이 내 방으로 몰려왔다. 그들은 대부분이 공대 대학원생들로 그곳 대학에서도 실력을 인정받는 우수학생들로 평판이 나 있었다. 그들이 내 방으로 갑자기 몰려온 이유는 이러했다. 대학 내에 국제학생친선클럽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 클럽의 회원으로 모임을 즐기는 눈치였다. 모임에서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아직도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그 모임 때마다 반드시 자국문화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 전번 모임 때 한 학생이 궁여지책으로 아리랑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중국 학생은 경극(京劇)에 사용하는 마스크를 들고 나와 독특한 동작을 보여주며 중국 문화에 대해 장황하게 소개함으로써 많은 박수를 받았으며 일본 학생은 직접 ‘스시’를 가지고 와서 시식해 보이며 그 맛깔스러움과 일본적인 음식문화의 미학을 소개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고 했다. 그런것에 비하면 ‘아리랑 노래’는 너무 단조롭고 무성의한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노래를 부르고 나서였다. 독일 학생이 이렇게 질문했다는 것이다. ‘아리랑’이라는 말을 자꾸 반복했는데 그 말의 뜻이 무엇이냐고. 아뿔사. 한국인이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아리랑’이지만,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있는가. 그 학생이 말문이 막혀 얼굴을 붉히고 있노라니까 독일 학생이 한 수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독일의 민요에도 아리랑과 비슷한 말이 있는데 그것은 ‘아리안’이며 그 뜻은 가장 잘 난 남자, 가장 지혜로운 남자, 그리고 나라를 위해서는 쾌히 한 몸을 바치는 호걸이라는 뜻인데 혹시 아리랑도 그런 뜻 아니냐는 것이다. 우리의 학생들은 그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나에게 ‘크게 망신을 했다’고 고백하면서 이번 모임에서 실추된 체면을 만회 할 테니 그럴듯한 아이템이 있으면 제시해 달라는 요구였다. 아마 그들이 이공계통의 학생들이 아니라, 인문학을 전공한 학생들이었다면 어땠을까. 과연 중국이나 일본 학생들처럼 그토록 자신있게 자국의 문화의 특수성을 외국인 앞에서 이야기 할 수 있었을까, 회의적인 것이 현실이다. 그날, 그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이 우리의 인문학에 소홀했던 것을 후회하면서 귀국하면 반드시 시간을 쪼개어 우리의 인문학을 다시 공부하겠노라고

다짐하는 걸 나는 보았다. 물론 나는 아직 그들의 후일담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되풀이 지적했듯이 우리의 인문학적 전통의 미숙성, 취약성, 그리고 온통 영상매체와 컴퓨터로 도배를 해 버린 듯한 우리의 문화공간에서 그들의 그 소박한 희망이 쉽게 성취되었으리라고 필자는 생각하지 않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있은 지 10여 년이나 지난 오늘날에 이르러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미술교육 인문학에서 소외되는 현상 보여

이제 우리의 미술교육이 인문학에서 어떻게 소외되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 나라의 미술 교육은 대부분 실기 위주의 교육이지만 실제에 있어선 입시 위주의 암기교육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잠시나마 쉬게 하는 ‘여가’의 의미를 갖는 지극히 소모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미술과목에는 엄연히 교과서가 있고 교사는 그 교과에 따라 기초적인 이론을 가르칠 수 있다. 여기에서 교과서의 부적절함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지면이 아깝다. 그런 것이 아니라도 우리는 미술교육이 전혀 인문학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른바 ‘낙동강의 오리알 신세’라는 걸 이야기 할 수 있기에 충분한 것이다. 미술교재에는 세계의 중요한 명화 등이 대부분 소개되어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작가들, 낭만주의 시대, 고전주의 시대의 기라성 같은 화가들, 그리고 삼척동자도 그 이름을 말할 수 있는 로댕, 피카소, 샤갈, 미로, 칸딘스키 등등, 이 모든 저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그들의 인문학적인 자양분(교양)과의 합작품이며 그것의 위대성은 다름 아닌 인문학의 잣대에 의해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말은 그 명화들에서 인문학에 대한 정보를 제거해 버리면 사실상 그 작품의 감상도 불가능해 진다는 뜻이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감상하기 위해서 1930년대의 스페인의 내란과 인민전선이 형성되는 사상적 동향을 이해해야 하며, 스페인 사람들이 즐기는 투우의 문화사적인 의미와 그리스 신화의 수소(minotaross)이야기, 성서의 소위 ‘동지에 태어나는 아이들의 수난’에 대한 풍습을 이해해야 한다. 샤갈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태인의 풍습이나 구약성서에 대한 이해가 전제된다. 누구에게나 이해되기 쉬울법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만 하더라도 프랑스 시민 혁명과 유럽의 근대사상(cogitology)에 대한 예비지식이 없어서는 안된다. 그러니까 우리의 미술교과서에 있는 이런 명화들을 학생들에게 감상시키고 이해시키기 위해서 우리 것도 아닌 서양의 인문학으로 무장한 미술교사가 교단에 서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애당초 망상이라고 해야 옳다. 악순환의 논리에 빠지지만 그들 자신도 그들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인문학을 저버린 괴이한 미술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미술을 지망하는 학생이 어떤 경로로 대학에 들어오며 그들이 어떤 식으로 대학에서 미술교육을 받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게르니카’에 대한 인문학적인 체계는 고사하고 그 약간의 정보마저 갖지 못한 학생이 오직 밤잠을 설치며 연마한 드로잉이나 스케치 실력만으로 미대생이 되는 것은 우리의 미술대학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들은 설령 중고등학교 시절의 미술교육에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대학에 가면 그 모든 것이 일거에 해소되고 그들이 바라는 위대한 작가의 꿈이 실현되리라는 환상을 갖게 된다. 하지만 곧 그들의 희망은 절망으로 바뀐다. 미술대학은 고등학교 미술 수업과 별로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대학의 ‘大’자가 말하듯이 단지 미술수업의 스케일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는 것 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우리 나라 미술대학은 선진국과는 달리 거의가 실기 위주의 수업이다. 이런 수업 방식이 결코 잘못 되었다가 아니라, 미술교육이 전혀 인문학과 연결되지 않는 채 고립된다는데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대학에 들어오면 대학마다 교양학부가 있어 그들에게 적절한 인문학의 메뉴를 제공하고 있기는 하다. 여기서 우리의 대학들이 제공하는 교양으로서의 인문학적인 메뉴가 비주체적이며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은 다시 않기로 한다. 그나마 이 메뉴들이 우리들의 미술학도가 받아들여 소화하기에는 너무나 난삽하고 생소한 것이어서 대부분의 미술학도는 모처럼 받아놓은 그 인문학적 자양분의 밥상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 통과해야하는 어쩔 수 없는 장애물넘기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이 일을 어쩌랴. 케르니카를 감상하고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다름 아닌 그 인문학의 메뉴에 있음에랴, 어디 게르니카 뿐이랴. 서양문명이 자랑하는 모든 명작들을 감상하는 열쇠는 물론이고 그들이 남긴 위대함의 노하우가 실은 그 일년동안의 교양과목 이수가 보장함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그 기간이 장애물넘기가 된다는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일차적으로 서구의 인문학에 대한 그간의 비주체적인 수용이 우리의 젊은이들을 문화적으로 ‘낙동강의 오리알’신세를 만들었으며 생활과 학문, 창작과 이론의 간격을 턱없이 벌려놓았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하지만, 미술교육으로 문제를 국한시켜 말하면 결국 중고등학교의 미술교육이 그 원인의 한가닥을 거머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인문학은 삶의 방식들을 연구하는 학문의 총체

물론 대학미술교육에는 전문적인 이론 과목이 개설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이 미술과 인문학의 상호보완이라는 측면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우리 현실에 맞는 이론교육이 아니라, 거개가 전문지식의 개론이거나 아니면 창작을 지망하는 학생에게 무리하게 여겨지는 지나치게 전문화 된 서구편향의 이론과목이 전부이다.

원칙적으로 그 전문화된 이론교육은 게르니카에 대한 인문학적인 인식이 이미 중고등학교에서 완료되는 구미의 미술대학에서조차도 소화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필자의 지식이 정확한지 어떤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과 같은 주요 저서들은 유럽의 경우 거의 고등학교 수준에서 예비학습이 이루어진다고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미술의 전문이론과목이 우리의 미술대학에서 이렇다할 해설도 없이 그대로 복창되고 있다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중고등학교에서부터 괴리되기 시작한 미술과 인문학의 괴리는 대학으로 올라오면서 더욱더 심화되고, 고착화되어 종래에는 미술과 인문학의 자양분은 전혀 무관한 것이라는 우리 미술계의 뿌리깊은 통념을 더욱 곤고히 하는 결과만을 낳았다.

여기에다 동양화, 한국화의 문제를 곁들이면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게르니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구가 가꾸어온 인문학의 기반이 뒷받침 되어야하듯이 송대 중국의 명화들을 감상하고 이해하자면 그 시대의 인문학에 대하여, 그리고 정선이나 단원의 작품을 이해하자면 동시대의 인문학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미술대학에는 버젓이 동양화(한국화) 전공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인문학의 커리큘럼이 전무하다. 왜 동양화가 먹과 종이를 고집하며 여백을 존중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인문학적인 뒷받침없이 스스로를 동양화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그런데도 이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은 더이상 수치거나 부끄러움도 아니다. 정현기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인문학(人文學)은 각 종족이 오랜 기간동안 겪으면서 해결한 삶의 방식들을 연구하는 학문의 총체이다. 그것이 문자로 된 문자학이라는 것은 까닭은 문학이나 역사학, 철학, 심리학, 미학, 윤리학등에 그 나라만이 고유하게 유지해 온 오랜 이야기 방식과 버릇(습관)이 전승되었기 때문이고 그것의 전승이 대체로 그 나라의 고유의 문자로 이루어졌다는 사정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면 동양화나 한국화를 전공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것을 뒷받침하는 우리의 인문학이 그 자양분이 되어야하지만, 오늘날 미술대학이나 학부가 있는 대학의 교양과목이 얼마나 척박하고 무성의하며 게다가 서양인문학의 메뉴만으로 가득 채워진 교양과정에서 우리의 학생들이 또 얼마나 상대적인 박탈감과 굴욕감을 느끼고 있는지는 이제 헤아리기조차 난감한 불감증 증후군쯤으로 아예 관심밖으로 밀려난지가 오래다. 이런 상황이므로 그나마 교양과정이 생략되어있는 종합예술학교나 그와 준한 예술교육기관의 경우 교육의 현실이 어떠한지는 실제로 내용을 다 보지 않아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백남준은 인문학의 전위적인 방법과 비젼을 작품화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60년대라고 생각되지만 우리 나라 동양화단의 대가인 운보 김기창화백이 예수그리스도를 주제로 한 일련의 성화(聖畵)를 그린 일이 있으며, 80년대에 역시 박생광(朴生光) 화백이 무신(巫神)을 비롯해서 동학난(東學亂), 단군에 관한 그림을 그려서 화제를 일으킨 바 있다. 이 두 사건은 인문학과 회화교육 문제와 관련하여 주목할만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운보가 그린 예수는 완벽하게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양반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럼에도 이 그림에 대해 이렇다하게 비평을 내린 사람은 아직 없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의 미술교육이 인문학과는 전혀 상관없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왜 이상하게 느껴지는지를 깨닫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분명한 일이지만 인문학적으로 보면 우리쪽 영상(캔버스)에서 예수가 잘못 번역되었음이 분명하다. 예수가 양반의 신분이고 그 종교의 기본 골격이 성립되지 않고 전달되지도 않는다.

그렇게보면 박생광의 그림은 우리의 인문학에 뿌리를 둔 그림이 분명한데도 국내화단에서는 오랜동안 푸대접이었다가 급기야 외국(파리화단)에서 주목을 받게되면서 그 평가도가 역수입된 케이스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모더니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 화단이나 미술저널리즘에서 박생광의 그림은 진지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림이란 인문학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어쩌면 전혀 별개의 재능을 발휘하는 예술이며 그래서 이런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조형(造形)이라는 용어를 즐겨 쓴다. 조형논리, 조형사고, 조형감각이야말로 미술비평의 척도가 되며 이때문에 미술은 재질이나 매체쪽으로 확산하면서 회화는 점차 오브극의 도입, 캔버스 밀어내기, 설치작업, 비디오, 키네틱, 디지탈, 영상(TV, 싸이버) 등등, 드디어 탈인문학적인 그리고 탈회화시대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우리는 비디오아트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백남준을 만나게 되고 그의 예술이 드디어 한국 미술교육 내지는 예술교육의 세계화를 지향하는데 있어서 그 첫번째 범례가 되어버린듯한 오늘의 우리 미술교육의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그러나 백남준 자신이 분명히 인식하고 있듯이 그의 비디오아트는 결코 반인문학(反人文學)의 예술이 아니라, 그가 속한 유럽적 인문학의 전진적 혹은 전위적인 한 역할(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를 추종하는 우리 나라의 미술인들이 간과하고 있을 뿐이다. 백남준은 첫번째 우리나라 KBS TV 인터뷰에서 ‘이제 미술(예술)이 문학처럼 설명하는 시대는 끝났으며 그럴만한 일도 더이상 없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의 예술은 고등 사기를 치는 일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거침없이 뱉어냈다. 이 말을 잘못 이해하면 미술은 인문학과 무관하며 오직 미술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어떤 기발한 것을 만들어내는 마술이라는 뜻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서구인문학에 대한 무지와 무식을 드러내는 일이다. 미쉘푸코가 ‘이성(理性)이 헛소리를 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레비 스트로스가 ‘구조(構造)는 아름답다’고 말하고 데리다가 언어를 ‘자꾸 바꿔써야하는 가면무도회의 가면’에다 비유했을 때 그말에는 서구인문학의 고전적 방법의 위기의식이 암시되고 있는 것이며 바로 백남준의 인터뷰의 말에도 그러한 담론의 기본 골격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전위적인 담론의 실현을 위해 백남준은 비디오라는 새로운 영상캔버스를 도입하여 서구문명이 실천해왔던 인문학의 전위적인 방법과 비젼을 작품화했던 것이다. 60년대의 작품으로 생각되는 그의 비디오아트 「그로벌 그로브(Glober Globe)」는 추상표현주의 캔버스에 나타난 물감의 물질성과 그 어떤 내면의 치열한 정신이 그리고 보기에 따라서는 유희성, 우연성의 미학이 실제로 캔버스에서 처럼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는 모습으로 나타난 미래파 화가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움직이는 실재’를 그는 간단히 비디오를 통해 연출해 보였던 것이다. 그 뒤 백남준은 세계의 여러 문명권에 속해있는 독특한 도상이나 상징기호들을 인용, 차용하는 방법으로 그의 영상캔버스를 화려하게 장식했을 뿐만 아니라 TV 수상기 자체를 객체화시키면서 독특한 비디오 영상설치양식을 만들어냈다. 그렇게함으로써 서구적인 인문학에 무지하거나 이른바 미술과 인문학은 별개라는 사고(교육) 방식으로 자라났던 젊은이들은 아무런 인문학적인 소양도 갖추지 못한채 무작정 백남준신화에 도취되어 영상매체, 이른바 비디오, TV, 키네틱레이저 등 디지탈매커니즘에 의해 작동하는 이 신기한 예술에 심취하며 그것으로 모든 예술의 문제가 해결되는양 착각하고 있다. 덩달아 미술대학이나 대학운영자들은 인문학의 육성이나 인문학과 미술교육의 연결고리를 넓혀 나가면서 실질적으로 예술을 위해서는 인문학적인 자양분을 만들어내는 일이 현실적으로 시급하면서도 이를 외면하거나 아예 방치하면서 오로지 영상매체를 활용하는 방안에만 모든 재정을 쏟아붓는 일을 하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영상매체를 활용하는 일이 우리의 현상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는 이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인문학의 자양분없이 매체만 번드르하게 구비되었다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백남준은 최근의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포부를 이야기하면서 그가 추구할 새 밀레니엄의 작품 주제는 샤머니즘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는 자주 한국의 무속이나 무당들이 등장한다. 이때문에 그를 추종하던 소위 우리나라의 영상매체주의자들은 저으기 당황하고 있다. 웬 난데없는 샤머니즘인가? 21세기첨단을 걷는 백남준의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무당이 웬말인가. 물론 백남준은 미국의 작가이지 한국의 작가는 아니다. 혹자는 그가 늙어서 이제 한국문화에 귀속하려는 뜻을 슬며시 내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샤머니즘 발언은 어디까지나 서구인문학의 배경에서만이 정당하게 이해된다. 샤머니즘은 문자를 갖지 않는 즉 문자가 필요없는 문화였으며 그것은 즉흥적이고 비문명적인 이른바 자연 그 자체의 동일성을 추구하는 종교문화이다. 서구 인문학의 전위적인 성격과 유사한 것이고 백남준의 영상매체에는 더없이 걸맞는 소재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 글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다음 정현기교수의 글을 인용하기로 한다.

‘자국내 인문학의 확실한 축적없이 이미지 예술쪽으로 개발을 촉진하는 일은 자칫 국제적인 다국적기업의 획일화사업 일부로 전락할 우려가 높다. 자국의 역사, 철학, 문학, 고고학, 건축론, 종교학, 여성학 등의 학문적 기반 조성을 튼튼하게 한 연후에 이미지 예술이든 영상예술이든 뛸 거리를 만드는 것이 순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