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논단 - 위기의 연극, 어떻게 극복하나  

위기의 연극, 어떻게 극복하나

유민영(연극평론가)

요즘 연극계가 위기에 봉착했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몇전빼 재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극잔 에이콤의 「명성황후」는 표가 매진되었다고 하고 얼마 전에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공연한 악극 「아버님 전상서」는 10여일동안에 7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즐거운 비명을 올렸다고도 한다. 따라서 호사가들이 연극위기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동숭동 연극가에 관객이 적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문예회관과 40여개의 민간 소극장이 몰려있는 동숭동에거 '벗는 연극'과 '괜찮은 작품'을 하ㅡㄴ 소극장에는 그래도 관객이 꾸준히 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타 소극장들과 문예회관에 관객이 급감한 것은 1997년 하반기 IMF 상황에 놓이면서 부터였다. 그때의 여파가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는데, 이는 마치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바닥경제 사정과도 일맥상통한다. 가령 정부의 주장에 따르면 IMF 경제위기는 상당수준 극복되었고 경기도 살아났다고 한다. 그런 조짐으로서 주가가 1천포인트 가까이 상승했고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파트 경기가 과열되었으며, 2년 연속 무역흑자를 내고 있는 것 등을 예로 드는 것 같다. 그러니까 연극위기라고 하면 어떤 종류의 연극에도 관객이 없어야 하는데, 일부 뮤지컬이나 악극에 사람들이 몰리고 신촌의 산울림소극장이나 정동극장, 그리고 종숭동의 몇몇 소극장들에는 꾸준히 관객이 들고 있지 않은가. 그 뿐만 아니라 전국에 신분보장 받고 급료까지 받으며 연극을 할 수 있는 국공립극단 소속 연극인이 1백 50여명이나 되는데 연극위기라니 말이나 되는다.  신극 초창기에 홀대, 탄압까지 받으며 가산마저 탕진하면서 유랑걸식하다시피 전국을 떠돌던 선배 연극인들에 비하면 오늘의 연극환경은 꿈같은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인들이 스스로 위기라고 자탄만 하고 앉아 있다면 그런 상황 파악 자체가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 아니 할수 없다.

우리 연극계 언제나 위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의 연극계가 어떤 위기에 직면해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날을 돌아볼 때, 솔직히 우리의 연극은 언제나 위기 상황에 놓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연극이 번창하고 찬가를 불렀던 시기는 19세기말의 판소리 붐과 1930년대 동양극장의 대중극 시대, 해방직후 국립극장 개관시절, 그리고 1970년대 후반 「에쿠우스」공연 이후의 장기공연체제 확립기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주목할만한 사실은 연극 붐에는 반드시 어떤 계기가 있었다는 점이라 하겠다. 가령 판소리 붐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신재효(申在孝)라는 탁월한 연극인과 대원군·고종황제로 이어지는 판소리예술 애호의 통치자가 있었고, 동양극장시대는 대중극의 토착화와 함께 전용무대와 최독견(崔獨鵑)이라는 매니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국립극장 개관 때만 해도 역사상 처음으로 정부가 연극진흥을 시도했고, 「에쿠우스」공연 이후는 산업사회에서의 정신문화 결핍을 메꿔보려는 인텔리 계층 확대가 한 몫 했고, 마침 뛰어난 작품이 그런 대중의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로부터 연극이 일단 외형적으로 크게 확대되기 시작했고 정부의 문화정책과 공연법 개정(1981. 12)이 맞물려 연극환경개선이 크게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 연극환경이 대단히 열악하고 궁핍했던 시절의 연극의 어려움은 작품을 창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적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던 데 있었다. 신극사상 최초로 위기의 연극상황을 진단한 윤백남(尹白南)의 논문 「연극과 사회」(동아일보, 1920. 5)라는 글에 보면 연극계가 아홉가지 부실한 점을 안고 있었다고 했다. 즉 그는 희곡의 부재, 대소도구의 불완전, 무대미술가의 전무, 무대감독의 부재, 전문극장의 부재, 자본주의 몰이해, 창조력 있는 배우의 부족, 흥행상의 악인습, 그리고 연극인들의 시대감각의 낙후성 등을 지적한 것이다. 윤백남이 지적한 연극위기의 문제점을 요약하면 창작희곡 부재, 전문연극인 부족, 극장부재, 제작비의 부족, 연극인들의 시대감각 낙후 등이다. 이러한 연극여건의 근본적 결핍문제는 1930년대 초에 와서도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개선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악화된 부분도 있었다. 가령 취원생(翠園生)이라는 예명의 연극인이 쓴 「극단의 전망」(매일신보, 1931. 9)이란 글을 보면 창작희곡부재와 전문배우 부족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고, 그 4년 뒤에 극작가 유치진이 쓴 「조선연극의 앞길」(조광, 1935. 1)이란 글에서는 극장이 없다는 것과 전문극단이 있어야겠다는 것, 그리고 세 번째로서는 우리 연극유산 발굴의 시급성을 꼽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해 말(1935. 11)에 전문극장인 동양극장과 다목적 홀인 부민관이 건립됨으로써 극장문제는 일단 어느 정도 해결되었지만 일본제국주의의 표현자유 억압이 강화됨으로써 연극환경이 또다시 나빠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해방을 맞아서 연극환경을 크게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만 연극이 정치 사회적 혼란속에 매몰됨으로써 회생기회를 놓친바 있다. 다행히 1950년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국립극장이 개설됨으로써 연극부흥이 가능하게 되었으나 또다시 6·25전쟁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그후 20여 년 동안 드라마센터 개관이라는 호재를 맞았어도 연극이 좀처럼 활기를 찾지 못하다가 1976년 운니동의 조그만 극장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연극붐이 1980년대 초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연극인들이 비로서 출연료를 받는 직업인으로서 시회적 인정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국립극단이라는 예외적인 경우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것은 전체 연극인들 중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여하튼 1970년대 후반부터 연극이 본격적으로 전문화의 시대로 접어든 것만은 분명하다. 동양극장 시대에 잠시 정착하는 듯싶던 연극 직업화의 길이 40여 년이 지난 1970년대, 즉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본 궤도에 들어서는 듯이 보였다. 게다가 정부가 나서서 연극진흥책을 씀으로서 전문화를 뒷받침하기도 했다. 가령 창작극 진흥을 위한 전국적인 연극페스티벌을 펼치도록 한 것에서부터 무대공간의 확충, 인재 양성, 극단 지원 등 다각적인 지원책을 써 왔다. 그 결과 전국적으로 4백여 개의 관립극장(문예회관 포함)과 사설의 대소 극장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전술한 바 있듯이 13개의 국공립극단이 생겨나서 마음놓고 창조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제시대와 같은 탄압도 없고 군사독재 시절 같은 표현의 제약도 없다. 전국적으로 정규대학과 전문대학에 40여 개의 연극학과가 생겨나서 해마다 천수백명의 신진 연극인들이 배출되고 있다.

 

오늘의 위기 연극계 자체내에서 찾아야…

이제는 신극 초창기 연극부진의 근본적 문제들이 거의 해소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연극위기는 궁극적으로 연극계 자체내에서 찾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연극위기가 전적으로 연극인들에게만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연극위기의 상당한 책임이 연극인들에게 있지만 연극조건 개선 못지 않게 그동안의 사회변화가 연극을 옥죄게 한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여기서 사회변화라는 것은 순수 고급예술이라 할 연극을 위협하는 대중오락이 급팽창한 것을 의미한다. 가령 영화, 비디오, 텔레비전 등 영상문화의 발달과 프로스포츠, 관광레저산업의 발전이 연극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정보통신 시대를 맞아서 인구의 1/4 정도가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연극관객이거나 앞으로 관객이 될만한 젊은 세대 대부분이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완만하고 별 재미없는 연극은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고 인터넷에 빠져가고 있다. 왜냐하면 인터넷 속에는 무한정의 정보가 넘치고 연극무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대 공간의 확대만 하더라도 그것이 연극인들의 손에 있다기 보다는 무신경의 관료나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문화공간 활용은 아직도 어려운 상태이다. 즉 수백 개의 관립극장들이 아직도 관료 위주의 경직된 체제로 인해서 연극창조 공간으로서 제 기능을 못한다. 적은 예산으로 문화상품이 될만한 수작을 만들어내지도 못하고 공연횟수와 기간이 넉넉치 못해서 고정 관객을 만들어내기 힘들다.

신극 초창기에 비해서 연극여건이 괄목할만큼 개선된 것만은 부인할 수 없지만 지원정책에도 허점이 없지 않다. 특히 단체지원이나 연극인 지원이 집중지원이 아닌 소액 다건주의에 흐르다보니 공연의 양적 팽창만 가져올 뿐 질적 향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적은 지원금으로 공연을 때우는 식으로 졸속 제작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너도나도 공동 분배를 원하는 것을 외면하기 어려운 정부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그런 식의 소액다권주의는 앞으로도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랑티켓만 해도 최근 서서히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몇 년 전 문화관광부가 사랑티켓을 시작했을 때는 적잖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성과를 올렸었다. 그런데 사랑티켓 방식에서도 역작용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그 역작용이란 연극팬들이 어느덧 사랑티켓에 물들여진 것을 뜻한다. 사랑티켓을 무한정 발행할 수 없게 되자 싼 사랑티켓을 구하지 못한 관객이 연극관람을 포기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티켓으로 값싸게 연극을 관람하던 상당수 연극팬들이 극장을 외면한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정부의 지원이란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지 모르지만 역작용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재 문제도 심각하다. 40여 개의 대학 연극과가 있다고 하지만 교육시스템이나 시설, 커리큘럼, 그리고 교수요원 충원 등 여러 면에서 대단히 불비하다. 당장 40여 개의 대학 연극과에 변변한 소극장 하나 없는 대학이 대부분이다. 특히 교수요원은 턱없이 모자라서 인기 탤런트들이 강의를 메꿔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탤런트라고 해서 강의를 못하라는 법은 없지만 상당수가 체계적으로 연기 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배우들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탤런트로서의 인기와 대학의 교육과는 다른 것이다. 실제로 인기 탤런트가 교수로서 성공한 예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대학에서 인기 탤런트를 다투어 영입하는 것은 순전히 홍보용으로서 상품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럴수록 학생들은 멍들어갈 수 밖에 없다. 벌써 몇몇 대학에서는 부분적으로 강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탤런트 교수요원들이 스스로 물러나는 예까지 생겨나고 있다. 탤런트 이외의 교수요원도 충분한 것이 아니다. 국내외에서 학위를 했어도 실제로 대학 연극과에서는 실기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커리큘럼에서부터 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어중간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 대학교육을 받고 양산되는 젊은 연극인들의 기량이 직업 연극인으로서 부족한 것은 명약관화한 것이다.

 

과도기를 어떻게 극복하나

이상과 같이 과거에 비해서는 연극 창조의 조건이 외형적으로는 괄목할만큼 발전된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공연장 문제라든가 인력문제, 정부의 지원정책 등 여러 면에서 아직도 미흡하고 연극사적으로 볼 때 과도기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과도기를 어떻게 단축하고 극복해서 연극이 하나의 확고한 문화적 지반위에 놓일 수 있을 것인가.

그 첫 번째는 단연 연극인들 스스로가 분발하고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가령 연극이 1960년대와 비교해서 양적으로는 거의 10배 가량 증가했다. 과거에는 연간 1백 편의 공연도 어려웠지만 지금은 대략 8, 9백여 편이 무대에 오른다. 오늘날은 공연장에 냉난방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서 일년 열두달 공연이 그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연말 연초에 여러 가지 연극상에서 작품상 하나 골라내기가 어렵다고들 말한다. 실제로 여러 공연장을 둘러보아도 깊은 감동을 받을만한 작품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우선 작품들이 미숙 조악하기 이를 데 없다. 대부분이 부실한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소품이고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작품들은 보름 공연을 넘지 못한다. 희곡에서 범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만나기 어렵고 아마추어 수준의 미숙한 연기와 독창성 없는 연출이 관객을 피곤하게 만든다. 영세한 극단이 부족한 돈으로 작품을 제작하다보니 무대장치, 의상, 대소도구도 부실할 수 밖에 없다. 그동안 물가상승으로 제작비는 몇 배 올랐다. 지명도가 있는 중견배우는 고가 출연료 요구로 영세한 제작자로서는 엄두를 못 낸다. 1981년 12월 공연법 개정으로 누구나 쉽게 소극장을 낼 수 있고, 또 극단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우후죽순 너무 많은 소극장과 극단이 생겨났다. 더욱이 우려되는 것은 역량 있는 극단과 그렇지 못한 극단들간에 구별이 없어진 점이다. 여하튼 연극인들이 소극장을 열었으니 무대를 채워야 하고 극단을 만들었으니 공연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악순환에 빠지지 않았나 싶다. 따라서 매우 기이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데, 그것이 다름아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샴법칙의 횡행이다. 여기서 연극계의 그레샴법칙을 거론하는 것은 전통있는 극단들보다 신진 극단들이 더 과감하게 공연판을 벌이며 ‘벗는 연극’이나 개그 비슷한 연극도 서슴지 않고 관객을 끌어모으는 것을 두고 하는 이야기이다. 우려되는 것은 연극판에서 신인들이 인고의 수련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극장무대를 헤집고 다니는 점이다. 연기, 연출, 극작, 무대미술 등 모든 면에서 그렇다. 치열한 장인의식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우리 연극판에는 프로와 아마의 구별이 없어졌고 오직 저질 상업주의만이 횡행한다. 가령 오프오프 브로드웨이 연극이 브로드웨이 연극처럼 입장료를 받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오프오프나 오프에서 인고의 수련과정을 거쳐서 브로드웨이라는 본격 프로무대에 나설 수 있지 않은가. 바로 그 점에서 우리의 연극판도 이제는 프로와 준프로, 그리고 아마추어 연극을 구별하고 여러 면에서 차등을 두어야 할 때가 되었다. 예술창조는 벤처기업하고는 다른 것이다. 젊은 아이디어만 가지고 예술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나 기업만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연극계도 스스로 구조조정을 할 때가 되었다. 연극계의 구조조정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스스로 공부하지 않는 연극인은 뒤로 물러서야 하리라 본다. 스스로 물러서지 않으면 관객이 밀어낼 것이다. 가령 경쟁력 없는 상품 제조 기업이 국내외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사회문화적으로 아무런 기여도 못하는 연극을 순수예술이라고 해서 마냥 보호할 수 만은 없는 것이 아닌가. 두 번째로는 연극계 스스로 정화하고 재편하는 일이다. 이념이나 성향이 비슷한 극단끼리 연합내지 통합하는 길이다. 극단도 이제는 대형화를 추진하거나 아니면 견고한 체제로 굽혀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학교동창이나 친분 있는 연극인들끼리 몇 사람 모여서 연극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1960년대 유행했던 동인제 시스템 가지고는 이제 경쟁력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물론 극단의 대형화가 가져올 부작용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소규모의 가내공업적인 극단체제로는 승부를 걸 수 없을 만큼 사회가 변화했다. 너도나도 극단의 대표나 하려들고 기량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주연을 한다든가 연출을 하려든다면 문제가 아닌가. 오늘날 대학로 연극가에 관객의 발길이 뜸해진 이유 중의 한가지도 바로 그런 인력의 측면에서 찾을 수가 있다. 사실 연극도 고급예술이기 이전에 광의의 오락물이다. 그러나 오늘날 오락문화로 가득찬 TV로부터 관중을 공연장으로 떼내어 올 수 있을까. 그것은 적어도 뮤지컬이나 악극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불가능하다. 바로 여기서 연극이 이제는 확실한 위상을 잡아가야 한다. 연극이 더 이상 눈요기감이 될 수 없다면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그러니까 이제는 연극이 대중오락으로서의 기능보다는 교술적 기능으로 방향을 틀어야 되고 감동상품으로까지 오르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가령 현대인들은 사이버 세계에 빠져들면서 극도의 개인주의와 혼자만의 공간속으로 기어들고 있다. 이는 곧 반대로 사람들이 만남의 공통광장을 원하게 된다는 이

야기도 된다. 그런 면에서 만남의 미학이라는 연극이 현대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예술양식이 될 수가 있다. 다만 전제 조건으로서 연극이 고도의 감동상품이 될 수 있어야 됨은 두말할 나위없다. 그것은 연극인들 스스로의 피나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연극이 현대인들에게 풍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미적 욕구를 충족시키며 정신적 위안을 줄 수 있을 때 비로서 제 자리를 지킬 수가 있다. 이제 우리 연극인들도 탄압과 시혜라는 양극단을 왔다갔다 해온 것을 청산하고 기업가 정신으로 나아갈 때가 되었다. 여기서 기업가 정신이란 연극도 상품 가치가 있어서 돈내고 볼 수 있도록 만드는 자세를 말한다. 서양 사람들이 오페라나 뮤지컬을 만들 때 고가 판매를 염두에 두고 질이 뛰어난 작품을 만들고, 또 그러기 위해서 배우, 연출가, 무대미술가, 의상가 등의 질 향상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은 하나의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인재 육성이 가장 시급해

이제는 연극도 공급자 위주의 생각에서 벗어나 소비자인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연극계는 아직도 구태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시대의 관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극단 대표나 연출자들의 취향에 맞춰서 레퍼토리를 선택해서 일방적으로 관극을 강요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아직도 관객만족이라는 것은 거의 도외시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작품제작이야말로 전형적인 구태라 말할 수 있다. 가령 기업에서 제품을 만들 때 사장이나 공장책임자의 취향에 맞춰서 상품을 만드는가. 물론 과거에는 거의 그렇게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각 기업들은 사전에 시장조사를 철저하게 하고나서 제품을 만든다. 연극인들은 아직도 예술경영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하지만 그럴만한 인력이나 재정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에 여전히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제작기법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연극도 이제는 구태스런 생산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유통에도 신경을 쓸 때가 되었다. 상품을 만들어 냈으면 그것을 수월하게 소비자(관객)에게 전달하는 유통시스템도 갖추어야 한다. 단순히 언론을 통해 홍보하거나 전단을 뿌리는 정도로는 불충분하다. 가장 고전적 방법으로는 회원 조직이지만 현대는 그 이상의 방법도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군소극단들은 회원조차 갖고 있지 못하지 않은가.

우리의 연극계는 극장 아닌 극단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어서 영세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자체 교육은 물론이고 신인 양성에도 거의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예술단체의 교육적 기능도 창작행위 못지 않게 중요한데 우리의 극단들은 두세 단체를 제외하고는 속수무책이다.

정부의 연극지원 정책도 크게 개선되어야 한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한 가지는 공연의 기반이 되는 극장(전국의 문화회관)활용에 있어서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해 주어야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극장들이 관 지배로 인해서 대단히 경직되어 있다. 우선 영세한 민간 극단으로서는 대관료가 너무 비쌀 뿐만아니라 장기공연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연극이 직업화되기가 대단히 어렵다.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까다로운 대관 규정에서부터 비싼 대관료 등으로 인해 극단이 생존조차 어려운 처지이다. 이제 지방자치단체들은 무대예술을 키운다는 자세로 문화회관 활용을 활성화시킬 때가 되었다. 다음으로 소액 다건주의 지원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이제 공동분배, 공평분배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 그것을 가능성 있는 쪽으로 집중지원해야 한다. 소액 다건주의로 인해서 부실한 공연이 양산된다면 문제가 아닌가. 물론 집중지원 방식에 반발하는 사람과 단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감수해야 한다. 왜냐하면 특정 인물이나 단체에 영구히 집중지원하는 것은 아니고 본 궤도에 오를 때까지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므로 누구든 실력을 쌓고 또 비젼을 제시하면 집중지원을 받을 수 있지 않은가.

집중지원 성공의 좋은 예로서는 독일의 영화계를 꼽을 수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독일 영화는 유럽에서 대단히 낙후된 편이었다. 그래서 독일 연방의회가 특별법을 제정해서 당시 뮌헨에서 영화운동을 벌이고 있던 젊은 감독그룹을 집중 지원한 것이다. 그 효과는 단 몇 년만에 나타나서 세계적 수준의 감독들이 속속 등장하여 독일영화를 국제적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우리 정부도 이제는 안이하게 평등 분배원칙만을 고수할게 아니라 가능성 있는 곳에 집중지원하는 방식으로 대폭 전환해야 한다. 특히 인재 육성쪽으로 눈을 돌렸으면 좋을 것 같다. 그래야만 오늘의 연극위기도 극복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