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문화예술의 흐름/ 북한 문화정책의 오늘 |
북한 문학예술, 문학예술인도 변화하고 있다.
이우영(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문학예술의 변화 남한사람들의 북한에 대한 편견 가운데 대표적인 것 하나가 북한의 변화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도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로 항상 변화하고 있으며, 변화는 당연히 전체 사회체제의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의 각 하위체제 그리고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변화까지도 포괄한다. 따라서 북한의 문학예술 그리고 문학예술인도 당연히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남한 사람들은 북한을 고정된 사회체제로 인식하듯이 북한의 문학예술도 항상 똑같다고 생각한다. 변화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시간의 변수를 고려하지 않는 태도를 동반한다. 이것은 북한의 문학예술작품을 감상하고 나서도 그 작품의 시대성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영화를 한 두편 보고 나서 많은 사람들은 북한영화는 촌스럽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지금 남한에서 공개적으로 접할 수 있는 북한 영화들은 1980년대에 제작된 것이다. 15년 이상 지난 영화는 남한 영화도 대부분 촌스럽다. 물론 북한 문학예술의 기본적인 특성 즉, 정치적 선전 선동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특성은 북한체제가 존속하는 한 지속적일 것이다. 그러나 문학예술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정치적 지향점도 시대마다 다르고, 이를 구현하는 방법이나 경향성은 시대별로 차이가 크게 나타난다. 북한 건국초기에는 사회주의적 내용을 민족적 형식에 담는다는 원칙을 문화 건설의 기본으로 삼은 사회주의 국가의 전통적인 문예이론인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수용하면서도 일제하 문예운동인 카프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문학예술 부분을 담당한 김정일은 1966년을 고비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고 특히 김일성의 항일혁명운동을 소재로 삼는 항일혁명문학과 수령형상화문학이 중요하다고 주장함으로써 북한의 문학예술이론과 정책은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김정일은 1967년 당중앙위원회 제4기 15차 전원회의에서 카프의 맥락을 이어왔던 일단의 문인들을 수정주의자, 반당반혁명분자로 숙청하고 문학예술에서도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한다. 1967년의 문학예술계 반종파투쟁을 통하여 구카프계열의 문학예술인은 제거되고 문학예술분야에서도 김일성 중심의 인맥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령형상문학’과 ‘항일혁명문학’이 북한 문학예술에서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수령형상문학’은 김일성의 위대성을 부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항일혁명문학’은 김일성이 항일빨치산 활동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을 의미한다. 김정일은 이와 같은 문학예술작품들의 창작을 독려하기 위하여 집체적 창작방식을 강조하고 검열제도를 정비하였다. 김정일의 지도하에 1970년대까지 ‘수령형상문학’과 ‘항일혁명문학’ 계열의 작품들이 양산되었다. ‘수령형상문학’과 ‘항일혁명문학’이 김일성 유일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일조를 하였으나, 편향된 작품들이 양산됨에 따라 북한주민들에 대한 문학예술의 정치적 설득력이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와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1980년대에 들어 김정일은 ‘숨은 영웅 형상문학’을 제기한다. ‘숨은 영웅 형상문학’은 1980년에 본격화된 ‘숨은 영웅 따라배우기’ 운동을 문학예술분야에서 수용한 것으로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찾는 것이다. ‘숨은 영웅 형상문학’은 생활에 밀착된 소재를 다루고 있으므로 일반 주민들이 주인공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수령형상문학’이나 ‘항일혁명문학’과 차이가 있다. 1980년대 후반, 소련을 비롯하여 동구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중국이 개방정책을 가속화함에 따라 북한은 체제 유지의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김정일은 문학예술에서 혁명성을 강조하는 정책을 지향하게 된다. 따라서 1970년대에 주류를 이루었던 ‘수령형상문학’과 ‘항일혁명문학’ 계열의 작품 창작이 다시 활성화된다. 1990년대 이후의 북한 문학예술정책의 핵심은 1992년도에 발간된 김정일의 「주체문학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은 「주체문학론」에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대체하는 ‘주체사실주의’를 주장한다. ‘주체사실주의’는 주체적 인간의 구현을 작품 창작의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주체문학론」에서는 ‘조선민족제일주의’를 강조하는 것도 문학 작품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하고 있는 등 민족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또한 과거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실학자나 근대문학의 주요 인물들, 그리고 카프계열의 작가들까지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주장한다. 1990년대 「민족과 운명」, 「뜨락또르 운전수 일가」 1990년대 북한 문예 정책 변화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다부작 영화 「민족과 운명」과 소설 「뜨락또르 운전사 일가」라고 볼 수 있다. 다부작 영화 「민족과 운명」은 1990년대 북한 문화를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작품이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민족과 운명」 제작의 단초를 제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종자와 주제, 사상, 인간관계 등 구체적인 형상 방도에 대하여 일일이 가르쳐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민족과 운명」이 우리 수령, 우리 당, 우리 민족이 제일이라는 조선민족제일주의사상을 소리 높이 구가”하는 작품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제작된 「민족과 운명」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고 있다. 다부작 영화 「민족과 운명」의 내용 첫째, 「민족과 운명」이 추구하는 목표는 자주성의 확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은 「민족과 운명」의 종자를 “민족의 운명이자 개인의 운명이라는 것”이고, “민족의 운명의 본질은 민족의 자주성에 관한 문제”라고 하고 있다. 핵심적인 내용은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북한만이 자본주의와 견줄 수 있는 자주성을 갖추고 있으며, 인간적인 삶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둘째, 「민족과 운명」은 작품 배경이 기존 북한영화와 다르다. 「민족과 운명」의 주요한 소재가 월북한 사람 혹은 친북한적인 사람 혹은 재일교포 등이며, 영화의 주요 배경이 남한이나 일본, 그리고 미국 등 자본주의사회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풍요롭고 화려한 생활이 묘사되기도 한다. 셋째, 「민족과 운명」에는 새로운 문학예술 조류가 종합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특히 영화음악 분야는 새로운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예가 된다. 「민족과 운명」에서는 기존 영화에서 활용하였던 음악과 더불어 서구적 악기구성을 갖추고 있는 보천보 경음악단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넷째, 「민족과 운명」에서는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을 포용하는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남한의 고위직을 지냈고 반공주의자였던 사람들이나 북한에서 성분이 나쁜 사람으로 인식되는 한국전쟁시 미군에 포로로 잡혔던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김일성 사후 북한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1995년 김명익의 「뜨락또르 운전수 일가」는 농촌 기계화를 통하여 증산을 독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로서 이전의 소설들과 비교할 때 다음의 몇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뜨락또르 운전수 일가」에서는 영웅적 주인공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1980년대의 숨은 영웅은 거대한 사건의 가운데 있는 영웅적인 인물보다는 소리 소문 없이 자기 일을 하고 있는 보통의 인물들이었으나, 이 소설에서는 다시 전통적인 영웅적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 둘째, 개인숭배가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1980년대의 문학에서는 「불멸의 총서」와 「향도의 총서」와 같은 거대한 개인숭배의 작품이 나오기는 하였지만 일상적인 삶을 소재로 하는 작품에는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명시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셋째, 「뜨락또르 운전수 일가」에서는 사회적 갈등이 거의 표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비적대적 갈등의 범위 내라는 제한이 있기는 하였지만, 1980년대의 문학에서는 갈등이 예각화되어 있어 북한의 현실적 모순이 어느 정도 드러났었다. 넷째, 「뜨락또르 운전수 일가」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동시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일성시대의 문학작품에서는 「향도의 총서」 이외의 작품에는 주로 김일성이 등장하고 있으며, 김정일이 등장하는 소설에서는 김일성이 등장하지 않았다. 「민족과 운명」이 제작된 것은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문화사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북한의 주류문화 성향이 바뀌고 있으며, 이러한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민족과 운명」이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1989년 평양축전이 북한 주민들과 문화종사자들에게 일종의 문화충격으로 받아들여졌고, 보천보 경음악단이 상징하듯이 서구적인 문화와 유사한 문화들이 주민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문화상황에서는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기존의 문화적 양식들이 더 이상 설득력이 없기 때문에 형식이나 내용의 전반적인 혁신이 필요하였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북한체제가 처해있는 상황과 연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고립화가 더욱 심화된 북한으로서는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제한적인 교류가 불가피해졌다고 볼 수 있다. 체제의 보존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개방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북한 지도부는 적극적으로 자본주의 문화를 주민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일종의 예방주사 효과를 기대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족과 운명」에서 로동계급편이 등장한 것이나 소설 「뜨락또르 운전수 일가」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김일성 사후 북한의 문예정책은 이념을 중시하는 수령형상문학 시대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작품에서 뿐만 아니라 북한에서는 김일성 사후 개혁적 성향의 작가와 보수적 성향의 작가 사이의 긴장이 극대화되어 보수화되는 문학예술계의 흐름에 동참하지 않거나 반발하는 작가는 숙청되었다. 개혁적인 성향을 보였던 「높새바람」의 작가 홍석중은 보수화 흐름에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에 숙청되었고, 「벗」의 작가 백남룡은 「향도의 총서」 중 「동해천리」를 집필하여 보수화 흐름에 동참함으로써 작품 창작 방향을 전환하였다. 「뜨락또르 운전수 일가」의 김명익도 1980년대 개혁적 성향을 띠었던 작가이다. 김일성 사후 북한 문예정책은 계급성이나 이념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보수화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강화되어 과거 형태의 문학예술로 회귀하거나, 현재의 분위기가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문학예술분야의 이념화 및 보수화를 상징하고 있는 「민족과 운명」의 「로동계급편」도 북한에서는 과거 이념적 성향 작품의 뒤를 잇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영화의 내용을 엄밀히 살펴보면 과거의 유사 작품들과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북한 문학예술이 일방적으로 보수적인 경향으로 흐를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보다도 현재 북한의 최고지도자이며 문학예술 부문도 직접 관할하고 있는 김정일 자신이 다양한 문학예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문예 정책의 향후 전망 지금까지 살펴본 1990년대의 문화적 상황과 문예정책 변화과정을 생각할 때, 앞으로 북한 문예정책의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북한이 처한 대내외적인 위기상황에서 북한의 문학예술에서 혁명성을 강조하는 수령형상문학이나 항일혁명문학은 꾸준히 강조될 것이나, 그 내용이나 형식은 새로운 환경변화에 적합한 양식으로 변화할 것이다. 둘째, 김정일의 당총비서 취임을 계기로 문학예술 분야도 김정일이 명실상부하게 주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조치들이 나타날 수 있다. 「민족과 운명」의 카프편 제작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일성이 비판적으로 평가하였던 이광수나 카프를 재평가한 것은 1980년대 김정일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따라서 북한의 대표적인 국가 문화사업에서 카프를 내세운 것은 북한 문화사에서 김정일 시대를 공표하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셋째, 공식적으로 김정일이 수령의 지위를 계승하는가 여부에 상관없이 김정일을 대상으로 하는 수령형상문학이 점차 활기를 띨 것이다. 현재 진행중인 「불멸의 향도」 연작과 별도로 여러 장르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김정일을 우상화하는 수령형상화 문학이 창작되어 주민들에게 제공될 것이다. 넷째, 주민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문예정책이 추진될 것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보천보경음악단이나 왕재산경음악단과 견줄 수 있는 공연단체를 장르별로 신설하거나 ‘휘파람’류의 음악창작을 독려하거나, 세련된 형식의 영화 창작이 추진될 수 있다. 김정일과 북한의 지도층이 부분적인 수준에서라도 개방이 불가피하다고 인식한다면 새로운 양식의 문학예술창작은 더욱 강조될 수 있다. 다섯째, 문학예술 작품의 성격변화와 관계없이 창작자인 작가들에 대한 사상적, 조직적 통제는 더욱 강화될 수 있다. 인텔리인 동시에 예술가인 작가들은 사회의 변혁기에 통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은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문학예술 분야에 개방이 진전된다고 하더라도 작가를 엄격히 통제함으로써 전체 문학예술에 대한 당의 통제력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여섯째, 김정일이 문학예술에서 혁명성과 생활성, 수령형상문학과 숨은 영웅 형상문학의 균형을 유지하는 문예정책을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일반주민들은 점차 혁명적인 작품들을 외면하는 태도를 보이게 될 것이다. 이 경우 김정일은 기존의 혁명적인 문학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겠지만 문화적 취향이 변한 주민들은 공식문화를 소외시키고, 비공식적인 문화를 창작하고 유통시킬 여지도 없지 않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