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현상읽기 - 음악 |
새로운 예술로서의
음악 황성호(작곡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지금까지 언급한 기술은 대개 실음을 대상으로 한 증폭, 방송, 기록매체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성공한 전문인 집단으로서 음악인들은 이전보다 더욱 일반 대중들과 구분되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개인 컴퓨터 보급이 확대되면서 도래한 정보화 시대의 기술, 즉 미디와 멀티 미디어, 인터넷 등은 이러한 층의 구분을 흐리게 하면서 예측하기 힘든 새로운 양상과 개념들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예술로서의 음악공연들 지난 1월 22일 국립극장의 대, 소극장에서는 이돈응의 피리와 실시간 처리에 의한 작품 “새피리”, 색소폰, 오보에, 전자악기들이 어우러진 “즉흥연주”, 황성호의 타악기, 마임, 전자음향과 실시간 제어 영상을 위한 “재핑, 언재핑(Zapping, Unzapping)”, 임종우의 음향구성 등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예술의 해 개막 공연이 있었다. 테크놀로지 관점에서 본다면 아날로그적인 부분이 많아 아쉬웠지만, 어쨌든 전통음악과 재즈, 컴퓨터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더불어 무용, 마임이 어우러진 매체 실험이란 점에서 의미 있었다. 그런데 이 공연의 키워드는 뭐니뭐니해도 인터랙티브와 네트워크였다. 뉴 미디어 공연에 있어 이 둘이 가능하게 된 배경에는 정보 통신과 제어 기술의 발달을 빼놓을 수 없다. 정보 처리가 보다 빠르고, 처리 정보 양이 많아질수록 실시간 제어 가능성은 커지기 때문에 이에 비례해 정보 데이터가 보다 사실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정교하게 비사실적이 되는 것이 쉬워진다. 또한 화상회의 정도의 네트워크, 더 나아가 인터넷은 종래 음악공연의 공간 제한을 한 순간에 극복시켰다. 컴퓨터음악의 대표적인 주크박스 사이트로는 1998년 4월부터 핀랜드에서 시작한 사운드 박스(SOUND BOX, http://www. kiasma.fng.fi/soundbox)를 들 수 있다. 국립극장 공연에서 필자는 대극장에 연주된 타악기 주자의 데이터(미디로 출력되는)로 소극장의 컴퓨터 영상 이미지(정지화상과 동영상)의 출현과 변화를 시도했으며, 빔 센서를 이용해 배우 손 동작만으로 컴퓨터 상에 한 이미지를 완성시키는 것을 꾀했었다. 최근 실시간 데이터 처리를 위해 어쿠스틱 악기의 실연을 음원으로 삼는, 라이브 일렉트로 어쿠스틱 음악(live electro-acoustic music)을 흔히 접하게 된다. 이 경우 컴퓨터를 통한 제어 프로그램으로는 MAX, MSP, 키마(KYNA) 등이 사용된다. 지난 해 제7회 서울컴퓨터음악제에서 하루 저녁 음악회를 인터랙티브 공연으로 꾸민 미국의 클라리넷 연주자 에란테(F. Gerard Errante)는 스스로 페달과 컴퓨터, 효과기 등을 이용, 자신의 음악연주를 제어했다. 연주자가 처리까지 맡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며 또한 번거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이돈응의 “새피리”에서와 같이 무대 아래에서 기술자가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기술 파트의 중요성으로 인해 아예 기술자가 연주자 위치에 선 경우도 있다. 지난 3월 초 쿠바 아바나에서 열렸던 제8회 국제전자음악제, 아바나의 봄(Primavera en la Habana 2000)에서 좋은 연주를 들려주었던 메타 두오(Meta Duo)는 색소폰 연주가 다니엘 키엔치(Daniel Kientzy)와 더불어 쿠바 출신의 미녀 오퍼레이터, 레이나 뽀르뚜온도(Reina Portuondo) 두 사람으로 구성되었다. 따라서 기술 파트의 무대 등장은 이제 제어가 기술의 차원을 넘어 연주 개념으로 진행함을 보여준다. 이 음악제 중 전자 바이올린 연주자, 마사 무크(Martha Mooke)는 에란테처럼 스스로 자신의 연주를 실시간 처리하며 음악을 이끌어 갔다. 그녀는 거의 모든 음악에서 전자 바이올린으로 연주된 첫 부분을 실시간 샘플한 후 이를 오스티나토로 사용했는데 그 처리, 즉 샘플과 루프화 과정이 상당히 빨라, 처리되었다는 느낌을 갖지 않게 했다. 그러나 동일한 수법이 곡마다 반복되어 음악적 감흥이 반감되었다. 이는 테크놀로지 공연의 문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신기술은 처음에는 데몬스트레이션 수준의 흥미를 끌더라도 반복되면서 점차 흥미를 상실한다. 따라서 기술을 음악적 언어로 승화시키는 일이 중요하며 이 점에서 기술자보다 예술가가 무대에서 더욱 존재 가치가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실시간 처리는 어쿠스틱 음악과 그것의 전자적 처리를 의미했다. 그러나 미디 기기만의 네트워크으로도 우리는 실시간 처리의 높은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칼 아츠의 마크 코닐리오와 몰튼 수보트니크가 개발한 인터랙터(interacter)라는 프로그램은 공연 상황 중 특정 조건들을 감지해 반응한다. 예를 들면, 미디 건반 주자가 특정 건반을 특정 값으로 몇 번 두드리면(트리거 하면) 이미 프로그램 되어 패턴화 된 음들이 연주된다. 또는 건반 주자가 특정 건반을 어떤 범위 이상의 터치 값으로 연주하면 소리가 미리 프로그램 된 패턴에 따라 스테레오 공간에 배치된다. 인터랙터에는 많은 수의 트리거와 그 반응들이 프로그램 되는데, 이 경우 미디 건반은 통념의 악기에 덧붙여 프로그램 된 사건들의 전개를 처리하는 기기도 된다. 만일 오나다임, 엑스 포즈, 프랙튠, 아트매틱 등의 프로그램을 사용할 경우 그래픽은 물론 동영상까지도 연결할 수 있어 그야말로 멀티 미디어 공연이 손쉽게, 정교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라이브 일렉트로 어쿠스틱 음악은 엄밀히 말해 연주자의 음향을 처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연주자의 어떠한 동작이라든가 연주법이 또 다른 음향 매개변수의 값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이 센서를 이용한 실시간 제어이다. MIT 미디어 랩의 토드 맥오버(Tod Machover)는 ‘어떻게 하면 요요마 같은 뛰어난 연주가가 첼로라는 악기의 한계를 넘어 연주 할 수 없을까?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들이 전문가 못지 않게 연주할 수 없을까?’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 결과 하이퍼 첼로와 하이퍼 비올라를 포함한 하이퍼 인스트루먼트가 탄생되었다. 연주되는 어쿠스틱 악기의 몸체와 마찬가지로 연주자의 손과 팔이 센서로 둘러 쌓이며, 그 센서 값은 샘플러나 신디사이저로부터 사운드를 생성시키는데 사용된다. 어쿠스틱 악기 연주자의 모든 동작까지도 전자음악의 소재가 됨으로써, 연주자 자신이 전자악기 영역에 포함되는, 인텔리전트 악기(intelligent instrument)로 불리는 이 같은 네트워크는 흥미 있는 미래지향의 개념이다. 물론 센서 값을 음악만이 아니라 영상에도 관련지음으로써 멀티 미디어 작업이 더욱 인터랙티브 하게 이루어질 수도 있다. 미디어 랩에서 개발한 제스춰 월(gesture wall) 센서는 전자기에 의한 센서 장을 통해 감지한 사람의 동작 데이터를 음악과 그래픽에 적용시키는 대표적 시스템이다. 사람이 스크린 벽에 가까이 갈수록 음악 소리는 커지며 손과 몸을 낮추면 음고가 낮아지고 좌우로 이동함에 따라 악기 소리와 소리 위치가 바뀐다. 이 외에도 디지털 바톤, 지휘용 자켓 등을 개발한 맥오버는 1996년 7월 포괄적인 인터랙티브 공연, 두뇌 오페라(Brain Opera)를 링컨센터에서 시도해 화제를 모았다. 이후 두뇌 오페라는 시카고, 파리, 도쿄 등 세계 주요 도시를 순회했으며 이를 통해 업그래이드를 하여 1999년 봄 비엔나에서 최종판으로 완결되었다.
센서를 이용한 실시간 처리 작업은 동작 데이터 감지라는 점에서 무용과 연극 분야에서의 활용 가치가 높다. 또한 음향과 동작을 일치시킬 수 있고, 특정 이벤트들을 정확한 시점에 트리거 할 수 있어 매우 유용하다. 음악이 녹음된 테이프보다 연주자에 의해 생 연주될 경우 춤과 음악은 서로 상호작용을 통해 인터미디어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자칫 이러한 이벤트는 무용수와 음악가들이 서로 이질적으로 독립된 채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부자연스런 멀티미디어가 되기 쉽다. 이는 우연성이거나 알고리듬 방식에 의한 음악일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이럴 때 직접적인 상호작용의 고리로서 무대에 센서들을 설치하여 무용수 동작 자체를 음악에 관련된 데이터로 삼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가 될 것이다. 이것의 고전적인 예로는 존 케이지가 1965년에 커닝햄 무용단과 공연한 ‘바리에이션 V’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모든 안무가들은 단지 침묵의 공간을 채우는 한 줌의 음악만을 원하거나 정확한 카운트와 큐, 평범한 사운드들로 사려 깊게 조직되고, 구조화된 작품들을 원한다. 이 대목에서 새로운 기술을 실험하려는 안무가들의 시도가 요구된다.
실시간 제어란 결코 독립된 장르가 아니라 공연에 사용되는 여러 기술 중 하나일 뿐이다. 그 동안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실시간 제어란 말이 최신 기술의 대명사처럼 거론되고 있지만 이는 곧 평범한 단어, 당연한 것이 될 것이다. 물론 실시간이란 마지막 목표를 향한 기술 개발은 끝없이 추구되겠지만…. 실시간 제어는 곧 인터랙티브 개념을 예술분야에 도입하게 했지만 이 역시 아직까지는 개인 혹은 소수 집단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다수 관객 집단이 상호작용의 성원으로 공연물에 수용되는 데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마치 전자 투표처럼 다수에 의한 결과 속에서 한 개인의 영향력을 어떻게 당사자에게 인지시키느냐는 까다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누구인가에 의해 처리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컴퓨터 세계에서 결과에 대해 믿음-조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을 극복할-을 갖게 하는 일도 중요한 인터페이스 문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