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화예술의 흐름 5/ 북한 영화의 오늘

예술영화와 기록영화 기능 뚜렷이 구분돼...

최척호(연합뉴스 민족뉴스 취재본부 기획위원)

 

북한에서는 영화는 전체 문학예술 분야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한 당 사상사업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북한영화는 국가주도의 문화기획상품으로 제작된다. 목적성이 강하다는 뜻이다. 영화에 대한 북한 관심은 영화매체가 가지는 생동성, 기동성, 대량성에 기인한다. 이점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비서도 일찍이 언급한 바 있다.  이애 따라 북한의 영화는 일반적인 사회주의권에서 발견되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보다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독자성과 주체사상, 수령과 당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는 체제지향 특성이 발견되다. 혁명영화이자 김일성 찬양물인 ' 조선의 별'(전 10부작)시리즈는 이러한 특징을 보여분다. 김일성, 김정일 찬양물은 유교적 가부장적 권위주의라는 전통과 연결돼 설명되는데, 바로 그것은 김일성, 김정일 후계체제의 이론적 근거로 제시된 '수령론'의 핵심으로도 강조된다.

선전선동 기능은 기록영화, 극영화는 재미있고 흥미있는 요소 살려

북한의 영화는 그러나 김일성 주석의 3년상이 끝나고 김정일 후계체제가 공식적으로 선포된 97년 10월을 기점으로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 가장 큰 변화의 조짐은 예술영화(극 영화)와 기록영화의 기능을 뚜렷하게 구분하고자 하는 점이다. 말하자면 선전선동의 기능은 기록영화쪽에 맡기고 극 영화는 재미있고 흥미있는 요소를 더 많이 넣자는 움직임이다. 도큐멘타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극영화쪽에서 관객의 욕구와는 거의 무관하게 제작되던 관행과 폐습을 시정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것은 여기서부터 비롯된 구체적인 실천방안이다. 먼저 ‘조선예술’ 2000년 1월호 등은 기록영화의 선전기능을 강조하면서 기록영화를,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의 사상으로 일관시키고, 당의 노선과 정책을 해설하고, 당 정책 집행에 기여할수 있도록 만들 것을 요구했다. 또 기록영화의 해설과 관련, 이 잡지는, 경제생활과 경제문제를 취급한다고 해서 실무적인 설명에 그쳐서는 안되며, 일상생활을 소재로 사상적 본질과 정치적 의의를 밝혀야 하고, 인간을 말해도 그의 정치적 입장을 뚜렷이 서술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예술은 이어 기록영화 해설은 수많은 사실과 자료, 인물의 투쟁을 담기 때문에 자칫 나타난 현상이나 자료만을 나열할수 있다 “항상 정책적 안목을 높이고 집필태도를 올바로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경제기술 성과와 경험을 반영할 경우 생산수치나 기술혁신 자료만 열거하는 ‘기록화’를 없애고 모범을 창조한 인물의 사상관점과 사고방식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객의 욕구와는 관계없이 영화제작을 해오던 그간의 폐단과 관행에 대한 경고는 배우들의 연기 비판으로 부터 시작된다. 헐리우드의 영화도 이른바 ‘스타 시스템’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지만 북한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져 출연배우가 곧 그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일이 적지않기 때문이다. ‘조선예술’ 2000년 3월호는 일부 영화배우들이 도식적인 틀에 빠져 연기를 적당히 하고 있어 좋은 작품을 망쳐 놓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행동을 ‘예술가의 양심없는 표현’이라고 규정한 조선예술은 특히 여배우들의 깜짝 놀라는 장면에서 가슴앞에 손부터 가져가는 행동, 이죽거리는 남자의 잔등을 두드리고 달아나는 행동 등을 틀에 박힌 연기의 전형이라고 예거했다. 남자배우들의 연기중에서는 애인앞에서 뒷머리를 긁적거리는 행동, 흥분했을 때 입에 물었던 담배를 집어 던지거나 모자 편지 같은 것을 구겨쥐며 주먹을 부르르 떠는 행동을 도식적인 연기의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이 잡지는 또 통곡할 때 가슴을 쥐어 뜯는다든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교양할 때 약속이나 한 듯이 뺨을 때리는 것, 기술자의 경우 무조건 안경을 끼게하고, 반당 종파분자를 표현할 때 중절모를 쓰거나 가죽외투를 입거나 가죽 장화를 신고 나와 언성을 높이면서 괴이하게 웃는 연기는 배우를 기형화하는 나쁜 버릇이라고 지적했다. 잡지는 훌륭한 작품이 몇몇 배우의 무책임한 연기로 그 품위가 깍이는 반면 내용도 빈약한 작품이 배우의 명연기로 ‘격이 있는 작품’으로 재평가 되는 경우가 있다며 배우가 좋은 연기를 하려면 창조적 열정을 가지고 얼굴표정, 몸짓 , 억양에 이르기 까지 깊이 사색하고 연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영화의 이러한 변화조짐은 실은 80년대 중반에 이미 나타났었다. 그 무렵부터 들어간 외국문물의 영향이 컸다. 87년에 열린 평양축전은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특히 영화를 가장 많이 보는 계층인 청소년들의 사고방식에 거다란 영향을 미쳤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영화계의 의식변화로 이어졌다. 변화의 초점은 ‘사상성의 잠복’. 지나치게 사상성을 강조해온 영화정책이 청소년들의 의식구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판단아래 사상성은 밑바탕에 깔고 그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분단이래 첫 수입이 허가된 ‘불가사리’ (85년)와 80년대 후반 북한영화계를 풍미한 ‘도라지꽃’ (87년), 문학계를 강타한 ‘청춘송가’는 이의 산물이다. 북한영화계의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92년 북한영화사에서 최고의 성과작으로 기록된 ‘민족과 운명’(전50부작) 이 제작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기존의 제작방식과 사고방식을 바꿀 것을 요구한 김정일 총비서의 강도높은 지시와 정책은 곧바로 ‘제2차 문예혁명’으로 이어졌다. ‘민족과 운명’시리즈에 남한의 카페풍경이나 ‘그때 그 사람’ ‘낙화유수’등의 대중가요를 집어 넣은 것은 그 정책의 상징이었다. 이 ‘제2차 문예혁명’의 선언에는 물론 정치적인 목적도 들어 있었다. 김정일총비서가 지난 70년대초 ‘피바다’등의 재창작을 통해 자신이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임을 선언했다면 ‘제2차 문예혁명’을 통해서는 명실상부한 북한의 통치자임을 공포했다는 것이다. 당시 김정일 총비서가 “앞으로는 내가 직접 영화제작이나 문예물창작에 간여하기 힘들것”이라고 밝힌 대목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김일성 주석 사망후 결정적으로 변화의 흐름 끊겨

북한 영화계는 그러나 94년7월 김일성주석의 사망에 따라 결정적으로 변화의 흐름이 끊긴다. 김정일총비서 체제의 안정적인 구축 문제와 경제적인 어려움이 발목을 잡았다.’고난의 행군’ ‘강성대국 건설’등의 슬로건이 북한사회를 지배한 배경이고, 영화계도 다른 분야에 비해서는 덜했지만 침체될 수 밖에 없었다. 제작편수도 줄고 ‘민족과 운명 시리즈외에는 별다른 성과작이 나오지 않았다. ‘고마운 처녀’ ‘군인선서’ ‘우리 분대장’ ‘먼후날의 나의 모습’ ‘밀림이 설레인다’ 등이 이 무렵에 나온 주요 영화다. 지난 15년동안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보여온 북한의 영화는 앞으로 더욱 변화의 폭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었보다도 김정일총비서체제의 안정, 경제여건의 호전, 남북관계의 해빙무드등은 북한영화 최대의 문제점이었던 소재와 주제의 다양화를 꾀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북한영화 최대의 금기사항이었던 반체제 인물을 다루는 문제도 어느정도는 가능할것으로 보인다. 체제유지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것인데, 정치적 노선의 차이로 60년대 초반 권력핵심에서 밀려난 카프작가 한설야(韓雪野)가 문학사에 다시 이름이 오른 것은 그 징조로 받아들여진다. 한설야는 북한정권 초기 문예총 위원장등을 지내면서 ‘만경대’ ‘승냥이’ 등의 작품을 남겼다. ‘만경대’는 북한 문학사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꼽는 총서 ‘불멸의 력사’의 원전이고 ‘승냥이’는 최고의 반미소설로 일컬어지고 있다.

북한 영화계에서는 1990년대의 최대 성과로 ‘수령형상창조’에 관한 문예창작방침을 재확인한것과 ‘민족과 운명’시리즈 제작을 꼽는다. 평양서 발간되는 조선예술 (2000.1)은 “90년대 우리 영화예술 건설에서 이룩된 가장 중요한 성과는 무엇보다도 먼저 수령형상창조에 관한 우리 당의 주체적 문예사상과 이론의 정당성 , 생활력을 더욱 뚜렷이 확증해 준것”이라고 밝혔다. 잡지는 수령의 형상창조가 북한 영화예술의 첫 번째 사명이자 주체적이며 혁명적인영화예술 건설에서 나서는 선결조건이라고 지적했다. ‘민족과 운명’시리즈는 소재의 다양화를 꾀했다는 점, 김정일 총비서가 마지막으로 제작에 직접 간여했다는 점, 북한영화사상 최대의 물량이 투입됐다는 점등으로 ‘시대의 걸작’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이 잡지는 이외의 대표작으로 ‘민족의 태양’(제4~5부), ‘화성의숙에서의 한해여름’(제1~2부) ‘빛나는 아침’ (전·후편) ‘밀림이 설레인다’(제1부~12부)를 꼽았다.

북한에서 보는 남한영화는 아직까지는 비판적이다. 서로 다른 체제에서 비롯된 가치관의 차이다. 특히 성(性)을 소재로 하거나 하드고어물에 대해서는 그 비판의 강도가 높다. ‘음란하고 퇴폐적이고 폭력적인 할리우드의 복사판’이라는게 비판의 요지다. 남한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성적을 올린 ‘쉬리’에 대한 비판도 이의 연장선상이다. 더구나 ‘쉬리’는 남북분단 상황을 그 소재로 하고 있다. 북한으로서도 논평을 가할만한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한 북한의 논평은 재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2000년 2월14일)를 통해 나왔다.

이 신문은 “남한영화 ‘쉬리’는 분단의 비극을 다룬 영화이지만 분단의 비극을 진실되게 그려내거나 통일을 호소하려는 작품이 아닌 것 같다. 액션장면의 기술추구에서도 구미(歐美)를 따라 가려한 것 같다. 북한에 의한 테러를 줄거리로 삼았을 뿐 아니라 북한을 일방적으로 매도했다. 북한군을 엄청난 폭탄 테러의 살인자로 그려 낸 것은 단순히 선정적인 효과를 노린것인지 , 혹은 다른 목적을 추구한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비평을 가했다.

반면 남한의 스크린쿼터 축소문제와 관련해서는 영화인동맹 (위원장 백민) 성명을 발표하고 남한 영화인들의 반대 움직임에 지지입장을 표명했다. 지난해 8월4일 발표된 이 성명은. “미국 영화시장개방 책동을 반대하는 투쟁은 미국의 문화적 침투와 괴뢰 당국의 추악한 사대 매국행위에 대한 분노의 폭발로서 민족문화의 사멸을 막고 민족의 얼을 지키기 위한 애국 애족적 투쟁”이라고 강조했다. 성명은 또 스크린 쿼터 축소를 반대하는 영화인 협회와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등 관련단체의 활동을 거론하면서 “남조선의 영화인들과 각계각층 인민들은 미국영화 시장개방책동을 단호히 부수고 민족문화를 끝까지 빛내야 할것”이라고 당부했다.

 

남북정상회담 계기로 남북 합작영화 제작등 긍정적으로 논의돼…

한편 지금까지 남북한간에는 두건의 합작영화 제작을 위한 접촉이 진행돼 왔으나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북한측의 태도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해왔다. 이러한 가운데 나운규의 일대기를 담을 ‘아리랑’ 공동제작 문제를 북한측과 협의해온 SN21 엔터프라이즈의 김보애 회장이 지난 4월20일 평양을 방문, 조선 수출입영화사측과 실무문제를 조율했다. 김회장은 특히 방북 기간중 합작영화제작에 신중한 입장을 보인 북한측과 영화제작을 후원하고 협찬하는 공동 제작방식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함께 민비 시해사건을 다룬 ‘명성황후’의 공동제작을 비롯해 남북공동영화제 개최등을 추진해온 김호선 감독도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를 지켜 보고 있다. 영화계 인사들은 “그동안 부산 국제영화제 등에 북한영화를 초청하는 문제를 비롯해 합작영화를 제작하는 문제등이 꾸준히 추진돼 왔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해왔다”며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교류가 급물살을 타면 합작영화제작등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여 가시적인 성과가 곧 도출될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최근의 대외교류로는 북한의 극영화 ‘자신에게 물어보라’가 2000년 2월19일부터 27일까지 일본 니가타(新瀉)시에서 열린 제10회 니가타 국제 영화제서 두차례 상영된 일을 들수 있다. 북한의 현대적인 극영화가 일본에서 상영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난 1988년 제작된 이 영화는 도시에서 산골목장의 3대혁명소조 지도원으로 파견된 주인공(문석주)이 솔선수범해 이 목장에 정착, 이곳을 모범적인 목장으로 키워 나간다는 줄거리로 87년에 제작된 ‘도라지꽃’의 후속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니가타영화제에서 북한의 영화는 지금까지 ‘홍길동’ ‘불가사리’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등 주로 역사물이 소개돼 왔다.

여기에 남한에서도 소개된 미국 디즈니랜드사의 만화영화 ‘톰과 제리’가 북한에서도 장기간 방영됐던 것으로 확인돼 흥미를 끌기도 했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이 만화영화는 만수대 텔레비전에서 김정일 총비서의 지시에 따라 지난 88년경 부터 매주 일요일 1~2편씩 방영됐다는 것이다. 만수대텔레비전방송은 이 만화영화의 제목을 ‘우둔한 고양이와 꾀많은 생쥐‘로 바꿨고 대사도 거의 삭제한채 방영했다. 이 만화영화는 7년간의 방영기간동안 주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는데 “아무리 힘이 약해도 머리만 잘쓰면 힘센 자를 얼마든지 이길수 있다’는 점이 그 이유였던 것으로 탈북자들은 전했다. 특히 북한이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과 맞서 있는 상황과 맞물려 주민들에게는 이 영화의 고양이가 미국을, 생쥐는 북한을 각각 의미하는 것으로 비쳐졌으며 북한 당국도 이 점을 감안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주민들은 이 만화가 미국에서 제작된 사실은 거의 몰랐고 막연히 프랑스등 유럽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