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현상읽기 / 국악

'국악 퓨전콘서트'의 허와 실

 권오성( 한양대 교수)

 

국악이란 무엇인가? 국악의 정의는 아직도 정론이 없는 상태라 할수 있다. 그러나 " 옛 우리 음악이면서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그 전통성과 정통성이 훼손되지 않고 전승되는 우리식의 음악어법으로 된 음악을 가리키며, 이에 비해서 우리 음악의 전통적 양식을 잃지 않은 기법으로 새로 창작된 음악을 신작국악( 요즘에는 흔히 창작국악)이라고 하며 이 신작국악도 국악의 일종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 국악이 우리의 즉 한민족의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그 음악이 지닌 가치만큼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실정이다.이러한 이유 때문에 국악은 서양음악이 만연되고 있는 풍조에 밀려 소수의 사람들만이 하는 음악같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국악을 일반인들에게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시도로 국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것이 이른바 국악과 다른 음악과의 접목을 시킨 퓨전음악이다. 퓨전이란 어의 그대로 용해·융합·통합이란 뜻이며 서로 다른 문화를 결합시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국악에 적용되어 퓨전국악이란 형태가 생기게 되었고, 일반적으로 국악과 서양음악을 접목시킨 음악을 가리키게 되었다.

그러한 퓨전국악이 일반인들에게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무슨 원인때문인가? 소위 N세대라고 부르는 컴퓨터와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다양한 문화체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상에서는 지구의 어느 곳이든 찾아갈 수 있고, 전통과 현대를 동시에 만날 수 있다. 클릭 한 번에 전혀 다른 공간과 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서 퓨전이 더욱 친숙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많은 젊은 세대들에게 퓨전국악이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국악의 무대들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타 쟝르와 결합을 시도하고 있는 국립국악원 연주단의 일부가 지난 5월 28∼30일 북 대신 색스폰으로 판소리와 어울리게 하고 록그룹이 우리 소리와 앙상블을 이루고 국악원 야외무대의 축제 마당에서 펼친 ‘異象·以上·理想’은 보통의 국악무대에서는 보기 드물게 록그룹, 타악, 째즈와 함께하는 이상한 무대가 펼쳐졌다.

‘점입가경’이란 제목으로 이정식 째즈밴드와 국악원 소속의 유미리씨가 함께하는 <수궁가>가 공연됐고 최소리의 구음(口音)과 타악그룹 ‘몰게’의 소리로 전하는 <두들림>, 신대철이 이끄는 록밴드 시나위와 국립국악원 민속단이 벌인 <시나위 VS 시나위>, 국립국악원 무용단과 민속악단이 살풀이 군무(群舞)를 추고, 설치미술가 김미경씨의 합류로 관객이 함께하는 원무놀이가 펼쳐졌다.

또한 소리꾼 조주선의 첫 CD독집 ‘가베’가 EMI의 세계민속음악 전문 레이블인 ‘헤미스 피어’를 통해 전세계에 발매되었다. ‘The story of …’ 시리즈 중 유일한 판소리음반이다. 3000장만 팔리면 성공이라는 국악음반시장에서 3개월만에 1000장이 판매되었다고 하니 국내반응도 좋은 편이다. 이 음반에 수록된 곡도 <심청가> 중 ‘심봉사가 물에 빠지는 대목’과 <춘향가> 중 사랑가, 쑥대머리 등 비교적 잘 알려진 레퍼토리들이다.

음반 ‘모던 아리랑’도 관심을 모은 바 있다. 그 밖에도 많은 실례들이 있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 한민족은 상고시대부터 유난히 가무를 즐겨왔다.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부여의 영고와 마한의 소도와 같은 제천의식에 대한 기록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오늘날 굿판에서 볼 수 있는 직관과 몰아(沒我)의 경지에 치닫게 하는 이른 바 무교(巫敎)적인 원형질이 그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매(侏·靺)로 중국전적에 기록된 동이악도 오늘날의 풍물굿을 방불케 한다. 그 당시 국경의 개념이 희박했을 뿐만 아니라 농경과 유목이나 수렵생활이 혼재된 시절이었기에 민족과 문화의 이동이 빈번했으며 가무의 교류도 필연적이었다.

후기신라부터 당나라의 문물이 거침없이 유입되면서 향풍(鄕風)대 당풍(唐風), 향악 대 당악이란 중층구조를 이루어왔다. 고려시대는 송나라의 사악(詞樂)과 대성악(大晟樂)이 들어왔다. 그러한 역사성으로 말미암아 우리음악의 주류가 마치 중국음악인 양 착각하는 현상도 있다. 그러나 우리음악의 주류(主流)는 중국음악이 아니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그 당시 중국음악의 수입은 오늘날 서구음악의 유입처럼 음악의 물줄기가 휘청할 정도로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외래음악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우리음악을 다른 나라에 전해주기도 하였으나 우리음악의 원형질을 지켜왔던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리음악은 작곡가의 익명성이 그 특징중의 하나이다. 우리의 국악은 오랜 세월을 통하여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고, 고쳐지고 다듬어진 공동 창작의 음악이다. 따라서 국악을 ‘옛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시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세종대왕이 작곡했다고 알려진 보태평과 정대업은 그 당시와는 사뭇 다르게 연주되고 있는 것이다. 즉 연주자들이 작곡자나 편곡자의 구실을 해왔기 때문에 생성구조(生成構造)로 되어 있는 폐쇄적이 아닌 개방적인 음악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많은 청중이 자신의 음악을 들어주기를 원한다. 엘리트 계층의 냉소와 십대의 맹목적인 열광, 혼절하는 팬들과 같이 대중음악이야 말로 모든 음악가들이 갈망하는 것이며 음악가는 청중을 위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전통국악의 보존계승과 기록은 그대로 지속하고 퓨전국악 발전도 병행해서 이루어져야…

결국 우리의 전통국악이 어떤 형태로든지 변해야 한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악 퓨전 콘서트도 활성화되지 않을 수 없다. 국악을 좋아하고, 국악 CD를 사서 듣고,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 과감한 퓨전국악과 대중음악적인 요소의 도입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제 이같이 젊은 층의 관심을 이끌어낸 것을 기회로 퓨전국악을 발전시킬 뿐만이 아니라 국악을 발전시켜야 한다. 퓨전국악을 추구하면 할수록 전통국악의 이해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퓨전국악 애호가들이 국악에 대해 알아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현재는 퓨전국악에 대해서 우려의 목소리나 질타가 있는 실정이지만, 이같은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여 문제점을 하나하나씩 해결해 나간다면 퓨전국악이나 전통국악이 모두 함께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다시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음악교육의 문제이다. 공교육에서 서양음악 위주의 음악교육을 혁신적으로 개편하여 전통국악의 교육을 활성화시키고 그러한 정상적인 국악교육을 담당할 국악교사의 육성과 확보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N세대들이 퓨전국악을 통해서 국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 이에 대한 전통국악의 교육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그렇게 교육받은 사람 중에 퓨전국악이던 전통국악이던 간에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킬 인재들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면면히 전승된 국악의 줄기가 서양음악과의 결합으로 이상하게 변모해 버릴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퓨전국악처럼 다른 분야와의 결합으로만 발전하게 되면 원래의 국악을 계속해서 전승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국악의 보존계승과 기록은 그대로 지속하고 더욱 발전시키면서 한편으로 퓨전국악도 발전시키는 병행구조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퓨전국악이 국악과 서양음악의 장점을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음악의 한 종류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국악의 맥이 계속 이어나갈 수 있으려면 퓨전국악도 국악 중심 즉 한국음악어법을 중심으로 창작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몇몇 대중가수들이 국악기 연주를 곁들이거나 모 방송사에서는 퓨전국악 또는 크로스오바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들은 일회성에 그치고 말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전통국악을 발전시키려는 각종 시도는 외래문화의 자주적 수용이란 관점에서 우리음악의 특성을 잘 살려나가는 방향으로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음악의 어법을 우리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음악을 흔히 슬프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이 서구음악의 틀 속에 꽉 잡혀 있어 우리음악을 서양의 단조음악으로 보는 색안경을 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우리음악을 이해시키는 방법으로 서양음악이론을 내세워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선율, 박자, 리듬, 화음, 속도 등 서양음악적 관점에서 우리음악을 이해시키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민족마다 민족성이 다르고 자연환경과 풍습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과 다른 우리음악의 어법을 우리식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그리고 인도의 시타르의 명연주가인 라비산카와 서양 바이올린의 명연주가인 Y. 메뉴힌의 협주와 같이 예술성을 높여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1930년 바이올리니스트로 독일에 유학하여 우리 음악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돌아온 계정식씨의 아악공개 연주를 들은 평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수천년 이래로 구중궁궐에 깊이 묻혔던 아악이 현대의 변천을 따라 이제 대중 앞에 공개연주를 하게 됨에 금석사죽포토혁목(金石絲竹匏土革木)의 악기라든지 휘황찬란한 악사들의 복장이라든지 수천년 수백년의 태평시대의 구중궁궐을 연상케 되니 이야말로 유사이래 드문 기록인가 한다. 속인이 감히 듣지 못하는 아악의 공개연주인 만큼 아악의 음률에 취하기전에 벌써 우리의 시각을 황홀케 하는 바 있으니 경주의 옛 도읍을 위시한 각처에 산재하여 있는 조형예술의 유물이 우리에게 인상을 주는 바와 같은 우아한 느낌속에서 자매예술인 고대음악문화에 접하게 되니 황홀경에서 나는 다시 신비경으로 유현경으로 들어갔다.(後略)”

서양음악을 발전된 것으로 보는 사대사상과 전통문화를 멸시하면서 급기야 우리음악을 고립되게 만든 요즈음의 지성인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말이며, 대중화만을 앞세워 이상스러운 퓨전국악만을 듣고 열광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도 충고하고 싶다. 퓨전국악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 허와 실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