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현상읽기 / 연극

민족 동질성 확인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공동광장 마련 - 남북 연극교류 어떻게 하나

유민영(연극평론가)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으로 50년 이상 계속된 한반도의 냉전 구조가 평화와 공존체계로 급격히 바뀌어 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따라서 그동안 남북한 간의 반목과 대결과 교류와 협력으로 바뀌어 나갈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도착과 두 정상의 극적 상봉 및 화기 애애한 회담장면은 남북한 시민들을 열광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면서 뜻있는 사람들은 우리의 기구했던 지난 역사를 씁쓸하게 반추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같다. 왜냐하면 지난 한 세기는 한민족사에 있어서 가장 고통스럽고 어처구니 없는 시기였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즉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일본군국주의에 짓밟히고 그 유산으로 분단, 전쟁, 이념갈등이 지속된 것이 아닌가.

연극만 하더라도 그러한 현대사의 궤적을 그대로 밟아왔다고 볼 수 있다. 가령 남쪽 연극인들은 반일·반공을 작품의 주조로 삼았고 북쪽 연극인들 역시 반일·반외세(반한·반미)를 주조로 삼아온 것이 사실이다. 남한의 대표적인 작고 극작가 유치진과 오영진의 작품주제가 바로 반일·반공이었고 북한의 대표작가 송영, 신고송의 경우는 반일·반외세였던 것이다. 극작가들이 거대한 시대의 악과 대결하다보니 그런 이념지향적 작품을 쓰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런 유산이 시대가 바뀌면서 급격히 생명력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선구연극인들의 작업이 그 시대로서는 필연적인 것이였으므로 가치를 부여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작품 자체로서는 보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하나의 도로(徒勞)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목적성을 띠는 북한 연극과 서구지향적인 남한연극의 뿌리는 하나

사실 당초 남북한 연극은 하나였다. 1920년대 중반부터 신극운동 노선상의 차이는 있었지만 민족극을 창조해간다는 목표는 하나였다. 초기 북한연극의 기초를 닦은 송영, 박영호, 황철 등 대부분이 동양극장에서 연극을 함께한 사람들이다. 그러다가 해방을 맞아서 극심한 이념대결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당시로서는 어쩔수 없는 역사의 필연이었다. 정치권력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은 연극인들이 노선싸움을 벌인 것은 극히 자연스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1948년 남북이 각자 독자적인 정부를 수립하면서 연극도 완전히 남북으로 갈리게 된 것이다.

1946년부터 1948년까지 3차에 결쳐서 월북한 연극인들은 대체로 세 부류였다. 첫번째 부류는 1920년대 중반부터 프로레탈리아 연극운동을 했던 사람들로서 송영, 박영호같은 사람들이고, 두번째 부류는 이데올로기와는 아무 상관없이 평양의 요청에 따른 연극인들로서 황철 등과 같은 상업주의 연극인들, 그리고 세번째 부류는 해방직후 갑자기 좌경한 극작가 함세덕과 같은 연극인들이다.

사실 신극운동은 대체로 신파극정서가 바탕이 된 동양극장 계열의 대중연극 줄기와 극예술연구회, 동경학생예술좌, 극협, 신협으로 이어지는 정극 두 줄기였는데 월북한 연극인들의 주류는 대중극 줄기였다. 그러나 그들이 월북해서 북한연극의 토대를 마련하는동안 그 두 줄기는 매우 기묘한 조화를 이루어냈다. 어떻게 보면 조화되기 어려울 수도 있는 신화적 표현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매우 특이한 양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오늘날 혁명대작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혁명가극이라는 획일적 연극양식으로 고착(?)된 것이야말로 북한 무대예술의 특색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북한연극은 신극유산을 바탕으로 하고 그 위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얹어서 혁명대작을 만들어내고 다시 혁명가극이라는 그들 나름의 무대극양식을 창조해낸 것이다. 정치권력의 절대적 지배를 받고있는 북한연극의 주제가 목적성을 띠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극술에 있어서는 매우 특이하면서도 대단히 발전되어 있음을 부인키 어렵다. 특히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수용,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을 철두철미 연구, 토착화시켰기 때문에 무대예술의 기본이 대단히 탄탄하다. 그러니까 배우들에서부터 연출, 무대미술, 의상, 조명, 분장, 음향 대소도구에 이르기까지 그 수준은 세계적이라 해도 과대평가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그 주제가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정치목적성 일변도라는데 한계점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에 남한연극은 다원주의 사회의 문화현상답게 다양하지만 지나치게 서구지향적으로 발전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즉 분단이후 남한 역시 리얼리즘을 기조로 하여 대체로 반공 목적극을 주조로 삼다가 전쟁이 끝나면서 서구연극 방식을 추구했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연극이 다양성은 띠지만 우리나름의 독특한 연극양식은 창조해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남북한 연극이 한 뿌리에서 싹이 터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국토분단으로 인하여 이질적 연극으로 서울과 평양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 슬픈 것은 그동안 각자 세계의 모든 나라의 연극과도 교류를 가지면서도 동족끼리만은 담을 쌓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새 세기를 맞아 남북이 50년의 적대 감정을 풀고 화해 협력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으므로 정서적 통일을 위한 문화교류가 목전에 다가와 있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남북문화 교류, 상대방을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이제야말로 문화교류를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할 단계에 와있다. 왜냐하면 그동안 냉전구조속에서 상호간 불신과 적대감정만을 키워왔기 때문에 양쪽 국적민의 응어리지고 경직된 마음부터 풀기 위해서는 문화교류 이상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화교류에 있어서 먼저 생각해야 될 것은 성급함의 지양이고 왜 교류를 하지 않으면 안되며 어떤 자세로 접근해가야 하는가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조금 언급한 바 있는 것처럼 50년동안 남북한 국민은 너무나 감정적 골이 깊어졌다. 그것은 아무래도 전쟁을 치른데다가 정치권력이 양쪽 국민을 적대시하도록 이끌고 간데 따른 것이었다. 7천만 인구중 7백만명이 이산가족이라면 열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이산가족이라는 이야기고 그만큼 민족전체가 혈연으로 얽혀있는만큼 국민 개개인이야 악감정을 가질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념적 괴리와 이질적 정치체제에 따른 양국민간의 증오와 배타심이 존재하는 것만은 부인할 수가 없다. 바로 그점에서 해원상생의 역할을 문화가 해주어야 하는 당위성이 있다고 하겠다.

물론 문화교류에 있어서 우선 순위는 아무래도 정치성이 적은 스포츠라든가 문화재 조사 연구, 고고학 발굴, 고전사료 교환, 종교교류 같은 것이 되어야 하리라 본다. 그렇지만 다중을 상대로 하면서 호소력 있는 무대예술이라할 음악, 무용, 그리고 종합예술로서 연극교류 역시 속히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교류에 앞서서 북한을 보는 관점부터 바꿔야 하는 것이 급선무라 본다. 우리는 50년 이상을 냉전체제 속에서 순치되어 왔기 때문에 북한에 대해서 은연중 왜곡된 선입견을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의 문제를 완전히 잊거나 무시할 수는 없어도 가급적이면 쌍방간의 과거사는 거론치않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그래야만 미래를 함께 열어 나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북연극교류를 하려면 우리가 북한연극을 먼저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상대방을 모르고 어떻게 교류를 할 수 있겠는가. 상대방을 모르고서는 이해도 불가능하다. 그만큼 북한연극연구가 시급하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동안 북한연극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시대의 연구는 어디까지나 대결상황하에서의 연구였기 때문에 객관적이기보다는 북한연극을 부정적 각도에서 접근했다는 한계점이 없지 않다. 이제 시대가 바뀌고 남북도 공존 공영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만큼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향에서 연구할 때가 온 것이다.

마침 한국연극협회에서는, ‘남북연극교류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교류를 추진한다는 고무적인 소식이 들려온다. ‘남북 양측의 연극 및 공연예술의 상호교류를 통하여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민족예술의 창달과 세계화를 도모하며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민족통일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교류위원회가 내건 사업은 대체로 다섯 가지로 요약될 수있다. 그것은 즉 ① 연극예술 교류를 위한 이론정립과 실천방안연구 ② 연극인의 상호간 친선방문 및 예술가 초청 추진 ③ 연극예술작품의 교환공연 ④ 연극인의 직능별 공동 워크샵(극작, 연기, 연출, 무대장치. 의상, 조명, 음향, 분장 및 학술등) ⑤ 연극작품의 공동개발 및 합동공연 등이 바로 앞으로 펼쳐나갈 사업이라 했다. 이것이 연극협회가 구상한 대로 실천만 된다면 남북 양측에 대단한 영향을 줄 것임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그러나 다섯 가지 항목 중 ③번 즉 연극작품의 교환공연과 ⑤번인 공동개발 및 합동공연이 걸림돌이 될 것이고 ④번의 워크샵 중에서 극작과 학술이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북한의 경우 연극은 다른 예술장르와 마찬가지로 노동당중앙위원회의 통제를 받는 관체제로 되어 있고 남한은 완전히 민간 자율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가 10여년전 남북문화교류를 할 때, 북한이 혁명가극 「피바다」 공연을 고집하는 바람에 교환공연이 중단된 적이 있었다. 그것도 KBS실황중개까지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그동안 북한의 연극체제가 바뀌었는가. 최근 정보의 부족으로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바뀐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목적극을 기본으로 하는 북한과 다원주의를 기본원칙으로 하는 남한연극인들간의 공동창작이 가능할까 의문이다. 워크샵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북한은 집체창작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남한의 자유분방한 개인적 상상력을 용인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학술은 더할나위 없다. 북한연극학자 한효가 쓴 「조선연극사개요」를 보면 노동당중앙위원회가 제시한 대원칙에 따랐음을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 엥겔스의 예술론에 입각해서 우리연극사를 기술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남북연극교류 위해 당장 실천 가능한 일

따라서 남북연극교류가 우리가 뜻한대로 원만히 진행되려면 북한이 변하거나 아니면 우리가 법을 개정하면서까지 북쪽연극을 포용하는 도리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이는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당장 실천 가능한 일부터 추진해야 하는데 그것은 즉 연극인 상호간 친선방문 및 연극인 초청, 그리고 극작을 제외한 직능별 공동워크샵 정도가 아닐까싶다. 그런데 남쪽에서 북한을 대하는데 있어서 주의해야 할 기본적 자세는 네 가지라고 본다. 그 첫째가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남한연극의 다양성과 표현자유는 북한연극에서 찾기 어려운 장점이다. 그러나 극술의 수준과 민족적 정체성 등 에서는 북한연극이 앞선다고 볼 수 있다. 상대방을 제대로 모르면서 쓸데없는 우월의식만 갖고 덤벼들다가는 큰 코를 다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솔직히 남한연극은 일종의 혼란기에 접어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다. 기본기 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상업주의에까지 물들어서 연극계는 말 그대로 방황과 모색의 혼돈속에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8·15광복절을 맞아 여성국극이 평양공연을 계획하는 것만 보아도 남한 연극계의 수준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과연 그 정도의 연극을 가지고 평양시민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인가. 두번째로는 남쪽 작품을 가지고 북한 사람들을 설복시키려 해서는 안된다. 자유, 다원주의가 좋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쪽 생각일뿐 북한은 다르다. 이는 곧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자세가 앞서야 한다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과거에 한두 번 있었던 남북예술교류에서 보면 남쪽은 대중적 연예인들을 동원하여 체루성 짙은 가요를 부르게하거나 코메디언들로 하여금 우습지도 않은 짓거리를 하고 온적도 있다. 반면에 북한예술인들은 고도의 기량을 보여주고 갔었다. 그 결과는 아무것도 얻은 바가 없었다. 너무나 멀고 허무한 것이었다. 예술작품을 가지고 북한을 변화시켜보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갖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이 스스로 변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우리의 장점은 다양성이므로 순수하면서도 자유분방한 무대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불순한 의도같은 것은 처음부터 버리고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다가갈 때 북한사람들도 경계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북한측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처럼 정치선전물을 갖고 남한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남한사람들은 개방된 사회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목적예술에 좌우되지 않는 내성을 갖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세번째 자세로서 연극을 가지고 북한을 이기려고도 하지 말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자세는 남한연극인들이 마음을 비울 때만 가능한 것이다. 예술작품을 가지고 상대방을 이길 수도 없지만 그런 의도 자체가 예술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네번째 자세는 순수 민간차원에서 교류가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의 교류 실패는 양쪽 모두가 보이지 않는 관의 조정을 받으면서 예술인들이 꼭두각시처럼 움직였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쪽은 저질 대중예술로 상대방의 마음을 흔들어 놓으려는 냄새가 났고 북한은 순전히 정치선전물로 남한사람들을 사회주의이념화 해보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교류가 지속될 수 없음은 명약관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남북정상회담 이후 양쪽이 평화공존으로 나아가고 있는만큼 연극인도 그에 걸맞는 자세변화가 필요하다. 그것은 다름아닌 양쪽 연극인들의 자기성찰이다. 다원주의사회에서 연극활동을 하는동안 지나치게 상업주의에 빠지고 민족극으로서의 정체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남쪽연극인들과 반대로 폐쇄사회에서 정치목적극을 외곬으로 추구해온 북한연극인들이 자기반성을 하는 계기로서 남북연극교류를 한다면 금상첨화일 듯싶다.

 

남북한 연극교류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앞으로 남북한 연극교류는 어떻게 전개시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앞에서도 조금 이야기한 바 있는 것처럼 쉽고, 작고, 정치성과 먼 것부터 천천히 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상호간에 가르치기보다는 배운다는 자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북한연극에서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극술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적 정체성같은 것이다. 북한의 극술은 뛰어나다. 배우술에서부터 무대장치, 조명, 음향, 분장, 대소도구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있다. 구소련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을 철저하게 습득함으로써 기본기가 대단히 탄탄하다. 게다가 구소련에서 배운 것을 토착화했기 때문에 견고한 자기 스타일을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북한의 극술에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문제점의 한 가지는 지나치리만치 이념화를 전제로한 극사실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목적 수단으로 무대예술을 활용하는데 따른 제재의 협소함이다. 여기서 이 두가지를 문제점으로 보는 이유는 첫째 북한 연극이 너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협곡에서 헤어나지 못하는데 따른 극적 환상의 부족이 눈에 띈다는 점과 두번째로는 적어도 연극에 있어서는 반일 혁명을 주제로 삼고 있어서 무대가 1930년대에 한정되어 있다싶이하다는 것이다. 제재의 폭이 좁기 때문에 관중의 입장에서 보면 식상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싶다.

그렇다면 남한연극은 어떤가. 지니치게 오락위주로 흐르는 바람에 다양성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국적불명의 혼란스러움과 천박스러움, 그리고 미숙함이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물론 남한연극의 장점도 적지 않다. 언제나 자유분방한 실험적 작업이 있고 세계연극을 마음껏 호흡할 수 있는 개방적 자세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남북한간의 가장 이상적인 연극교류는 상대방의 장점을 서로 배우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공동으로 세계에 내놓을만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이라 하겠다. 그렇게 되면 남한연극은 고도의 극술을 터득하고 북한연극은 획일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합일로 나아가는 과정의 정서적 통일의 길이 아닐까 싶다.

남북연극교류는 작품 교환공연에 앞서 사람간의 만남이 중요하다. 먼저 신뢰를 쌓은 다음에 작품교류도 뒤따라야 한다. 북한에는 아직도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한 연극인이 몇 명 생존해 있다. 이러한 이산연극인간의 만남으로부터 시작해서 주로 기능인간의 교류가 뒤따라야 할것같다. 여기서 기능인은 배우, 무대미술가, 조명가, 음향가, 분장사, 대소도구제작자, 무대감독 등을 일컫는다. 이는 우리가 주로 가서 배워야 할 분야이다. 많은 연극인이 평양에 가서 배우는 일이 여러 면에서 번잡스럽다면 그쪽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워크샵방식으로 배우는 것도 괜찮다. 마침 남북연극교류위원회에서 펼칠 사업중에 연극인의 직능별 공동워크샵 개최가 들어있어 다행이다. 그런데 그 워크샵이 재래 방식대로 한두주의 단기성보다는 반년 이상의 장기적인 방식이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상대 기술의 진수를 배울 수가 있다. 상대방의 기술만 습득하는데 그치지 않고 장인정신도 배울 수 있으려면 장기간의 워크샵이 필요한 것이다.

상대방의 기술과 장인정신 못지 않게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북한의 제도이다. 물론 우리는 자유민주사회이므로 사회주의국가의 문화정책을 그대로 모방할 수도, 또 해서도 안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본받을 만한 몇 가지는 예술우대정책과 인재육성제도라 하겠다. 이는 21세기 문화시대를 열어가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문화시대의 최대 인프라는 인재양성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한은 예술가 우대정책을 써왔고 인재양성에도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유니크하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예술인재 조기 발굴 및 교육이다. 저들은 예능에 소질이 보이는 어린이(6,7세)를 찾아내어 특수학교에서 체계적 조기교육을 시키고 있다. 이런 방식은 대부분의 사회주의국가들에서 취하고 있는 것이지만 대만 등과 같은 자유주의국가들에서 시행하고 있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문제는 국가에서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진흥에 얼마나 투자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예능분야 조기교육제도가 없다. 따라서 그런 분야의 특수예술학교도 없다. 다만 예술종합학교가 하나 있지만 그것은 대학에 준하는 콘서바토리이다.

문화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가는 만큼 예술인재양성 조기교육제도 같은 것도 차제에 한번 검토해봄직하지 않을까.

다음으로는 연극작품의 교환공연 문제를 이야기할 차례이다. 앞에서도 조금 설명했지만 작품을 가지고 상대방을 설복시키려는 음험한 자세는 처음부터 버려야 한다. 연극공연 몇번 관람하고 설복당할 국민도 없지만 그런 시대도 이미 지나갔음을 알아야 한다. 이는 특히 북한연극인들이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예술은 자유를 머금으면서 자라나는 나무와 같은 것이다.

바로 그점에서 보편성을 띤 작품이거나 가장 민족적 정서가 넘치는 작품만을 갖고 교환공연을 같는 것이 좋다.

상호간에 민족동질성을 확인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공동광장 마련이 곧 남북한 연극교류의 진정한 목적이 아니겠는가. 다음으로해야 할 일은 상호간의 공연예술 정보교환이다. 세계연극의 조류와 방향을 부지런히 전해주는 일도 쌍방간의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다. 그러려면 북한연극도 국제기구에 가입토록 도와주어야 할 것같다. 즉 국제극예술협회를 위시하여 연극학회, 평론가협회 그리고 아시아태평양극장협회 등 북한 연극인들이나 극장들이 가입할만한 국제기구가 여럿 있다. 남한과 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했듯이 연극인들도 국제교류는 필요하고 특히 그동안 문을 닫고 있던 북한연극이 외부세계와 호흡하는 것은 자기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이다.

 

민족혼이 강하면서도 세계연극과 맥을 같이하는 민족연극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

그러나 남북한 연극교류의 최종 목표는 통일과 함께 연극본래의 자리로 회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민족통일이 지상목표로서 연극은 정치권력이 50년동안 벌려놓은 양쪽백성의 정서적 간극을 원점으로 되돌려놓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극은 민족연극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단일민족으로 단일문화를 가졌다. 굿놀이로부터 시작해서 탈춤을 추었고 꼭두각시극을 놀았으며 판소리를 연행해왔다. 재담극으로 많은 사람을 웃기거나 사회를 풍자한 바도 있다. 개화기에 접어들어서 극장을 짓고 일본신파를 받아들여서 대중극으로 토착화시켰고 서구근대극을 수용해서 오늘의 우리 연극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해방과 함께 수천년동안 면면히 이어온 민족연극이 분열되어 남북에서 각자 변질되어 오늘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남북한 연극은 그동안 스스로 오염시킨 때를 벗고 본래의 연극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서양극의 맹목적 추종도, 저질 오락주의도 아니고, 정치 선전도구화도 아니다. 민족혼이 강하면서도 세계연극과 맥을 같이 하는 연극, 그것이 곧 이땅의 미래연극인만큼 공동으로 그런 연극을 창조하는 것이 연극교류의 근본 취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어려울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